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 세상을 움직이는 그림자 (4) >
***
저번 전쟁에서 옵시디아몬이 금성 민간인들을 적극적으로 구조했다는 것은 감동적인 이야기가 되었다. 또한 옵시디아몬이 유토피아를 방패로 삼아 화성을 공격하는 테러리스트 함대에 대항했다는 것도 기업의 이미지에 좋은 영향을 미쳤다.
게다가 금성의 네트워크는 트랜센던서가 100% 장악한 채다. 금성에서 옵시디아몬에 유리한 말이 퍼지도록 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그래서 금성은 옵시디아몬의 두 번째 주요 고객 행성이 되었다. 금성의 인구는 13억으로 화성보다 작지만, 기업의 입장에서 13억이라는 숫자는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수치다.
옵시디아몬의 회의실에는 크로노스의 서열 2위 임원과 3위 임원이 찾아왔다. 그들의 맞은편 자리에는 로페즈와 레나가 앉았다.
레나는 상대를 교묘하게 설득하여 교섭의 주도권을 가져오는데 능숙했다.
“유토피아와 사설 병력에 피해가 생기면서 성장세가 다소 주춤했습니다만, 기업적 이미지에 지속적인 호평이 쌓이면서 그간 발생한 손실은 전부 복구했다는 계산이 떨어졌습니다.”
홀로그램 속 그래프는 잠시 내려갔다가 다시 예전처럼 말도 안 되는 성장곡선을 보이고 있다.
크로노스 임원들은 그녀의 주장에 부정하지 않는다.
“거의 절벽처럼 치솟고 있군요.”
거기에 로페즈가 덧붙인다.
“금성 고객층의 영향이 컸습니다. 그리고 수성, 목성, 천왕성의 고객들도 저희의 인공지능 모듈을 대량으로 수입하고 있죠.”
의도적으로 토성만 쏙 빼놓았다. 크로노스 임원들이 소외감을 느끼도록.
「두 임원에게서 심장으로 집중되는 혈류가 감지됩니다. 뇌파 분석에 의하면 조바심에 가까운 반응입니다.」
저번 전쟁에서 함께한 국가의 국민들이 옵시디아몬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다. 트랜센던서의 논리에 의하면 카르민펙토스 재단의 사건이 그 발화점이었다고 한다.
“하하. 이런 제안을 해주셔서 거듭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겠습니다. 저희도 옵시디아몬이 250만 톤급 기함을 건조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전적으로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크로노스 서열 3위 임원이 이어서 말한다. 이미 마음속으로 결정은 내린 것 같다.
“귀사가 코퍼레이션으로 라 코만데를 흡수했으니 함선 건조에 필요한 무장의 기술적 재료도 충분히 마련된 것이겠죠.”
사정이 매우 안 좋아진 라 코만데는 옵시디아몬이 손쉽게 흡수했다. 게일 라 코만데 제독은 엑스턴 사령관의 밑에서 부사령관이라는 직책을 맡을 예정이다.
“예. 그리고 토성 기업들 중에 크로노스만큼은, 저번 전쟁의 안 좋은 여파를 피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쟁 때문에 토성 기업들의 이미지도 덩달아 안 좋아졌고 토성의 경기 또한 침체되었으니까. 이건 크로노스에 호의를 베푸는 것처럼 포장한 발언이다.
게다가 돈을 주고 일을 시키는 입장은 전적으로 옵시디아몬이니, 크로노스는 뭐든지 이쪽이 원하는 대로 최대한 맞춰야 할 것이다.
“그런 사소한 것까지 신경 써주시다니, 너무 감사합니다. 하하.”
사소한 것이라고 말은 했지만 본인들은 절대 사소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리라.
로페즈는 요청한다.
“대신에 건조는 화성 궤도에서 했으면 좋겠습니다. 저희 하이퍼 마인드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위치에서요.”
“아, 예. 그 정도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기함은 유토피아에 붙여서 건조하면 되겠습니까?”
“그게 좋겠네요.”
대화를 살펴보던 레나는 로페즈가 원하는 함선의 스펙을 제시한다. 이미 홀로그램으로 입체적인 디자인까지 완성된 상태다.
“세부적인 설계와 실제 건조는 크로노스 측에서 전담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250만 톤급 이상입니다. 상부와 하부 갑판의 구별이 없고 돌출된 함교 또한 없습니다. 함교는 함선 내부의 중심에 넣고, 내부의 모든 곳에 전자적 회로와 무선 네트워크 매개체를 깔아주셔야 합니다.”
“내부에 뭔가를 설치하려는 것인지요?”
“무인 병기의 포드, 자동포탑, 카메라, 동작인식 센서 등을 채워 넣으려고 합니다.”
“굉장히 삼엄한 경비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겠네요.”
“네. 그리고 외부의 갑판에는 저희가 직접 화기를 설치하겠습니다. 크로노스는 동체를 이루는 회로와 구조물만 차후 저희가 제공해드릴 모형에 맞추어 건조해주시면 됩니다.”
계기판, 시스템, 감시 카메라, 각종 함포, 실드 발생기, 관측도구 등 ‘함선’ 자체와 관련이 없는 기술은 모두 옵시디아몬의 것으로 만들려는 것이다.
이러면 크로노스 측에서 받을 돈이 적어진다.
받을 돈이 적어진다. 그들이 그 생각을 머릿속에 올리는 순간, 로페즈는 미소로 묻는다.
“괜찮겠죠?”
이어지는 흐름상, 배경상, 분위기상, 입장상, 지금 그들이 내뱉을 수 있는 대답은 하나뿐이다.
“···물론입니다. 이러면 건조 기간이 짧아져서 금방 완성할 수 있겠네요. 하하하.”
「가격 협상을 저렴하게 할 여지가 확실해졌습니다. 크로노스는 관리자님의 요청에 확답했고, 남은 협상은 레나에게 맡기면 됩니다.」
***
금성의 오후 7시는 아직도 대낮처럼 밝다.
자신의 차량에 탑승한 다이토는 금성의 수도인 베네레지오에 들어왔다.
“어디로 가십니까?”
운전석의 보좌관이 그렇게 묻자 다이토는 머뭇거리다가 입을 연다.
“병··· 으윽···!”
“괜찮으십니까?! 베네레지오 대병원으로 모실까요?”
“으으······.”
다이토는 순간적인 통증을 느꼈다. 무슨 통증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이상한 감각이었다. 심장 근처의 근육을 바늘로 찔린 것 같았다.
“임원님?”
“아, 아니야. 됐어. 그냥 자택으로 돌아가겠네.”
“정말 괜찮습니까?”
“괜찮다고. 빨리 차 돌려.”
병원으로 가서 몸을 검사하려고 했으나, 입에 병원이라는 단어를 담기 전에 통증이 덮쳐온 것이다.
‘몸속의 것이 내 행동을 감시하고 있어···. 하이퍼 마인드가···.’
다이토는 집으로 돌아가는 중에 머리를 굴린다.
‘내 몸에 나노봇을 주입했다고 했지. ···나노봇 단위가 인공지능을 구사하려면 네트워크 연결이 필수적이다. 하이퍼 마인드라고 했으니 녀석의 감시 범위는 아마도 태양계··· 인가···?’
그는 휴대전화로 문자 메시지를 작성한다.
‘내 모든 행동을 감시하고 있진 않을 거야. 내 위치와 발언을···. 내가 병원으로 이동하려 해서 그랬던 거야.’
「병원장. 혹시 오늘 내 별장으로 방문해줄 수 있나? 아무도 모르게 수술 장비만 챙겨서 와주면」
“···!”
「병원장. 혹시 오늘 내 별장으로 방문해줄 수 있나? 아무도」
「병원장. 혹시 오늘 내 별장으로 방문」
「병원장. 혹」
「 」
기껏 작성한 메시지가 눈앞에서 자동으로 지워졌다.
‘제발······.’
그리고 새로운 메시지가 자동으로 작성되었다.
「평소처럼 행동할 것.」
‘사악한 새끼···!’
하이퍼 마인드가 작성한 경고인지 로페즈가 작성한 경고인지는 모른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구속에서 벗어나려는 모든 시도가 막히고 있다는 점이다.
‘평소처럼···.’
로페즈는 말했었다. 평소처럼 행동하라고. 가족을 만나고 총수부로 출퇴근하고 장로회 활동도 그대로 평소처럼 하라고. 그저 자신에게 해를 끼치지만 말라고.
‘하이퍼 마인드는 유토피아의 본사에 있지. 네트워크로 연결된 인공지능이라고. 그러면 하이퍼 마인드의 네트워크 범위를 벗어나면 돼.’
나노봇 크기의 물건이 네트워크도 없이 자체적인 인공지능을 발휘하지는 못하리라. 그리고 일단 자신의 몸이 하이퍼 마인드와 연결이 끊기면 구속에서 일시적으로 벗어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생각하면 할수록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
‘자기한테 해만 끼치지 말라고? 개소리하네, 악마 같은 새끼가. 내 인조인간을 만들 생각이나 하고. 말을 그딴 식으로 하다니. 감히 뉴소사이어티를, 나를······. 장로회의 일원을 건드려?’
이렇게 마냥 당해주고 싶지 않다. 평생을 이런 감시 속에서 살아갈 수는 없다.
“보좌관!”
“···예?!”
“공항으로 가.”
“외부 일정은 없으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새로운 일정이라도 생기셨습니까?”
보좌관의 물음에 공항으로 가는 이유를 덧붙인다. 하이퍼 마인드나 로페즈에게 들으라고.
“잠깐 머리 좀 식히고 와야겠다.”
‘겁도 없는 애송이가 승승장구에 취해가지고···. 그래, 제대로 짓밟히게 해주마···. 죽여버릴 거라고···!’
***
항성 간 이동의 중심 경유지가 되는 태양계에는 여러 궤도에 각기 다른 방향으로 면을 향한 차원통로가 있다.
우주에 띄워진 차원통로는 반지 모양의 거대 구조물이며 평균적으로 245㎞의 반지름을 자랑한다.
다이토가 탑승한 민간용 함선은 태양계 안에서 화성의 공전궤도를 돌다가 루비코 항성계와 연결된 차원통로 앞에 도달했다.
매 순간 차원통로를 드나드는 함선들은 차원통로의 경로 유도와 좌표 지정을 받아서 가속 중에도 서로 충돌하는 일이 절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