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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인공지능 키우기-103화 (102/183)

< 20. 처세술 (2) >

***

키이잉!

타원형의 에너지 보호막이 로페즈의 전신을 감쌌다.

동시에 자이칸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컨테이너 위로 도약한다. 그대로 두 걸음을 가서, 컨테이너 위에 매복한 적의 가면을 가른다.

쿠직···!

그의 커터가 두꺼운 가면을 일자로 지나치자 안면과 머리 절반의 절단면이 빨간 음식물처럼 쏟아진다.

“개새끼들···. 개새끼들···.”

사무실의 유리창에 머리만 빼꼼 내민 다이토는 불안한 듯 손톱을 뜯는다.

「!!!이쪽으로 엄폐하십시오!!!」

「총격의 사선으로부터 안전한 위치입니다.」

로페즈는 컨테이너와 벽 사이에 있는 비좁은 공간으로 한달음에 달려간다.

투투투투툭!!

카앙···! 콰지직···!

이제 다이토가 데려온 작업자들의 안중에는 로페즈가 없다. 자이칸이 컨테이너 위를 뛰어다니며 닥치는 대로 커터를 휘두르고 있기 때문이다.

“아아아악···!”

“끄윽···.”

퍼억! 퍼억!

컨테이너 위에서 시체들이 추락한다. 이윽고 여섯 명을 죽인 자이칸이 컨테이너 위에서 뛰어내린다.

푸우욱!

그는 어느 작업자의 배후로 착지하여 경동맥에 커터를 찔러 넣는다. 그대로 기관단총을 빼앗아 주변의 엄폐물에 숨은 적들에게 총알을 퍼붓는다.

투투투툭!!!

엄폐물에 숨은 작업자들도 자이칸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지만,

“끄으으···. 쏘, 쏘지 마······!”

자이칸은 자기 앞의 작업자를 살아있는 방패로 삼았다.

퍼퍼퍼퍽!

“커흑···!”

애꿎은 총알은 방패로 잡힌 작업자의 온몸을 벌집으로 만들었다.

자이칸은 이미 죽은 작업자를 끝까지 놓아주지 않는다. 그는 엄폐물들을 향해 기관단총을 난사하며 성큼성큼 걸어간다.

그런 직후에 쌓인 컨테이너를 발로 차서 넘어뜨리고 빠르게 움직인다. 그가 작업자들을 하나씩 죽이는 일은 너무도 순식간이었다.

사실상 싸움이 아니라 일방적인 처형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다.

다이토는 절박하게 소리친다.

“씨발!! 그 새낀 무시하고 로페즈부터 죽이라고!!!”

마지막 세 작업자가 남은 가운데 자이칸에게서 가장 멀리 떨어진 작업자가 수류탄을 꺼내들었다.

컨테이너와 벽 사이에 몸을 숨기고 있던 로페즈는 순간적인 경고 문구를 눈에 담는다.

「!!!관리자님의 위치로 수류탄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같은 순간, 자이칸은 바로 앞에 있는 작업자 둘을 쓰러뜨리고 수류탄을 꺼내든 작업자에게 뛰었다.

“이이익!”

작업자는 이미 수류탄의 핀을 뽑아 던질 자세를 취하고 있다.

콰악!

그리고 수류탄을 쥔 그의 손을 자이칸이 억지로 감싸 쥐었다.

“크으윽···! 끄아아아악!!!!”

콰드드득!

자이칸은 오로지 악력으로 작업자의 손을 부숴버렸다. 곧이어 작업자의 손에 들린 채 부서진 수류탄이 그대로 폭발한다.

콰아아앙!!!

***

폭발 직후 다이토는 슬금슬금 기어서 사무실의 뒷문으로 향한다.

‘어떻게 저 한 놈을 못잡아서···!’

자신의 작업자들을 학살한 녀석이 저곳에서 수류탄을 쥐고 폭발했다. 그가 살아있는지 죽어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로페즈는 살아있으리라.

그냥 빈센트 세를린에게 억지라도 부려서 폭탄이나 설치할 걸 그랬다. 적당히 창고의 폭발사고로 처리할 걸 그랬다.

사실은 그런 후회를 하는 것조차 억울하다. 앞서 목격한 그 경호원의 움직임은 인간의 규격을 벗어났다. 사람이 아무리 개조를 받아도 그런 식으로는 움직일 수 없다. 그리고 또 로페즈의 전신을 감쌌던 그 실드는 무엇이라는 말인가. 도대체 아무런 장비도 없이 어떻게 그런 실드 기술을 구현했을까.

그 출력이 어디서 나왔을까. 로페즈의 몸속에 엔진이라도 있다는 말인가.

“하아···. 하으···.”

다이토는 기는 자세로 손만 뻗어서 뒷문의 문고리를 잡는다.

“에잇!”

끼익!

그는 발돋움을 하며 뒷문을 박차고 나왔다.

그렇게 일단 도망치려고 했다.

자기 앞에 정장의 경호원들과 차가운 휴머노이드들만 없었다면 말이다.

“들어가시죠.”

“씨발···!”

다이토는 벨트에 끼워둔 권총으로 잽싸게 손을 넣는다.

퍼억!

그 찰나를 인지한 휴머노이드와 경호원들이 달려들어 다이토를 제압했다.

“이거 놔! 놓으라고!!!”

“들어가시죠.”

저 지옥에 들어가면 로페즈가 있다.

그건 죽어도 싫다.

“너, 너희들 얼마 받았어?! 로페즈 저 새끼가 얼마를 줬든 내가 그 다섯 배를 줄게···! 빨리, 일단 이것 좀 놔보라니까!! 제발!!!”

“들어가라고.”

경호원들은 다이토를 사무실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끼익!

곧 뒷문은 굳게 걸어 잠겼다.

***

결국 다이토는 다시 창고로 끌려왔다.

“어으윽!”

그는 경호원 둘에게 양팔을 붙잡혀서 로페즈의 앞에 강제로 무릎을 꿇려졌다.

“히익···!”

바로 앞에 로페즈가 있다.

그리고 아까 수류탄을 쥔 채로 폭발한 자이칸도 있다.

자이칸의 오른팔이 팔뚝 아래로 없다. 저렇게나 피를 흘리고 있으면서 정말 아무렇지도 않다는 얼굴로 멀쩡히 서있는 모습이 섬뜩하다.

“자이칸 씨. 왜 그러셨어요?”

“무엇이 말입니까?”

“그냥 수류탄 던지게 내버려 두지 그랬어요. 어차피 실드가 몇 번 더 막아줄 수 있었는데.”

“그래도 위험하지 않습니까.”

“그거 잘못 터져서 자이칸 씨 머리라도 날아갔으면 그게 더 위험한데요.”

“모릅니다. 몸이 멋대로 움직였습니다.”

“트··· 하이퍼 마인드가 조종한 건가요?”

트랜센던서라면 로페즈의 위기를 무마하기 위해 자이칸의 목숨을 강제로라도 버리게 할 것이다.

그러나 자이칸은 답한다.

“아닙니다. 제 자의로 움직인 겁니다.”

「앞선 자이칸의 위험 감수는 그의 자발적인 행동이었습니다.」

로페즈는 잠시 입을 닫더니 머리를 긁적인다.

“···뭐, 저를 위해서 그렇게 몸을 던지셨다니 감동이네요.”

“별 대단한 일도 아닙니다.”

“그래서 다이토 씨.”

“···!”

로페즈의 안구가 다이토를 향한다. 그 안구의 움직임이 새벽의 어두운 숲속에서 쫓아오는 보름달처럼 서늘하다.

“그때 저와 했던 약속을 거창하게 어기셨네요.”

“빈센트 총수가 시킨 겁니다···!”

“뭐라고요?”

“전부 빈센트 총수가 주도한 일입니다! 제 자유를 찾아주겠다면서···! 로페즈 님만 죽이면 저를 도와주겠다면서 이런 일을 시켰습니다···! 이, 이건 다 제가 하고 싶어서 한 일이 아닙니다···!”

“잠깐···. 그거 놔봐요.”

어차피 다이토의 체내에는 나노봇이 있다. 여차하면 말 한마디로 그를 기절시킬 수도 있다.

“예.”

경호원들은 다이토의 구속을 풀었다.

타악!

다이토는 소리가 날 정도로 바닥을 내려치며 깊게 무릎을 꿇는다.

“정말입니다···! 제가 미쳤다고 로페즈 님을 해치려고 하겠습니까···. 정말 제 입장에서는 선택지가 없었습니다···. 정말입니다···.”

로페즈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총수를 경계했는데 다이토가 나타났고···. 사실은 총수가 다이토에게 시켰다고?’

빈센트 세를린 총수는 지금으로선 도무지 이길 수가 없는 강적이다. 다이토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건 처음에 예상한 것보다 훨씬 심각한 사태가 된다.

트랜센던서는 아직 진실인지 거짓인지 답변이 없다. 다이토의 불안정한 상태에 분석이 늦어지고 있는 걸까.

“전부 빈센트 총수님이 시킨 거라고요?”

로페즈가 그렇게 되묻는 순간, 다이토는 한 줄기의 희망을 본 사람처럼 눈물로 호소한다.

“아, 예···! 정말입니다···!”

“이유가 뭐래요?”

“세, 세를린 총수가 로페즈 님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저한테 명분이 있지 않냐면서 이, 이 창고도 총수님이 빌렸고, 아, 그, 그렇지! 처음부터 로페즈 님을 이 시간에 이 장소로 부른 사람이 누구입니까? 총수님이지 않습니까···! 전부 그 여자가 나한테 시킨 거라고요!”

‘진짜 나보다 이 멍청한 놈을 선택한 거야···? 세를린 총수···. 그렇게 앞뒤 모르는 바보처럼 보이진 않았는데.’

“그러니까 다이토 당신은 어쩔 수 없이 강제로 날 죽일 수밖에 없었다? 이건 당신의 선택이 아니다?”

“그렇다니까요! 난 이러고 싶지 않았어요! 내가 원해서 한 일이 아니야!!”

「거짓말입니다.」

“아······. 씨발, 진짜.”

다이토는 이 순간에도 거짓말을 내뱉고 있다.

뉴소사이어티의 3등급 신도. 2억 3천만 명이 죽은 전쟁을 일으킨 주범들 중 한 명. 장로회의 람다 소속으로 장로회에서 자신을 모함하던 자.

살려주고 적당히 이용하려 했더니 미르니와 옵시디아몬 사이에 이간질까지 하는 인물.

‘안 되겠다.’

보면 볼수록 경멸하게 되는 인간이다.

이미 이용은 끝났다. 그토록 경계했던 장로회와의 접점은 이미 얻었다.

로페즈는 다이토의 배후에 서있는 경호원들에게 말한다.

“저 새끼 혓바닥 좀 뽑으세요.”

“예?!”

“네?”

다이토와 경호원들이 동시에 같은 반응을 했다. 그래도 로페즈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저 혓바닥 때문에 스트레스로 내가 죽을 것 같아요.”

“안 됩니다···! 로페즈 님···!”

다이토는 무릎으로 기어서 로페즈의 다리에 매달려 애원한다.

“제발 그러지 마세요···! 왜, 왜 이러시는데요···! 저한테 왜 그러시는데요···!”

“너는 나한테 왜 그러는데?”

“제가 하고 싶어서 한 일이 아니에요! 정말입니다! 제발요···! 제 입장도 한 번만···!”

「거짓말입니다.」

“미친 새끼가···. 이거 안 놔?”

“제, 제발···! 제발요···! 저는 이용당했을 뿐입니다! 흑흑···. 흐으윽···!”

로페즈는 경호원들을 둘러본다. 방금 혓바닥을 뽑으라고 명령했는데 다들 망설이고 있다.

이럴 땐 자이칸이다.

“자이칸 씨. 오른손이 없어도 이 새끼 혓바닥 정도는 뽑을 수 있죠?”

“자르지 말고 뽑는 식으로 하면 됩니까?”

“출혈로 뒈지든 쇼크로 뒈지든 상관없으니까 뽑아버리세요.”

“예.”

자이칸이 다가와서는 로페즈의 다리에 붙은 다이토를 힘으로 떼어낸다.

“아, 안 돼, 안 돼, 안 돼!!!!”

다이토는 엉덩이를 바닥에 붙인 채로 격렬하게 손사래를 친다. 그래도 자이칸은 그에게 다가간다.

“어떻게 이럴 수 있어···! 사람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고! 이건 고문이야! 고문···! 아아아악! 우으으으으!!!!”

자이칸이 왼손으로 그의 혀를 잡았다.

주변 경호원들은 인상을 찌푸리며 눈길을 돌린다. 휴머노이드들은 무심하게 쳐다보고 있다.

“으으으! 우으으아아아아아···!”

그 순간이었다.

키이이이잉!

로페즈의 배후에서 창고의 문이 열리는 소리다. 동시에 외부의 햇빛이 창고 안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자. 거기까지.”

활짝 열린 창고 문 앞에서 무장한 대여섯 명이 걸어들어온다. 그들 중 가운데에는 금발이 빛나는 여자도 있다.

“우으으으···!”

“로페즈 씨.”

“···빈센트 총수님.”

키이이이잉.

다시금 문이 닫히고 세를린이 유유히 접근해온다. 그녀와 함께 온 다수의 경호원들은 소총으로 무장한 채 창고 문 앞에 나란히 서있다.

“다이토 씨가 졌나 보네요.”

세를린은 로페즈의 옆까지 걸어와서 자이칸을 똑바로 본다.

“아저씨. 우리한테 그 혓바닥이 필요해서요. 일단은 놓아드리죠.”

“당신 명령은 안 듣습니다.”

“우으으···! 우으···!”

자이칸은 세를린이 그렇게 말해도 다이토의 혀를 놓아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결국 세를린은 로페즈에게 시선을 옮긴다.

“충견이네요.”

로페즈는 마지못해 자이칸에게 말한다.

“놓아주세요.”

“예.”

혀가 뽑히기 직전이었던 다이토는 가까스로 풀려났다.

“아이고···! 아아···. 총수님···!”

그리고 다이토는 1초 만에 태도를 바꾼다.

“총수님!!! 지금입니다! 저 새끼가 총수님과 만나면서 이만한 병력과 화기를 대동하고 왔다니까요! 분명 제가 아니라 총수님을 노리고 온 겁니다···!”

“어머, 진짜요?”

“아니요.”

로페즈는 단호히 부정했다. 피곤한 기색이다.

“참 복잡하네요. 다이토 씨는 이렇다고 말하고 로페즈 씨는 저렇다고 말하고.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어요.”

“저건 마귀입니다! 우리 장로회의 두터운 관계를 부수려는 마귀라고요! 절대 들어줘선 안 됩니다!”

“내가 마귀면 다이토 너는 사탄이야.”

“씨, 씨발···! 넌 이제 좆됐어! 아직도 상황을 모르겠지?! 지금! 넌 지금 총수님에게 딱 걸린 거라고! 그렇죠?! 총수님?!”

“다이토 씨. 여기 사람이 몇 명인데 장로회라는 단어를 함부로 입에 올려요?”

“···아.”

다이토는 입을 다물었고 로페즈는 묻는다.

“어쩌시려는 겁니까?”

“그러는 로페즈 씨는 어쩌시려고 그랬어요?”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까요.”

“어떤 상황?”

말을 아주 잘해야 한다. 교묘하게.

“저와 총수님을 이간질하고 계속 끼어들어서 일을 망치는···. ‘저거’부터 죽이고 총수님과 이야기를 해보려 했습니다. 저도 방금 총수님께 묻고 싶은 것이 생겼으니까요.”

그러자 세를린은 고개는 그대로 둔 채 자신의 뒤로 손짓한다.

“로페즈 씨는 그렇게 생각하시는구나. 역시 골치 아파서 안 되겠어.”

그녀의 경호원들이 철제 의자 세 개를 들고 온다.

“오늘 여기서 결판을 보죠. 내가 이렇게 3자 대면 자리를 마련했으니까. 괜찮죠? 로페즈 씨.”

나쁘지 않은 제안이다. 솔직히 그녀의 앞에서 대놓고 거부할 생각조차 없지만.

「세를린이 이 상황을 유도한 것 같습니다.」

「다이토보다는 관리자님이 유리합니다. 저희에겐 남은 계획이 있고, 다이토에겐 남은 계획이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예. 그럽시다. 저도 지쳤습니다.”

“다이토 씨는요?”

다이토는 다 죽어가는 사람처럼 낯빛이 하얗게 변했다.

로페즈는 그런 다이토의 속을 찌른다.

“다이토. 자신 없냐?”

“아, 예! 총수님! 저 빌어먹을 마귀의 실체를 이 자리에서 전부 밝혀드리겠습니다!”

“좋아요. 로페즈 씨, 우리는 한 사람씩만 남기고 다 뺍시다. 당연히 협조해주시겠죠?”

세를린의 뒤로 덩치 큰 경호원이 석상처럼 섰다.

‘당장의 카드는 내가 가장 많이 쥐고 있어.’

얼핏 세를린이 모든 것을 주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르다.

“그럽시다. 저희도 자이칸 씨 빼고 자리 좀 비켜주시죠.”

로페즈의 뒤로는 자이칸이 선다.

“다이토 씨는···. 아, 저기 다 누워있구나.”

잠시 후 다이토가 데려온 작업자들의 시체는 모두 치워졌다.

핏자국과 탄피가 조금 떨어진 창고의 중심에 의자 세 개가 120도 각도로 배치되었다. 서로를 마주 보는 형태로 놓인 것이다.

“다들 앉으세요.”

이제부터 사실과 거짓이 뒤섞여 속고 속이는 언쟁이 시작된다.

언쟁 끝에 어떤 결과가 될지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 20. 처세술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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