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 붉은 탄생 (3) >
***
- 확인 결과, 그들은 카르민펙토스 재단입니다.
계속 외부의 위협에 신경 쓰고 있던 탓일까. 로페즈는 동요하지 않았다.
“남은 시간 26분?”
- 그렇습니다.
“콜로니에 있는 민간인, 비전투 인원들 전부 화성으로 대피시켜.”
- 알겠습니다.
“샌디 씨도 대피하세요. 여기 있는 인공지능들은 화성 서버로 백업할게요.”
“네? 갑자기요?”
“설명할 시간 없습니다. 빨리요.”
샌디는 몇 번 멈칫하더니 연구소 건물을 나갔다. 혼자 남은 로페즈는 상황부터 읽어나간다.
“카르민펙토스 재단은 전에 붉은 항성에서 라 코만데와 함께 해치웠어. 그 재단의 규모가 사실은 더 컸다는 거야?”
- 그렇게 판단됩니다.
“재단장이라는 사람도 죽었는데. 2대 우두머리가 탄생한 건가. 사실 그곳이 본진은 아니었다는 말이고.”
- 그렇게 판단됩니다.
“우리의 본대를 프로키온에 보내놨는데, 이건 우연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타이밍이야. 카르민펙토스 재단이 뉴소사이어티와 어느 정도는 관련이 있을 수 있어.”
- 카르민펙토스 재단은 이전, 장로회의 지시를 받은 가이우스의 지시에 따라 관리자님이 라 코만데와 함께 상대한 세력입니다.
알고 있는 것은 딱 그 정도다. 장로회가 카르민펙토스 재단 제거를 지시했다는 것. 이를 가이우스가 받아들여 로페즈의 선각자 자질을 테스트했다는 것.
뉴소사이어티와 카르민펙토스 재단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을 수 있으나, 지금으로선 거기까지 파헤칠 여력이 없다.
“이곳을 좌표로 찍고 가속 중이라면 목적은 화성이거나 옵시디아몬이거나 나 자신이야.”
- 세 가지 경우 중 두 가지가 유력합니다.
“화성은 걔들이랑 상관없지. 그래.”
- 그들의 목적은 관리자님, 옵시디아몬이라고 가정하는 것이 적합합니다.
“이유는 복수심인가.”
- 그들이 인간 집단이라면 복수심이라는 이유도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복수심이 이유라면 토성의 라 코만데도 노려야지. 그들 중 일부 함대는 토성으로 좌표를 찍는 게 맞아.”
- 그렇습니다.
생각해야 한다. 생각해야 한다.
로페즈는 눈을 부릅떴다.
“···정보.”
- 어떤 정보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카르민펙토스 재단이 정보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 라 코만데의 주력함대가 완전히 궤멸되었다는 것을 걔들이 알고 있다면 남은 목표는 옵시디아몬뿐이야.”
정말로 인포시어 함대가 당했다면 그럴 수 있다.
- 라 코만데의 인포시어 함대가 당했다면, 그것은 최소 41시간 전 프로키온 항성계에서 벌어졌을 사건입니다. 만약 카르민펙토스 재단이 해당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관리자님의 가정이 사실이라면···
“뉴소사이어티가 걔들과 편을 먹은 거야. 아니면 예전부터 한패였거나.”
- 그렇습니다. 동기 또한 분명합니다. 카르민펙토스 재단의 입장에서, 옵시디아몬의 무인 기계화 병기는 그들의 생체병기 유통 및 수요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습니다.
“뉴소사이어티가 오리온과학수호협회, 크라켄 용병단, 카르민펙토스 재단을 뒤에서 조종했어. 옵시디아몬의 팔다리를 자르려고.”
- 가장 가능성 있는 추론입니다.
“옵시디아몬의 팔다리를 자르려는 이유는, 그놈들의 신념을 이행하는데 내 존재가 방해되기 때문이야. 이게 결론이다.”
정리가 되었다.
이것도 뉴소사이어티의 짓이다.
- 현재까지 콜로니 인구의 23%가 화성으로 대피했습니다. 레나 비서실장을 통해 정부의 디렉텀에 경고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카르민펙토스 재단의 침공까지는 22분 남았습니다.
“22분 안에 132만 명을 무사히 대피시킬 수 있겠어?”
- 모든 우주선을 동원하여 22분 안에 85만 명을 대피시킬 수 있습니다.
“부족해. 방법을 찾아.”
- ···화이트홀과 오비탈플래닛의 함선을 빌리면 22분 안에 129만 명을 대피시킬 수 있습니다.
“옵시디아몬의 무장 함선까지 쓰면?”
- 관리자님. 현재 프로키온으로 세 척을 보낸 상태입니다. 화성에 남은 옵시디아몬의 무장 함선은 한 척이 전부입니다. 이는 관리자님이 조종할 수 있는 유일한 우주 방어 수단입니다.
“우주는 화성 정규군이 최대한 사수할 거야. 콜로니에 적들이 침투해도 상관없어. 함선에 적재된 병력 및 병기는 전부 이쪽 콜로니에 들여보내. 함선에 남은 공간에는 민간인들 태우고.”
- 그렇게 한다면 22분 안에 132만 명을 무사히 대피시킬 수 있습니다.
로페즈는 트랜센던서의 확답을 듣고 옵시디아몬 본사의 1층 로비로 들어왔다. 사원들이 바삐 대피하는 중이다.
“회장님! 대피 안 하세요?”
“챙길 것이 있어서요. 먼저들 내려가세요. 뒤따라 갈게요.”
로페즈는 250층 타워의 235층. 회장실로 올라와 앉았다. 극강의 방어 시스템으로 콜로니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안전한 방법은 그냥 화성으로 대피하는 것이다.
- ···관리자님.
“여기가 내 자리야.”
- 그것은 매우 비이성적이며, 불합리적이며, 비효율적이며, 극도로 위험한 판단입니다.
“카르민펙토스 재단이 날 노릴 가능성이 있어. 맞지?”
- 그렇습니다.
“라 코만데에 이어서 우리의 콜로니. 엄청난 돈을 쏟아붓고 공들여 만든 이 유토피아. 이건 옵시디아몬의 팔다리라고 보는 게 맞겠지.”
- ···그렇습니다.
“하지만 단번에 머리를 노릴 가능성도 없는 건 아니야.”
머리는 로페즈다. 팔다리는 라 코만데나 유토피아 같은 주변의 것들이고.
“집요하게 나를 노릴 수도 있다고. 무엇보다 우리는 뉴소사이어티가 카르민펙토스 재단에 어떤 입김을 불어넣었는지 모르는 상태야.”
- 그렇다고 해서 관리자님이 이곳에 머무를 필요는 없습니다.
“그놈들의 생체병기는 끔찍했어.”
- 진심입니까? 관리자님이 목표일 가능성을 염려하여 화성에 내려가기를 거부하시는 것입니까?
“그것들이 110억 인구의 화성에 내려가서 먹이활동을 하며 번식한다고 생각해봐.”
- ···.
그때 보았던 카르민펙토스의 생체병기는 시설에서 풀려난 지 몇 시간도 안 돼서 인간들을 사냥하고 엄청난 숫자로 번식했다.
“화성은 옵시디아몬의 고객층이 밀집된 행성이고 나의 주요 인맥들이 살아가는 나라야. 너의 백업 데이터가 있는 네트워크 허브이기도 하지.”
- 이해할 수 없···
“그것들이 화성에 내려가면 화성 정규군은 우주보다 행성을 지키기에 바빠질 거야. 전력이 그렇게 분산되면 이 비싼 콜로니가 정규군의 도움을 받기에도 어려워지겠지. 그러니까 최악의 상황이 되지 않도록, 나는 여기에 있는 게 맞아.”
- ···최악의 상황은 관리자님의 사망입니다.
“그건 너의 관점이고. 그래도 무슨 뜻인지 이해는 했지? 내 판단이 아주 틀렸으면 확실히 틀렸다고 말해.”
- 다소 필요 이상의 위험성을 감당하는 선택이긴 합니다. 관리자님은 관리자님의 재산이나 사람보다 관리자님 자신의 목숨을 더 우선시해야 합니다.
로페즈는 그보다 멀리 보았다. 더 멀리 생각했다.
“화성에 있는 것들을 잃어버리면, 이 콜로니를 잃어버리면 뉴소사이어티를 잡을 힘이 없어지잖아. 적들이 있는 상태에서 본진이 밀리면 어차피 끝장이야.”
- 대응에 성공하면 뉴소사이어티를 노리실 계획입니까?
“계속 바빴으니까. 장로회라는 것도 신경 쓰였고···. 뉴소사이어티는 전쟁 끝나고 조용하길래 내버려 뒀는데, 이러면 안 되지.”
그는 서랍에서 에너지 권총을 한 정 꺼내어 책상 위에 올렸다.
“걔들이 했다는 걸 알았고, 걔들이 이딴 식으로 나오는 걸 알았는데. 병신처럼 처맞고 있을 수만은 없는 거잖아.”
- 어떻게 하실 계획입니까?
로페즈는 콜로니로 옵시디아몬 군세가 들어오는 것을 확인한다.
“그 광신도 새끼들을 일망타진할 거야.”
***
- 국민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타국의 침공 행위는 아닙니다. 전쟁은 재발하지 않을 것입니다.
로페즈의 경고를 전해 들은 베르도 행성대통령은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 이것은 자국을 향한 대규모 테러 행위에 대한 방어입니다. 우리의 국방부는 함대에 새로이 실드 기술을 탑재하였으며, 21개 함단급의 적들은 화성의 궤도에서 철저히 저지할 것입니다.
화성은 하나의 국가다. 그러니 고작 21척의 카르민펙토스 함대가 화성의 함대 군사력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는 수준은 아니리라.
옵시디아몬의 콜로니, 유토피아 근방에 45척의 화성 함대가 집결했다. 카르민펙토스 함대가 가속해오고 있는 방향은 명확하게 파악되었다.
머지않아 화성의 기함은 카르민펙토스 함대를 확인할 수 있었다.
- 경고한다. 그 이상 접근할 경우 자국을 향한 적대적 행위로 간주하여 교전에 응할 것이다.
그러나 예상대로 카르민펙토스 함대는 경고를 무시했다. 그들은 경로를 바꾸지 않고 화성 함대의 사정거리까지 들어왔다.
투투투투퉁!!!
화성 함대는 선제공격에 나선다. 45척의 함선과 함선급 기체 및 수백의 함재기들이 가공할 만한 위력으로 우주를 밝힌다. 발사된 투사체들의 숫자가 주변에 보이는 별들의 숫자보다 많을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