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대 인공지능 키우기-102화 (101/183)

< 20. 처세술 (1) >

***

옵시디아몬은 태양계에 방사능 격리 기술을 수출하면서 거금의 로열티를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테라포밍 핵심 역량을 갖추기 위해 미르니와 협력한다는 발표까지 했다.

- 미르니의 세를린 총수는 옵시디아몬의 방사능 격리 기술을 영구적으로 수입했습니다.

- 옵시디아몬의 계좌 잔액은 약 2조 8366억 크레트입니다.

그 액수는 순수한 유동 자본만을 계산한 것이다. 이번에 방사능 격리 기술을 수출하면서 얻은 외부 회사나 개인의 지분, 부채, 부동 자본 등은 포함되지 않는다.

“확실히 미르니는 미르니야. 신기술 하나를 팔았을 뿐인데···.”

- 방사능 격리 기술로는 옵시디아몬보다 미르니가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세를린 총수라면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겠지. 표면적인 설득은 됐어. 이제 심층적인 설득만 해내면 게임 끝이야.”

- 관리자님의 말씀대로, 다이토의 콜렉퍼레이션 소속 스파이가 미르니의 의사결정회에 한 명 있었습니다.

“그건 설득의 재료로 쓸 수 있겠지.”

- 그것은 플래닛 웨폰 건과 관련성이 없는 내용입니다. 관리자님의 결백을 주장하기엔 근거가 부족합니다.

“관련이 없어도 돼.”

- 관련이 없어도 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난 결백을 증명하려는 게 아니야. 다이토 그 새끼한테 다 뒤집어씌우려는 거지.”

- 누명, 이간질과 비슷한 작업을 계획 중입니까?

“맞아.”

시작은 다이토가 먼저 했다.

“다이토의 스파이가 미르니에 있다는 것은 세를린의 악감정을 돌리는 요소로 사용할 거야.”

- 가능합니다.

“그리고 제타. 저번 전쟁을 주도했던 제타의 일을 망친 것에 뉴소사이어티가 크게 관여한 게 맞지만, 실제로 제타의 가이우스를 그렇게 만든 건 나잖아. 내가 켕기는 게 있어서 그것까진 다이토에게 뒤집어씌울 수 없겠어.”

- 그러나 관리자님은 아직 장로회의 일원이 아닙니다. 제타의 일을 방해한 것은 장로회의 규칙상 숙청 대상이 아닙니다.

“문제는 장로회 녀석들이 내게 약간씩 반감을 가지고 있다는 거야.”

- 바로 그것입니다. 관리자님이 장로회에 들어가 안정적으로 교류하기 위해선 제타의 가이우스가 그렇게 된 것도 전부 뉴소사이어티, 다이토의 소행인 것으로 누명을 씌워야 유리합니다.

“그래. 어차피 뉴소사이어티도 그런 식으로 토성에 누명을 씌웠고, 다이토는 나한테 누명을 씌웠지. 그가 자초한 일이니까 나도 다이토한테 누명을 씌우는 식으로 가긴 할 거야.”

- 그렇다면 가이우스 건도 다이토의 소행으로 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거기서 로페즈의 생각이 조금 달랐다.

“내가 카이사스를 죽였어. 그걸 알고 있는 가이우스는 지금도 우주의 어딘가에서 살아있지. 혹여나 나중에 진실이 밝혀질 경우엔 내 입장이 매우 위험하게 될 거야. 의심하는 사람이 있고, 아는 사람이 있으니까 이 거짓말은 불안정해.”

영원할 수 있는 거짓말과 영원하지 못한 거짓말의 차이다.

- 가이우스가 인류를 진화시키기 위해 돌아올 시기는 매우 나중의 일입니다. 그전까지 관리자님은 장로회의 구성원 모두를 지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니야. 확신할 수 없어. 이건 솔직하게 가는 게 맞아. 가이우스는 내가 죽인 게 맞지만, 진짜 잘못은 뉴소사이어티의 다이토가 한 것으로. 거기에 내가 뉴소사이어티를 다 죽였다는 식으로 하면 되겠지. 나는 다이토가 장로회 소속이니까 봐준 거고. 이야기가 잘 맞아떨어져.”

- 세를린을 설득하는 것은 가이우스가 돌아올 시기를 예측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입니다.

“그 여자를 설득하는 건 내가 할 일이야. 가이우스를 경계하는 것은 네가 할 일이고.”

- 알겠습니다.

트랜센던서는 로페즈와 충돌할 경우가 되었을 때 이전보다 말을 더 잘 듣게 되었다.

***

보이지 않는 긴장감과 탐색전 속에서 시간은 빠르게 흐른다.

「미르니 태양계지부 목성 가니메데 본사」

빈센트 세를린 총수는 광물 컨테이너가 가득한 공간을 휴머노이드와 함께 걷는 중이다.

“방사성원소 플랜트 부문의 주식이 지난 15일간 171% 성장하여 목성 연합정부에 성공적으로 상장되었습니다.”

여성의 목소리를 내는 이 휴머노이드는 세를린의 전속 비서이며 ‘알레쉬(Aleshe)’라는 이름이 있다. 알레쉬가 인간과 함께한 학습 기간은 자그마치 8년에 이른다.

“그것도 저번에 수입한 방사능 격리 기술 때문이야?”

“예. 그동안 발견은 했지만 방사능 문제로 채굴하지 못한 플랜트 예정지의 83곳에서 채굴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는 바빌로니아 떠돌이 플래닛 웨폰의 투자 손실을 만회하고도 한참 웃도는 수익입니다.”

“이게 왜 이렇게 되지···.”

좋은 소식인데 세를린의 표정은 복잡해지기만 한다.

“관리자님. 이번에 실험적으로 로페즈와 손을 잡은 것은 맞지만, 그 손을 자진해서 놓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의사결정회에서는 다들 옵시디아몬과 손을 잘 잡았다고 칭찬 일색이야. 알레쉬 너도 그렇게 생각해?”

“사업적으로 보았을 땐 그렇습니다. 옵시디아몬은 미르니에 부족한 기술 개발력을 보강할 주요 협력체로 여기는 것이 타당합니다.”

세를린은 걷다가 그 자리에 멈춰 선다. 고민에 빠진 얼굴이다.

“관리자님. 로페즈라는 인물이 어딘가 못미더운 구석이 있긴 해도 무능한 인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강자를 대면한 상태에서 협상도 할 줄 알고 자신의 위기를 극복하는 능력에도 탁월합니다.”

“···하.”

“이건 제 개인적인 견해입니다. 관리자님은 미르니의 총수로서 옵시디아몬의 회장과 지속적으로 협력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관리자님은 장로회의 세타이자 재력의 정점으로서, 차후 장로회의 뮤(μ)이자 지능의 정점인 로페즈와 긴밀한 유대관계를 일찍이 형성하시는 편이 좋습니다.”

“모르겠어. 복잡해.”

“로페즈의 발언을 참고하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그는 공작의 정점과 지능의 정점 중에 어느 쪽이 더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인지, 어느 쪽이 더 장기적으로 관리자님께 이익이 될 수 있는 인물인지 고민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렇지.”

“그리고 로페즈는 저번 전쟁의 비밀을 알고 있다고 강력히 주장했습니다. 이는 관리자님의 호기심에서 시작된 고민을 덜어드릴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로페즈는 ‘자폭’을 언급하며 이 불안정한 관계가 틀어졌을 경우 미르니에 막대한 손실을 끼치겠다고도 경고했습니다.”

“그것도 그렇지···. 건방지게···.”

“지금은 건방지게 여기실 수 있어도 나중엔 그럴 상대가 아니게 될 것입니다.”

상사의 비위를 맞추지 않고 솔직하게 진실만을 조언하는 것이 인공지능 비서의 강점이다.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지금 굳이 그를 적대하셔서 좋을 것은 하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알레쉬. 너 누구 편이야?”

“저는 언제나 관리자님의 편입니다.”

“네가 그렇게나 내 반대 의견을 말하는 건 처음이라고.”

“말로써 설명드리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지금 분석 가능한 현 상황과 과거의 화성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보았을 때, 저는 실례를 무릅쓰고 관리자님을 강력하게 반박하고 싶습니다.”

“뭐를?”

“그를 적대해선 안 됩니다.”

한순간의 고민도 없이 말하는 휴머노이드 앞에서, 세를린은 한숨만 푹푹 내쉬다가 발걸음을 뗀다.

‘적대하는 것이 좋지 않다가 아니라···. 안 된다고 단정 지을 정도인가···?’

다른 누구도 아닌 알레쉬의 주장이라면 신빙성이 있으리라.

“저는 관리자님이 걱정됩니다.”

“알겠어. 고마워.”

“아닙니다. 제 의무를 다했을 뿐입니다. 하하하.”

휴머노이드의 툭툭 끊기는 웃음이다.

“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다른 쪽 이야기도 마저 들어보고. 그리고 다시 고민해볼게.”

세를린은 어딘가로 전화를 걸려는 듯 휴대전화를 꺼내든다.

“반드시 옳은 판단을 해주시길 바랍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바빌로니아 떠돌이 플래닛 웨폰의 투자 손실은 방사능 격리 기술의 수입으로 만회하고도 한참, 한참 남았습니다.”

“알겠다니까.”

그녀의 뇌파를 인식한 휴대전화가 자동으로 연락처를 연다. 휴대전화는 그녀의 시선을 트래킹하여 연락처를 스크롤한 뒤 전화를 걸어준다.

상대는 2초 만에 통화를 수락했다.

- 예! 빈센트 총수님. 다이토입니다.

“17일 만에 내 쪽에서 전화를 다 드리네요.”

- 하하하! 예! 먼저 전화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언제든지 출동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해놓고 있습니다.

“제가 지금 상태가 안 좋거든요?”

- ···예?

“목소리 좀 낮추시고 웃지 좀 마세요. 거슬리니까.”

- 예. 죄송합니다.

“아무튼, 이렇게 통화가 된다는 건 루비코에서 살다시피 했던 다이토 씨가 드디어 태양계에 돌아왔다는 말이겠죠.”

- 예. 그렇습니다. 빈센트 총수님께서 이때쯤 돌아오시라고 하셔서···. 저는 지금 금성에 있습니다.

“뉴스는 보셨죠? 옵시디아몬이랑 미르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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