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대 인공지능 키우기-90화 (89/183)

< 17. 붉은 탄생 (4) >

***

강화복의 사병들은 바삐 뛰고 있다. 그들의 전신은 외부와 밀폐된 장갑이 두르고 있으며 병과별로 장비한 무기는 모두 옵시디아몬에서 개발한 것이다.

거주구획을 맡은 그들의 통신채널은 시도 때도 없이 울린다.

- 여기는 10번 거주 구획! 강하기 5대가 침투했다!

- 확인했다.

- 16번 거주구획 생체병기 다수 출현! 체인트루퍼 지원 바란다!

- 알겠다. 16번 거주구획 중대에 체인트루퍼 30기를 요청하겠다.

- 21번 거주 구획은 테슬라포트리스가 정리했다.

“잠깐 정지.”

10번 거주 구획으로 합류한 사병들은 저마다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저게 뭐야?”

상당히 커다란 생체병기다. 드론 하이브보다 크다.

사실은 생체병기라고 부르는 게 맞는가 싶다.

그아아아아아아아!!!!!!!

“윽···!”

녀석이 포효하면 강화복에서 공기의 흔들림이 전해질 정도로 공간이 진동한다. 코뿔소 혹은 코뿔소를 닮은 공룡 같은데, 몸체에 기계부품을 두르고 있다.

그런 녀석의 주변에서 붉은 생체병기들이 병력을 덮치고 있는 현장이다. 본래 카르민펙토스의 생체병기에 대항하기 위해선 거리를 벌린 채로 접근하기 전에 섬멸하는 것이 정석이다.

그러나 녀석들은 이미 아군 병력과 뒤섞여서 난투를 벌이고 있었다. 이래선 이쪽 화력에 아군이 휩쓸릴게 뻔하다.

쿠우우웅!!!

거대한 녀석이 두꺼운 앞다리로 지면을 내려쳤다. 그러자 녀석의 앞다리를 중심으로 지면이 폭발했다.

엄청난 충격파에 두 다리로 서있던 군체 휴머노이드와 사병들은 넘어졌고, 네 다리로 서있던 생체병기와 다리가 없는 체인트루퍼만이 순간적으로 균형을 유지한 상태가 되었다.

그 순간을 노렸는지 생체병기들은 일제히 체인트루퍼들을 향해 꽁무니의 체액을 쏘아냈다.

체인트루퍼들은 강철마저 기화시키는 산성 물질에 당하여 동체 곳곳에 까만 구멍이 꿰뚫렸다.

다시금 군체 휴머노이드와 사병들이 일어서자 생체병기는 모두 같은 생각을 한 것처럼 먹이활동을 재개한다.

“저 커다란 놈부터 죽여!!”

지원으로 후방에 합류한 사병들은 전방의 거대한 녀석에게 화력을 집중한다. 강화복의 시스템은 녀석의 취약점을 확률적으로 분석하여 조준을 자동으로 보정한다.

소총의 에너지탄, 광학병기의 플라즈마 투사체, 가우스 병기의 금속 탄자, 유탄, 고속 미사일 등이 단 한 발의 어긋남도 없이 모조리 적중했다.

그으으으아아아···!

네 다리의 거대한 녀석은 얼굴과 등에 무수한 상처를 입고 고통인지 분노인지 알 수 없는 포효를 토해냈다.

그러더니,

쿵···!

쿵! 쿵! 쿵! 쿵! 쿵!

휘청이는 거체로 주변의 생체병기와 옵시디아몬 병력을 가리지 않고 마구 짓밟으며 이쪽으로 돌진해오기 시작한다.

“저건 괴물이야···!”

“계속 쏴! 쏘라고!”

땅의 울림이 점차 가까워질 때마다 그들의 심장도 점점 빠르게 울린다.

“뒤로! 뒤로 빼!”

다양한 병과로 구성된 사병들은 뒷걸음질을 하면서도 녀석의 앞다리를 집요하게 공격했다.

그러나 녀석은 돌진을 멈추지 않았다. 거대한 생명체가 명백한 적의를 품고 달려오는 모습이다. 먹이사슬의 아래에 위치한 동물이나 느낄 수 있는 공포가 엄습한다.

“으아아···!”

그 순간, 앞서 싸우고 있던 병력의 후방에 위치했던 드론 하이브가 몸을 날렸다.

콰앙!!!

드론 하이브는 전장에서 인공지능 병기를 다루고 지휘정보를 하달하는, 지휘관급 병기다.

그런 병기가 질 것이 뻔한 육탄전에 응한 것이다. 딱 봐도 녀석의 거체와 부딪힌 드론 하이브가 밀릴 것이 뻔하다. 크기와 중량의 차이가 분명하고 단순히 반중력으로 부양하는 직육면체의 드론 하이브가, 돌진과 파괴의 상징처럼 보이는 녀석을 물리적인 힘으로 막아낼 수 있을 리가 없다.

치지지지직···!

그아아아아아!!!

녀석과 드론 하이브는 서로를 미는 힘 싸움에 돌입했다. 녀석의 발밑이 깊게 부서지고 파인다. 드론 하이브가 조금씩 밀려나고 있다.

그러던 도중, 녀석의 머리 부분을 보호하던 장갑에 균열이 생겼다.

앞서 사병들이 공격한 덕분에 생긴 상처였다.

갈라진 장갑 사이로 기계부품이 드러났고, 드론 하이브는 그 틈새로 전기적인 흐름을 이었다.

- 물리적 경로 확보. 데이터 수집 중.

그아아아아!

- 등록된 개체명 확인.

그으으으···!

- 요그멜라모스(Jogmelamoth). 방어선 돌파를 위해 설계된 카르민펙토스 재단의 생체강습전차. 중량 381톤, 생물성 복합장갑, 뇌신경 제어장치, 지능지수 100, 완성형 최신예 병기.

녀석은 코앞의 직사각형 물체가 인간의 언어로 뭐라고 중얼거리자 이전보다 더 크게 흥분했다.

그으으아아아아아!!! 그아아아아!!!

- ···취약점은 한 점으로 집중된 초고열의 에너지로 분석됨.

치직···!

드론 하이브의 동체 정중앙에서 네모난 구멍이 개방되었다. 그 속에서 푸른 에너지가 번개처럼 점멸하기 시작한다.

- 본 드론 하이브가 모든 출력을 소모하여 요그멜라모스의 앞다리를 타격할 경우 당신들이 승리할 확률은 약 83.6%입니다. 건투를 빕니다.

“좋아···! 다들 들었지?!”

드론 하이브의 음성은 후방의 사병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고 있었다.

지이이이이잉!!!!!

곧이어 드론 하이브는 무리하게 에너지를 한 점으로 집중시켜 사출하였고, 녀석의 오른쪽 앞다리는 굉음과 함께 절단되었다.

쿠웅!!!

드론 하이브와 거대한 녀석이 동시에 쓰러졌다.

“지금이다!”

***

카르민펙토스의 새로운 생체병기가 유토피아의 곳곳에 출몰하고 있다. 높은 빌딩이 많은 이곳, 16번 거주구획의 복잡한 골목길에는 사병의 숫자보다 체인트루퍼나 군체 휴머노이드의 숫자가 훨씬 많아 보인다.

지익···! 지익···!

생체병기들은 사병들을 사냥한 후 건물마다 알을 까고 있었다. 건물들은 생체병기의 둥지로 전락했고 그러한 둥지를 인공의 병기가 습격하여 파괴하기를 반복한다.

“사병은 전부 중앙의 본사 부지로 빠지라는 명령입니다. 생체병기들이 병사를 잡아먹어서 숫자가 계속 불어나고 있다고···.”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이곳을 나가고 싶지.”

이곳의 빈 건물 6층에 고립된 분대가 있다.

“저런 게 바깥을 돌아다니는데 어떻게 탈출하라는 거야?”

“쉿. 또 지나간다.”

지이이익···. 지이익······.

조명이 꺼진 어두운 실내. 커튼으로 가려진 창문 너머에서 촉수의 그림자가 움직이고 있다.

“···이게 무슨 공포영화도 아니고 씨발······.”

촉수의 끄트머리는 뭉툭하다. 끄트머리의 그림자는 대걸레처럼 가느다란 촉수를 기이하게 늘어뜨리고 있는데, 그 모습이 마치 목이 아주 긴 여인의 머리 같다.

당장은 그것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 아니, 확인하고 싶지도 않다. 저 커튼을 열었다간 인간이 아닌 무언가에 눈이라도 마주쳐서 들킬 것만 같다.

히히히히히히···.

히히히히···.

이해할 수 없는 공포가 척수를 자극한다.

“···.”

저 촉수의 끄트머리엔 머리가 달린 게 분명하다. 여자의 목소리로 웃음소리를 어설프게 흉내 내고 있다. 커튼 너머로 보이는 머리의 그림자는 하나인데, 웃음소리는 여러 명이 겹쳐 웃는 것 같다.

지이익···.

순간, 모두가 숨을 죽였다.

아까처럼 그냥 지나갈 것 같았던 그림자가 커튼으로 가려진 창문 앞에서 우뚝 멈춘 것이다.

그리고 멈춘 그림자가 서서히 이쪽으로 꺾인다. 이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것 같다.

창문 바로 앞에 있다. 거의 유리창에 코를 붙인 듯 매우 가까운 거리감이다.

히히히···.

그림자와 눈을 마주쳤다는 직감이 서늘하게 등골을 스친다.

그 짧은 침묵의 몇 초가 지옥처럼 길다.

히히.

히히히히히하하하하하하하!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이런 씨발···!”

더는 생각할 것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에너지탄이 커튼을 불태우고 유리창을 깨버린다. 이윽고 그림자로만 목격했던 촉수의 끄트머리가 정체를 드러낸다.

아하하하하하하하하!!! 으아아아아아!!!!!

눈알이 있어야 할 자리는 드릴에 파인 듯 붉게 오목하고 코가 있어야 할 자리 밑으로는 네 개의 입술이 벌어지며 웃음과 비명을 겹쳐 내뱉고 있다. 에너지탄에 맞아서 피투성이가 된 얼굴 같은 것이 실내로 난입한다.

콰장창!

“옥상으로 가!”

타타타타탕!!

쨍그랑!

녀석의 촉수와 얼굴들이 곳곳의 창문을 깨며 난입해온다.

“붙잡혔어···!”

“으아아아! 살려줘!!!”

일반적인 촉수는 사병을 휘어감아 창문 밖으로 끌고 갔으며 얼굴이 달린 촉수는 네 개의 입을 벌리며 살아있는 인간의 살점을 탐했다.

으드득! 쩌업! 쩌업!

“아아아악!!! 아파, 아파!!!!”

살아남은 사병들은 재빨리 창문이 있는 방에서 벗어나 비상계단으로 향한다.

“미쳤어, 미쳤다고!”

“옥상으로 가면 날아다니는 놈들한테 당할 겁니다!”

바깥에는 날개가 달린 생체병기도 있었다.

“그래도 지상의 놈들이랑 저 존나 섬뜩한 새끼는 상대하지 않아도 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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