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대 인공지능 키우기-107화 (106/183)

< 21. 폭풍전야 (1) >

***

유토피아의 중앙에 위치한 사무구획은 옵시디아몬의 본사 부지다.

잔디만 있는 평탄한 초원이었던 부지에 연구시설, 특수생산시설, 하부 컨트롤 센터, 타워 주차장, 창고 등 필요한 건물들이 제법 들어섰다.

그중에는 40층 높이의 다목적 빌딩이 있는데 오늘 열릴 임시주주총회가 이 사옥의 39층 대강당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비싼 차들이 많네.”

카네기는 다목적 빌딩의 주차장에 도착했다. 얼굴은 아는데 이름은 모르는 재벌들이 사옥으로 들어가고 있다.

“관리자님. 여기서부터는 휴머노이드나 경호원 등을 대동할 수 없습니다.”

“차에서 기다리고 있어.”

“알겠습니다.”

지금 저쪽에서 사옥으로 들어가는 자들은 옵시디아몬의 주식을 소유한 자들이다.

다시 말해, 최소한 중산층 이상의 부유한 사람들이라는 말이다. 그런 사람들이 곁에 비서나 경호원이나 휴머노이드도 없이 개인으로 움직이고 있다.

사옥의 근처 흡연장에서는 따로 친분이 있는 건지, 주주들끼리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모습도 보인다.

‘출세할 기회가 널려있는 장소네.’

주변의 도로 위로는 말로만 듣던 직육면체의 인공지능 병기나 군체 휴머노이드가 순찰 중이다.

본사 타워를 올려다보면 가지각색의 드론들이 날아다니고, 작은 벌레 같은 로봇도 직선적으로 비행하고 있다.

‘유토피아···. 이것이 로페즈의 유토피아인가.’

그는 주차장을 통과하여 사옥의 앞, 낮은 계단까지 걸어왔다. 커다란 현관의 양옆으로 이족보행 전쟁기계가 문지기처럼 서서 미래적인 무게감을 자랑한다.

몇 주주들이 그런 전쟁기계 앞에서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고개를 올리고 있다.

카네기는 주주들의 무리에 자연스레 접근한다.

“이야, 이 커다란 로봇은 뭔가요?”

“나이트포트리스라는데요?”

- 저희는 나이트포트리스 퍼스트와 세컨드입니다.

“우왓···!”

갑작스레 퍼지는 웅장한 목소리에 주주들은 흠칫 놀라며 뒤로 몇 발자국 물러선다.

“···휴. 간 떨어지는 줄 알았네.”

“인공지능인가?”

“말을 하는데요?”

“음, 어이! 로봇 친구! 너희가 뭐라고?”

- 저희는 나이트포트리스 퍼스트와 세컨드입니다. 옵시디아몬의 결전병기로서 설계된 이족보행 인공지능 전쟁기계입니다.

“캬! 이게 남자의 로망이지! 멋지지 않아요?”

“멋있네요. 하나 가지고 싶어.”

“너넨 몸값이 얼마냐?”

- 죄송하지만 저희는 판매되는 병기가 아닙니다. 저희 동체의 가격은 말씀드릴 수 없다는 점을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야, 야, 그러지 말고 살짝만 알려주면 안 돼? 대충 몇 자리 수인지만.”

그러자 잠자코 있던 왼쪽의 전쟁기계가 음성을 출력한다.

- 너희에게 그것을 알려줄 권한은 우리에게 없다. 포트리스 계열 전쟁기계는 판매되는 병기가 아니다.

“쟤는 반말하네? 야! 너희가 누구 돈으로 만들어졌는지는 알아?”

키잉!

나이트포트리스 퍼스트는 언성을 높이는 주주에게 고개를 틀었다. 그 작은 움직임만으로 기계적인 마찰음이 울린다.

- 거기 아래에 인간. 공격적 언행에 주의하라.

“어이쿠, 깜짝이야···! 알았어, 알았어, 내가 미안하다!”

“쟤는 성깔이 있네요.”

“설치된 인공지능이 다른가 봐요.”

“참 별게 다 있는 세상이군요.”

“이것 좀 보세요. 손가락도 있습니다. 무기와 일체화되지 않은 전쟁기계라는 것이죠.”

옵시디아몬의 병기들은 항시 이 부지에 있다.

“나중에 병기 시연회라도 해달라고 해야겠습니다. 이거 말고도 신기한 것들이 저기서 많이 돌아다니고 있는데.”

“그거 좋은 생각입니다. 저는 특히 저 네모난 병기가 어떻게 싸우는지 보고 싶군요. 드론 하이브라고 했었나요?”

“네. 드론 하이브가 전장에서 지휘관급 인공지능이라는데요.”

“난 개인적으로 프랙탈 함선을 좀 가까이서 보고 싶은데···”

- 인간들. 임시주주총회가 12분 뒤에 시작한다. 서둘러 사옥에 입장하는 것을 추천한다.

“나 참, 인공지능 주제에 반말하는 경우는 또 처음이네···.”

“어서들 들어갑시다. 구경은 나중에 해도 되니까는.”

***

「옵시디아몬 코퍼레이션 제1기 임시주주총회」

단상 위의 양옆으로는 각 부서의 팀장급 사원들이, 가운데에는 로페즈가 앉아있다.

“갑작스러운 임시주주총회에 바쁜 와중에도 참석해주신 주주 여러분들께 죄송하고 감사하다는 말씀부터 드립니다.”

대학교 강당에서 쓰일 법한 책상과 영화관에서 쓰일 법한 편안한 의자가 나란히 이어져있다. 1층, 2층, 3층까지 복층으로 단상을 볼 수 있는 대강당 내부에 191명의 주주들이 참석했다.

밀라노이에 이어서 라 코만데를 흡수한 후 추가된 지분의 60% 이상을 로페즈가 소유했다. 그런데도 이 정도 숫자라면 임시주주총회임에도 소액주주들이 제법 참석한 것이다.

가장 앞자리에는 지분을 최소 4% 이상 보유한 대주주들이 띄엄띄엄 앉아있다. 그중에는 화이트홀의 리탄, 오비탈플래닛의 어스틴, 현 사령관인 엑스턴, 하이게이트의 애틀라탄, 장로회의 카네기가 있다.

“시간이 되었네요.”

임시주주총회가 정식으로 시작되자 각 주주들의 책상 위에 자그마한 홀로그램이 떠오른다. 이번 임시주주총회의 진행에 있어 옵시디아몬 측의 설명을 돕고 필요할 때마다 주주들의 투표를 받기 위한 시스템이다.

옵시디아몬의 사업 분야가 크게 확장되면서 생긴 주요 안건은 화성 정규군 훈련 지원, 신형 강하기 개발, 우주전폭기 및 요격기 개발, 소형 드론 병기 개발, 프랙탈 지휘주력함 운용 방침, 미르니에 판매할 방사능 관련 약물 개발 등이다.

마지막엔 테라포밍이라는 최종적인 목표를 달성하기에 앞서 유토피아에 어느 정도의 자본 비율을 할당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의견을 나누었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자본이 많이 필요한 시기 아니겠습니까.”

카네기는 그렇게 말하며 모든 이들이 듣는 앞에서 주장한다.

“대주주로 구분된 주주들의 배당금만 일정 비율 낮추고 그렇게 생긴 여분의 자본을 유토피아의 자회사 산업구획 관리팀 증설에 쓰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의 눈은 명확히 로페즈를 직시하고 있었다.

***

로페즈는 카네기를 눈여겨본다.

「지분 4.364%를 소유한 네브래스카 레일 카네기입니다. 그는 장로회의 요타에 해당하는 인물입니다.」

‘저 사람이구나.’

로페즈는 카네기에게 묻는다.

“산업구획 관리팀 증설이라 함은, 옵시디아몬의 생산품 수출량을 확대하자는 말씀이신가요?”

“네. 지난 한 달간 옵시디아몬의 생산품 수요와 공급 곡선을 고려했을 때, 옵시디아몬은 태양계 전역으로 퍼지는 수요에 충분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화성 정부와 미르니의 협력으로 수익은 증가하고 있지만 현재의 수익률이 현재 옵시디아몬이 최대로 달성할 수 있는 수익률은 아니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자기가 대주주면서 대주주의 배당금을 낮추자니···. 물론 나도 마음 같아선 그러고 싶은데···.’

로페즈는 일단 재정관리팀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러자 재정관리팀의 팀장이 눈치 좋게 답한다.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씀입니다. 현재까지도 지속적인 산업구획 확장으로 수요에 최대한 대응하고는 있습니다만···. 그래도 대주주분들의 정해진 비율의 배당금을 낮춰서까지 대응할 필요성은 없는 것 같습니다. 다른 대주주분들께서 이 의견에 동의하실지도 의문이고요.”

지분 4% 이상을 소유한 대주주들 중 오비탈플래닛의 어스틴과 카네기를 제외하면 모두 로페즈에게 당한 경험이 있는 자들이다.

「리탄, 엑스턴, 애틀라탄은 카네기의 의견에 반대 표를 던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겠지. 내 눈치가 보여서.’

하지만 신경 쓰이는 것은 오비탈플래닛의 어스틴이다. 만약 카네기의 의견에 따라 투표를 진행한다면 어스틴만 반대 표를 던지고 모두가 찬성 표를 던질 게 뻔하다.

‘그러면 어스틴과의 관계가 불편해져.’

오비탈플래닛은 유토피아의 건설에 있어서 가장 많은 영향을 주고 있는 화성 1위 대기업이다.

그리고 재정관리팀 팀장의 말도 틀린 것이 아니다. 이건 대주주들의 배당금 비율을 낮춰서까지 급히 진행할 일이 아니니까.

‘이걸 했다간 뉴스 같은 거라도 나와서 피곤해질 것 같아.’

충분히 배당금을 지급할 능력이 있는 회사임에도 사업을 위해 주주들의 배당금을 낮췄다는 소식이 퍼지리라.

그러면 장기적으로 모든 주주들의 신뢰를 잃는 것이 될 수도 있다.

‘고마운 의견이지만 단호히 끊어야겠지.’

로페즈는 내뱉을 문장을 정리한 후 말한다.

“만약 이번에 대주주들의 배당금을 낮추는 방식을 선택한다면 나중에 소액주주들의 배당금을 낮추는 방식도 고려하게 될 것입니다. 옵시디아몬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화성의 2위 대기업이고, 그런 대기업이 의도적으로 배당금을 낮춘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말이 나올 수 있는 일입니다.”

「관리자님. 카네기의 의견을 너무 부정하는 측으로만 발언해선 안 됩니다.」

“···철저하게 계산으로 따졌을 때는 아주 좋은 의견입니다. 하지만 이건 위험성이 있다는 계산이 더욱이 지배적입니다. 재무지표가 불안정한 상황이 아니라면 그런 선택은 지양하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로페즈는 돌려서 말했지만 어쨌든 거절은 거절이다. 그리고 카네기는 예상외의 반응에 내심 놀랐다.

‘와···. 그래도 욕심에 투표 한 번은 해볼 줄 알았는데 그걸 단칼에 끊어버리시네.’

카네기는 그러면서 주변의 다른 대주주들을 곁눈질한다.

다들 고개를 끄덕이거나 옅은 미소를 띠고 있다. 그들 모두가 로페즈의 주장에 동의하는 눈치다.

‘에이, 이 한마디로 점수 따려고 기껏 화성까지 찾아온 건데.’

***

카네기는 터덜터덜 사옥을 나가고 있다. 그의 발걸음에 아쉬움이 가득해 보인다.

아쉬워서 괜히 화장실에 들렀다가 가장 늦게 나왔다. 사옥 앞 주차장에서는 주주들의 차량이 군체 휴머노이드의 안내에 따라 빠져나가고 있다.

그는 문득, 사옥의 계단을 내려가다가 뒤를 돌아본다.

처음에 보았던 커다란 전쟁기계 두 기가 여전히 문지기처럼 서있다.

“너희는 항상 여기만 지키는 거야?”

- 그건 아니다.

- 이 건물을 지키는 것이 저희 형제의 금일 임무입니다.

“형제? 누가 형인데?”

- 나다.

“아하.”

카네기는 계단의 중간에 서서 나이트포트리스 형제를 잠시 구경한다.

‘알파 님께서 말씀하신 지능의 정점···. 로페즈···.’

이런 신기한 병기들을 다루고 있는 옵시디아몬이다. 그뿐인가. 지금도 멀찍이 떨어진 도로에서는 반중력으로 떠다니는 커다란 직육면체가 있다. 본사 타워의 근처로는 생전 본 적도 없는 형태의 비행체들이 하늘을 누비고 있다.

무장한 휴머노이드 무리가 항시 거리를 순찰하고 있으며, 조경물처럼 정원에 배치된 동그란 기계들이 반짝이는 칼날을 자랑한다. 체인트루퍼라고 했던가.

“여긴 내가 알던 세계가 아닌 것 같아.”

- 이곳은 유토피아다.

“그래. 유토피아. ···유토피아.”

카네기는 오늘의 수확을 성공적인 팬사인회 정도로 계산을 마치기로 한다.

그리고는 마저 계단을 내려가려던 참이다.

- 카네기.

- 네브레스카 레일 카네기 님!

“···?”

방금까지 대화를 나눴던 나이트포트리스 형제가 그를 불렀다.

“왜···”

그는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튼다. 뒤를 돌아보기 직전에 오만가지 생각이 교차한다.

저 이족보행 전쟁기계들이 이 상황에 자신을 부르는 이유가 있다면···.

“카네기 작가님!”

“엇···?”

로페즈가 나온 것이다.

카네기는 앞뒤 생각할 것도 없이 서둘러 계단을 올라간다.

“예. 무슨 일이시죠? 회장님.”

“그게, 말씀을 미처 못 드렸는데···.”

카네기의 머릿속에서는 오만가지 생각이 지금도 교차하고 있다. 계산하고 예상하고 기대한다.

‘장로회? 장로회로 접근? 그것 때문에 나를 부른 건가? 아니야. 내가 장로회라는 것을 알 리가 없지. 그러면 내가 임시주주총회에서 내뱉은 발언에 관련해서? 아니면···. 아니면 또 뭐가 있지? 이 사람이 나한테 이렇게 개인적으로 나서서···.’

“저···. 실은 저도 그동안 모르고 있었는데요.”

“네.”

로페즈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그러고 보니 생각의 파도에 휩쓸려서 정작 가장 중요한 단어를 놓쳤다.

‘잠깐, 방금 나한테 작가님이라고···?’

“비히리비엘의 원작자, 카네기 작가님 맞으시죠?”

“예. 하하. 제가 그 카네기입니다.”

로페즈가 갑자기 손을 내민다.

“팬입니다!”

그 순간, 카네기의 얼굴에 미소가 만개한다.

< 21. 폭풍전야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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