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 세상을 움직이는 그림자 (3) >
***
“알고 싶어요?”
프녹스는 침을 꿀꺽 삼킨다.
고민한다. 로페즈가 뉴소사이어티를 어떻게 제거하고, 교체하고, 지워버렸는지를 상상한다.
하지만 자신이 아무리 상상해본들 로페즈가 알려주지 않는 이상 진실은 알 수가 없다.
“어···. 그게······.”
그리고 프녹스는 두려움이 호기심을 이기는 성격이다.
그는 망설임 끝에 대답한다.
“···예. 알고 싶습니다.”
이에 로페즈는 다시 선하게 웃는다. 늘 자신의 사원들에게 보여주던 그 미소다.
“그러실 줄 알았어요.”
***
「관리자님. 장로회 소속의 인물은 특정되었습니다. 해당 인물을 제외한 자들에게 용무가 더 있습니까?」
“···아니. 이제 충분해.”
타앙!
타앙!
로페즈는 산탄 권총으로 그들을 한 명씩 죽이기 시작한다.
“으아아아!!!”
“미쳤어?! 미쳤냐고!!!”
타앙!
뉴소사이어티의 3등급 신도가 두 명 남았다.
“살려주세요···!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저희가 다 잘못했습니다! 저희가 전쟁을 벌였어요! 전부 저희가 저지른 일입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타앙!
투두두두둑···.
시체 일곱 구가 혈액을 쏟거나 분출하며 아무렇게나 널브러졌다. 그들의 피와 살점으로 물든 공간에서 마지막 한 명은 망가진 엔진처럼 온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흐···. 흐윽···. 잘못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빌겠습니다···. 제발···. 제발···.”
마지막 한 명은 뉴소사이어티의 3등급 신도이면서 장로회 소속인 인물이다.
로페즈는 그에게 산탄 권총을 겨눈다.
“살고 싶어요?”
“집에 아들만 셋이 있습니다···! 제발, 제발 부탁드립니다···! 제발···!”
「진실이지만 동정심으로 판단을 그르쳐선 안 됩니다.」
어차피 방금 죽인 광신도들도 누군가에겐 소중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의 형편에 맞춰줄 안일한 생각 따위는 버린 지 오래다.
“살고 싶냐고 물었습니다.”
“아···! 네···! 사, 살려만 주신다면 뭐든지 하겠습니다···!”
틱···. 틱틱···.
로페즈의 정장 속에서 A타입 로보버그가 기어 나왔다.
위이잉···.
로보버그는 그대로 날아서 마지막 3등급 신도의 옷깃으로 들어갔다.
“허튼짓하면 목덜미가 부서질 겁니다. 일어나서 따라오세요.”
신도는 자신의 목덜미에 붙은 로보버그의 차가운 금속 감촉을 느낀다.
“예···! 무조건 얌전히 따라가겠습니다···!”
로페즈는 자이칸에게 산탄 권총을 넘겨주었다. 이어서 자이칸이 문을 열고 앞서나간다.
좁은 복도에 쓰러진 경호원들의 시체를 군체 휴머노이드들이 치우고 있었다.
“뉴소사이어티는 오늘부로 없는 겁니다.”
“예, 알겠습니다···.”
“오늘 죽은 3등급 신도들은 내일까지 금성으로 돌아갈 겁니다.”
“···예?”
“인조인간으로 만들어서, 뉴소사이어티에 대한 기억과 이곳에서의 일을 지운 것으로 하겠습니다.”
“아, 예···!”
「관리자님의 방금 발언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샌디 옵시디언. 누군지 아세요?”
“아, 압니다···.”
“그 사람이 옵시디아몬의 생명 분야에서 일하고 있어요. 그래서 저희한테 인조인간 기술은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됐죠. 그냥 참고해두시라고요.”
“예···. 알겠습니다.”
「납득했습니다.」
***
「이름: 엔리코 다이토(Enrico Taito)」
「성별: 남」
「신체 나이: 33세」
「실제 나이: 52세」
「15분 전까지 뉴소사이어티의 3등급 신도였습니다. 그의 현재 직책은 금성 총수부의 임원입니다.」
「그는 다수의 스파이를 양성하고 활동하는 지하정보기관 콜렉퍼레이션(Collecperation)의 수장입니다.」
- 그는 태양계의 화성을 제외한 모든 국가에 콜렉퍼레이션의 스파이를 심어놨습니다. 각 스파이는 국가의 정보기관, 대기업의 정보부서, 연구 및 개발 관련 팀 등 큰 정보가 움직이는 자리에 공식적인 절차를 통과해 들어가 지속적인 스파이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약물로 의식을 잃은 다이토는 무역함선의 낮은 화물 위에 누워있다.
지금은 휴머노이드가 그의 팔목에 주사기를 꽂아 나노봇을 주입하는 중이다.
“엄청난 능력자였네.”
- 화성을 제외한 태양계 영역 대부분의 정보를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장로회의 일원···. 선각자가 될 수 있었다는 건가.”
- 선각자라는 개념은 불명확합니다.
선각자라는 것은 가이우스에서 정한 개념인지 장로회에서 정한 개념인지, 저번 전쟁을 진행하기 위해 임시로 마련된 개념인지 장로회에서 지속적으로 쓰는 개념인지 모른다.
“나는 그 테스트를 통과해서 코만데 라인의 선각자가 됐는데 장로회와는 아무런 접촉이 없었어.”
- 그렇습니다. 장로회와 코만데를 잇는 가이우스가 사라졌기 때문에 그 라인이 효력을 잃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혹은 선각자라는 개념 자체가 가이우스에서 엘리스의 목적을 주도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만든 개념일 수도 있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이 사람의 뇌를 업로드해버리고 싶네.”
- 제겐 그럴 기술력이 없습니다. 또한 그렇게 할 경우 다이토의 뇌가 가진 정보를 모두 볼 수 있겠으나, 앞으로의 작업 수행에 있어 다이토를 이용하기 위해 인조인간을 만들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렇겠지.”
- 장로회에 파고들 다이토가 인조인간으로 교체된다면, 장로회 측에서 다이토가 인조인간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릴 위험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다이토의 몸에 나노봇을 주입하고 있는 것이다.
“일단 선각자라는 개념은 빼놓고 생각하자.”
- 알겠습니다.
“다이토는 장로회의 일원이라면서 정작 본인은 장로회에 누가 있는지 모른다고 했지. 규모도 모르고.”
- 그는 장로회에 용무가 있을 때만 루비코(Rubyco) 항성계로 이동하여 사이버 회의를 진행한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곳이네.”
- 다이토가 활동을 계속하면 보이게 될 것입니다.
휴머노이드가 다이토의 몸에 나노봇 주입을 끝마쳤다.
- 다이토의 체내 네트워크와 연결되었습니다.
“깨워.”
그렇게 명령하자, 의식을 잃은 다이토의 몸이 멋대로 경련을 일으킨다.
“···으아앗!!”
쿵!
다이토는 화들짝 놀라며 화물 위에서 굴러떨어졌다.
“다이토 씨.”
“저, 저는 어떻게 되는 거죠···?”
“금성으로 돌려보내드릴 겁니다. 평소에 하던 그대로 살아가세요.”
다이토는 도저히 로페즈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다.
“도대체 그게···. 정말 그래도 되는 겁니까···? 이대로 그냥···. 돌아가서 살라고요?”
“네. 그 콜렉퍼레이션 열심히 돌리시고 가끔 장로회랑 협업도 하면서 사세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그제야 다이토는 자신의 한쪽 팔소매가 걷혀있음을 확인한다. 팔뚝에 커다란 주사자국이 있다.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제 몸에 무슨 주사를 넣었는지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나노봇이에요.”
“의료··· 용도는 아니겠죠?”
“다이토 씨의 체내에는 하이퍼 마인드의 인공지능이 들어갔어요.”
다이토의 표정이 절망에 물들었다. 자신의 몸속에 기생충보다 훨씬 끔찍한 것이 들어왔다는 기분일까.
“다이토 씨의 체내에 들어간 하이퍼 마인드는 항상 감시할 겁니다. 다이토 씨나 다이토 씨의 주변이 제게 해를 끼치는 활동을 하진 않는지, 뉴소사이어티가 부활하려는 조짐을 보이지는 않는지, 그런 것들을 감시하는 용도죠.”
“그래도 이건···. 이건 너무하지 않습니까···.”
로페즈는 다이토의 한쪽 뺨에 손바닥을 댄다.
“다이토 씨.”
다이토는 그 섬뜩한 접촉에 잔뜩 위축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너무하다는, 억울하다는 눈빛이다.
“살고 싶다면서요. 그래서 살려줬잖아요.”
콰악!
로페즈는 다이토의 머리칼을 거칠게 움켜쥐었다.
“이 씨발놈아. 그냥 이 자리에서 너도 없애고 너랑 똑같은 인조인간을 만들어서 금성에 보내줄까?”
“아···. 아니···.”
“그 인조인간이 매일 밤 네 와이프랑 같은 침대에서 자고, 네 아들들이랑 밥도 먹고 대학이나 진로 고민도 대신 들어주고, 너 대신 출근하고 돈도 벌어주고 좋겠네. 어차피 너만 없어지는 거지, 너의 가족은 당신의 대체품과 추억을 쌓으면서 평소랑 똑같은 일생을 보낼 거야.”
“아······.”
“너도 그렇게 되고 싶다는 거지? 아까 그 자리에서 뒈진 새끼들처럼.”
티틱···. 틱틱틱···.
기껏 다이토에게서 떨어졌던 로보버그 한 기가, 바닥에서 다이토를 향해 서서히 기어간다.
“아, 아아아···.”
털썩!
다이토는 무릎이 무너졌다.
“그냥 이대로 살게 해주십시오···. 이대로만···.”
그는 두려움이 가득한 눈물로 로페즈를 올려다보고 있다. 그러면서 고개를 천천히 가로젓고 있다. 제발 그런 짓은 하지 말아달라며.
“···그렇게라도 살라고요. 저는 장로회든 뉴소사이어티든 콜렉퍼레이션이든 뭐든 관심이 없어요.”
“예······.”
“나한테 해를 끼치나 안 끼치나. 제가 활동하는 영역에서 좆같은 짓을 하나, 안 하나. 그것만 감시하는 겁니다. 다른 건 다 알아서 하시라고요. 평소처럼.”
“아, 알겠···. 알겠습니다···.”
“이대로 집에 돌아가서 당신 가족들 얼굴도 보고, 내일부터 총수부에 출근하시고, 스파이 짓도 계속하시고 장로회 활동도 계속하시고. 그러면 됩니다. 이제 처 알아들으셨어요? 엔리코 다이토 씨?”
“예···. 확실히 알아들었습니다···.”
***
총수부 임원이자 3등급 신도였던 8명 중 다이토를 제외한 7명은 인조인간으로 교체되었다. 그리고 이들과 밀접한 관계가 있던 금성 행성대통령은 2등급 신도지만, 보다 확실한 처분을 위해 인조인간으로 교체되었다.
따지고 보면 금성 행성대통령은 3등급 신도들만큼의 죄가 없다. 오히려 그는 이용당한 입장이다. 하지만 로페즈는 그런 것을 신경 쓰지 않고 교체하기로 했다. 괜히 금성 행성대통령만 살려뒀다간 위험한 변수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교체된 자들은 뉴소사이어티에 대한 기억이 없다.
금성 네트워크를 100% 장악했기 때문에 그들의 움직임이나 분석 결과를 조작하는 것은 화성에서만큼 간단한 일이었다.
그렇게 뉴소사이어티는 철저하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 사라지리라.
5월 23일. 내상을 입은 유토피아는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에 금방 복구되었다.
로페즈는 옵시디아몬 본사가 위치한 구획의 바로 옆에 연결된 상류층 거주지 모듈의 거주구획으로 이사했다.
그의 집은 본사 타워의 절반 정도 되는 높이의 빌딩 꼭대기 층이다.
그리고 이번에도 집 안 곳곳의 커튼은 굳게 닫혀있다. 경치 좋은 창문이 많으나 로페즈에겐 아무런 감흥이 없어서다.
- 자이칸이 확보한 수성의 전자적 침투 경로를 통해 확인한 결과, 수성 시스템의 보안 수준은 화성의 시스템과 동급입니다. 하지만 하이퍼 마인드의 보안 수준에 비교하면 수성 시스템이 하위 단계입니다.
“수성 네트워크 장악은 얼마나 걸릴 것 같아?”
- 수성은 규모가 작은 위성국가입니다. 현재 수성 네트워크 장악은 약 47%까지 완료되었으며, 5일 안에 100% 완료될 것으로 계산됩니다.
화성, 금성에 이어서 수성까지 장악할 생각이다.
“우리의 범죄예측 프로그램은?”
- 추가로 수출된 소식이 없습니다.
“혁신적인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잘 안 팔리네.”
- 대부분의 국가는 이미 0.2% 미만의 범죄율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화성처럼 0%에 수렴하는 것이 이상적이지 않나.”
- 일부 국가에서는 집권세력 및 기득권 세력의 지하활동을 보호하기 위해 범죄예측 프로그램 수입을 지양하고 있는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렇구나.”
로페즈는 침대에 앉아서 휴대전화 화면을 뇌파로 스크롤한다. 비서실의 레나가 작성한 스케줄 표다. 오늘 완료한 일과 내일 해야 할 업무가 정리되어 있다.
“코만데 제독이 내일 인수합병을 제안하러 오네. ···제안이 아니라 간절한 부탁이 되겠지만.”
- 옵시디아몬이 라 코만데를 흡수하면 손실된 병력을 빠르게 보충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인간 병력’의 비율을 줄이겠다는 관리자님의 이전 판단에 어긋납니다.
“인포시어.”
「?」
“라 코만데의 지휘주력함 인포시어. 그것보다 강력한 함선이 옵시디아몬에 상징적으로 하나 필요하겠어. 우리는 매우 멀쩡하고, 여전히 강하다는 것을 선전하는 거지.”
- 좋은 판단입니다.
“인포시어의 스펙. 저장해놨지?”
- 출력하시겠습니까?
“보여줘.”
「함명: 인포시어(Infoseer)」
「함종: 지휘주력함」
「함번: LAC-1」
「건조: 라 코만데&크로노스」
「운용: 라 코만데」
「무게: 약 190만t」
「선폭: 1.2㎞」
「작전범위: 은하계」
「엔진: 탄화수소 핵융합 반응로 4기, 반물질 제어로 1기」
「무장: 128연장 플라즈마 주력함포 1문, 4연장 요격포 256문, 2연장 절단 레이저 방어함포 90문, 핵미사일 중력가속사출 발사대 외 격납된 비행체 및 강습병기 다수」
“라 코만데와 크로노스가 건조한 함선이야.”
- 그렇습니다.
“라 코만데를 흡수하고 크로노스에 연락해서, 거기에 우리의 기술력까지 합쳐서 최고의 함선을 만들 거야.”
기술력의 정수를 함선 하나에 다 넣을 것이다. 태양계에서 강하기로 제일 유명한 함선을 만들 것이다.
- 크로노스는 토성의 궤도건축시장을 73% 이상 독점하고 있는 대기업입니다. 옵시디아몬은 화성의 대기업이므로 토성 시장의 반감을 살 수 있습니다. 크로노스는 이를 우려하여 관리자님의 제안을 거절할 확률이 높습니다.
상관없다.
“나한테 그쪽 서열 2위 임원의 개인연락처가 있어.”
< 18. 세상을 움직이는 그림자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