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대 인공지능 키우기-113화 (112/183)

< 22. 멈출 수 없는 급류 (2) >

***

“회장님···. 저, 요타입니다.”

카네기가 스스로 정체를 밝혔다.

“작가님이 장로회에서 인맥의 정점이라고요?”

“네. 제가 그 요타입니다. 새삼스럽지만 이번에 람다가 되신 것 축하드려요.”

“아···. 그런데 요타 님. 혹시 저한테 무슨 목적이 있어서 접근하신 건지···?”

로페즈가 도리어 이렇게 물으면 카네기는 할 말이 없어진다.

“아니요! 아니죠! 진짜 우연입니다.”

“진짜 우연이에요···?”

“네. 하하···. 너무 경계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도 처음엔 몰랐으니까요.”

로페즈는 그제야 웃는다.

“어떻게···. 하하하! 어떻게 이런 경우가 다 있죠?”

“그러게 말입니다. 대주주와 회장이었다가, 팬과 작가였다가, 이번엔 람다와 요타로서 만나 뵙게 되네요. 이 정도면 저희 둘이서 뭔가를 하라는 하늘의 계시나 마찬가지겠어요.”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입니다. 진짜 놀랐습니다. 무서웠다고요!”

카네기는 웃으면서 손사래를 친다.

“저 무서운 사람 아니라니까요! 와하하!”

지금이 딱 적절한 순간이다.

- 프랙탈에서 알립니다. 관리자님.

“어, 왜?”

- 레나 비서실장님께서 찾으십니다. 오후에 인수하실 업체와 관련된 미팅입니다.

“이런···. 벌써 시간이 그렇게···”

갑작스레 촉박해진 시간은 카네기의 조바심을 유도한다.

“저기···! 회장님!”

“정말 죄송하지만 시간이 별로 없네요. 하하···.”

“회장님. 장로회에 관련해서 고민이 있다고 하셨잖아요?”

자연스럽게 여기까지 왔다. 카네기가 의심하지 않도록, 장로회에서 규칙 위반으로 여기지 않도록, 아무런 문제가 없도록 말이다.

“네. 고민이 있기는 한데 그걸 요타 님···. 아니, 작가님의 도움을 빌리기엔 솔직히 좀 죄송스럽습니다.”

“뭔지 듣기만 해봅시다. 이제 저희 둘이 서로 숨길 건 없지 않습니까.”

요타인 카네기의 위에는 세타인 세를린이 있다.

세를린의 위에는 에타, 제타, 엡실론, 델타, 감마 순이다.

규칙을 매우 중시하는 감마부터는 베타와 연결성이 있기 때문에 위험하다. 때문에 감마의 아래인 델타 이하부터 접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래서 로페즈가 카네기에게 원하는 것은 처음부터 하나였다.

“작가님께서는 장로회 분들의 정체를 알고 계시나요?”

“네. 일부만 알고 있어요.”

“제가 실은···. 그동안 안 좋은 사건을 많이 겪은 탓에 불안장애가 있어요.”

“아이고···.”

“이래선 안 된다는 것을 알지만, 제가 몸을 담근 장로회에서 일원들의 정체를 하나도 모른다는 것이 너무 불안합니다. 약물이 없으면 잠도 제대로 못 잘 지경이죠.”

카네기는 고민할 겨를도 없이 확답한다.

“그걸 제가 도와드리면 되겠군요.”

***

오후에 인수할 업체에 관련해서 미팅이 있다는 것은 거짓말이었다.

“카네기는 카파를 알고 있고, 카파는 에타를 알고 있었어.”

- 작업의 정점인 카파는 킬파인더의 오셀로 대표입니다. 다음 대상으로 누구를 선택하시든 관리자님은 오셀로와 먼저 접촉하셔야 합니다.

“오셀로와 이야기를 잘 하면 에타의 정체도 밝힐 수 있겠지.”

- 에타는 모략의 정점입니다. 작업의 정점인 카파와 모략의 정점인 에타와는 연결성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제 로페즈의 가장 가까운 목표는 작업의 정점이라 불리는 오셀로다.

“오셀로의 정보 좀 보여줘.”

「카파(κ)에 해당하는 인물.」

「작업의 정점.」

「현재 장로회에서 서열 10위.」

「이름: 오셀로(Othello)」

「나이: 47세」

「성별: 남성」

「오셀로는 루비코 항성국가 소속의 소규모 최정예 전문용병회사, 킬파인더의 대표입니다. 또한 공식적으로 킬파인더는 자회사 건물 없이 존재하는 페이퍼 컴퍼니입니다.」

“루비코 항성국가에 소속되었다는 건 거대기업이 아니라는 말이겠지?”

- 그렇습니다. 거대기업은 국가에 소속되지 않습니다. 킬파인더는 소규모 최정예 용병을 운용하기 때문에 자본이나 기업적 구조는 옵시디아몬에 비해 현저히 떨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장로회의 선택을 받아서 작업의 정점이나 됐으면 실력이 엄청나다는 거야. 거물들의 의뢰도 심심치 않게 받겠지. 거물들을 작업하기도 하겠고.”

- 오셀로와의 접촉은 위험을 동반함과 동시에 관리자님께 위협적인 자를 제거할 수 있는 이점을 제공할 것입니다.

한마디로 양날의 검과 같은 사람이다.

“오셀로는···. 그 사이버 공간에서의 카파는 내 악수를 대놓고 무시했어. 카네기처럼 나를 좋게 생각하거나 세를린 총수처럼 나를 이익으로 보는 사람 같지는 않아.”

- 오셀로, 카파는 관리자님이 장로회에 들어가기 전, 제타처럼 관리자님께 적개심을 드러냈던 인물입니다. 직접 접촉하시는 것은 극도로 위험합니다.

“당연히 그렇겠지.”

- 그렇다면 계획이 있으십니까?

위험하다고 주장하면서 말리지는 않는다. 트랜센던서는 ‘그래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기 전에’ 로페즈의 계획부터 듣는 태도를 갖춘 것이다.

“내가 처음부터 직접 오셀로를 만날 건 아니야.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을 써야지. 이런 위험한 일에 익숙한 사람으로.”

지금 로페즈가 떠올리는 인물을 트랜센던서는 유추해낸다.

- 자이칸입니까?

***

6월 26일 오후 9시 50분.

이스페라 항성국가의 수도 행성 이스페라.

“축하드립니다. 협회장님.”

“얼떨결에 계약이 성사되고 말았군.”

오리온과학수호협회의 협회장은 내일 있을 미팅에 앞서 이곳, 조용한 시골의 별장을 예약했다.

부협회장이 그의 술잔을 채워준다.

“테라코타는 저희와 함께하기로 약속했습니다. 내일 미팅은 형식적인 절차만 밟고 마무리될 것 같습니다.”

“그 바나듐 광산이 있다는 행성. 이름이 뭐였지?”

“바나디스입니다.”

“그런 작은 곳의 신전을 왜 테러했다고 하나?”

“자세한 것은 테라코타 직원들의 자초지종을 들어봐야 알겠지만, 그곳 관계자가 저희에게 귀띔해주었습니다.”

“듣자 하니 우리와 함께해서 오리온의 평화를 지키고 싶다 하던데.”

“예. 일전의 바나디스의 신전 습격사건입니다. 테라코타는 그곳 민간인과 교인들을 학살한 테러 행위에 경각심을 느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걔들이 뭘 잘못해서 테러를 당했냐 이 말이야. 바나듐이 탐났으면 광산을 노리거나 테라코타 건물을 노려야 하지 않겠어? 왜 그 주먹만 한 신전에서 피가 나오냐고.”

“종교적인 이유라고 합니다.”

“무슨 종교? 바나디스의 반대 분파에서 테러리스트를 고용한 건가?”

“전문적인 무장에 명확한 경고까지 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실상은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용병 집단에 누군가 의뢰를 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테라코타는 바나디스를 지키기 위해 오리온과학수호협회에 가입하겠다고 했습니다.”

“그 광산 촌구석 주민들은 뭐라고 하던가?”

“다들 찬성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오리온과학수호협회가 자신들을 지켜준다면 거부할 이유가 없다고 합니다.”

“그럼 됐군. 아무도 반대하지 않으니까.”

“예.”

같은 순간, 별장의 건물 위로 홀로그램이 덧씌워진다. 실제와 매우 흡사한 홀로그램으로 직접 만져보지 않으면 홀로그램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다.

별장에 포진한 경호원들은 이상한 낌새를 감지한다.

부우우웅···

“들었어?”

“이거 뭔 소리야?”

“하늘이 좀 이상한데.”

곧이어 홀로그램으로 감싸진 영역 안에서 투명한 일렁임이 공중을 스친다.

부우우우웅!!!

“이런 미친···!”

“습격이다! 엄폐해!”

공중을 스치던 투명한 일렁임 하나하나가 소형 드론들이었다. 현대 스텔스 기술을 갖춘 드론들이 경호원들을 정확하게 노려 쇄도한다.

퍼엉! 퍼퍼퍼펑!!!

“안에 협회장님과 부협회장님이 계신다!”

“건물 봉쇄해! 당장!”

처걱처걱처걱처걱!

별장의 창문들이 일제히 강철판으로 막혔다.

타타타타탕!!

그리고 경호원들은 하늘의 일렁임을 향해 일제히 총구의 불을 뿜는다. 그렇게 날아간 에너지탄이 공중에서 폭발하며 탄막을 형성한다.

콰앙! 콰앙! 콰앙!

탄막에 휩쓸린 드론들은 공중에서 폭발했다. 하지만 그 숫자가 너무 많다. 별장 전체는 순식간에 드론 폭격에 노출된 폭심지가 되었다.

“으아아···! 으으···!”

한쪽 다리를 잃은 어느 경호원이 바닥을 긴다. 그는 별장의 정문까지 기어가서 자동으로 열리는 문을 통과한다.

“···!”

치지직···! 치지지지···

코앞에서 전투복으로 무장한 괴한들이 나타났다. 마치 차원을 가르고 등장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별장 전체를 감싼 홀로그램을 통과하여 이쪽으로 들어온 것이다.

“살려주···”

퍼걱!

무장한 괴한들은 경호원의 머리에 총알구멍을 내고는 유유히 정문을 통과한다.

“아아아아···!”

“아파···! 아아아아!!”

“살려줘! 다리가, 다, 다리가 없어!!!”

“끄아아아아아아아···!”

군대도 아닌 경호 병력들은 고립된 환경에서 드론 폭격에 고스란히 노출되었다. 곳곳에 인체의 일부가 어지러이 흩어져있고 숨통이 끊기지 않은 자들은 격통에 신음하고 있다.

퍼걱! 퍼걱!

괴한들은 소음기가 달린 가우스 소총으로 그들을 한 명씩 사살한다. 그리고 일부 무리는 별장의 현관문 양옆으로 선다.

쿠웅. 쿠웅.

그러자 정문에서 여섯 다리로 기동하는 병기가 들어온다.

“돌입.”

카각카각카각···!

병기는 머리처럼 앞으로 향한 돌출부를 상하로 벌린다. 뱀의 턱관절이 벌어지듯 120도로 꺾인 주둥이에서 안쪽 방향을 향한 분쇄기가 살벌하게 회전한다.

쿠웅. 쿠웅. 쿠웅.

키이이이이잉!!!!!

병기는 벌어진 주둥이를 현관문에 붙인 채 분쇄기를 가동한다.

콰드드드드드드득!!!!

모습만 보면 안쪽으로 회전하는 이빨로 먹이를 깎아먹는 기계 동물 같다. 결국 강철과 특수합금으로 만들어진 현관문은 찢기다 못해 산산이 조각나서 병기의 주둥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곧 괴한들은 별장의 침실에 숨은 협회장과 부협회장을 찾아낼 수 있었다.

“너희들 뭐야?! 누가 보냈어?!”

“말로 합시다! 당신들이 어디서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퍼걱! 퍼걱!

그들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 자리에서 협회장과 부협회장을 사살했다.

***

물체를 분쇄하는 병기 몇 기가 더 들어와서 별장에 널린 시신들을 치운다.

콰드드드득! 으드드득!

병기들에 의해 분쇄된 시신은 정문 앞에 주차된 트럭 짐칸의 커다란 통에 모인다. 손가락, 머리카락, 빨갛게 물든 뼈, 물컹거리는 장기 등 인체를 이루던 것들이 고기처럼 담겼다.

이어서 트럭의 짐칸 천장이 개방되고 운전석과 조수석에 타있던 자들이 하차한다.

“빨리 끝내자. 시각 교란 이미지 곧 꺼진대.”

“네.”

그들은 분쇄된 시신이 담긴 커다란 통에 뼈까지 녹여버리는 산성 물질을 쏟는다.

촤아아아아아···!

투명한 액체는 통에 쏟아져 붉게 물들었다가 이내 폭발적으로 끓어오른다. 그러더니 까맣게 변하면서 가느다란 연기를 피워올린다.

“그냥 분쇄해서 하수구에 쏟으면 안 돼요?”

“웬 뚱딴지같은 소리야?”

“귀찮잖아요. 갈아서 모으고. 모아서 녹을 때까지 기다리고···.”

“하수구에 버리면 하수도를 관리하는 드론이 알아차릴 수도 있어.”

“하수도에도 드론이 있어요?”

“어느 나라에나 있어. 거미처럼 생긴 거. 그러니까 우리가 이렇게 기화시키는 작업을 하는 거지.”

***

약간 칙칙한 조명과 어두운 빛깔의 원목으로 이루어진, 조금은 아담한 넓이의 사무실이다.

47세. 킬파인더의 대표이자 장로회에서 작업의 정점으로 카파가 된 남자.

그의 이름은 오셀로다.

“어떻게 됐지?”

그의 앞으로 무장한 용병이 다가와 보고한다.

“오리온과학수호협회 협회장과 부협회장은 확실히 제거했습니다.”

“현장은?”

“깨끗하게 청소했습니다. 잔디도 다시 심고 현관문도 새로 달았습니다. 과학수사팀이라도 오는 게 아니라면 뭐가 변했는지도 모를 겁니다. 그런데 그쪽에 인근 경찰서에서 소음 신고가 접수됐다고···”

“됐어. 그쪽 서장이랑 이야기 끝난 거야.”

“아, 그렇습니까. 다행입니다.”

“수고했다.”

부하 용병은 머뭇거리다가 물어본다.

“저, 그리고 대표님.”

“왜.”

“밑에 애들이 하도 물어봐서···. 이번에 오리온과학수호협회 건은 의뢰주가 누군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일급기밀이라고 했잖아. 이번 의뢰주는.”

“아, 죄송합니다···.”

오셀로는 그에게서 시선을 돌린다.

“나가서 일봐.”

“예. 대표님.”

부하 용병이 나간 후 오셀로는 홀로그램 키보드를 두드린다. 그러던 도중이다.

삐이익···. 삐이익···.

알림음이다. 그는 책상 한쪽에 부착된 버튼을 누른다.

- 대표님. 사무소 앞에 카네기 님이 오셨습니다.

“연락도 없이 갑자기 왜?”

- 모르겠습니다. 대표님께 의뢰할 것이 있다고···. 손님을 한 분 데려왔습니다.

‘손님?’

오셀로는 컴퓨터를 조작하여 사무소 앞에 설치된 감시 카메라를 확인한다.

사무소 직원들이 카네기와 낯선 남자를 막아서고 있다. 카네기 옆에 선 남자는 약간 키가 큰 편이고 인상이 제법 기억에 남게 생겼다.

“사납게도 생겼네···. 저게 카네기가 데려온 손님이라고?”

- 예. 카네기 님께서 저분을 킬파인더로 모셔왔다고 하십니다.

“그냥 돈 많은 건달처럼 생겼는데, 아니야?”

- 이름이랑 소속을 여쭤볼까요?

“그거 알려주기 전까지는 못 들여보낸다고 해.”

잠시 후, 오셀로가 보는 카메라 영상 속에서 사무소 출입구로 직원이 한 명 더 나온다.

그 직원은 카네기의 옆에 선 남자와 몇 마디를 주고받더니, 급한 용무라도 생각난 사람처럼 다시 사무소로 뛰어들어간다.

“왜 그렇게 뛰어? 거물이야?”

- 아, 대표님! 거물이라고 해야 할지···

“누구냐고.”

- 옵시디아몬 코퍼레이션의 경호보안실무자, 칼 자이칸이라고 합니다.

오셀로는 자신의 귀를 의심한다.

“방금 옵시디아몬이라고 했어?”

- 예. 저희에게 의뢰할게 있다고 합니다. 아주 커다란 건이라고 하는데요···?

‘옵시디아몬이 루비코에 있는 나를 왜 찾아온 거야?’

오셀로는 미심쩍다는 눈으로 카메라 영상 속의 자이칸을 유심히 쳐다본다.

그 순간이었다.

“···완전 또라이 새끼네 저거.”

자이칸은 이쪽 카메라를 쳐다보며 반갑다는 듯 손을 흔들고 있다.

지금까지 킬파인더에 찾아오면서 저런 가벼운 표정으로 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 대표님. 들여보냅니까?

수상하다.

그리고 궁금하다.

“저 또라이 새끼 소지품 철저하게 확인해서 들여보내. 카네기도 같이.”

< 22. 멈출 수 없는 급류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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