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대 인공지능 키우기-110화 (109/183)

< 21. 폭풍전야 (4) >

***

로페즈는 장로회에서 공석이 된 람다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장로회에서 알린 접속방법은 일전에 람다가 행했던 방식과 똑같았다.

“이 폐차는 몇 년째 이 자리에 있는 거야?”

- 알 수 없습니다.

이곳은 루비코의 수도 행성인 세라리코, 호텔 옆의 골목길이다.

로페즈는 폐차의 보닛을 열고 다이토가 했던 그대로 다 쓴 립스틱을 꺼낸다.

- 좌우로 흔드시면 됩니다.

립스틱을 좌우로 강하게 흔들자 립스틱의 아랫면에서 홀로그램이 초당 일곱 번씩 점멸한다. 그러면서 여섯 자리의 숫자가 제시된다.

「141011」

- 메일로 알려진 접속 주소의 비밀번호입니다.

‘이 비밀번호에 의미가 있을까.’

얼핏 보기엔 무작위로 제시된 여섯 자리의 일회성 비밀번호 같다.

“141011. 이 숫자에서 굳이 의미를 찾는다면 뭐가 있을까?”

- 차원통로에서 사용하는 함선들의 고유함번과 두 자리의 유사성이 있습니다.

“무슨 유사성?”

- n번째 항성, n번째 행성, n번째 공항, 고유함번입니다. 여기서 제시된 14는 첫 번째 별인 태양의 네 번째 궤도, 화성을 뜻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뒤에 1011은?”

- 굳이 의미를 추측해보자면, 1011에서 1은 화성의 첫 번째 도시인 올림푸스, 0은 공백으로 올림푸스의 위쪽 궤도에 위치한 유토피아를 의미할 수 있습니다. 또한 나머지 11은 장로회의 인원수인 11명과 일치하여 11번째 일원인 로페즈 님을 뜻할 수 있습니다.

이 숫자에 상상을 더해 의미를 부여하자면 그렇다는 말이다.

그리고 로페즈는 발상부터가 달랐다.

‘이게 사실이라면 장로회의 다른 일원인 척하면서 접속할 방법을 찾을 수도 있겠어···.’

그들만의 사이버 공간에서 자신이 알파인 척, 베타인 척하면 어떨까.

덜컹!

그는 립스틱을 원래 있던 자리에 끼운 후 보닛을 닫는다. 그리고 골목길을 나와서 호텔로 들어갔다.

***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엡실론, 제타, 에타, 세타, 요타, 카파.

11명의 장로회 중 10명이 모였다.

상석의 알파는 높낮이 없이 지극히 평탄한 어조로 말한다.

“다들 소식은 들었겠지. 람다가 로페즈에게 살해당했다고.”

지금 장로회에선 로페즈가 람다를 죽인 사건에 대해 두 가지 입장으로 나뉘고 있다.

“람다의 잘못이고 람다의 실수. 오히려 로페즈가 람다보다 뛰어난 인물이었다···. 규칙상 문제가 없다, 람다의 숙청을 로페즈가 대신했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거수해보게.”

그러자 감마, 엡실론, 세타, 요타가 손을 든다.

이들은 로페즈에게 긍정적인 태도다.

“그럼 반대로. 우리의 일원으로 검토되고 있던 로페즈가 람다를 죽인 것은 잘못되었다, 로페즈는 믿을 수 없다, 받아들일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이번엔 델타, 제타, 에타, 카파가 손을 들었다.

이들은 로페즈에게 부정적인 태도다.

“베타. 자네는 왜 손을 안 들지?”

늘 과묵한 성격인 베타는 이 자리에서 유일하게 알파의 정체를 아는 자다.

그는 반박자 느리게 대답한다.

“저는 알파 님의 뜻에 따릅니다. 제 개인의 생각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뭔가 느낀 게 있을 거 아니야?”

“있어도 말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알파의 앞에서 이렇게 대담하게 말할 수 있는 자도 오로지 베타뿐이다.

“싫으면 말고. 어쨌든 4 대 4비율로 갈렸네. 가장 높은 순서 두 사람의 의견만 들어보지. 우선은 감마.”

“예. 알파 님.”

“자네는 카르민펙토스 재단을 로페즈에게 잃고도 어째서 그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지?”

“애당초 카르민펙토스 재단은 저의 도구였습니다. 그 도구의 몸집이 너무 커져서 주인의 통제를 듣지 않으려고 하는데, 때마침 로페즈가 처리해준 셈입니다.”

“그뿐인가?”

“그리고 저는 로페즈의 능력을 알파 님을 제외하고 이 자리에서 누구보다도 제대로 체감한 사람입니다. 솔직히 저는 카르민펙토스 재단이 유토피아를 무너뜨리고 화성에 심대한 타격을 입힐 줄 알았습니다. 허나 로페즈는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능력에 탁월했습니다.”

“기회?”

“그는 희생을 자처하는 것처럼 연기하며 화성 정부와 화성 국민의 총애를 얻는데 성공했습니다. 또 그전에는 가이우스를 이용해서 카르민펙토스를 약화시키려고 했는데, 가이우스에 합류했을 당시의 로페즈는 가이우스 이상의 활약을 보였습니다.”

“그렇군. 역시 로페즈의 능력은 충분히 검증되었어. 그래서 내가 로페즈를 람다로 임명한 것이지.”

“예. 규칙상 어긋난 부분은 없었습니다. 모두가 알고 있겠지만 람다는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여 로페즈에게 당했을 뿐입니다. 심지어 람다는 뉴소사이어티라는 사이비 종교를 이용하여 제타 님의 전쟁을 망치고 세타 님의 플래닛 웨폰 투자를 망쳤죠. 이미 숙청의 대상이었던 겁니다. 따라서 우리는 로페즈를 마땅히 환대해야 합니다.”

알파는 이제 델타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런 로페즈를 자네들은 왜 부정하는 것이지?”

그러자 델타는 자신보다 순서가 늦는 제타에게 발언을 넘긴다.

“저보다는 제타 님이 하실 말씀이 더 많을 것 같군요.”

“그럼 제타, 자네가 말해보도록 하지.”

제타는 전부터 로페즈에 대해 할 말이 많았다.

“제가 준비했던 전쟁은 다이토와 로페즈가 망쳤습니다. 사실 따져보면 다이토의 실책이 가장 크긴 하지만, 그는 이미 이 세상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남은 로페즈의 처분을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알파는 제타의 주장을 딱히 부정하지 않는다.

“그것도 맞은 말이지. 뒷사정이야 어쨌건 카이사스 제독을 죽인 범인은 로페즈가 맞았으니까.”

“예. 그리고 로페즈는 뒷사정이야 어쨌건, 우리 장로회의 일원인 다이토를 죽였습니다. 이것은 장로회를 향한 잠재적 위협으로 판단하는 것이 옳습니다. 장로회의 일원을 죽이고 장로회 일원의 계획을 망친 전과가 있는 사람이, 어떻게 우리와 한배를 탈수 있겠습니까?”

“흠···.”

“이번에 로페즈를 람다로 들인다는 결정이 나중에 어떤 악영향을 미치게 될지 염려됩니다. 규칙에 어긋나지 않았어도 로페즈가 그동안 보여준 행동들은 사실이지 않습니까. 그는 장로회에 들이기엔 위험한 인물입니다.”

“그래도 이미 결정은 끝났네.”

“저는 그동안 알파 님의 판단이라면 무엇이든 따르고 존중했습니다. 알파 님의 말씀은 무엇 하나 틀린 것이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이번만큼은 잘 모르겠습니다. 정말로 그런 사람을 우리의 울타리 안에 들이는 것이 맞는지···. 하지만 알파 님께서 그렇게 결정하셨다니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없어 보입니다. 일단은 그냥 따르겠습니다.”

아무리 마음에 안 들어도 알파는 절대적인 존재다.

“잘 생각했네. 자네가 그렇게 걱정한다면 우리 모두가 로페즈를 예의주시하면 되는 것이야. 안 그런가?”

“그렇습니다.”

“예.”

“맞습니다.”

“지금 우리 모두가 이 자리에 모인 것은 새로운 일원을 환영하기 위함이야. 제타. 그것은 잊지 말게.”

“예···. 물론 알고 있습니다.”

짝짝!

알파는 손뼉을 두어 번 쳤다. 그 행동이 이 사이버 공간에 어떤 명령을 내린 걸까.

- 람다 님이 접속하셨습니다.

문 앞에 그림자 모양의 아바타가 생성되었다. 안면에는 람다를 뜻하는 기호가 새겨져있다.

“···아. 다들 처음 뵙겠습니다. 람다입니다.”

“환영하네!”

알파가 일어서서 박수를 치자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나 로페즈를 환영한다.

“환영합니다!”

“어서 오세요!”

“이쪽에 앉으시죠.”

“축하드립니다!”

짝짝짝짝···.

람다가 된 로페즈는 그들의 환영과 박수를 받으며 자신의 자리를 찾아 앉았다.

***

알파는 로페즈에게 장로회를 소개한다.

“장로회는 지금으로부터 107년 전인 2492년. 인류가 태양계 바깥으로 정착을 성공한 시대에 탄생했네. 개인의 영향력이 한 항성을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해진 시대가 딱 그때부터였지.”

로페즈는 알파의 말을 경청한다.

“사소한 갈등이 파멸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어. 전 인류가 알고 있지. ···하지만 알고 있으면서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이 인류이고 역사야.”

“예. 저도 알파 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 메일의 내용에 자네가 동의를 했기 때문에 이 자리에 왔겠지. 내 말이 맞는가?”

“예. 그렇습니다.”

“자네는 스스로 람다가 되기를 선택했어. 우리가 내려준 시련을 가뿐히 통과하고 이전의 람다를 죽여 지금 람다가 된 자네의 모습이 참 인상 깊네. 아주 능력이 대단한 인물이야.”

“하하. 감사합니다.”

“람다. 자네의 마음이 굳어진 것으로 알겠네. 자네는 이제부터 장로회야.”

“예. 저는 오늘부터 장로회의 람다입니다.”

“좋아. 이제부터 우리 장로회의 일원들을 차례대로 소개해주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