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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인공지능 키우기-88화 (183/183)

< 17. 붉은 탄생 (2) >

***

바빌로니아 표면에 추락한 인포시어의 내부에서는 교전이 발생하고 있다.

쩌엉!

서펜트의 최소분자 채찍이 군체 휴머노이드를 단번에 갈랐다.

“하하, 씨발···!”

인포시어로 난입해오는 병기들이 곳곳에서 크라켄 용병단을 습격하고 있다. 병기들은 교묘하게도 서펜트를 고립시키는 방향에서 자꾸만 출몰한다.

카카캉···! 키이이이잉!

또 이상한 것들이 굴러온다. 총을 쏴도 멈추지 않고 차단문을 닫아도 문을 가르며 돌진해오는 병기들이다.

퉁···!

서펜트는 굴러오는 병기들을 향해 플라즈마 수류탄을 내던졌다.

카캉!

두 쌍의 플라즈마 커터가 회전하며 공중의 수류탄을 정확히 갈랐다. 서펜트는 그 순간을 노려서 채찍을 휘둘렀고 그 채찍은 두 쌍의 플라즈마 커터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노렸다.

쩌어엉!

굴러오는 병기들을 가까스로 제압한 그는 한숨을 돌린다.

“하아···. 후우···.”

그러자 그의 배후에서 곤충 크기의 초소형 드론들이 쏜살같이 날아들었다.

파캉! 파캉!

그는 경이로운 반응속도로 휙 돌면서 산탄 권총을 격발했다. 자그마한 비행 드론들은 흩뿌려진 산탄에 적중하여 짧은 불꽃을 일으켰다.

파지직···! 지직···!

“아무도 없냐? 다 뒈졌어?!”

서펜트는 바닥에 떨어진 비행 드론들을 신경질적으로 밟아부쉈다.

“나 좀 도와달라고 씨발! 고립됐어! 이 함선에 있던 기계들도 갑자기 작동하고 있다고!”

크라켄 용병단의 통신 채널에는 공허한 적막만이 흘렀다. 이어서 그의 외침에 인공의 것들이 답해온다.

키잉! 키잉! 키잉!

또 휴머노이드다. 벌써 이쪽으로 에너지 소총을 겨누고 있다.

파파파파팡!

그는 손바닥을 펼쳐 일시적인 에너지 방패를 전개한다.

“이것들이 내 위치를 매번 파악하고 있다고!”

서펜트의 전투복이 자동으로 스텔스 모드를 지원했지만 소용없었다. 상대의 기계들은 끊임없이 몰려오며 그를 집요하게 노리고 있다.

“으으으으아아!!!”

서펜트는 도망치기를 포기했다. 그대로 에너지 방패를 펼친 채 휴머노이드 무리를 향해 돌진한다. 칼날이 닿는 근접한 거리에서 이전처럼 최소분자 커터를 뽑아든다.

근접전을 강제하는 것이다. 총알도 없고 도망칠 체력도 없고 애초에 도망치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대들이다. 일단 빠르게 정리한 후 동료 용병들과 합류하는 것이 살 길이다.

“용병. 투항하라.”

“싫다고 이 금속 새끼들아!”

근접전은 서펜트의 특기다. 지금까지 인포시어 내부를 뛰어다니며 근접전으로 해치운 기계들만 수십 기는 될 것이다.

쩌엉! 쩌엉!

휴머노이드 무리는 서펜트의 커터에 당하면서도 에너지 소총을 격발하거나 소총의 개머리판으로 대응했다. 그럴 때마다 서펜트는 휴머노이드 무리 속으로 더 깊숙이 파고들어 민첩하게 움직였다.

쩌엉!

날아드는 개머리판을 쳐내고 휴머노이드의 팔다리를 커터로 자른다. 총구를 갈라버리고 무기를 잃은 휴머노이드를 발로 차서 멀찍이 밀쳐낸다. 산탄 권총으로 휴머노이드의 관절부를 노려 격발한다.

그렇게 휴머노이드 무리를 하나씩 쓰러뜨리던 순간이었다.

퍼억!

“어윽···!”

숫자나 화력에서 차이는 있어도 서펜트가 실력에서 밀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것이 유일한 이점이었는데 방금 그러한 이점조차 부서졌다.

“너의 교전 패턴은 분석이 완료되었다. 투항하라.”

“좆까!”

배후에서 머리를 강타한 휴머노이드를 커터로 베었다. 다시 몸을 휙 돌리며 앞에 있는 무리를 향해 플라즈마 수류탄을 던지고 자신은 그 방향으로 에너지 방패를 전개한다.

콰직···!

아까 그 곤충 같은 비행체가 날아들어 허공에서 떨어지는 도중의 플라즈마 수류탄을 쳐냈다.

그 수류탄은 역으로 서펜트의 머리 위로 날아들었다. 결국 그는 반사적으로 에너지 방패를 위로 전개할 수밖에 없었다.

콰아앙!!!

머리 위의 폭발은 그의 전신에 엄청난 충격을 내리꽂았다.

“으으윽···!”

그는 곧장 무너졌던 자세를 바로잡으려 했으나,

퍼억!

플라즈마 수류탄의 폭발에 전면이 파괴된 휴머노이드 무리가 좀비처럼 달려들었다.

퍼억! 퍼억!

휴머노이드들은 개머리판으로 서펜트의 팔다리 관절부를 집요하게 강타했다.

“아악···! 으아아아!”

퍼억! 퍼억!

“투항하라.”

“저리 꺼져! 씨발···!”

끝도 없이 때려댄다. 사방으로 몰려들어서 개머리판으로 온몸을 구타하고 있다.

“아아악!!!”

“투항하라!”

“아파! 아파! 개머리판 씨발, 아프다고!!!”

그는 바닥에 엎어져서도 몸부림친다. 그러나 커터는 부러졌고 산탄 권총을 기계의 다리들 사이에 멀찍이 떨어져 있다.

퍼억! 퍼억! 퍼억!

뚜둑···!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기계들의 무자비한 폭력은 그의 팔다리뼈가 산산이 분쇄될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

엑스턴은 옵시디아몬 주력함에서 보고를 듣는다.

“바빌로니아 시설을 점령했습니다. 인포시어의 라 코만데 사병들은 전원 몰살되었습니다.”

“잔인한 놈들이군.”

“바빌로니아 시설에는 생존자들이 있었습니다. 현재 구조 작업을 속행하는 중입니다.”

“중요한 건 정보야. 포로는 있었나?”

“크라켄 용병단은 끝까지 저항했지만 제압되었고, 과정에서 여섯 명을 포로로 잡았습니다.”

“그중에 말단이 아닌 놈이 하나는 있어야 할 텐데.”

“예. 용병단 하부 무리의 간부급인 포로가 한 명 있었습니다. 현재 바빌로니아 시설에 가둬놨습니다. 바로 심문하시겠습니까?”

“연결하게.”

***

서펜트는 팬티만 입혀진 채 철제 의자에 묶여서 죽은 듯 고개를 떨구고 있다. 곧 그의 앞으로 군체 휴머노이드 한 기가 다가가 주사를 놓았다.

휴머노이드는 어느 사병의 목소리를 출력했다.

“자백제다. 화이트홀 그룹에서 만든 진실의 약물이지.”

“어으으···. 뭐야···.”

서펜트는 과음이라도 한 사람처럼 엉거주춤하게 고개를 쳐들었다. 그의 눈동자는 초점을 잃어버렸다.

“기계···. 금속만 앞세워서 싸우는··· 겁쟁이 새끼들아···.”

“너의 소속은 크라켄 용병단. 이름은 뭐지?”

“아···. 으···. 개새끼야···.”

“네 이름이 개새끼라고? 대단하군.”

“아니, 아니야···. 나 이름···. 없어···.”

“그래도 널 부르는 호칭이 있겠지. 번호가 되었든. 별명이 되었든.”

“서펜트···.”

“그래. 서펜트. 너희 용병단은 의뢰를 받았어. 떠돌이 플래닛 웨폰이 건설되고 있는 이 바빌로니아 왜소행성을 점령하는 것이지. 맞나?”

“아니야···. 점령하고···. 점령하고 방어하는 거야···.”

“방어? 무엇으로부터, 언제까지?”

“아으······.”

콰앙!

휴머노이드는 서펜트의 뺨을 강타했다. 바닥으로 그의 부서진 이빨이 몇 조각인가 떨어진다.

“때리지 마! 나 좀 그만 때려 제발···!”

“대답해라.”

“화, 화성······! 사설군수업체···? 라 코만데···. 1개 함단급 놈들이 올 거라고···. 지휘주력함만 빼앗으면 이긴다고···. 작전을 짰습니다···.”

“그 정보는 누가 알려줬지?”

“의뢰주···. 협회··· 오, 오리온화학방어···”

“오리온과학수호협회.”

“걔들이 막, 태양계 이웃 항성에 플래닛 웨폰은 잠재적 위협이라고···. 의뢰하고···. 돈은 뉴소사이어티가 대줬는데···. 무슨, 평화를 원하는 종교단체라고···.”

“뉴소사이어티? 목적과 구성원은?”

“그, 그놈들 다 금성 사람이래···. 다른 건 나도 몰라···. 씨, 씨발, 개새끼들···. 3개 함단급이 또 온다는 말은 없었으면서···.”

“의뢰주가 라 코만데의 정보는 줬으면서, 옵시디아몬 함대가 올 것이라는 정보는 알려주지 않았나?”

“옵시디아··· 뭐···? 그게 뭔데···. 그 기계들이 거기···. 용병단···? 겁쟁이 새끼들, 금속만 앞세워서 싸우는···. 어으으···.”

같은 순간, 심문 장면을 주시하던 엑스턴은 마음이 초조해졌다.

“오리온과학수호협회가 이중으로 의뢰했다는 말인가. 크라켄 용병단이랑 옵시디아몬에···.”

“옵시디아몬이 라 코만데를 보낼 것이라는 건 예상했지만 옵시디아몬 본대가 찾아오리라곤 생각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엑스턴은 로페즈와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라 코만데를 제거하기 위한 함정이었군. 뉴소사이어티라는 금성 놈들이 오리온과학수호협회의 뒤에서 옵시디아몬을 음해한 것이네.”

“어떻게 금성에 사는 놈들이 저희에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나야 모르지. 미친놈들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사령관님. 기술 회수가 끝났습니다. 바빌로니아 생존자들도 모두 구조했습니다.”

“라 코만데의 생존자는 정말 단 한 명도 없나?”

“예···. 아무도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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