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 극한의 이득 (1) >
***
- 얼마나 확실한 정보인지는 각 문단 앞에 확률을 붙여 정리해드리겠습니다.
“네가 가져온 정보가 전부 100% 확실하다고 여길 수는 없다는 뜻이지?”
- 그렇습니다.
다이토에게서 돌아온 트랜센던서는 정보를 분류하여 텍스트를 띄웠다.
「(79%)장로회 구성원 수는 11명입니다. 구성원들은 별명을 쓰고 있습니다. 그 별명은 고대문자인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엡실론, 제타, 에타, 세타, 요타, 카파, 람다입니다. 그들은 람다(다이토)가 ‘막내’라고 했으며 알파가 최고 권한을 가진 것처럼 이야기했습니다. 따라서 구성원 수는 11명입니다.」
「(97%)장로회의 구성원들은 사이버 공간에서 가상의 아바타로 소통합니다. 이는 장로회의 구성원들이 서로의 정체와 개인 정보를 숨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95%)장로회의 구성원들은 별명으로 사용된 문자의 순서마다 정보의 서열이 있습니다. 막내인 람다(다이토)의 정체는 모두가 알고 있으며, 가장 첫 번째 문자인 알파의 정보는 베타와 감마가 알고 있다는 것이 근거입니다.」
- 다이토의 시선 영상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로페즈는 다이토가 루비코 항성에 도착한 후 어떤 일을 했는지 기록한 영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았다. 그리고 다이토가 장로회의 공간에 접속하여 무슨 대화를 주고받았는지까지 전부 확인하였다.
“···너무 많은 것들을 알게 된 기분이야.”
- 그들의 발언을 통해 확인된 정보를 추가로 보여드리겠습니다.
「알파(α): 장로회의 수장이자 우두머리 격의 인물입니다. 현재 상당히 바쁜 일이 있는 것으로 보이며, 알파에 해당하는 인물의 활동 범위는 은하계를 아우릅니다. 다이토가 접속했을 당시에 자리에는 없었습니다.」
「베타(β): 순서상 두 번째 인물입니다. 알파와 직접적인 연결성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알파가 공석일 때도 알파의 결정사항을 거스를 권한은 없습니다. 과묵한 성격으로 발언이 거의 없었습니다.」
「감마(γ): 구성원들의 마찰을 중재하고 장로회의 규칙을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중립적이고 온화한 성격이며, 개인적인 감정보다 장로회 자체의 의도를 중시합니다. 베타와 직접적인 연결성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카르민펙토스 재단은 감마의 도구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감마가 카르민펙토스 재단을···.’
「델타(δ): 권위적인 성격입니다. 감마를 ‘형님’이라고 불렀으며, 태도에 조심성이 없습니다. 따로 특이사항은 없습니다.」
「엡실론(ε): 언급이 없었습니다. 다이토가 접속했을 당시에도 자리에 없었습니다.」
「제타(ζ): 가이우스를 다루며 태양계에서의 전쟁을 주도하려다, 원하는 형태로 전쟁이 벌어지지 않아 억울해하는 인물입니다. 카이사스 제독을 죽인 범인이 관리자님이라고 단정하며, 관리자님께 적개심을 품고 있습니다. 빠르고 짧은 형태의 전쟁을 유도한 뉴소사이어티에 대한 것은 모르는 것 같습니다.」
‘저번 전쟁에 관여한 장로회 인물은 제타···.’
「에타(η): 언급이 없었습니다. 다이토가 접속했을 당시에도 자리에 없었습니다.」
「세타(θ): 프로키온 항성계의 바빌로니아 플래닛 웨폰에 상당한 금액을 투자했습니다. 자신에게 방해가 되는 인물을 죽이는 것에 망설임이 없습니다. 장로회의 규칙을 크게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다이토의 거짓말에 설득당하여 관리자님께 위해를 가하려는 의도가 있어 보입니다. 세타에 해당하는 인물은 3일 뒤에 루비코 항성계에서 다이토와 접선하기로 약속했습니다.」
「요타(ι): 대화 참여에 적극적이며 밝은 성격입니다. 호기심이 원인인지 질문 위주의 발언을 했습니다.」
「카파(κ): 제타와 같이 관리자님이 카이사스 제독을 죽였다고 단정했습니다. 제타는 관리자님께 불만이 있습니다.」
「람다(λ): 엔리코 다이토입니다. 마지막 순서의 문자를 별명으로 받았으며 장로회에서 막내라는 위치입니다.」
하나의 목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들의 각기 다른 목적을 합의하에 움직이는 집단인 것 같다.
그래도 복잡하게 꼬인 저번 전쟁의 진상은 밝혀졌다.
“제타라는 놈이 자기 이익을 도모하려고 가이우스를 움직여서 세계대전을 일으키려고 했는데, 뉴소사이어티가 토성을 점령하려고 짧은 전쟁을 일으켰네. 내가 중간에 껴서 뉴소사이어티랑 제타 양쪽을 방해한 것이 되었고. 맞지?”
- 그렇습니다.
“알파가 뭐 하는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장로회의 일원으로 고려하고 있다는 소리잖아. 그러면 이 녀석들 전부가 내 적은 아니라는 거야. 착한 놈들은 아니지만 무조건 나쁜 놈들이라고 하기에는 또 애매하고. ···다른 색깔을 가진 인간들을 다 섞어놓은 집단 같아.”
- 감마는 카르민펙토스 재단을 이용하여 관리자님의 ‘능력’을 확인했다고 언급했습니다. 따라서 장로회 구성원들은 공통적으로 어떠한 ‘능력’을 가진 인물들인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것이 재력일까. 권력일까. 기술력일까. 정보력일까.
아니면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개인의 각기 다른 ‘능력’ 자체를 뜻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다이토···. 람다가 된 다이토의 능력은 콜렉퍼레이션의 스파이를 이용한 정보력과 총수부 소속이라는 정치적인 권력이야. 그게 다이토가 장로회의 일원이 될 수 있도록 했어.”
태양계 전체에 스파이를 뿌려놓은 정치인이라면 장로회에 들어갈 만도 하다.
- 매우 적합한 가정입니다.
“그럼 장로회가 높이 평가하는 ‘내 능력’은 군사력인가···? 카르민펙토스 재단을 두 번이나 이겨냈으니까.”
- 하지만 옵시디아몬보다 규모가 큰 군사조직은 매우 많습니다.
“기술력인가. 신기술 개발 속도와 성장세에서 옵시디아몬보다 뛰어난 기업은 거의 없잖아. 우리의 군사조직과 모든 사업이 인공지능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도 특이한 점이고.”
- 그런 부분은 옵시디아몬의 특성이 명확합니다.
“됐다. 천천히 알아보면 될 것 같고, 내가 당장 주목해야 할 건 세타라는 인물이야. 3일 뒤에 루비코에서 다이토와 접선한다고 했지. 나한테 위해를 가할 목적으로.”
- 그렇습니다.
“3일 안에 병력 충원 마치고 다이토는 지금처럼 계속 감시해.”
위협이 어떤 방식으로 닥쳐올지 모른다.
***
옵시디아몬의 콜로니 사업은 정상궤도에 올랐다. 앞서 입주를 희망하여 유토피아에 투자했던 부유한 계층들은 화성이 내려다보이는 거주구획으로 이사했다.
그밖에 살짝 여유 있는 중산층들은 평범한 거주구획으로 들어왔고 금성 피난민들이 있던 고밀도 거주구획은 평범한 중산층 구획으로 정리되었다. 그중에 유토피아 입주를 희망하는 금성 피난민들도 상당히 많았다.
유토피아의 사무구획에 기업 건물을 차리는 스타트업이 생겼고 상업구획에 자영업을 여는 사업가들이 순식간에 번화가를 이루었다.
굳이 입주자가 아니더라도 옵시디아몬이 운영하는 ‘화성에서 가장 큰 콜로니’에 방문하는 관광객들의 숫자도 무시할 수 없다.
옵시디아몬의 전략기획팀은 관광에 관련된 사업을 구성하고 실행했으며 시도할 때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유토피아의 옵시디아몬 본사 부지에는 인공지능 모듈과 병기 및 무기를 생산할 공장이 절반을 차지했다.
또한 유토피아의 외곽 위치에는 산업화 모듈을 추가로 연결하여 산업구획을 만들었다.
그래서 레나는 늘 성공적인 결과만 보고할 수 있게 되어 마음이 편했다.
“산업구획의 공장들은 완공될 때마다 나가고 있습니다. 지금은 정지궤도에서 생산되는 상품이 수출 프로세스에 있어 훨씬 편리하다는 점을 계속 광고하고 있습니다.”
로페즈는 홀로그램 보고서를 눈으로 훑는다.
“유명한 회사들이 우리 산업구획을 많이 가져갔네요. 스타파이프에 X프로텍트에···.”
“수출하는 규모가 클수록 이곳에서의 생산라인이 큰 이점을 갖고 있습니다.”
「인공지능 모듈, 인공지능 학습기, 인공지능 병기, 콜로니, 민간군사활동, 신기술 개발 등의 사업을 주도하는 옵시디아몬의 현재 시가총액은 71조입니다.」
태양계의 드넓은 우주 시장에서 인기와 신뢰를 얻었을 때 회사가 크는 것은 한순간이다. 초 단위로 팔려나가고 다운로드되는 상품들이 막대한 이익을 안겨주었다.
「추가로 발행한 주식이 모두 매매되었습니다. 옵시디아몬의 계좌 잔액은 약 1조 1050억 크레트입니다.」
정부와 주주들의 요청에 총발행주수를 살짝 늘렸다. 살짝 늘렸지만 한 주 당 가치가 너무도 높아서 대규모 투자를 유치한 듯 자금이 들어왔다. 이제 화성뿐만 아니라 태양계 곳곳의 주주들까지 옵시디아몬에 붙었다.
「옵시디아몬은 시가총액이 64조로 떨어진 신디사이트를 제치고 화성 시가총액 2위의 대기업이 되었습니다. 1위는 옵시디아몬과의 협력으로 시가총액 106조를 달성한 오비탈플래닛입니다.」
화성의 신흥재벌집단 중 옵시디아몬과 연관되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다. 덩달아 화성의 경기도 좋아졌고, 많은 중산층들이 상류층으로 도약할 기회를 옵시디아몬으로부터 얻을 수 있었다.
「시가총액 300조를 넘으면 거대기업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도 옵시디아몬의 프로그램과 인공지능 관련 상품은 태양계 곳곳으로 뻗어나가는 중이다. 그리고 하이퍼 마인드 덕분에 트랜센던서에 줄 수 있는 자원이 확대되어 태양계 각 국가의 네트워크를 장악할 경로까지 탐색하고 있다.
「진화 프로세스 진행률: 44.3%」
화성, 금성에 이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는 네트워크 장악은 트랜센던서의 성장을 가속한다.
‘과정이야 어떻든 우리 모두가 좋아지는 일이야.’
「수성 네트워크 장악 진행률: 61%」
「목성 가니메데 네트워크 장악 진행률: 11%」
「목성 유로파 네트워크 장악 진행률: 14%」
「토성 타이탄 네트워크 장악 진행률: 22%」
「천왕성 네트워크 장악 진행률: 4%」
머지않아 태양계를 거머쥐는 날이 오리라.
***
루비코 항성계의 세라리코 행성 정지궤도에 함선이 정박했다. 알파벳 Y를 가로로 눕힌 것처럼 생긴 이 함선은 머리 부분의 갈라진 구조에 다이아몬드 덩어리를 고정시켜 두었다. 그 다이아몬드 덩어리의 지름이 800m는 넘는다.
곧 함선의 하부갑판에서 드릴과 집게가 달린 우주선들이 나왔다. 우주선들은 사탕에 달라붙은 개미군단처럼 다이아몬드 덩어리에 붙었다.
치지지직···.
다이아몬드 덩어리를 세라리코 행성으로 내리기 위해 조각내는 것이다. 지름 800m의 다이아몬드를 그대로 행성에 내리는 것은 세라리코에서 허가하지 않는다. 자칫 잘못되면 운석 충돌과 같은 일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라리코의 도심에서 빠져나온 다이토는 화물저장 부지로 들어섰다. 반중력으로 부양하는 컨테이너들이 수입품과 수출품을 옮기기 위해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다.
그는 쌓여있는 컨테이너가 만든 골목에 적당히 들어와서 기다린다.
‘여기라고 했는데···.’
하늘에서 우주선들이 유난히 많이 오르내리고 있다. 방금 수입품이 들어온 걸까. 시야의 양옆으로 높게 쌓인 컨테이너 때문에 어떤 함선이 왔는지 보이질 않는다.
“엔리코 다이토 님.”
“깜짝이야!”
정장 같은 디자인의 주황색 작업복을 입은 남자가 그에게 접근했다.
“···어? 그 옷···.”
그의 주황색 작업복은 다이토가 한번 알아본 적이 있는 회사의 현장직들이 입는 복장이었다.
“금성 총수부의 엔리코 다이토 님. 맞으시죠?”
“아, 네. 반갑습니다. 세타 님.”
“네?”
“···예?”
“세타 님이 누구신지는 모르겠지만 착각하신 것 같네요. 저는 현장의 넬슨 타이거드입니다. 다이토 님을 모시러 왔습니다.”
장로회의 일원이 저렇게 현장직의 작업복을 입고 있는 30대 중반 정도일 리가 없다.
“괜찮으시다면 지금 우주선으로 모셔드려도 될까요?”
상대가 현장직이라는 것을 확인한 다이토는 태도를 싹 바꾼다.
“이런···. 내가 착각했네. 지금 가지.”
“···예.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다이토는 그를 따라 우주선에 탑승했다. 무거운 물건을 옮기도록 설계된 우주선의 색깔도 주황색에 가깝다.
이 주황색 디자인의 작업복과 우주선. 화물을 옮기는 사업을 하는 듯한 회사.
아무리 생각해봐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함선에 도착해서 세타라는 사람을 만나기 전에는 아는 편이 좋겠다. 그래서 다이토는 우주선 조종석에 앉은 남자에게 묻는다.
“어이.”
“예. 다이토 님.”
“무슨 회사지?”
“저희요?”
“그래, 너희.”
“저희는 미르니(Mirnyy)입니다. 광산과 광물에 관련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미르니였다.
목성 출신으로 목성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태양계의 오르트 구름에 광산을 개척했고, 최근에는 심우주의 자원까지 탐색하여 수많은 채굴 플랜트를 만들고 있는 거대기업이다.
우주선은 함선의 기계식 착륙장에 고정되었고 다이토는 우주선에서 나온 후 다른 사원들의 안내에 따라 어떤 엘리베이터를 홀로 탔다.
‘거대기업이야, 거대기업이라고···! 가이우스의 다섯 배 규모는 되는 거인이 나타나셨다! 크큭···. 로페즈 너 아주 잘 걸렸어···!’
지이잉.
엘리베이터의 문이 십자가 형태로 갈라지며 열린다. 함선에 마련된 넓은 집무실이 펼쳐진다.
집무실의 가운데에는 가죽 소파들이 있고 그 상석에 2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순백의 피부에 금발의 단발머리를 한 여성이 앉아있다.
그녀의 배후로 웅장하게 펼쳐진 우주선들이 다이아몬드 덩어리를 끊임없이 옮기고 있다. 커다란 유리창 앞, 업무를 보는 책상 위에는 순도 100%의 반짝이는 금괴 수십 개가 피라미드처럼 쌓여있다.
이제 보니 이곳 집무실 바닥의 무늬는 실제 에메랄드로 조각한 것 같다.
이 공간에 들어선 것만으로 그녀의 압도적인 재력이 느껴진다. 숨만 쉬어도 콧구멍에 돈이 들어오는 것 같은 기분이다.
“하하! 정말 반갑습니다! 세타 님!”
“반가워요. 람다 님.”
그녀는 자리에 앉은 채로 손가락만 까닥한다.
“시간 없으니까 와서 앉으세요.”
그녀의 얼굴은 미소를 머금고 있는데 말투에서는 왠지 모를 날이 느껴진다. 혹은 지금 그녀의 말투에서 느껴지는 것이 날이 아니라 격차라는 것일까.
피식자가 포식자의 낮은 울음에 느끼는 위협, 하급자가 최고 상급자에게서 느끼는 불편함 같은 것과 비슷한 느낌일까. 다이토로선 생소한 감각이다.
“네! 알겠습니다! 하하.”
다이토는 후다닥 달려가 그녀에게서 가장 먼 곳에 위치한 측면의 자리를 골라 앉는다.
“그리고 현실에서는 장로회의 별명을 쓰면 안 됩니다. 앞으로는 빈센트 총수라고 부르세요. 저는 다이토 씨라고 불러드릴 테니까.”
“아휴, 물론이죠! 제가 감히 빈센트 총수님을 독대해도 되는지 모르겠군요. 하하하! 정말 영광입니다!”
< 19. 극한의 이득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