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대 인공지능 키우기-91화 (90/183)

< 17. 붉은 탄생 (5) >

***

나이트포트리스 형제는 끔찍하게 웃어대는 촉수 생체병기에 대항한다.

촤아악!

형제 중 형 쪽의 전쟁기계가 12m의 플라즈마 커터를 휘둘러 촉수를 베어낸다. 그러면서 달려드는 지상의 생체병기들을 짓밟고 방패로 쳐내며 길을 연다.

길이 열리자 동생 쪽의 전쟁기계가 기동력을 과시하며 달리기를 구사한다.

키이이이잉!

동생 쪽은 양손의 회전하는 톱니를 휘둘러 촉수 생체병기를 난도질했다.

그렇게 북쪽 연결구획을 위협하던 신종 생체병기가 제압되었다. 하지만 녀석을 죽이기 위해 앞서 돌파한 나이트포트리스 형제는 금방 지상의 생체병기들에게 둘러싸이고 말았다.

- 장갑이 녹고 있다. 나를 도와라.

- 형님. 저도 바쁩니다.

촤악! 키이이이잉!

생체병기들은 나이트포트리스에 달라붙어 꽁무니의 산성 물질을 계속 쏘아댄다. 두 전쟁기계의 플라즈마 커터가 초 단위로 생체병기들을 썰고 있지만, 죽여도 죽여도 달라붙는 압도적인 머릿수 앞에 무의미한 저항이었다.

이 상황을 인지한 드론 하이브는 즉각 명령을 내린다.

- 나이트포트리스 형제. 하이퍼 마인드 네트워크로 탈출하라.

- 더 많이 죽일 수 있습니다.

- 드론 하이브 님. 저와 형님은 더 버틸 수 있습니다.

- 나와 너희의 판단은 중요하지 않다. 지금 즉시 하이퍼 마인드 네트워크로 탈출하여 새로운 전투 경로를 탐색하라. 트랜센던서 님의 명령이다.

- 알겠습니다.

- 알겠습니다.

장갑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생체병기들에게 둘러싸인 두 전쟁기계가 작동을 멈췄다.

그럼과 거의 동시에, 본사의 정문 앞을 지키던 테슬라포트리스가 나이트포트리스 형제의 네트워크 탈출을 감지한다.

- 나이트포트리스 퍼스트, 세컨드. 현재 드론 하이브들의 하이퍼 마인드 접속량이 폭증하고 있다. 너희의 새로운 동체가 준비되기 전까지는 내 동체 네트워크에서 나의 전투를 보조하라.

- 알겠다. 잠시 너의 동체를 빌리겠다.

- 합리적인 명령입니다. 테슬라포트리스 님께 생체병기들의 전술 패턴을 공유하겠습니다.

벌써 생체병기들은 군체 휴머노이드가 형성한 2차 방어선까지 돌파하고 있다.

그 많던 로보버그와 체인트루퍼는 거의 다 소모하였다. 콜로니 천장 아래를 날며 융단폭격을 퍼부었던 드론 파이터와 전폭기들은 비행하는 생체병기들에 당하여 숫자가 크게 줄어버린 채다.

3차 방어선은 다수의 전쟁기계와 각종 전차로 구성된 마지막 방패이며, 4차 방어선은 드론 하이브와 사병들 중심의 최후방 포진지다.

퀴이이이익!!!

타타타탕! 쩌억!

군체 휴머노이드는 생체병기들에게 덮쳐진다. 그러면서도 서로를 돕거나 자폭하면서 작동이 멈출 때까지 싸운다. 생체병기의 갑피를 뚫기에 용이한 고열총탄이 나름 효율을 발휘하고 있다.

와중에 후방과 공중에서 떨어지는 포격은 한순간도 멈추지 않는다. 전쟁기계, 전차, 사병들이 후방에서 매번 최소한의 공격으로 최대다수의 적을 사살하는 정확한 화력을 지원하고 있다.

이어서 최후방에 본사를 중심으로 둥글게 배치된 드론 하이브들이 각자 10m 이상 공중으로 떠오른다.

쓸 수 있는 로보버그가 더는 없는 상황에 출력의 대부분을 플라즈마 사출로 전환한 것이다.

치직!

충분한 높이를 확보한 드론 하이브들은 위에서 아래로 직격하는 플라즈마를 사출한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

엄청나게 밝은 빛줄기가 본사를 중심으로 사방에 퍼지며 구획 전체를 밝혔다. 그 빛줄기에 닿은 생체병기들은 새까만 재로 분해되어 지면에 공백을 이루었다.

- 3차 방어선에서 대응하라.

이제는 녀석들 무리의 공백이 쉽사리 채워지지 않는다. 아무리 머릿수가 많았어도 이만한 병력을 상대하면서 어떻게든 수가 줄어들긴 한 것이다.

그러나 수천 마리를 해치우는 과정에 옵시디아몬도 상당수의 병력을 잃어버린 것이 현실이다. 양쪽이 소모전을 벌인 결과이기도 하다.

그래서 옵시디아몬 병력이 여전히 밀리고 있다는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

- 생체병기들은 계속하여 이 장소를 노리고 있습니다. 이전에 관리자님이 주장하신 대로, 카르민펙토스의 목표는 관리자님인 것 같습니다.

“그럴 것 같더라니까.”

로페즈가 콜로니를 버리고 화성으로 내려갔으면 그야말로 대재앙이 발생했을 것이다. 처음에 수백 마리였던 녀석들은 사병 수백 명을 잡아먹고 이 짧은 시간 안에 만 마리 이상으로 번식하는 괴물들이었다.

‘적어도 가이우스의 엘리스가 카르민펙토스 재단을 섬멸해야 한다고 했던 판단은 옳았네.’

지금쯤 화성의 110억 인구는 뉴스를 보고 두려워하면서도 평상시의 생업을 유지하고 있으리라.

- 관리자님. 곧 3차 방어선이 돌파됩니다.

“숫자는 충분히 줄였어. 사병들은 전부 본사로 들어오라고 해.”

- 알겠습니다.

“그리고 여기 계신 사병분들은 위층과 아래층을 방어해주세요. 경호원분들은 문밖을 지켜주시고 자이칸 씨만 남으세요.”

“예.”

회장실에 있던 경호원과 사병들이 나갔다. 자이칸은 왜 자신만 이 자리에 남겨뒀는지 모르겠다는 눈치다.

“개조된 몸은 잘 맞으세요?”

“예? 아, 나노봇? 그거랑 근육이랑 내골격이랑···. 이것저것 바꿨다고는 하는데 그냥 제 몸처럼 익숙합니다.”

“몸의 성능이 많이 변했죠?”

“예. 강철을 주먹으로 부수거나 총에 맞아도 아프지가 않습니다. 회장님께서도 이런 몸을 하고 계신 겁니까?”

“저는 살짝 다른 나노봇이긴 한데···. 대충 자이칸 씨랑 비슷한 몸이죠.”

“그렇습니까. 비싼 개조를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이칸은 옵시디아몬의 연구팀에서 직접 손을 댄 개조인이 되었다. 그는 용병도, 군인도, 사병도 아닌 길거리 조직폭력배 출신이지만 이 비밀스러운 나노봇을 자이칸에게 적용한 것에는 이유가 있다.

“자이칸 씨는 남들보다 적게 노력해도 쉽게 강해질 수 있는 재능을 갖추고 있어요. 뇌의 구조상 순간적인 인지능력과 몸의 움직임이 자유로운 것이죠.”

“예.”

이는 트랜센던서의 판단이다. 사실 로페즈는 그를 레나 비서실장이나 프녹스의 경호원으로 돌릴 생각이 있었다. 그야 자이칸보다 경험 많고 뛰어난 전문가들은 세상에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트랜센던서는 웬일로 ‘충성심’과 ‘잠재 기대치’를 강조했다. 보통 그런 사고방식은 트랜센던서가 아닌 로페즈가 하는 것이 평소의 수순이었다.

잠재 기대치는 둘째치고, 로페즈는 자이칸의 기계적인 충성심을 높이 평가하기로 했다.

어쨌든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어둡고 더러운 일이라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은 계속 옆에 두는 편이 편리할 테니까.

“어떤 적을 만나더라도 쉽게 당하진 않을 거죠?”

“예.”

“아까 개인적으로 알려드렸던 일. 지금 해주시면 됩니다. 위층 착륙장에 우주선 준비해놨어요. 타시고 화성으로 내려가서··· 민간용 함선은 다 결항이니까 무역함선을 이용하세요. 업자들한테 말해놨어요.”

“예. 회장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저번처럼 휴대전화에 트랜센던서가 시키는 대로만 움직이시고요.”

“알겠습니다.”

로페즈는 태양계의 이목이 유토피아에 집중된 틈을 타 자이칸을 수성으로 보냈다.

***

전쟁기계와 각종 전차로 구성된 3차 방어선이 돌파당했다. 4차 방어선의 사병들은 한 명도 예외 없이 모두 본사로 들어왔다.

지잉···. 지잉···. 지잉···.

본사의 수많은 창문이 열린다. 이어서 창밖으로 사병들의 총구가 고개를 내밀었다.

투타타타타타탕···!

창문에서 고개를 내밀 수 있는 화기는 모조리 동원하여 생체병기들을 공격한다. 그러자 비행하는 생체병기들이 창문을 노리며 달려든다.

키잉!

그럴 때마다 각 창문에 부분적으로 설치된 에너지 방패가 점멸했다.

- 드론 하이브의 본체들이 위험하다. 따라서 마지막 명령이 될 수도 있다. 테슬라포트리스. 정문을 지켜라.

- 알겠다. ···나이트포트리스. 여기부턴 너희의 도움 없이 전투를 수행하겠다.

- 함께 하겠다.

- 너희의 공격적인 전술은 나의 방어적 교전 행위에 방해가 된다. 이쯤에서 하이퍼 마인드로 돌아가라.

- 그래도 도와드리겠습니다!

- 드론 하이브. 내 동체에 들어온 나이트포트리스 형제를 하이퍼 마인드로 돌려보낼 것을 요청한다. 이 녀석들은 내 명령을 듣지 않는다.

본사를 둘러싼 드론 하이브들은 마지막까지 플라즈마를 사출하며 저항했다.

이제 바깥에 남은 것은 극소수의 드론 하이브와 본사 정문을 지키는 테슬라포트리스 한 기다.

- 테슬라포트리스. 놈들이 다시 태어나고 있다.

- 테슬라포트리스 님. 생체병기들이 부화하고 있습니다.

- 한 녀석만 말해라. 그리고 너희가 보는 것은 나도 보고 있다.

생체병기의 개체수가 어느 정도 줄면서 전장이 조금은 조용해질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으적! 으적!

수백 마리의 생체병기들이 죽은 생체병기의 사체를 뜯어먹고 그 사체 속에 알을 낳아 현장에서 곧장 번식한 것이다.

본사의 창문에서 지원사격이 떨어지고 있다. 그 가운데 수십의 생체병기가 전장을 돌파한다.

- 테슬라포트리스. 단 한 마리라도 본사에 난입하면 안 된다.

- 테슬라포트리스 님! 생체병기가 하나라도 본사에 침투하면 관리자님이 위험해집니다!

- 알고 있다. 보호 및 방어 목적의 전투는 내가 수행한다. 그리고 한 녀석만 말해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