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 처세술 (3) >
***
다이토는 세를린에게 일러바치듯 억울함을 호소한다.
“저는 총수님을 이간질한 게 아닙니다. 보십시오. 저 인간이 그동안 어떤 만행을 벌였습니까. 총수님의 그 귀한 플래닛 웨폰 투자를 자기 이익 때문에 망쳐버리고, 또 그전에는 제타 님의 전쟁까지 건드리지 않았습니까. 오늘도 이 자리에서 장로회의 일원인 저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만약 이 자리에 제가 아니라 총수님이 계셨으면 결과는···. 하······.”
로페즈는 다이토를 쏘아본다.
“지랄하네. 이간질이 아니라고? 당신이 5분 전에도 지껄였잖아. 전부 빈센트 총수님이 시킨 짓이라고.”
“아니, 그건······.”
다이토의 입장에서는 오늘 일이 진짜로 세를린과 계획한 것이 맞다. 하지만 세를린이 보는 앞에서 대놓고 그렇게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다이토는 망설이고 있다.
로페즈는 그 기회를 노려 간접적으로 세를린을 추궁한다.
“총수님은 그럴 분이 아니시잖아요. 설마 진짜로 절 죽이려고 하신 겁니까? 다이토한테 시켜서?”
“됐어요. 자기가 죽을 위기에 무슨 말이든 못하겠나요.”
「대답을 회피했습니다.」
‘말을 돌리네.’
로페즈는 짐작하고 있다. 태양계로 돌아온 다이토가 세를린과 주고받은 통화의 내용을.
그녀가 다이토를 시켜서 오늘 자신을 죽이려고 했다는 사실을 확신은 못해도 짐작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모른 척하며 떠본 것이다.
그녀가 정말로 자신을 죽이려 했다면 굳이 다이토를 쓰는 것보다 더 확실한 방법이 많았을 테니.
‘세를린 총수가 날 그렇게 쉽게 내칠 수 있는 사람으로 보진 않았다는 거겠지.’
이것으로 세를린이 로페즈를 저평가하지 않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이는 좋은 관계의 밑그림이 될 수 있다. 로페즈가 계속 모르는 척만 해준다면.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요. 다이토 씨.”
세를린은 자연스럽게 다이토를 표적으로 만든다. 곤란한 대답을 다이토에게 떠넘기는 것이다.
“예. 총수님···.”
“제가 단순히 플래닛 웨폰의 어마어마한 투자 손실 때문에 로페즈 씨를 없애는 게 좋겠다···.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니에요.”
로페즈는 세를린의 발언을 하나하나 곱씹는다.
‘그렇겠지. 나랑 일하면서 그 손실을 넘는 이익을 챙겼을 테니까.’
“그, 그렇습니까?”
“장로회를 견제하는 행위. 이것 때문에 로페즈 씨를 주시한 거예요. 다이토 씨는 저한테 말했었죠. 제타 님의 전쟁을, 제타 님의 가이우스를 그렇게 만든 범인이 로페즈라고.”
“예! 저 인간이 한 짓입니다!”
“그리고 이번엔 저의 플래닛 웨폰. 로페즈 씨가 그걸 망친 이유는 라 코만데를 약화시켜서 쉽게 흡수하기 위해서라고요. 유토피아에서 옵시디아몬 병력 손실이 컸으니까 그걸 빠르게 채우기 위해서.”
“그렇습니다!”
“로페즈 씨. 맞아요?”
“틀렸습니다.”
“틀리긴 뭐가 틀려 이 새끼야!”
“그럼 로페즈 씨가 말씀해보세요.”
“일단 전쟁은 제가 아니라 뉴소사이어···”
“이, 이 마귀 같은 새끼가! 또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우리 총수님을 현혹하려고 하지! 어?!”
뉴소사이어티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려 하자 다이토가 말을 끊었다. 이 이야기가 나오면 자신이 불리하다는 것이다.
여기선 그의 입을 다물게 해야 한다.
로페즈는 세를린에게 묻는다.
“···일단 저 새끼 혀부터 뽑고 시작하면 안 되겠습니까? 총수님.”
“다이토 씨는 잠시만 조용히 계세요. 로페즈 씨가 말하고 있잖아요.”
“···.”
이제 밟아버리면 끝이다.
“총수님. 뉴소사이어티라는 금성의 비밀종교단체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제가 없애버렸지만요.”
“네. 계속 쭉 말씀해보세요.”
“뉴소사이어티는 1등급, 2등급, 3등급 신도로 돌아가는 사이비 종교였습니다. 3등급이 제일 높은 정보권한을 쥐고 있고요. 총 8명의 3등급 신도들 중에 다이토가 있었습니다.”
로페즈는 그러면서 휴대전화를 꺼내어 홀로그램 영상을 띄운다. 1인칭 시점으로 7명의 신도들을 보고 있는 영상이다. 테이블의 한쪽에는 다이토도 있었다.
- 그래서, 자네는 장로회 소속이잖아. 카르민펙토스 재단은 어떻게 된 거야?
신도 한 명이 묻자 다이토가 답한다.
- 장로회에선 카르민펙토스 재단의 몸집이 너무 커졌다고 판단했어. 생체병기 기술만 회수하고 처분하고 싶다 하길래 내가 슬쩍 제안했지.
“다이토는 장로회라는 극비리 정보를 이들과 무단으로 공유했습니다.”
- 유토피아에 들이박으라고?
- 그래. 재단 놈들에겐 명분이 되잖아. 거기에 적당히 화성 함대가 멍청하다는 정보를 섞어서 재단을 움직이게 한 거야. 그렇게 다 속아서 깔끔하게 죽어주었지.
- 그럼 카르민펙토스 재단은 완전히 처분된 것으로 보는 게 맞겠군.
“후후후···. 재밌네요. 일곱 명만 보이는 거 보니까, 이 영상의 시선을 담고 있는 사람이 내부의 첩자였던 건가요?”
“총수님! 저건 조작된 영상입···”
“좀 조용히 해봐요.”
“일단 계속 보시죠.”
영상은 다이토가 버젓이 보는 앞에서 무자비하게 재생된다.
- 오리온과학수호협회는 뭐라고 하던가?
- 협회장이 별 수 있나. 태양계 경기도 안 좋아진 마당에 우리의 후원이 생명줄이겠지.
- 그 짧은 전쟁으로 태양계에서 돈맛을 본 놈들은 화성밖에 없어. 정확히는 옵시디아몬.
- 그놈들 꽁무니 쫓아다니는 라 코만데는 대충 처리했으니 위안이 되는군. 유토피아도 그렇고 그놈들 병력도 그렇고 손해가 컸을 거야.
이쯤에서 세를린의 얼굴이 굳을 줄 알았는데, 예상보다 반응이 미적지근하다. 정말 조작된 영상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걸까.
“오리온과학수호협회가 이중 의뢰를 했습니다. 목적은 제가 라 코만데를 흡수하려는 게 아니라, 이 뉴소사이어티 신도들이 옵시디아몬을 약화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영상은 계속 재생된 끝에 핵심적인 장면으로 이어진다.
- 당신 3등급 신도들은 저번 전쟁에 어떻게 관여했죠?
- ···당신들이 전쟁을 일으켰구나? 내가 온갖 지랄을 하면서 그 전쟁을 막으려 했는데.
- 토성의 신형 핵융합로가 터지고. 거기서 토성 민간인들이 떼죽음을 당하고. 그걸로 전쟁이 터지고. 태양계 지도자들끼리 서로 헐뜯고 싸우고. 또 죽고···. 하···! 당신들 때문에 3억 2천만 명이···. 아하하···! 아하하하하하!
- 살려주세요···!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저희가 다 잘못했습니다! 저희가 전쟁을 벌였어요! 전부 저희가 저지른 일입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 흐···. 흐윽···. 잘못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빌겠습니다···. 제발···. 제발···.
세 사람은 뉴소사이어티가 제거된 날의 영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았다.
로페즈가 먼저 입을 연다.
“다이토. 이때까지만 해도 넌 나한테 잘못했다고 살려달라고 빌었어. 뭐 느껴지는 거 없냐?”
“절묘하게도 만든 영상이군. 그것도 네놈의 하이퍼 마인드가 창조한 것이겠지. 사악한 새끼···.”
다이토의 반응은 일관적이다. 조작된 영상이라는 것이다.
그럼 세를린에게 이게 조작된 영상이 아니라는 생각을 심어주면 된다.
“총수님. 금성의 뉴스를 보셨습니까? 총수부 임원 7명과 금성 PP에게 동일한 기억상실증이 있었다는 뉴스요.”
“···그러면 그게 로페즈 씨가 인조인간으로 교체해서···.”
“예. 맞습니다. 그리고 저번 전쟁. 굉장히 급하게 터졌습니다. 토성의 신형 핵융합로가 폭발했고 대다수는 토성 PP의 소행으로, 저희처럼 이면을 볼 줄 아는 사람들은 그게 금성 PP의 소행인 것으로 알고 있죠.”
“···.”
“토성 PP도 금성 PP도 결국 피해자였던 겁니다. 긴 전쟁으로 이득을 보려던 장로회의 ‘제타’ 님도 어찌 보면 피해자고요. 카이사스 제독에게 이용당하고 배신당해서 어쩔 수 없이 카이사스를 죽인 저 역시도 피해자입니다. 장로회에서 누명을 뒤집어썼으니까요. 이해관계가 꼬이고 꼬인 끝에 모두가 손해를 본 것입니다.”
로페즈는 그러면서 다이토를 손가락질한다.
“금성, 토성, 가이우스, 옵시디아몬, 제타 님. 모두가 피해를 봤습니다. 단 한 세력. 뉴소사이어티의 존재 때문에요.”
여유가 넘쳤던 세를린의 표정이 어느새 진지해졌다.
“···카이사스 제독을 죽인 범인은 로페즈 씨가 맞았네요.”
“네.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제독에게 이용당했다고요?”
“제독이 가진 비전은 제 비전과 같은 목표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게 ‘인류의 존속’입니다. 저는 기술을 앞당기는 방식을 선택했고 제독은 무력을 통한 강제 진화라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어쨌든 서로가 원하는 목표는 같기 때문에 손을 잡았습니다.”
“그런데요?”
“제타 님의 전쟁은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하다가 일이 틀어졌습니다. 가이우스의 보급함선을 습격한 병력들이 리버레이터 백신의 존재를 알린 것입니다.”
“앞뒤가 안 맞아요. 로페즈 씨가 제독과 손을 잡았다면 그날 화성 PP는 죽었어야죠.”
로페즈는 거짓말을 섞는다.
“네. 그때는 이미 제독에게 배신을 당한 상태였습니다. ···의견 충돌이 있었다고 할까요. 저는 리버레이터의 백신이 있기에 화성 PP 습격을 늦추고 전쟁을 조금만 미루자고 강력히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제독은 강행했고···. 저는 제독을 속이기 위해 화성 PP가 죽은 것처럼 꾸몄습니다. 혹여나 전쟁까지 강행되었을 경우 화성 PP를 등장시켜 외교적으로 해결하려 했죠.”
장로회를 견제하려는 의도는 결코 아니었다는 뜻.
“···.”
“가이우스가 원한 것은···. 정확히는 제타 님께서 원하신 것이 제4차 세계대전이기 때문에, 리버레이터라는 비대칭 전력은 그 계획의 핵심이었습니다. 그래서 리버레이터 백신의 존재가 있다는 것이 알려진 시점에서 전쟁은 강행되지 않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최소한, 전쟁이 동결된 상태에서 미뤄질 수 있었다.
“제타 님이라면 전쟁을 잠시 미루는 것을 원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얼마 안 가서 토성의 신형 핵융합로가 터졌습니다.”
뉴소사이어티 때문에.
“그게 끝이 아닙니다. 제가 다이토를 살려둔 이유는 장로회에 좀 더 일찍 닿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다이토가···.”
홀로그램에 미르니의 본사가 나온다. 그리고 아침에 출근하는 어느 남자의 얼굴이 확대된다.
동시에 이를 지켜보는 다이토의 눈동자도 크게 확대된다.
“다이토가 ‘공작의 정점’인 이유를 총수님께서는 알고 계십니까?”
“콜렉퍼레이션이죠.”
“다이토의 스파이가 임원으로서 미르니의 의사결정회에도 잠입해있었습니다.”
***
로페즈의 결론이다.
“카이사스 제독은 제가 죽인 게 맞습니다. 의견 충돌이 있었고, 제독의 인공지능인 엘리스가 절 죽이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거 말고는 전부 뉴소사이어티가 한 짓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전쟁 전부터 종전 후의 플래닛 웨폰 사건까지 전부요.”
적막이 흐른다. 약간의 피비린내가 코끝을 스친다. 서로의 심장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로페즈는 다이토에게 시선을 옮긴다.
“다이토. 반박할 수 있으면 해봐.”
“전부 조작된 영상입니다···! 교묘하게 스토리를 맞춘 거짓말입니다···! 총수님! 속으시면 안 됩니다! 저 마귀는 늘 이런 식으로 사람을 밟으면서 올라온 놈이란 말입니다!”
“다이토 씨. 제 회사에 심어둔 스파이는 한 놈이 전부겠죠?”
“저건 콜렉퍼레이션의 스파이가 아닙니다! 로페즈가 멋대로 아, 아무나 골라서 스파이라고 주장하는 겁니다!”
“로페즈 씨?”
“저 스파이가 두 번의 인맥을 걸쳐서 다이토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원하신다면 인물 관계도까지 보여드리죠.”
“···다이토 씨.”
“초, 총수님! 오해입니다! 아니 어떻게 이러실 수가 있습니까···? 같은 장로회끼리 의심하고 속여도 되는 겁니까?! 이, 이건 명백한 규칙 위반이지 않습니까···! 장로회에서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겁니다···!”
그 순간,
“장로회에 일러바치기라도 하려는 건가요.”
세를린의 표정이 차갑게 돌변했다.
그 변화에 귀신이라도 지나간 것처럼 주변 공기가 싸늘하게 물든다.
“아니요. 아닙니다. 그건 아니고···.”
“나는 그래도 다이토 씨의 주장을 중점적으로 들어주려고 했어요. 그래서 마련한 자리인데.”
“아, 아니, 아니, 총수님. 제 말 좀 들어주십시오···.”
모든 카드를 소모한 로페즈는 두 사람을 가만히 지켜보기로 한다.
“아니요. 다이토 씨. 10초 전까지만 해도 로페즈 씨의 발언이 다 조작이고 거짓말일 가능성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당신은 해선 안 될 말을 했어.”
“실수입니다···. 진심으로 그런 게 아니라···”
“오늘 일을 일러바치겠다고? 당신이 이러면 나한테 선택권이 하나밖에 없잖아.”
세를린은 앉은 채로 자기 어깨 옆에 손바닥을 내민다. 그녀의 뒤에 있던 덩치 큰 경호원이 그녀의 손바닥에 소음기 달린 권총을 올린다.
“아니, 이건 아니죠!! 저도 장로회인데···! 총수님!!!”
“너는 그 혀 때문에 죽는 거야.”
투욱···!
퍼억!
다이토의 고개가 뒤로 젖혀진다. 의자에 앉아서 고개를 뒤로 젖힌 그대로 정지했다.
또옥···. 또옥···.
그가 앉은 의자의 뒤로 선혈이 뚝뚝 떨어진다.
제일 시끄러웠던 사람이 조용해지자 작은 소리들이 크게 울리는 것 같다.
세를린은 무서우리만큼 태연하다.
“이러면 됐죠? 로페즈 씨.”
“···끝난 겁니까?”
로페즈도 그녀에 견줄 만큼 태연했다.
“어쩌다 보니 람다 자리가 공석이 됐네.”
세를린은 그렇게 말하면서 다시 어깨 옆으로 권총을 내민다. 그러자 그녀 뒤의 경호원이 권총을 넘겨받는다.
“담배.”
그녀는 경호원에게서 담배와 불을 받는다.
치익···.
그녀는 그렇게 담배연기를 한숨과 함께 내쉬면서, 로페즈에게 다가가 오른손을 내민다.
“로페즈 씨. 우리 악수나 할까요?”
로페즈도 천천히 의자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악수에 응한다.
“잘 부탁드립니다. 빈센트 총수님.”
“말고.”
“네?”
“세를린. 오늘부터 세를린 총수라고 부르세요. ···로페즈 회장님.”
한때는 쥐한테 물리고 다녔던 소동물이, 이제는 호랑이와 놀게 된 것이다.
< 20. 처세술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