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대 인공지능 키우기-119화 (118/183)

< 23. 우리는 개척자인가 아니면 파괴자인가 (3) >

***

우리는 개척자다.

우리는 늘 무언가를 탐험하며 새로운 것을 갈구한다.

우리는 새로운 곳을 발견하고 미지의 세계에서 미지의 것들을 조사한다.

그리고 남은 것은, 오래 전부터 우리의 깊은 유전자 속에 박힌 본능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일이다.

우리는 인간이다.

***

“이쪽으로! 더, 더!”

방호복을 입고 착륙지 근처로 온 프녹스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시설물을 보며 손짓한다.

- 이 위치입니까? 프녹스 님.

“맞아, 비싼 돈으로 만든 거니까 살살 내려.”

하단에 사다리 수십 개를 다리처럼 붙이고 있는 비행체가 수직으로 천천히 착륙한다. 인공의 바람을 생전 처음으로 맞이한 주변의 잎사귀 없는 녹색 식물들이 꼬불꼬불한 줄기를 떤다.

척! 척! 척!

위이이잉!

평지에 무사히 내려앉은 시설물은 철제 사다리를 하나씩 땅에 박는다. 땅에 박힌 사다리는 곧 금속의 소리를 내며 이리저리 격자무늬로 갈라진다.

그렇게 강철의 뼈대가 완성되자 대기하던 휴머노이드들이 저마다 합금판을 가져와 뼈대를 포장한다.

이어서 기계팔이 부착된 드론 하이브 몇 기가 다가와 포장된 뼈대 안에 팔을 집어넣는다.

쏴아아아아아아!

뼈대 안에 살짝 어두운 빛깔의 조밀한 콘크리트가 쏟아진다.

카카카캉!

주변에서는 체인트루퍼들이 칼날을 수평으로 회전시키며 식물들을 베어낸다. 식물의 잔해는 휴머노이드가 주워서 건설 차량의 짐칸에 모은다.

로보버그들이 체인트루퍼 위에서 날아다니며 지상의 생명체들을 탐색한다.

카카캉···!

“잠깐 정지.”

쿵! 쿵! 쿵!

어느 체인트루퍼의 배후로 육중한 몸집의 테슬라포트리스가 다가온다.

체인트루퍼는 그런 테슬라포트리스를 올려다보며 칼날의 회전을 멈춘다.

“비켜서라.”

키잉···.

체인트루퍼는 다른 곳으로 물러간다. 방금까지 체인트루퍼가 자르고 있던 위치에 자그마한 절지동물이 있었다.

“포획하라.”

그러자 테슬라포트리스를 따라다니는 휴머노이드 무리가 다가와 녀석을 줍는다. 이런 식으로 토착 생명체가 발견될 때마다 연구를 위해 포획하는 것이다.

한편, 착륙지의 함선 바로 앞에는 집무실과 사무실이 갖춰지는 중이다.

끼릭끼릭끼릭!

별도의 건설 차량이 도와주지 않아도 옵시디아몬이 준비해온 건축의 재료들은 스스로 조립을 시작한다. 네트워크와 연결된 신소재 합금판이 뼈대를 감싸고 뼈대 안에는 콘크리트가 부어진다.

콘크리트는 빠르게 굳어서 어두운 빛깔을 보인다. 그것을 다시금 합금판이 감싸면 휴머노이드와 사원들이 다가와 합금판들 사이의 갈라진 틈새를 용접한다.

건물 안으로는 당장 연구팀이 쓸 기자재와 장비들이 옮겨진다. 책상이 놓이고 컴퓨터와 본체들이 미리 예정된 설계도대로 배치된다.

착륙 후 24시간째. 샌디의 카일포트리스가 망원경 같은 머리로 상공을 지켜보고 있다.

두 손이 있는 통상의 전쟁기계들은 무거운 기계장치를 가져온다. 얼핏 보기엔 용도를 알 수 없는 기계장치들이지만 그것들 하나하나가 핵융합로의 부품이다.

풍력, 수력, 지열, 태양광, 태양열 등 당장 발전기를 돌려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요소는 많다. 하지만 오늘날의 발전은 대부분 이 핵융합로가 대체한다.

미리 마련된 토대 위에 기계장치들이 하나씩 모인다. 옵시디아몬의 전문가들은 섬세한 장치들을 조심스럽게 연결하여 핵융합로의 코어를 완성한다.

코어가 완성된 후에는 굵은 케이블을 연결하여 바깥으로 빼낸다. 착륙지 근처의 땅들은 일정한 깊이로 파여서 콘크리트가 부어지고 있다.

직선적으로 설계된 콘크리트 길의 지하로 케이블이 자동으로 뻗어나간다. 케일블은 그렇게 다른 시설이나 건축물에 연결된다.

48시간째. 완성된 건물들에 전기가 공급되기 시작한다. 어두웠던 실내에 조명이 들어오고 배치된 컴퓨터들의 모니터가 하나둘씩 켜진다.

벽에 뚫린 네모난 구멍들은 창틀이 되고 창문이 되었다. 콘크리트로 메워진 땅 위에 아스팔트로 포장된 짧은 도로가 깔린다.

효율적으로 설계된 도로의 한편마다 창고나 연구소가 세워지고 방호복을 입은 각 분야의 사람들이 들락날락한다.

또 한편에서는 이곳에서 장기간 거주할 사원들을 위해 필요한 시설을 올리고 있다. 바다에서 물을 끌어오는 긴 파이프, 그 파이프와 연결된 해수담수화 시설이다.

인간이 마시고 사용할 수 있는 깨끗한 물은 화장실과 샤워실도 건설하게 한다. 거주할 사원들이 충분히 사용하고도 남을 크기의 위생센터가 커다란 이글루처럼 확장된다.

아주 자그마한 크기의 보건소에는 간단한 수술실과 각종 약품들이 구비된다. 보건소의 뒤편으로는 현지에서 하이퍼 마인드 네트워크가 작동할 수 있도록 네모난 모양의 서버센터가 건설된다.

서버센터에 복제되어 배치된 트랜센던서는 행성의 기후와 재해를 분석, 감시하고 이곳에 남을 인원들의 의견을 조율하여 지속적인 발전을 도모할 것이다.

96시간째. 인간이 배출하는 쓰레기와 배설물을 처리하는 시설은 착륙지에서 가장 멀찍이 떨어진 위치에 세워졌다. 또 그 시설의 옆으로 간단한 생필품을 만드는 공장과 비료를 만드는 시설 또한 건설되고 있다.

비료를 만드는 시설 앞으로 도로를 따라가면 보이는 가까운 위치에는 고기를 만드는 배양육 시설과 수직 자동화 농장이 완성되었다.

어느덧 낮을 밝히던 두 해가 저물고 두 달이 고요히 떠오른다.

반중력으로 부양하는 가로등이 스스로 움직여 자기 자리를 찾아간다. 건물의 창문마다 문명의 빛이 새어 나온다.

밤하늘에 쏟아질 듯 많았던 별빛들이 하나둘씩 꺼지고 그 빈자리를 함대와 인공위성들이 조금씩 차지한다.

이제 착륙지는 문명이 없는 이 행성의 밤에 유일하게 빛을 내는 장소가 되었다.

120시간째. 이 행성을 기준으로 대략 4일이, 24시간을 기준으로 5일이 지났다.

이제 이곳은 인간의 땅이 되었다.

***

착륙지에 마련된 로페즈의 집무실에 샌디와 프녹스가 들어왔다. 그리고 상석에 앉은 로페즈의 주변으로 각 팀의 팀장들 또한 앉아있다.

그들은 샌디의 보고를 듣는다.

“토착 생명체 중 육상 식물은 모두 한 종류였습니다.”

그녀의 배후로 이 행성에 널리 퍼져있는 식물의 사진이 나타난다.

“이 식물은 얕고 넓게 퍼지는 뿌리로 수분함량이 많은 토양에서 염수와 지하수를 구분하지 않고 흡수합니다. 그렇게 흡수한 수분을 담수로 바꾸어 줄기에 저장하는데, 이 줄기가 잎사귀처럼 광합성 작용을 합니다.”

우주에서 이 행성을 처음 보았을 때부터 확인된 구불구불하게 생긴 식물이다. 잎사귀가 없어서 풍성하게 보이진 않지만 잡초처럼 조밀하게 자라서 지표면을 녹색으로 물들이고 있는 주범이다.

“저희가 흔히 알고 있는 엽록체보다 훨씬 큰 세포 소기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해당 세포 소기관을 분석했는데, 그라나와 스트로마 같은 엽록체 구성물을 동일하게 담고 있었습니다.”

로페즈는 질문한다.

“본질은 저희가 아는 식물과 같다는 말씀인가요?”

“네. 이 행성의 해양에 퍼져있는 조류가 해당 식물종의 조상인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래서 포자번식을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뿌리 번식을 하고 있었습니다.”

“전에 발견됐다던 열매 같은 것은요?”

“이 식물이 염수를 담수로 바꾸는 과정에서 남은 염분 주머니였습니다.”

열매인 줄 알았던 게 그냥 소금 덩어리였다는 것이다.

‘하긴, 열매는 동물한테 먹혀서 씨앗을 옮기려는 목적으로 진화한 형태니까.’

여기엔 그런 동물이 없다.

“아쉽네요. 계속하세요.”

이어서 육상 동물이다.

그녀의 배후에 새로운 사진이 나타난다. 뭐라고 표현할 것도 없이 벌레처럼 생긴 절지동물이다. 긴 몸통의 양옆으로 짧은 다리가 여섯 쌍이다. 더듬이는 없고 머리에 두 쌍의 까만 눈과 뾰족한 턱을 갖추고 있다.

“마찬가지로 이 행성의 육상에서 서식하는 유일한 절지동물입니다. 그리고 초식동물이죠. 몸길이는 평균 11㎝입니다.”

‘휴대전화보다 조금 큰 사이즈인가.’

사진을 재생하던 커다란 화면이 영상으로 전환된다.

유리상자 안에 담긴 벌레가 이 행성에서 채집한 식물의 줄기를 잘근잘근 씹어먹고 있다.

“해당 식물종을 먹이이자 수분 공급원으로 삼고 있습니다. 서식지는 어디든 가리지 않고 습한 지형에 흙이 있다면 흙 아래에 몸을 숨기고 삽니다. 굴을 파는 건 아니고요. 암컷과 수컷이 있으며 수시로 짝짓기를 맺고 수시로 알을 낳습니다.”

바퀴벌레처럼 대량으로 번성하는 종인가.

“알 무더기를 낳으면 무더기의 바깥쪽에 위치한 알들은 낮과 밤의 일교차에 의해 죽습니다. 결국 무더기의 중심에 있는 알들만 살아남아 새끼가 되는데, 이 숫자가 스무 마리 정도입니다.”

“해양 쪽은요?”

“많습니다.”

몸보다 커다란 턱을 가진 전갈 같은 것, 말미잘처럼 촉수가 달린 따개비 같은 것, 다리와 날개가 없는 잠자리 같은 것, 그냥 딱 봐도 조개 같은 것, 헤엄치는 원기둥 같은 것, 꼬리가 앞뒤로 달린 가오리 같은 것의 영상들이 나타난다.

“지금까지 절지동물 22종, 척삭동물 9종, 두족류 8종, 완족류 2종, 조류 4종이 발견되었습니다.”

미지의 세계에서 다양한 생명체들을 발견했다. 해양의 방대한 크기를 고려해보면 지금까지 발견한 생명체들보다 아직 발견하지 못한 생명체들이 더 많으리라.

하지만 이 놀라운 소식들은 알 수 없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한다.

‘나중에 야생에 있는 것들은 거의 멸종하겠지.’

인간이 살 수 있는 환경은 곧 인간이 살 수 없는 환경에 적응한 동식물들의 멸종을 가져온다.

이 행성의 기후는 인간이 살아가기에 너무 덥다. 그래서 행성의 평균 기온을 낮추기 위해 대기 조성에 변화를 가하면 환경이 완전히 뒤바뀌게 된다.

자기 주변의 환경을 통제할 수 없는 생명체들은 인위적으로 극변하는 환경에 적응할 시간도 없이 멸종할 것이다.

“테라포밍 전에 수용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많이 포획하세요. 나중에 멸종을 대비해서요.”

아주 커다란 식물관, 전시관, 수족관 등을 만들어서 이 생물종들을 보존할 것이다.

「야생에서 스스로 진화한 외계 생명체들은 가치가 높습니다. 금전적인 면에서 아주 유용한 선택입니다.」

‘그게 주된 이유는 아니었지만···. 그렇기도 하겠네.’

샌디의 보고가 끝난 다음에는 프녹스의 차례다. 벽면을 가득 채운 화면은 착륙지를 상공에서 내려다본 지도의 형태로 전환된다.

“핵융합로가 성공적으로 가동되면서 모든 시설물에 전기가 공급되고 있습니다. 금일까지 완공된 시설들로는 집무실과 사무실이 있는 이 사옥과 격납고, 창고, 연구소, 해수담수화 시설, 위생센터, 보건소, 서버센터, 배양육 시설, 수직 자동화 농장입니다. 어제 중으로 반중력 가로등과 관측위성 배치가 끝났고 하이퍼 마인드 네트워크가 성공적으로 구축되었습니다.”

여기서 프녹스가 말하는 하이퍼 마인드는 트랜센던서 서버를 뜻한다.

“남은 5일 동안 완료할 과제는 지대공 방어망 구축, 방어위성 배치, 임시군사기지 건설, 군수공장 건설, 지하 방공호 건설, 프린터 공장 건설, 광산 개척입니다.”

“좋습니다. 계속 그렇게만 해주세요.”

마지막으로 프랙탈의 목소리를 빌린 트랜센던서가 실내에 설치된 스피커로 알린다.

- 5번 행성의 기후분석이 완료되었습니다.

정지궤도에 배치된 각 관측위성들의 화면들이 모니터 룸처럼 전개된다. 다양한 각도에서 찍고 있는 행성의 모습들이다.

- 대기의 산소 조성 비율을 높이고 이산화탄소 조성 비율을 낮추기 위해 대규모 인공광합성 부지를 설치해야 합니다. 또한 대기의 질소 농도가 희박하여 별도의 질소 자원을 행성에 공급해야 합니다.

- 단계적 테라포밍을 거치면서 기후에 적합한 지구 출신의 동식물종을 이 행성에 유입해야 할 것입니다.

이어서 트랜센던서가 설명하는 테라포밍은 충분히 실현 가능성이 있는 내용이었다.

로페즈는 테라포밍의 세부적인 내용을 더 들으면서 잠정적으로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러나저러나 지금보다 더 큰돈이 필요해.’

누군가는 옵시디아몬이 벌어들이는 수익이 지금 이대로도 엄청나다고 평가하겠지만, 더 원대한 꿈이 있는 로페즈에겐 그 수익이 부족하게 느껴졌다.

어차피 국가로부터 독립하기 위해선 시가총액 300조 이상의 거대기업으로 인정을 받아야 한다.

따라서 이 낯선 땅에 국가를 세우는 것은 옵시디아몬이 지금보다 3배 이상 성장한 다음의 이야기가 된다.

결국 돈이다. 돈이 없으면 낙후된 지역의 방 한 칸 얻는 것도 어렵고, 돈만 있으면 미지의 행성에 새로운 국가라도 세울 수 있는 오늘이다.

‘더 많이 벌어야 해. 더 많이···.’

지금까지는 ‘기술 개발’에 집중했었다.

그러나 당분간은 기술보다 ‘돈 벌기’에 집중해야겠다.

< 23. 우리는 개척자인가 아니면 파괴자인가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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