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 멈출 수 없는 급류 (5) >
***
유명한 대기업의 부회장은 저녁의 레스토랑에서 배우자와 함께 와인을 음미한다.
“쿨럭···!”
“괜찮아?”
“사례 들렸··· 쿨럭···! 커어억···!!”
“여보!”
부회장은 와인을 마시다가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해내며 즉사했다.
또 어느 행성의 경찰서장은 대로변에서 정신질환자의 무차별 총격에 즉사했다.
또 어느 나라의 2선 정치인은 자택에서 목을 매단 채 발견되었다.
누군가는 우주선으로 관광지에 여행을 갔다가 실종되었고 누군가는 골프를 즐기다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그런 사건들이 며칠간 태양계의 이곳저곳에서 벌어졌다.
죽은 여섯 명 사이에서는 어떠한 관계성도 찾을 수 없었으며 죽은 자들의 사인 또한 제각각 달랐다. 그래서 이 죽음들을 하나도 묶어 의심하는 목소리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로페즈는 루비코의 세라리코에 입국하여 호텔 옆의 골목길로 들어선다.
폐차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 콜렉퍼레이션은 해체되었습니다.
킬파인더의 작업은 당하는 입장에서도 보는 입장에서도 진실을 알아낼 수 없도록 조용하게 진행되었다.
‘작업의 정점인가.’
장로회의 카파인 오셀로가 소유한 킬파인더. 용병이라고는 하지만 실체는 엄청난 실력을 갖춘 암살자, 작업자들의 집단이었다.
돈을 주고 표적을 제시하면 이런 방식으로 깔끔히 제거하는 것이다. 실수나 실패가 없고 뒤탈도 없다. 킬파인더는 태양계에서 사회적으로 지위가 있는 사람 여섯 명을 불과 며칠 만에 세상에서 지워버렸다.
로페즈는 폐차의 보닛을 열었다.
그대로 립스틱을 꺼내어 강하게 흔들자 저번처럼 홀로그램이 점멸하며 비밀번호가 제시된다.
「141011」
- 저번의 비밀번호와 같습니다.
1은 인류의 첫 번째 별을 뜻하는 태양.
4는 태양의 네 번째 공전궤도에 위치한 화성.
1은 화성의 첫 번째 도시인 올림푸스.
0은 공백으로, 올림푸스의 위쪽 궤도에 위치한 유토피아.
11은 11번째 일원인 로페즈.
- 장로회의 사이버 공간에 침입을 시도하시겠습니까?
“그건 안 돼.”
그 공간을 통제하는 알파가 알아차릴 수도 있으니까.
“이번에도 조용히 보고만 있어.”
- 알겠습니다.
***
새로이 람다가 된 로페즈가 이 비밀스러운 사이버 공간에 접속하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 람다 님이 접속하셨습니다.
접속해서 문을 통과해보니 알파와 감마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두 명밖에 없다.
“왔군.”
“어서 오세요. 람다 님.”
“하하. 반갑습니다. 알파 님, 감마 님.”
로페즈는 자기 자리에 앉는다. 그의 자리는 문과 가장 가까운 자리라서 상석인 알파나 감마와는 거리감이 있다.
알파는 그런 로페즈에게 손짓한다.
“그냥 가까이 와서 앉지. 어차피 다 비어있는데.”
“앗, 그래도 되는 건가요?”
“내가 허락하는데 당연히 되지.”
“사양하지 말고 오셔요. 지금 아니면 못 앉는 자리니까요. 하하.”
잠시 후 로페즈는 이 두 사람이 방금까지 나누던 대화에 참여하게 된다.
“람다 님. 제가 진짜 궁금했어요. 콜로니의 중력을 그렇게 만들어서 생체병기들을 일망타진하다니, 그거 누구 아이디어에요?”
“제 아이디어입니다.”
“자네가 스스로 생각한 전술인가? 하이퍼 마인드의 도움 없이?”
“네. 전술 자체는 온전히 제가 떠올린 것입니다.”
“멋지군. 아주 훌륭한 대처였어. 내가 딱 그 장면에서 자네에게 반했지.”
“하하하.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람다 님은 정말 크게 될 인물이세요. 그렇죠?”
“그렇지. 여긴 우리밖에 없어서 하는 말인데, 람다와 감마. 자네들은 다른 늙은 녀석들과 떡잎부터가 달라.”
“저까지 칭찬해주시는 건가요? 하하.”
“알파 님께서 실망하시지 않도록 꼭 큰 인물이 되어보겠습니다.”
로페즈는 그렇게 말하면서 속으로 한 가지를 추측한다.
‘다른 늙은 녀석들과 떡잎부터 다르다는 말은···. 장로회가 대체로 나보다 나이가 많은 편이구나. 그럼 감마의 나이는 나랑 비슷하다는 건가.’
32살이면 이런 높은 인물들 사이에서 젊은 편이긴 할 것이다.
로페즈는 슬쩍 묻는다.
“그런데 알파 님은 주로 어느 시간대에 이곳에 접속하십니까?”
“나는 거의 항상 접속해있지.”
“하루 종일입니까?”
“대충 그런 편이네.”
알파의 본업은 알파가 없어도 잘 돌아가는 일인가. 저 정도 위치의 인물이 이 사이버 공간에서 살다시피한다는 것은 이해가 안 된다.
조금만 더 파보자.
“아, 그럼 은하계···. 그쪽 일이 없을 때는 언제 접속해도 만나 뵐 수 있겠네요.”
“그렇지.”
“그럼 알파 님께서 당분간 접속을 못하실 때는 미리 공지를 해주시는 건가요?”
“내가 은하계 업무를 처리할 때 미리 공지를 하진 않네. 그랬다간 내 정보가 새어나갈 것이 염려되거든.”
“아, 그렇군요.”
빈틈이 없다.
알파가 뭔지 모를 은하계의 업무를 처리하러 가기 전에 공지가 있다면, 그 공지의 내용을 참고하여 각 항성계의 움직임을 관찰하려고 했는데.
알파는 공지도 없이 아무 때나 자리를 비우고 아무 때나 돌아오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람다 님 하시는 일은 잘 되세요?”
“아주 순탄하게 잘 되고 있습니다. 하하.”
“걱정했어요. 제가 시험이랍시고 생체병기를 보냈다가 람다 님 사업을 망친 것은 아닌지···.”
언제 말을 꺼낼까 기회를 엿보고 있었는데 때마침 감마가 적절한 주제를 만들어주었다.
“그런 쪽의 문제는 없습니다. 사업 자체는 항상 잘 되고 있었죠.”
“다른 쪽에 문제가 있다는 말씀처럼 들리네요. 제가 좀 도와드릴 수 있다면 도와드리고 싶군요.”
상대방의 표정을, 특히나 알파의 표정을 살펴보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는 아바타들이다.
“그래도···. 이걸 제가 감히 말씀드려도 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뭔데요?”
“문제가 있다면 말해서 도움을 구하게. 그러라고 만든 장로회이기도 하니.”
알파까지 나서서 등을 밀어준다면 지금이 이 말을 꺼낼 기회다.
“오리온과학수호협회가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오리온과학수호협회요?”
“태양계의 수호를 위해 탄생한 집단이지.”
“네. 저 또한 알고는 있습니다만···. 그게 람다 님과 무슨 상관이 있죠?”
“오리온과학수호협회는 태양계의 분쟁과 전쟁을 억제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런 협회의 협회장과 부협회장이 라디에크에서 실종되었습니다.”
“실종은 무슨. 누군가 돈을 받고 죽였겠지.”
“예. 그래서 돈을 준 사람에게는 태양계의 분쟁과 전쟁을 유도하려는 목적이 있을 것이라고···.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
“에이, 설마요.”
속에 묵혀놨던 말을 이제야 알파의 앞에서 내뱉는다.
“솔직히 제타 님이 의심스럽습니다. 간접적으로든 직접적으로든, 제게 위해를 가하려는 목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람다 님. 설령 제타 님께서 그랬다고 해도 위해를 가한 것은 오리온과학수호협회지, 람다 님이 아니시잖아요?”
“예···. 그렇긴 합니다.”
“규칙에 위반되는 일이 아니네. 람다 자네에게 위협이 가해지지 않았다면 장로회의 누군가를 추궁할 필요가 없지.”
“그러면 알파 님. 만약에 태양에서 전쟁이나 분쟁이 터지고 그걸로 제가 손해를 본다면, 그때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마찬가지야. 손해와 위해는 다른 개념이네. 장로회가 가장 유심하게 따지는 것은 총구가 어디를 향했냐는 것이지.”
“저는 제타 님이 두렵습니다. 이렇게 천천히 저를···”
“제타라고 확신할 수 없을뿐더러, 설령 제타가 했어도 제타에겐 죄가 없네.”
“···.”
“우린 조건에 맞고 규칙을 지키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어. 일원들이 전쟁광이든 살인마든 정치인이든 독재자든, 그런 것은 아무런 상관이 없네.”
이런 대답이 나올 줄은 몰랐다.
적어도 제타에게 한 번쯤은 물어봐 줄 수도 있는 게 아닌가. 당신이 그랬냐고, 왜 그랬냐고, 이왕이면 그만하자고.
그런데 눈앞의 알파와 감마는 규칙에 위반되지만 않으면 모든 것에 눈을 감아주겠다는 태도다.
“그럼 저는 도대체 누구에게 도움을 받아야 합니까? 무력의 정점을 상대로 하고 있는데···. 저는 장로회에서 아무에게도 의지할 수 없는 겁니까?”
“바깥 세계의 시련은 스스로 이겨내는 것이야. 자네가 상대하고 있는 것이 제타라는 확증도 없고.”
“그러면 제가 장로회에 있는 이유가 뭡니까?”
“내가 자네를 다른 일원들과 함께 통제하고 조율하기 위해서지. 그러지 않으면 세상이 부서질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알파 님···.”
“내 앞에서 어리광이라도 피울 생각이라면 관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