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대 인공지능 키우기-92화 (91/183)

< 18. 세상을 움직이는 그림자 (1) >

***

프로키온 항성계의 바빌로니아에 갔던 옵시디아몬 함대가 화성 정지궤도로 귀환했다.

“유토피아가 왜···.”

엑스턴 사령관은 곳곳이 파괴된 콜로니를 보며 당혹감을 드러냈다.

치이잉!

함교의 문이 열리며 정장의 경호원들이 들어와 알린다.

“회장님 오십니다.”

엑스턴 사령관은 함교에서 내려와 로페즈를 맞이한다.

“회장님. 오셨습니까. 제가 바로 내려가서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고생하셨어요. 사령관님.”

로페즈의 안색이 뭔가 안 좋아 보인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화성 함대가 우주에 남은 잔해를 치우고 있다. 유토피아의 중앙구획은 천장이 뚫려서 폭격이라도 받은 것 같다.

‘함대전까지 있었나 보군···. 그래서 회장님이 이렇게···.’

늘 침착했던 로페즈의 안색이 저런 것에는 분명 심각한 이유가 있으리라.

‘아···. 메스꺼워.’

사실은 그냥 속이 안 좋아서 그런 것이다.

“바빌로니아 탈환은 성공하셨나요?”

“아, 예. 크게 어려운 작전은 아니었습니다. 크라켄 함대가 인포시어 함대와의 전투로 전력이 크게 약화된 터라 거의 손실 없이 격침할 수 있었습니다.”

“라 코만데···. 인포시어 함대는 어떻게 됐죠?”

“전멸했습니다. 크라켄 용병단이 인포시어를 강탈해서 전투에 사용하는 바람에···. 나중에 병력 교전 영상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놈들은 라 코만데의 병사를 한 명도 살려두지 않았습니다. 물론 저희 또한 크라켄 용병단을 한 놈도 살려두지 않았습니다.”

로페즈가 손짓하자 경호원들이 사병들을 함교 밖으로 안내한다. 곧 함교에는 두 사람만 남게 되었다.

“새로운 정보는요? 포로는 심문하셨겠죠?”

“···예. 서펜트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간부급 용병이 한 놈이 있었습니다. 크라켄 용병단은 오리온과학수호협회의 의뢰를 받았고 바빌로니아 왜소행성을 점령, 방어하는 것이 임무 목표라고 했습니다.”

“오리온과학수호협회가 라 코만데와 크라켄에 이중 의뢰를 했네요. 라 코만데를 솎아내려고.”

“저도 듣고 놀랐습니다. 그 협회가 크라켄 놈들에게 라 코만데가 올 것이라는 정보까지 줬다고 합니다. 그래서 인포시어 함대가 패배한 것입니다.”

“다른 건요?”

“그런데 오리온과학수호협회는 그저 심부름꾼이었습니다. 녀석들 뒤에 뉴소사이어티라는 금성 비밀종교 단체가 있다고 합니다.”

“그런가요. 역시 뉴소사이어티가···.”

“알고 계십니까?”

“네. 알고 있어요. 그래서요?”

엑스턴이 늘 느끼는 거지만, 로페즈는 정말 뭐든지 다 알고 있는 귀신같다.

“뉴소사이어티는 태양계 이웃 항성에 건설되는 플래닛 웨폰이 잠재적 위협이라는 명분으로 의뢰를 했던 것입니다. 그놈들이 오리온과학수호협회에 의뢰비까지 전부 대줬습니다.”

“알겠어요. 자세한 보고는 나중에 마저 듣죠.”

“예. 준비해놓겠습니다.”

로페즈는 빠른 걸음으로 함교에서 나왔다. 경호원들과 함께 우주선으로 가는 중에 트랜센던서가 텍스트를 띄워온다.

「이것으로 관리자님의 추리가 정확했음이 확인되었습니다. 화성의 무역함선 업자들에게 약속을 잡아놓겠습니다.」

‘몰라서 못 잡았지. ···바빠서 안 잡았지.’

「자이칸은 준비를 끝낸 후 수성의 안전한 장소에서 대기 중입니다. 저의 준비도 끝났습니다.」

‘알면 잡는다.’

***

태양계 곳곳의 뉴스에서는 기자들을 상대하는 베르도가 나오고 있다.

- 테러리스트 집단의 대규모 공격은 우리의 화성 함대가 완파했습니다.

- 화성 함대가 미리 대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기자들은 국민들의 질문을 대변해주었다.

- 예. 정부와 계약을 맺은 옵시디아몬의 경고 덕분입니다. 테러리스트 함대가 카이퍼 벨트를 통과한 직후 이를 알아차린 옵시디아몬의 하이퍼 마인드는 디렉텀에 연결을 요청했고, 그들이 ‘높은 확률’로 화성을 침공하리라는 경고를 해주었습니다.

- 우리의 군대가 테러리스트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방어할 수 있었던 것에는 군사력의 차이도 있지만, 무엇보다 위기에 미리 대응하였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기자들은 또 손을 들었다. 베르도는 그중 한 명을 지목한다.

- 하이퍼 마인드는 옵시디아몬의 인공지능 네트워크입니다. 하이퍼 마인드가 카이퍼 벨트까지 감시망을 갖추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해도 되는 건가요?

- 예.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옵시디아몬은 정부와 긴밀한 계약을 나누었습니다. PP의 경호뿐만 아니라 올림푸스 도시의 치안, 화성 궤도의 방공, 자국 시스템 수출 등의 협력을 하고 있습니다.

- 그럼 올림푸스의 범죄율이 0%에 수렴하는 것에도 하이퍼 마인드가 관여하고 있다는 것인가요?

- 부정하지는 못하겠군요. 자세한 사항은 기밀이라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행성대통령으로서 국민 여러분께 확실히 전달해드리고 싶은 것이 있다면···.

베르도는 목소리와 눈빛에 힘을 싣는다.

- 하이퍼 마인드는 전 정부의 ‘아레스 시스템’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인공지능이라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전 정부와 같은 일은 발생하지 않습니다. 앞으로도 정부와 자국 대기업의 연계 하에 국민 여러분을 보호해드리겠다는 약속을 드립니다.

다시 기자들이 손을 든다. 베르도는 다시 지목한다.

- 예.

- 테러리스트 함대가 유토피아를 집요하게 공격한 이유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정부의 입장을 알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하이퍼 마인드의 경고를 받은 직후 디렉텀에서는 즉시 대응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예전에 홀로그램으로 전 토성 정부의 PP 암살 시도를 방어했을 때와 같은 수순입니다.

- 그리고 하이퍼 마인드는 테러리스트의 생체병기에 대하여 경고했습니다. 110억 인구가 있는 화성에 테러리스트의 생체병기는 단 하나도 들일 수 없다는 판단이었죠. 결과적으로 화성 함대가 테러리스트 함대를 상대하고, 화성에서 가장 큰 콜로니인 유토피아가 화성 도심을 대신하여 방어 거점 역할을 수행하기로 했습니다.

- 추가로, 테러리스트 함대가 함대전 도중에 유토피아를 공격한 것은 일종의···. ‘금성 피난민’을 노린 테러 행위가 아니었나 추측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것은 분석 결과가 나오는 대로 더 공개하겠습니다. 시간이 늦어졌군요. 마지막으로 질문 하나만 더 받지요.

이번에도 대다수의 기자들이 손을 들었다.

베르도는 자연스럽게 어느 기자를 정확히 지목한다. 지목받은 기자 역시 자연스럽게, 미리 준비한 마지막 질문을 꺼낸다.

- 이번 사건은 화성 정규군이 테러리스트를 성공적으로 완파했습니다. 하지만 유토피아에선 옵시디아몬의 사설 군대가 자체적으로 방어를 수행했고 목격담에 따르면 화성 함대의 폭격 지원까지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옵시디아몬이 가장 큰 피해를 감수한 것 같은데, 이는 정부 디렉텀의 판단인지 하이퍼 마인드라는 인공지능의 판단인지 여쭙고 싶습니다.

베르도는 바로 답하지 않는다.

그는 몇 번의 호흡을 거친 뒤에 말에 무게를 실어서 미소로 답한다.

“그것은 저희 디렉텀의 판단도 하이퍼 마인드의 판단도 아닙니다.”

로페즈와의 약속.

“···옵시디아몬이 이번 일에 자신들을 화성의 방패로 내세운 것은, 온전히 로페즈 회장의 자발적인 판단이었습니다.”

***

수성에는 개발위원회라는 태양계 출신 집단이 행성국가를 세웠다.

수성은 태양계에서 태양과 가장 가까운 행성이다. 이심률이 크고 공전주기가 매우 짧기도 해서 최고 온도와 최저 온도의 차이가 600℃를 넘나든다.

수성은 달과 지구처럼 태양과 동주기 자전을 이루고 있다. 태양을 보는 면은 언제나 태양을 향하고, 태양을 보지 않는 면은 언제나 태양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수성의 개발위원회는 태양을 보지 않는 면에 도시를 세우고 태양을 보는 면에 태양연구소, 대규모 발전 단지, 태양을 관측하는 관광시설을 세웠다.

수성의 도시는 복잡하게 얽힌 미로처럼 생겼다. 테라포밍이 되지 않은 수성의 환경에 적합하도록 도시 전체가 하나의 구조물처럼 실내로 이어져있는 것이다. 그리고 도시의 상공에는 인공 중력으로 정박된 함선과 우주선들이 수성과 함께 공전하는 중이다.

「뉴소사이어티 총수부 수성지부 임원 회의실」

“나름 성공적인 결과라고 볼 수 있지.”

뉴소사이어티의 총수부 임원들이 이번 일에 대하여 의견을 나누고 있다.

“그래서, 자네는 장로회 소속이잖아. 카르민펙토스 재단은 어떻게 된 거야?”

“장로회에선 카르민펙토스 재단의 몸집이 너무 커졌다고 판단했어. 생체병기 기술만 회수하고 처분하고 싶다 하길래 내가 슬쩍 제안했지.”

“유토피아에 들이박으라고?”

“그래. 재단 놈들에겐 명분이 되잖아. 거기에 적당히 화성 함대가 멍청하다는 정보를 섞어서 재단을 움직이게 한 거야. 그렇게 다 속아서 깔끔하게 죽어주었지.”

“그럼 카르민펙토스 재단은 완전히 처분된 것으로 보는 게 맞겠군.”

“오리온과학수호협회는 뭐라고 하던가?”

“협회장이 별 수 있나. 태양계 경기도 안 좋아진 마당에 우리의 후원이 생명줄이겠지.”

“그래도 전쟁이 있었는데 태양계를 수호하는 협회에 후원이 그렇게나 줄었다는 말인가?”

“그 짧은 전쟁으로 태양계에서 돈맛을 본 놈들은 화성밖에 없어. 정확히는 옵시디아몬.”

“그놈들 꽁무니 쫓아다니는 라 코만데는 대충 처리했으니 위안이 되는군. 유토피아도 그렇고 그놈들 병력도 그렇고 손해가 컸을 거야.”

“그래서 나름 성공적인 결과라고 하는 말이네.”

“당분간 옵시디아몬은 피해 복구에 전념하겠어.”

“좋아. 이렇게 마련된 시간을 잘 이용해보자고. 옵시디아몬은 나중에 우리의 활동을 방해할 놈들이야.”

“라 코만데는 됐고. 내 생각에는 그 하이퍼 마인드라는 것이 신경 쓰이네. 화성 정부와 국민들의 신뢰를 받고 있어.”

“그 신뢰를 무너뜨리는 게 어떤가? 화성 놈들은 필리스버그 정권 때의 아레스 시스템에 적잖은 적개심을 품고 있어.”

“하이퍼 마인드가 아레스 시스템 같은 것이라고 거짓 정보를 유포할까? 부패 정부, 감시사회. 화성 놈들의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괜찮은 단어잖아.”

“그 정도론 부족하지. 화성이 인공지능을 기피하게 하는 사건이 터져야 해.”

“사건이라···.”

“좋은 수가 떠오르진 않는군. 인공지능이라면 해킹이 최고의 방법인데, 그리 간단히 뚫릴 시스템들이 아니야. 우리가 이렇게 수성에서 직접 몸으로 만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화성과 금성은 놈들의 시스템 아래에 있어.”

“어렵군.”

“···일단 대충 마무리하고 그 건은 다음에 각자 의견을 준비해오는 것으로 하지. 여기서 너무 오래 모여있는 것도 우리 PP가 보기에 수상하니까.”

“그러지.”

“오늘은 이걸로 끝난 건가?”

“그럼 끝났지 뭐라도 더 남았나?”

실내의 문 쪽에 앉아있는 임원이 모두를 쏘아본다.

“나는 아직 할 말이 남았는데. 다들 자리에 앉지그래?”

“···웬 헛소리야?”

쿵···.

문밖에서 사람이 쓰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자네 지금 뭐하는 짓인가?”

모두가 비슷한 상황을 예견한다.

“경호원! 밖에 왜 그렇게 시끄러워?”

쿵···.

쿠당탕···!

모두가 문쪽으로 시선을 옮긴다. 문 앞에 앉은 임원에게 의심의 눈초리가 가득한 시선을 보낸다.

“설마, 설마 아니겠지···.”

“너 뭐야! 배신이냐?!”

“무슨 꿍꿍이야?!”

“일단 자리에 앉으시죠. 먼저 뒈지기 싫으시면.”

나무로 된 문이 천천히 열린다. 사납게 보이는 인상의 키 큰 남자가 들어오고, 그의 뒤로 쓰러진 경호원들이 미동도 없이 피만 흘리고 있다.

“정리했습니다.”

“뭐···? 뭘 정리해···?”

문 앞자리에 있던 임원은 태연하게 입을 연다.

“스무 명도 넘게 있었는데 금방 해치우시네요. ···자이칸 씨.”

“예. 개조 받고 작업이 더 쉬워진 느낌입니다.”

자이칸은 그대로 문을 닫고 문 앞에 앉은 임원의 뒤에 그림자처럼 선다.

“저 새끼···. 로페즈가 옆에 끼고 다니는···”

“바깥 경호원들 진짜 다 죽었어···? 경호원!”

찌지직···!

문 앞자리의 임원은 자신의 얼굴 가죽을 뜯어낸다. 단백질과 지방으로 만들었으며 눈동자까지 덮는, 실제와 매우 똑같은 얼굴 가죽이었다.

로페즈가 가면을 썼던 것이다.

“언제쯤 이야기가 끝나나, 지루하게 듣고 있었어요. 진짜 재밌는 이야기만 나누고 계시네요. 다들.”

“아···. 그게, 우리가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니고···.”

로페즈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아무도 자리에서 움직이질 못한다.

“그동안 일이 그렇게 됐던 거네요. 이제는 다 알겠어요. 뉴소사이어티. 여기에 계신 분들이 저를 노렸고, 금성이든 토성이든 화성이든 당신들이 지도자들 사이에서 이간질을 하고 있었네요. 이단을 제거하려고. 혹은 이단을 제거하는 과정에 방해되는 세력을 미리 제거하고 약화시키려고.”

“하하···. 사람마다 사정이 있지 않습니까? 사업하시는 분이면 잘 아실 것 같은데. 조금만 선처를···”

“로페즈 씨. 이, 일단 말로 합시다. 우리는 다 이성이 있잖아요? 각자 합의를 볼 수 있는 부분이 분명 있을 거예요.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서로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대화로 풀어봅시다.”

“크라켄 용병단의 활동 기록을 봤어요. 여러분이 하고 싶은 일은 타 종교를 죽인 끝에 이루어지는 종교적 통합과 인류 평화의 존속. 맞죠?”

“이미 알고 계시네! 역시 로페즈 씨는 사람이 다르다니까.”

“맞네, 맞네.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이야. 음.”

“로페즈 씨도 평화 좋아하시잖아. 저번에 그 전쟁을 봐요. 얼마나 끔찍합니까?”

“로페즈 씨가 전쟁을 막으려고 보인 움직임과 우리의 그간 움직임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와 함께하면 그런 비극적인 일을 영원히 막을 수 있다는 겁니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것은 사업과도 비슷하잖아요?”

“맞아요. 로페즈 씨. 대화를 통해 해결합시다.”

로페즈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간단히 반문한다.

“서로 대화가 가능했으면 내가 이렇게 피를 봤겠어요? 대화를 원했으면 피를 보기 전에 얼굴부터 봤어야죠.”

뭐라 말이 나오지 않는 반문에 살벌한 적막이 흘렀다.

“어쨌든 종교적 통합과 평화. 의도와 목적 자체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의 한 마디 한 마디에 매 순간 희비가 교차한다.

“···그런데 근본적인 문제는 그 종교를 만든 당신들이 존나 나쁜 새끼들이라는 거야.”

로페즈는 그대로, 자이칸에게서 산탄 권총을 건네받는다. 서펜트라는 용병이 썼던 잔혹한 무기다.

뉴소사이어티 임원들은 이 상황에 저마다 바삐 머리를 굴린다.

“제발 맘 편히 사업 좀 하게 내버려 두면 안 되겠어요? 내가 매번 이 지랄을 해야···”

“로페즈 씨. 젊은 사람이 말씀이 조금 지나치시네. 참 나, 뒷감당할 수 있겠어? 여기 사람들은 당신이 그렇게 함부로 대해도 되는···”

“하, 씨발새끼가 말을 끊네···.”

“뭣, 뭐라고···?”

“안 닥쳐요? 내가 얘기하고 있잖아.”

< 18. 세상을 움직이는 그림자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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