< 24. 성난 거인 (1) >
***
장로회의 델타(갤리어스 국장)와 카파(오셀로 대표)가 한 짓이라는 건 거의 확실하다. 그리고 추측으로는 제타 또한 이 일에 연관되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드레이크 쌍성계로 떠났던 프랙탈 함대는 태양계에 돌아와서 유토피아에 정박했다.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서 로페즈는 회사에 쌓여있던 업무를 빠르게 끝낸 후 화이트홀의 여행용 함선에 오른다.
로페즈는 주변과 격리된 비즈니스석에서 트랜센던서의 이야기를 마저 듣는다.
- 복제된 제가 루비코 항성국가에서 가져온 정보에 의하면, 킬파인더는 29일 전부터 일급기밀로 분류된 의뢰주에게 의뢰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때 전자노트에 담아서 보냈던 트랜센던서가 킬파인더 네트워크의 일부를 해킹한 것이다.
“의뢰주가 누군지는 모르고?”
- 그것은 오셀로만이 알고 있습니다. 킬파인더에서는 일급기밀을 데이터 형태로 저장하지 않습니다.
- 의뢰주는 드레이크 쌍성계의 정확한 좌표를 오셀로에게 알렸습니다. 그리고 의뢰주는 관리자님이 사망하는 영상과 관리자님의 시신을 오셀로에게 요구했습니다. 오셀로는 이에 응했습니다.
“얼마를 받았는데?”
- 의뢰에 보수는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평범한 의뢰가 아니다. 의뢰라기보다는 명령이나 모종의 거래에 가까운 일이었으리라.
‘갤리어스 국장이 드레이크 좌표를 오셀로한테 전달한 것은 확실해.’
- 또한 제타에 해당할 확률이 가장 높은 인물을 특정했습니다.
“누군데?”
- 제록시스 군주입니다.
- 그는 오셀로가 일급기밀로 취급했던 의뢰주로 추측됩니다. 장로회의 델타가 갤리어스라면, 소거법에 의해 제록시스는 장로회의 제타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제록시스라 불리는 군주가 있었다고 한다. 로페즈는 처음 듣는 이야기다.
“도청은?”
- 제록시스의 공간을 경계하여 도청과 같은 작업은 수행하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이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잘했어.”
요주의 인물 셋을 묶어서 생각해봤을 때 델타, 제타, 카파는 한배를 탄 것 같다. 그중 가장 높은 인물은 델타, 베니스 사설정보국의 갤리어스 국장이다.
- 오리온과학수호협회의 협회장과 부협회장이 실종되고 하루가 지난 시점에서, 오셀로는 제록시스와 접촉했습니다.
그때 벌어졌던 사건의 윤곽이 보인다.
“제록시스가 오셀로한테 일처리는 잘했냐고 물어보고 다음 작업을 시켰던 거야. 갤리어스 국장이 준 좌표에 근거해서.”
- 그렇게 추측됩니다.
- 승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루비코의 세라리코 우주공항까지 여러분을 모실 쯔쉬안 주니어 함장입니다. 금일도 저희 화이트플라이를 이용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로페즈는 곧장 루비코 항성국가로 향한다.
‘갤리어스 국장, 제록시스 군주, 오셀로 대표···. 당장은 3 대 1인가.’
회사에는 회사만의 지침이 있고 나라에는 나라만의 법이 있다. 그리고 장로회에는 장로회만의 규칙이 있었다.
지금껏 그 규칙이라는 것에 얽매여서 제대로 된 도움을 받지 못했다.
따라서 그들이 그렇게나 규칙을 중시한다면, 이번엔 그들의 규칙대로 해주리라.
‘3 대 1을 2 대 1로 만들어주마.’
***
알파가 일전에 말했던 대로, 알파는 은하계에서 일이 있는 게 아니라면 늘 이 사이버 공간에 있다.
“데이터를 들고 접속했군. 람다.”
알파와 로페즈를 제외하곤 아무도 없다. 그래서 의도치 않게 알파를 독대하게 되었다.
‘차라리 잘 됐어. 단둘이 있을 때 말하는 게 나아.’
“알파 님. 장로회의 규칙에 대해서 확인하고 싶은 사항이 있습니다.”
“말해보게.”
“일원이 다른 일원에게 ‘직접적인 위해’를 가한다면 규칙 위반입니다. 그리고 규칙을 위반한 자는 숙청 대상이 됩니다. 저는 이렇게 숙지하고 있는데, 제가 알고 있는 것이 맞습니까?”
“잘 알고 있네. 자네가 말한 그대로야. 일원이 다른 일원에게 직접 위해를 가하면 숙청의 대상이 되지. 필요에 따라서 내가 조사도 해주고. 하지만 그게 직접적인 위해라는 사실이 확실치 않으면 난 아무것도 도와줄 수 없네.”
“예. 그것이 이곳의 법이니까요.”
“규칙이지. 제타가 또 자네를 괴롭게 했나?”
“제타 님께서 하신 일이라고 확신은 하지만 증거가 없습니다. 설령 증거가 있다고 해도, 제타 님께서 제게 직접적인 위해를 가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당장 제타는 논외다.
알파는 다 알고 있다는 투로 말한다.
“자네의 프랙탈 함대가 라디에크 차원통로를 경유하여 34일간 태양계를 비웠지.”
“테라포밍 예정지의 행성에 방문했었습니다. 제가 소유한 시설물을 설치하기 위해서죠.”
“멋진 이야기로군. 전부터 짐작했네. 자네도 나와 같은 개척자 성향이 있었어.”
멋지고 희망적인 이야기가 될 수도 있었다. 그들의 악의만 없었더라면.
“알파 님. 제가 의도치 않게 카파 님의 정체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가?”
포장된 이야기를 꺼낼 차례다.
“킬파인더의 오셀로 대표. 그가 테라포밍 예정지인 행성에서 전쟁기계로 하여금 저를 죽이려 했습니다.”
로페즈는 테이블 위에 손짓하여 준비한 데이터를 알파에게 보여준다.
총성, 폭음, 폭연, 불꽃, 파편.
드레이크 쌍성계의 5번 행성에서 녹화한 교전 당시의 영상이다.
“이 일로 저는 죽을 뻔했습니다. 제 사람들이 제가 보는 눈앞에서 죽어갔고···. 열흘 동안 애써 만든 것들이 한순간에 파괴되었습니다.”
“이건 확실히 ‘직접적인 위해’라고 볼 수 있네.”
“예···.”
은근슬쩍 동정심에 호소해봤는데 알파는 여전히 아무것도 느끼는 것이 없는 듯한 목소리다.
“그래서 어떻게 됐지?”
“누가 이런 짓을 했는지 알아내기 위해 조사했습니다. 제 인공지능을 최대한으로 활용하여 전장에 남은 병기들을 분석했죠. 그랬더니 킬파인더라는, 루비코의 최정예 전문용병회사에서 사용하는 병기고유식별번호가 부서진 부품에서 나왔습니다.”
“···내가 알기로 옵시디아몬은 루비코의 병기고유식별번호까지 조작할 정도의 기술력은 갖추지 않았지.”
“그렇습니다.”
일단 여기까진 설득이 된 것 같다.
“그래서 저는 킬파인더가 어째서 제게 이런 작업을 가했는지 알아보기 위해 킬파인더로 인공지능 해커를 보냈습니다.”
“그랬더니 오셀로라는 자가 카파였다. 이 말인가?”
“···오셀로의 입에서 자신이 작업의 정점, 카파라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
“카파 님은 저보다 한 단계 빠른 순서입니다. 당연히 저는 오셀로 대표가 카파 님일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이건 우연히 알아낸 것이라고.
“반면에 카파 님께서는 제 정체를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옵시디아몬의 로페즈 회장. 그 사실을 알고 계시면서도···. 아무도 없는 외딴 우주공간에서 제게 이런 작업을 가했다는 건···.”
“규칙에 위반된다.”
“예.”
알파는 잠시 자기 턱을 어루만진다. 그러면서 로페즈가 띄운 영상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다. 저 데이터를 분석이라도 하고 있는 것일까.
“···로페즈.”
“예. 알파 님.”
“조작의 흔적이 없군. 자네가 가져온 데이터는 증거로서 확실하기 때문에 믿어주겠네.”
“감사합니다.”
“하지만···”
느껴진다. 영상을 보던 알파의 시선이 이쪽으로 옮겨졌다.
“만에 하나라도, 자네의 이야기에 아주 조금이라도 거짓말이 섞여있다면··· 자네도 숙청될 것이야.”
‘자네도···. 라고 했다.’
“맹세코 거짓말이 아닙니다. 오셀로는 절 죽이려 했습니다.”
“아니, 그것 말고도 다른 부분들.”
다른 부분의 거짓말도 포함.
긴장된다. 식은땀이 안 나서 다행이다.
지금쯤 현실의 몸은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거나 호흡이 떨리고 있으리라.
“자네가 방금 나한테 해준 이야기에 아주 조금의 거짓말이라도 섞여있어선 안 된다. 알겠나?”
“네. 확실히 숙지했습니다.”
“···지금 오셀로는 루비코에 있군.”
현실에 있는 오셀로의 위치를 이 자리에서 곧바로 추적해낸 알파다.
“자네는 이만 가보게.”
“예. 그럼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아.”
로페즈는 일어나면서 묻는다.
“그런데 카파 님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확답을 원한다.
적들의 머릿수가 줄지 안 줄지.
알파는 지극히 무미건조하게 답한다.
그래도 같은 장로회의 일원인데, 아무런 감상도 없다는 식으로.
“최후의 변론은 들어봐야겠지.”
***
8월 3일 오후 4시.
오늘 세라리코의 오후 4시는 해가 떨어진 한밤중이다.
킬파인더의 사무실에서 오셀로는 부하 용병에게 묻는다.
“애들 똑바로 배치해놨어?”
“예. 1층 출입문부터 옥상까지 무장 병력을 갖췄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