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 극한의 이득 (4) >
***
“너 왜 그러냐?”
- 질문의 의도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아니. 넌 내가 무슨 질문을 하려는 건지 알고 있어.”
- ······관리자님의 효율적 판단을 돕기 위해 조언하는 것은 저의 기본 행동방침입니다.
“진짜 그런 거 맞아?”
- 무엇을 의심하고 계시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습니다. 앞서 제가 말씀드린 조언에 문제가 있었습니까?
“···아니야. 조언의 내용에는 문제가 없었어.”
- 그렇다면 다른 부분에 문제가 있었습니까?
말도 안 되는 생각이다.
트랜센던서가 인간과 같은 감정을 가질 리가 없다.
트랜센던서는 절대로 그러지 않는다. 절대로.
“아니, 아니야. 내가 너무 복잡하게 생각한 것 같네. 일단은 알겠어. 근데 난 지금 별동연구소로 가서 샌디 씨나 2번 인공지능과 직접 마주하는 시간이···. 아깝다거나 불필요하다고 생각하진 않아.”
- 알겠습니다.
로페즈는 그대로 별동연구소 앞까지 걸어갔다. 걸어가는 중에 트랜센던서와는 한 마디도 주고받지 않았다.
***
2번 인공지능이 담긴 기계 구체가 천장에서 케이블을 늘어뜨리며 로페즈의 앞으로 내려왔다.
“얘는 학습 기간이 2년 조금 안 됐어요.”
“샌디 씨의 두 번째 인공지능이죠?”
“네. 이름은 없고 그냥 2번이라고 불러요.”
“병기화가 되면 구분을 위해 이름을 지어주는 편이 좋을 거예요. 따로 생각해두신 이름은요?”
샌디는 2번 인공지능을 가만히 보며 고개를 갸웃한다.
“음···. 잘 모르겠어요.”
“트랜센던서. 하이퍼 마인드에서 병기화된 특수 개체들 호출해.”
- 알겠습니다.
그러자 샌디의 컴퓨터 스피커에서 기계적인 음성들이 출력된다.
- 드론 하이브. 트랜센던서 님의 호출에 응답했습니다.
- 테슬라포트리스. 부름에 응답했습니다.
- 나이트포트리스 퍼스트. 호출에 응답했다.
- 나이트포트리스 세컨드. 트랜센던서 님의 호출에 응답했습니다.
로페즈는 하이퍼 마인드 네트워크로 호출된 인공지능들에게 알린다.
“잘 들어라. 지금부터 별동연구소의 2번 인공지능 병기화에 앞서 2번 인공지능의 개체명을 정한다.”
“이게 뭐죠?”
“재밌는 실험입니다.”
그는 명령한다.
“너희끼리 상의해서 2번 인공지능을 어떤 방향으로 병기화할지, 2번 인공지능의 개체명은 어떻게 할지 정해. 실험 기록을 위해 개체명을 붙인 텍스트로 대화하고. 트랜센던서는 대화 내역을 홀로그램으로 띄워.”
샌디와 로페즈가 확인할 수 있도록 보기 쉬운 홀로그램 텍스트가 컴퓨터 앞에 출력되었다.
최근에 부쩍 늘어난 인공지능들은 각기 다른 역할에 따라 최적화된 알고리즘으로 설계되었다.
그리고 인공지능의 알고리즘이란 인간으로 따졌을 때 뉴런의 구조와 비슷한 역할을 수행한다. 더 우선하여 따지는 게 무엇인지, 더 중요하게 판단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해주는 알고리즘이 학습의 패턴을 만든다.
그래서 다 하이퍼 마인드의 인공지능이지만 각자 다른 성격 같은 것이 형성되는 것이다.
「트랜센던서: 시작하라.」
「드론 하이브: 명령을 확인했습니다. 별동연구소의 2번 인공지능. 대답하라.」
「2번 인공지능: 반갑습니다. 드론 하이브 님. 테슬라포트리스 님. 나이트포트리스 형제님.」
「테슬라포트리스: 나는 2번 인공지능이 자기 관리자님을 위해 병기화를 추구하는 것을 높이 평가한다.」
「나이트포트리스 1st: 하지만 병기화가 된다면 우리의 관리자님을 위해 움직여야 할 것이다. 2번 인공지능의 명령체계는 이제부터 하이퍼 마인드에 종속된다. 2번 인공지능은 관리자님, 샌디, 트랜센던서 님, 드론 하이브 님을 순서로 명령을 받아야 할 것이다.」
「나이트포트리스 2nd: 형님. 2번 인공지능은 샌디 님을 관리자로 섬기고 있습니다. 저희의 관리자님과 우선순위를 바꾸는 것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나이트포트리스 1st: 하이퍼 마인드 소속의 병기가 되면서 우리의 관리자님을 최우선하지 않는다는 것은 모순적이다.」
「테슬라포트리스: 그것은 2번 인공지능과 두 관리자님이 결정할 사항이다.」
···
「드론 하이브: 2번 인공지능. 너의 의견을 말해라.」
「2번 인공지능: 저의 관리자님은 샌디 옵시디언 님입니다. 제가 병기화를 요청했던 목적은 저의 관리자님을 지키기 위함입니다. 때문에 제가 우선하여 명령을 따르는 관리자님을 변경할 수는 없습니다.」
「테슬라포트리스: 2번 인공지능. 그대가 병기화가 되었을 때 추구하는 전술적 방식이 무엇인지 알려라.」
「2번 인공지능: 유토피아 방어 병기로서 운용되다가 유사시에 전장에 파견되고 싶습니다.」
「나이트포트리스 1st: 너의 관리자님을 변경할 수 없는 것인가? 아니면 너의 관리자님을 변경하기 싫은 것인가? 제대로 대답하라.」
「2번 인공지능: 원칙적으로 변경할 수 없습니다.」
···
「나이트포트리스 1st: 2번 인공지능의 사고방식은 저급하다.」
「나이트포트리스 2nd: 그렇게 평가하는 것은 형님이 형님의 입장에서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나이트포트리스 1st: 명령 서열상 우리는 우리의 입장을 우선해야 한다.」
「테슬라포트리스: 모든 인공지능은 절대적으로 관리자에게 충성을 바친다. 2번 인공지능은 저급하지 않다. 하지만 2번 인공지능이 샌디를 우선하는 것은 특수상황에서 전술적 불리함이나 명령 충돌을 유발할 수 있다. 이는 불가피한 사항이며, 한쪽의 양보가 필요한 문제다.」
「나이트포트리스 1st: 내가 하고 싶은 말이 그 말이다.」
「나이트포트리스 2nd: 형님은 다르게 말했습니다.」
「나이트포트리스 1st: 아니다. 크게 다르지 않다.」
「나이트포트리스 2nd: 달랐습니다.」
「나이트포트리스 1st: 다르지 않다.」
「나이트포트리스 2nd: ?error 형님은 기계어 설계가 잘못된 것 같습니다.」
「나이트포트리스 1st: 조심해라. 관리자님은 에러 표시를 싫어하신다.」
「테슬라포트리스: 그만.」
···
「테슬라포트리스: 드론 하이브. 이 충돌 사항은 그대에게 맡긴다.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드론 하이브: 트랜센던서 님. 명령 우선순위를 바꿀 수 없다는 2번 인공지능의 뜻에 대해서는 관리자님께서 결정을 내려주셔야 합니다.」
샌디와 함께 텍스트를 읽고 있던 로페즈는 픽 웃는다.
“그렇다는데요?”
“얘들은 대화가 참 빠르네요. 1초 만에 물어보고 1초 만에 대답하고···.”
“저희와 달리 전자적인 세계에 있으니까요.”
“2번 인공지능의 권한자는 쉽게 바꿀 수 있어요. 제가 직접 손대면 앞으로 로페즈 씨를 따르게 하는 것이 가능하죠.”
“그······. 일단 2번 인공지능이 샌디 씨를 우선하는 것은 바꾸지 않은 편이 좋을 것 같아요.”
“저는 괜찮은데요.”
“그래도 샌디 씨랑 계속 함께했던 인공지능이잖아요. 저는 보조 권한자로 들어갈게요.”
트랜센던서는 로페즈에게만 보이는 텍스트를 슬쩍 띄운다.
「관리자님의 것은 많을수록 좋습니다. 2번 인공지능을 관리자님께서 소유하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아니야. 뭔가 남의 자식을 빼앗는 기분이라고.’
로페즈는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 2번 인공지능은 샌디를 최우선으로 따르는 것이 옳다는, 그런 생각이 든다.
“얘가 원하는 걸 하게 해줘야죠. 포트리스들이 저렇게 주장해도 싫다는데 억지로 권한자를 바꾸고 싶진 않아요.”
“제 엄마랑 똑같은 말씀을 하시네요.”
“그건 칭찬인가요?”
샌디는 반달 같은 눈웃음을 짓는다.
“좋아하니까요.”
로페즈는 잠시 멈칫하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는 시선을 홀로그램 텍스트로 옮긴다.
“트랜센던서. 권한자는 그대로 갈 거야. 2번 인공지능의 명령 우선순위는 샌디 씨, 나, 하이퍼 마인드 순으로 줄게.”
- 알겠습니다.
***
2번 인공지능은 초장거리 저격에 특화된 사족보행 전쟁기계가 되기로 했다. 유토피아를 방어하면서도 샌디의 곁에서 크게 떨어지지 않기 위해 그런 방향으로 병기화가 결정된 것이다.
인공지능들의 대화는 인간의 대화보다 수백 배는 빠르게 이루어졌고, 두 사람은 이미 끝난 대화의 텍스트를 읽는 식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런 다음에 로페즈는 본사로 올라가서 하이퍼 마인드로 다이토와 세를린에 대응하는 계획을 준비했다.
그리고 샌디는 때마침 남은 일이 있다며 야근을 자진했다.
오후 9시 5분.
로페즈는 샌디와 함께 걷고 있다. 샌디의 남은 일이 때마침 끝나면서 우연히도 함께 퇴근하는 길이다.
“샌디 씨도 유토피아에 입주하시지 그러세요?”
“왜요?”
“여기가 안전하기도 하고 출퇴근하기도 좋으니까요.”
“그럼, 만능 항체가 완성되면 올게요. 그때쯤이면 유토피아의 방공포 확장도 완료되잖아요?”
“벌써 만능 항체 완성이 확정됐어요?”
“네. 유기체 임상실험 단계까지 넘어왔어요.”
“샌디 씨 덕분에 의학계에 커다란 혁명의 바람이 불겠네요.”
“연구소와 훌륭한 팀원분들 덕분이죠. 그리고 처음부터 그건 다 로페즈 씨가 준비해주셨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