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 우리는 개척자인가 아니면 파괴자인가 (2) >
***
앞으로 34일간 태양계의 일은 그곳에 있을 트랜센던서와 레나에게 전적으로 맡겼다.
옵시디아몬의 프랙탈 함대는 무장 함선 네 척과 지휘주력함 프랙탈로 편성되었다. 본대를 거의 다 끌고 온 것이다.
그리고 베니스의 안내자들이 탑승한 그들의 함선 한 척이 함께 이동하는 중이다.
프랙탈에서 프녹스는 보고한다.
“조립식 연구소, 사무실, 창고를 준비했습니다. 가서 도착하자마자 단단한 평지를 찾으면 20분 안에 설치 가능합니다.”
이어서 샌디가 보고한다.
“자료들 확인했어요. 중력은 8.9뉴턴, 평균 표면 온도 18도, 광합성 생물의 부산물인 산소가 오존층을 형성했고 육상 식물이 존재하고 있으니까, 대기 조성은 계속 나아지고 있다고 봐요. 그리고 그쪽 생태계가 정확히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지질학적으로 실루리아기에 해당하고 있다면 인간에게 위협이 되는 생명체는 없을 거예요. 바이러스나 세균부터 최우선으로 조사하기로 했어요.”
마지막으로 엑스턴이 보고한다.
“회장님께서 당부하였던 적대적 세력에 대한 것은 항시 경계 중입니다. 드레이크 쌍성계에 도착해서는 행성을 중심으로 함대를 배치하여 외부의 접근을 사전에 탐지할 수 있도록 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행성 내에서는, 별동연구소장님께서는 없다고 하시지만 혹여나 있을 적대적 외계 생명체에 대하여 즉각 대응할 수 있도록 지상군을 산개 배치하겠습니다.”
프랙탈 함대는 만반의 준비를 했다.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고 개척하는 것은 아주 놀라운 일이다.
만사에 소극적인 사람이나 적극적인 사람이나, 겁이 많은 사람이나 겁이 없는 사람이나,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나 적은 사람이나, 누구나 할 것 없이 도착일이 가까워질수록 가슴이 묘하게 두근거림을 느꼈다.
개척.
그것은 아주 오래전부터 인간에게 내재된 본능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개척자의 정신을 가지고 있으며, 개척자의 후손들이니까.
창밖에선 별빛이 함대의 진행 방향으로 가느다란 선처럼 늘어지고 있다. 그들은 고요한 우주를 가로지르며 준비에 준비를 거듭하고 끊임없이 상상했다.
감히 그 크기를 헤아릴 수 없는 광활한 우주에서 하루라는 개념은 이질적이었다. 인간의 문명에서 가져온 시계만이, 문명을 벗어난 그들에게 유일한 시간적 감각이 되어주었다.
정적이면서도 격동적이며 아름다우면서도 어딘가 두려운 우주다. 풍경이라는 것은 공허한 도화지 위에 부서지는 별빛들뿐이다.
고향으로부터 아득히 멀어졌음에도 실감이 나질 않는다. 어느 방향의 창밖을 보더라도 육안으로는 무엇이 바뀐 건지 전혀 알 수가 없다.
그래도 시간은 흐른다. 함대는 계속 나아간다.
태양계보다 커다란 가스 구름을 통과하고 수백의 태양보다 커다란 적색거성 옆을 지나고 블랙홀의 손아귀를 피해 경로를 실시간으로 수정한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새어가며 그날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
도착까지 하루를 남겨둔 날, 로페즈는 엑스턴과 코만데를 밀실로 데려왔다.
“하실 말씀이 있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이 밀실에 세 사람 말고는 아무도 없다.
“프랙탈. 설명해.”
- 네. 관리자님.
프랙탈은 엑스턴과 코만데에게 알려준다.
- 드레이크 쌍성계와 행성의 정보를 제공한 자는 베니스 사설정보국의 베네티 갤리어스 국장입니다.
- 갤리어스 국장은 관리자님께 적개심을 품었고, 신변의 위협에 대해 경고하는 발언을 했습니다.
코만데는 로페즈에게 묻는다.
“갤리어스 국장이 뭐 때문에 회장님께 적개심을 품습니까?”
“저도 몰라요. 그래서 더 조심하려고요.”
이들에게 그것까진 알려줄 수 없다. 베네티가 장로회의 4번째 일원인 관측의 정점, 델타라고는.
- 따라서 갤리어스는 프랙탈 함대가 드레이크 쌍성계를 목적지로 이동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외부 세력입니다.
엑스턴은 의문스럽다는 표정이다.
“그래도 베니스의 안내자들이 저희와 함께 가고 있지 않습니까. 비무장 함선 한 척에 열 명도 안 되는 인원인데 그들이 무슨 수로 회장님께 해코지를 합니까?”
“제게 위해를 가할지 안 가할지는 모르는 일이에요. 거기 도착해서 계약이 완전히 성사되고 나면 갑자기 태도를 바꿀 수도 있고요. 그 안내자들을 끝까지 조심하자는 말이죠. 아니면 처음부터 그쪽 행성에 군대라도 대기시켜뒀을 가능성이 있어요.”
- 행성에 도착한 후 엑스턴 사령관님은 외부를, 코만데 부사령관님은 내부를 경계해주시길 바랍니다.
“베니스의 안내자들은 프랙탈이 한 명도 빠짐없이 감시할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죠? 두 분 다.”
“예. 알겠습니다.”
“유념하겠습니다.”
조심해서 나쁠 것 없다.
***
멀찍이 보였던 하얀 별은 가까워질수록 두 개로 분리되어 보이기 시작한다.
마침내 프랙탈 함대가 이곳에 도달했다.
드레이크 쌍성계.
하얗게 빛나는 드레이크 알파는 태양보다 1.6배 큰 덩치를 자랑한다. 드레이크 알파에는 대류층이 없어서 태양풍과 같은 항성풍이 발생하지 않아 주변 거주 가능한 행성에 강력한 자기장을 요구하지 않는다.
드레이크 알파의 위성처럼 떠있는 드레이크 베타는 태양보다 0.6배 작은 덩치로 주황색이다. 드레이크 베타는 태양보다 적은 자외선을 복사하여, 공전궤도의 행성에서 복잡한 분자구조가 형성되는 것을 크게 방해하지 않는다. 이는 생명체 진화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
드레이크 쌍성은 서로를 향해 공전하고 있으며, 이 쌍성을 중심으로 9개의 암석 행성과 2개의 가스 행성이 또 공전하고 있다.
직접 쌍성계에 들어온 것만으로 각 행성들에 대한 대략적인 분석이 이루어졌다. 트랜센던서는 분석한 정보를 함교의 화면에 배치한다.
「1번 궤도: 중원소의 금속 행성. 평균 온도 410도. 화성의 0.7배 부피.」
첫 번째 정보가 배치되자마자 로페즈가 가리킨다.
“금속 행성이라는 건 무슨 뜻이야?”
트랜센던서는 프랙탈의 여성적인 목소리를 빌린다.
- 여기서 금속이란 수소와 헬륨을 제외한 나머지 무거운 원소를 뜻하는 천문학적 의미입니다.
로페즈에게 금속하면 떠오르는 것은 강철처럼 단단한 것이나 구리처럼 전기가 통하는 물질이지만, 천문학자들은 금속을 무거운 원소라는 개념으로 여기나 보다.
「2번 궤도: 마그마 행성. 평균 온도 1026도. 화성의 0.5배 부피. 과거에 소행성 충돌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됨. 중수소 기체 자원이 매우 풍부함.」
「3번 궤도: 화산 행성. 평균 온도 495도. 화성의 3.2배 부피. 행성의 내핵과 외핵이 형성하는 자기장이 발견됨. 탄화수소 기체 자원과 탄소기반 광물 자원이 매우 풍부함.」
「4번 궤도: 사막 행성. 평균 온도 66도. 화성의 5.8배 부피. 오랜 세월 현무암이 풍화되어 검은 모래로 사막을 형성함. 드레이크 쌍성계에서 가장 큰 암석 행성으로 지하에 희토류와 광물자원이 가장 풍부할 확률이 높음.」
「5번 궤도: 바다 행성. 평균 온도 18도. 화성의 7.5배 부피. 자기장, 오존층, 두 개의 위성과 기울어진 자전축으로 계절변화가 있음. 행성 전체를 차지한 바다와 두 개의 대륙이 있음. 지질학적 실루리아기. 절지동물과 척추동물이 해양에 존재. 육상에는 절지동물과 육상 식물이 분포함. 단순한 구조의 생태계가 형성됨. 풍화, 침식, 퇴적으로 인한 비광물 자원 및 광물 자원이 매우 풍부함.」
그밖에 6번 궤도는 단순한 암석 행성, 7번 궤도는 자그마한 얼음 행성, 8번 궤도는 위성이 하나뿐인 가스 행성, 9번 궤도는 행성 크기의 위성을 세 개나 거느린 가스 행성, 10번 궤도는 드라이아이스를 표면에 덮은 암석 행성, 11번 궤도는 오로지 드라이아이스로 이루어진 얼음 행성이었다.
프랙탈 함대는 예정대로 5번 행성의 궤도에 정박하여 행성 바깥의 모든 방향을 경계하는 위치로 산개하였다.
이윽고 행성에 휴머노이드로 편성된 무인 탐사대가 내려가 착륙지의 안전을 확보했다.
로페즈와 옵시디아몬 사원들은 하나의 함선을 이용하여 행성에 내려왔다. 완전밀폐식 방호복을 입은 그들은 직접 행성의 땅을 밟아보며 주변은 두리번거린다.
눈앞에 낯선 환경이 펼쳐진다.
사람의 하반신 정도 되는 높이의 식물들이 척박한 흙 위에 무수히 자라나있다. 하늘의 색깔은 온전히 하늘의 색깔이다. 옅은 구름이 있고 잔잔한 바람도 분다. 태양과 같은 별이 하늘에 떠있으며 그 별의 옆에 자그마한 별빛처럼 보이는 것이 하나 더 있다. 드레이크 쌍성이다.
“하루가 31시간이에요. 낮에는 태양이 두 개, 밤에는 달이 두 개 떠오르죠.”
로페즈와 함께 행성의 땅을 밟은 베니스의 안내자들은 의기양양해진다.
“우주에 이런 환경은 굉장히 드뭅니다. 어떻게, 만족스러우신가요?”
사실관계는 입증되었다. 이렇게 직접 와서 땅을 밟아보고 두 눈에 사방의 풍경을 담았으니까.
그들과 거래한 정보에 거짓은 없었다.
“네. 아주 마음에 들어요. 어서 나머지 계약을 하러 갑시다.”
탐사대와 사병들이 착륙지 근방을 둘러보는 가운데 로페즈는 경호원들과 함께 함선으로 돌아온다.
베니스의 안내자들은 전자노트를 꺼내어 내민다.
“회장님께서는 오늘 직접, 이렇게 사실관계를 확인하셨고 저희가 제공한 정보에 문제가 없음을 인정하셨습니다. 후금은 일전에 안내해드렸듯 285억 크레트입니다.”
로페즈는 전자노트에 서명을 마치고 돌려준다.
잠시 후, 완전히 성사된 계약서가 프랙탈로 전송되었다.
「확인했습니다. 내용에 문제는 없습니다.」
“이제 다 된 건가요?”
“예. 저희와 거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필요하신 천체 정보가 있다면 언제든 저희 베니스 사설정보국을 찾아주세요.”
로페즈는 베니스의 안내자에게 휴대전화로 명함을 전송받는다.
“좋습니다. 여기까지 안내해주시느라 수고 많으셨어요. 아주 만족스러운 거래였고요.”
“하하. 감사합니다. 그럼 남은 일정 순탄히 잘 되시길 바라면서, 저희는 돌아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로페즈는 태양계에서부터 여기까지 베니스의 안내자들을 끊임없이 경계했지만, 그들은 계약을 완전히 성사시키고 간단한 인사만 한 후에 자신들의 함선으로 돌아갔다.
‘내가 너무 예민했나.’
바깥으로 나온 그는 하늘 너머로 떠나가는 베니스의 함선을 올려다본다.
「베니스의 함선이 드레이크 쌍성계를 벗어났습니다.」
이제야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
로페즈는 착륙지의 함선으로 들어와서 답답한 방호복부터 벗는다.
“고생하셨습니다. 회장님.”
자이칸이 다가와서 로페즈의 방호복을 받아준다.
“휴···. 이제 진짜 시작이네요.”
“아주 먼 길을 오셨습니다. 결국 여기까지 오는 날이 오긴 왔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그래도 태양계에 돌아가기 전까지 안심하긴 일러요. 여긴 미지의 세계니까.”
이 외딴 쌍성계에서 베니스의 안내자들이 떠나가고 남은 이들은 전부 옵시디아몬 소속이다.
행성의 바깥은 가공할 기술력의 함대와 초토화 분광기를 갖춘 프랙탈이 항시 경계하고 있으며, 행성 내에서는 옵시디아몬의 최첨단 병력들이 거의 군대 수준으로 사방에 뻗어나가고 있다.
이쯤 되면 로페즈가 불안장애라도 있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그래도 자이칸은 그런 로페즈를 이해한다.
“예.”
“계속 제 옆에 붙어계세요. 주변의 모든 것들을 경계하시고요.”
“알겠습니다.”
“프랙탈.”
- 네. 관리자님.
“태풍이라던가 지진 같은 위험한 자연현상 상황은 어때?”
- 답변을 위해 프랙탈 함대의 실시간 정보를 수집하겠습니다.
- 격렬한 자연현상의 징후는 없습니다.
“위협적인 생명체의 움직임은? 이 근방의 바이러스나 세균 같은 건?”
- 답변을 위해 모든 무인 탐사대와 병기들의 실시간 정보를 수집하겠습니다.
- 적대적 생명체는 있으나 위협적인 생명체는 없습니다. 원시적인 형태의 미생물은 발견되었으나 바이러스, 진균, 세균과 같은 형태의 유기체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 이 행성의 생태계를 조성하는 생명체들은 바이러스, 진균, 세균과 같은 형태의 유기체로 분화하지 못했을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함선으로 질병이라도 유입돼서 죽을 걱정은 없겠네. 토착 생명체한테 침략당한다거나 그런 것도 없을 테고.”
- 그렇습니다. 적대적 토착 생명체라고 해도 곤충 크기의 절지동물이 전부입니다. 또한 지상, 지하, 상공, 인근 해양의 모든 움직임에 대하여 실시간으로 감시하는 중입니다.
“지금 당장이 안전하다고 해서 절대 경계를 늦추지 마.”
-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자이칸은 한쪽 귀에 손가락을 대고 어딘가의 연락을 받고 있다.
“저, 회장님.”
“네.”
“북쪽의 무인 탐사대가 절지동물을 몇 마리 포획했고 서쪽의 별동연구소 탐사대가 열매처럼 생긴 것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도착한지 두 시간도 안 됐는데 벌써 새로운 것들이 발견되고 있다.
“놀라운 행성이네요.”
“그래서 창고나 저장실부터 서둘러 마련해달라고 요청합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 생태계에서의 안전은 확보되었다.
“프랙탈.”
- 네. 관리자님.
“프녹스 씨랑 조립식 시설, 이쪽으로 내려보내.”
- 알겠습니다.
안전이 확보되었고 기초적인 탐사도 끝났다.
이제 건설을 시작할 차례다.
< 23. 우리는 개척자인가 아니면 파괴자인가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