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 전쟁은 끝났으나 (4) >
***
프로키온 항성계는 태양과 비슷한 크기의 황색 주계열성과 화성과 비슷한 크기의 백색왜성으로 이루어진 쌍성계다.
태양계와 거리는 약 11광년으로 굉장히 가까운 별이지만 자원을 얻을 행성이나 소행성 구름이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2년 전에 프로키온 항성계 근처를 지나던 떠돌이 왜소행성이 중력에 붙잡혀 프로키온 항성계를 공전하게 되었다.
이곳의 바빌로니아 왜소행성은 달보다 조금 작은 크기이며 매우 풍부한 베릴륨 매장량을 자랑한다. 왜소행성을 이루는 질량의 30% 이상을 베릴륨이 채우고 있는 것이다.
“여기는 서펜트. 침투 완료했다.”
바빌로니아의 표면은 대부분 신소재 합금이 뒤덮고 있다. 그리고 바빌로니아 표면의 중심에는 38.5㎞ 높이의 초거대 포신이 건설되는 중이다. 때문에 바빌로니아 왜소행성을 우주에서 얼핏 보면 머리가 큰 막대사탕처럼 생겼다.
이곳의 얕은 지하로 침투한 용병들은 제어실의 차단문 앞에 점착 폭탄을 설치한다.
콰앙!
엄청난 굉음과 함께 차단문이 뚫렸다. 그 즉시 제어실 안으로 돌입한 용병들은 비무장 상태의 인원들에게 총알을 퍼부었다.
타타타타탕!
“으아악···!”
“끄윽···.”
용병 무리는 미리 약속이라도 한 듯 기민하게 움직였다. 제어실의 모든 인원을 사살하고 차단문 밖을 경계한다.
그러는 사이에 이들의 리더인 서펜트는 테이블 컴퓨터에 자신의 손목을 붙였다.
치이이익!!
가벼운 전투복을 입은 그의 손목에서 레이저가 나와 테이블의 표면을 뚫었다. 이어서 뚫린 구멍으로 홀로그램이 몇 차례 점멸하며 복잡한 코드를 출력한다.
“지대공 분열포 제압했다.”
동시에 시설 전체로 기계적인 목소리의 경고음이 퍼진다.
- 바빌로니아 방공 시스템이 해제되었습니다. 바빌로니아 방공 시스템이 해제되었습니다. 별도 제어가 없을 경우 600초 후 방공 시스템이 정상 가동됩니다.
곧이어 바빌로니아의 중력권에 세 척의 함선이 접근했다. 각 함선에는 문어발이 나선 은하처럼 돌고 있는 표식이 새겨져있다.
「크라켄 용병단」
그들은 인류의 영역 바깥에서 활동하는 우주해적들이다. 평소에는 외진 곳의 자원 플랜트나 채굴함 등을 습격하다가 따로 의뢰가 들어오면 용병 활동을 재개하는 것이다.
방공 시스템이 600초간 정지한 바빌로니아는 크라켄 함대가 표면에 상륙할 때까지 아무런 저항도 할 수가 없었다.
함대에서 표면으로 상륙한 소형 전쟁기계 무리는 네 다리가 달린 개처럼 생겼다. 크라켄의 사냥개들이다.
치지지지직!!!
크라켄의 사냥개들은 행성 표면의 신소재 합금 문을 고열의 레이저 커터로 자른 후 시설 내부까지 침투했다.
사냥개들이 들어온 직후 잘렸던 문이 자동으로 폐쇄된다.
“들어왔다!”
“쏴!”
바빌로니아 시설 내부의 경비병들은 사냥개들에게 분열 소총을 쏘아대며 저항했다. 극단적으로 소형화된 베릴륨 기반의 핵분열 카트리지는 그들의 소총이 뿜어대는 에너지가 표적을 분자 단위로 분해할 수 있게 해주었다.
촤아아아아아!!!
경비병들이 주홍빛의 에너지를 물총 뿌리듯 발사함과 동시에 사냥개들도 주둥이를 벌리고 총알을 쏟아냈다.
사냥개들의 총알은 전자기력으로 연속 사출되는 가우스 병기였다.
카앙! 카앙!
금속 탄자에 맞은 경비 병력들은 전신 전투복을 입었음에도 사지가 떨어져 나갔다.
촤아아아···! 파지직!
사냥개들 역시 그들의 분열 소총에 맞아서 녹아내린 절단면을 내놓았다.
치직! 치지직······!
- F동도 뚫렸다! 지원 바란다!
“씨발···. 함선이 세 척이나 왔다는데 그냥 항복해야 하는 거 아니야?”
“가자.”
가까스로 사냥개들을 처치한 경비병 네 명이 다음 장소로 이동하려던 찰나,
푸욱···!
“어어···! 으···.”
그들 중 한 명의 가슴 앞으로 칼날이 돌출되었다. 전투복을 가볍게 뚫은 것을 보니 최소분자로 연마한 커터가 분명하다.
“뭐야!”
한 명이 쓰러짐과 동시에 남은 세 명이 뒤를 돌아보며 총을 겨눈다. 상대는 가벼운 전투복, 조금 긴 커터, 산탄 권총으로 무장한 용병이었다.
그들이 상대가 한 명이라는 것을 인지한 순간, 그들 앞에 접근한 서펜트는 산탄 권총을 내질러 격발했다.
파캉!
1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서 격발된 산탄 권총은 최소분자로 연마된 표창 같은 산탄을 흩뿌렸다. 그 산탄은 한 사람의 상반신을 뚫어내며 등 뒤로 혈액을 사출했다.
남은 둘은 거의 동시에 총구를 돌려서 방아쇠를 당겼다. 하지만 그들이 방아쇠를 당기기 직전, 서펜트는 오른손의 커터로 오른쪽 인원의 머리를 베고 산탄 권총을 버린 왼손으로 왼쪽 인원의 총구를 쳐냈다.
타탁!
잘린 머리가 피를 회오리치며 뿌리는 와중에 마지막 인원의 분열 소총은 애꿎은 벽을 쏘았다. 이어서 서펜트는 오른손의 커터를 재빨리 휘둘렀다.
쩌어억···.
마지막 경비원은 양팔을 잃고 쓰러졌다.
“끄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윽···!”
서펜트는 쓰러진 그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절단된 인체의 일부가 내부의 것을 쏟아내며 빨갛게 퍼지고 있다.
“내 손···! 아아아아!!! 아아아···!”
서펜트는 그의 헬멧을 커터로 뜯어냈다.
“뭐하는 짓이야···! 뭐하는 짓이냐고!!!”
“하아···. 하아···.”
서펜트는 정상이 아닌 사람처럼 호흡하고 있다.
“이 좆같은 용병 새끼들! 누가 보냈어?! 누가 보냈···! 읍···! 으읍···!”
서펜트는 그대로 경비병의 입을 틀어막았다. 입뿐만 아니라 콧구멍까지 온 힘을 다해 틀어막고 기다린다.
“읍···! 으으읍!!!!”
두 팔을 잃은 경비병이 발버둥 쳐봤자 소용없다. 이대로 내리눌러서 그의 눈동자를 주시한다.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동공, 이마와 목으로 드러나는 팽창된 혈관, 점점 빨갛게 변하는 안면, 점차 거세지는 몸부림.
“으읍···! 으읍···! 으으읍! 읍···!!!”
“좀만 더···.”
조금씩 흐릿해지는 그의 시선. 그가 몸부림칠 때마다 그의 양팔 절단면에서 혈액이 흩뿌려진다.
“으읍···! 읍······!”
“좀만 더 살아줘···.”
“읍·········.”
그의 가슴 위쪽에 손을 대면 느껴지는 심장의 고동이 빠르게 뛴다. 빠르게 뛰다가 점차 약해진다. 이미 그의 동공은 초점을 잃었다. 눈꺼풀이 반쯤 내려가서 졸린 사람처럼 보인다.
이제 미동도 없다.
벌써 끝난 것이다.
“······하. 씨바아알!!!”
그는 죽은 경비병의 얼굴을 커터로 난도질한다.
“어떻게 1분도 못 참아! 어떻게, 어떻게 1분도 못 참아! 어떻게 1분도! 1분도! 1분도! 염병할 1분도! 이 약해빠진 새끼가···!”
쩌억! 쩌억! 쩌억! 쩌어억!
더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된 얼굴 위에서 그는 분노를 토해낸다.
“개새끼야!!! 거의 갈뻔했는데!!!!”
***
바빌로니아는 플래닛 웨폰이 건설되고 있는 왜소행성이다. 단순히 궤도를 공전하며 방어 목적으로 설계된 것이 아니다. 거대한 엔진을 달아서 항성계 밖으로 나갈 수 있는 플래닛 웨폰을 목적으로 설계되고 있는 것이다.
바빌로니아 표면에 상륙했던 크라켄 함대는 이제 방공 시스템에 등록되었다. 이들 함대는 바빌로니아의 중력권에서 외부로 머리를 향하고 있다.
- 바빌로니아 방공 시스템이 정상 가동됩니다.
시설의 중심부, 엔진실에는 강력한 자기장으로 플라즈마를 밀폐시키는 도넛 모양의 토카막 장치가 여러 대 있었다.
시설 전체를 장악한 크라켄 용병단 무리 중 하나가 이곳 엔진실로 진입했다. 이미 죽은 경비병들의 시체가 어지럽게 쓰러져있다.
“흑···. 흑흑···.”
핏물로 물든 바닥 위에 시설 관계자들이 무릎을 꿇고 있다.
“뭐야, 이미 엔진실도 정리한 건가.”
용병들은 시설 관계자들의 상태를 대충 흘겨보았다. 뭔가 묶어놓은 것도 아니고 따로 감시하는 사람도 없는 것 같은데, 저렇게 무릎을 꿇은 채 도망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리더가 온 것 같아. 여기 시체들 잘린 모양 좀 봐.”
필요 이상의 잔혹함은 서펜트가 엔진실에 왔음을 암시했다.
그리고 용병들은 곧 도넛 모양의 토카막 앞에 홀로 서있는 서펜트를 발견할 수 있었다.
“리더? 거기 뭐라도 있습니까?”
서펜트는 머릿속 나사가 빠진 사람처럼, 반투명한 토카막을 보며 실실 웃고 있었다.
“···리더?”
“저 사람들 좀 봐···.”
용병들은 서펜트가 보고 있는 토카막으로 시선을 옮겼다.
“저런···. 일부러 집어넣으신 겁니까?”
“저 안을 빙글빙글 돌면서 하늘을 보고 웃고 있어.”
그가 아까부터 웃으며 지켜보고 있던 것은, 가열된 토카막 안에서 서서히 올라가는 고온에 소리치며 맴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
화성의 북쪽에 위치한 미개발 지역은 신도시 건설로 84번 거주지역이라는 지명을 받았다.
건설 중인 타워의 중간층에서는 신도시 전체의 공사 현장이 내려다보인다.
“이번에 아빠가 소개해준 애도 별로였나 보구나.”
“응. 진짜 별로였어.”
하이게이트 그룹 회장인 애틀라탄은 자신의 딸 애니아나와 함께 공사 현장을 내려다보고 있다.
“이름 있는 집안에 명문대 출신, 대기업 임원까지 하고 있는 애가 별로라고?”
“그런 배경은 됐다니까. 사람이 별로잖아. 사람이.”
“그 정도면 연예인 뺨칠 정도로 잘생긴 게 아닌가.”
“아니, 내 말은···.”
애니아나는 답답했는지 앞머리를 쓸어넘겼다.
“만나서 몇 마디만 나눠봐도 알 수 있다니까. 그 사람은 허영심이 가득했어. 자기 자동차가 몇 대나 있는지 자기 집이 얼마나 높은 곳에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잖아. 어차피 돈이라면 내가 더 많은데.”
“그래도 능력 있는 배우자를 만나는 게 중요하단다.”
“아빠가 말하는 능력이 돈이잖아.”
“그렇지. 아주 중요한 능력이야.”
“돈이 없는 남자라도 사람이 좋으면 내가 먹여살릴 거야. 시작부터 거기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없다고. 그리고 그 사람이 칭찬하는 건 내 외모뿐이었어.”
“애니아나. 사람들의 첫 만남에 상대의 외모와 배경 말고 뭘 알겠나?”
“아빠. 내 사람은 내가 알아서 찾을게.”
애니아나가 딱 잘라서 주장하자 불편한 적막이 흐른다.
끝내 애틀라탄은 공사 현장을 보다가 자기 딸에게 똑바로 시선을 옮긴다.
“···아직도 그 사람한테 마음이 있나?”
“누구?”
“로페즈. 옵시디아몬 회장 말이다.”
“그럼 안 돼?”
애틀라탄은 근심이 가득해졌다. 자기 딸이 유일하게 좋아하는 남자가 하필이면 그 사람이라니.
“현실적으로 맞는 사람을 찾아야 오래갈 수 있다. 다가가기도 어려운 위치에 있는 사람한테 마음을 둬서 어쩌려고 그러나.”
“맞아. 다가가기 어렵지. 진짜 어렵더라. 일이 있어서 미팅을 만들면 매번 그 레나 비서실장님이 오거든.”
“그 빨간 머리 여자 말하는 거냐.”
“응. 무섭게 생겼어. 계산기도 살벌하게 잘 두드리고.”
“그 여자는 업계에서 엘리트로 소문이 자자했던 사람이다. 그런 사람을 너와의 미팅에 보냈다는 것은 그래도 아직 옵시디아몬이 하이게이트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말이겠구나.”
“······따로 조사해봤는데 그 비서실장님 말고도 능력 있고 예쁜 여자가 또 있었어. 입사하자마자 연구팀 핵심 인재로 선발된 사람이···.”
“마침 경쟁자도 많으니 포기하는 게 어떠냐. 로페즈가 일은 잘해도 아빠가 보기에 신랑감은 아니다.”
“왜, 아빠 기준으로 보면 화성에서 제일 잘나가는 젊은이 아니야?”
애틀라탄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완강히 부정한다.
“그건 어딘가 인간답지 않은 사람이라서 불안하구나.”
그러자 애니아나도 그처럼 고개를 저으며 완강히 부정한다.
“어디를 봐서 인간답지 않다고 할 수가 있어? 정전 직전에 아슬아슬하게 나서서 금성 피난민들 구조하는 뉴스 봤잖아.”
“이제 뉴스도 보고 사는 거냐.”
“아빠가 뉴스 좀 보고 살라며.”
“흠, 흠···.”
“그리고 우리나라가 이렇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다 그 사람이 움직여서 그런 거 아니야? 부패 정권이 교체되고 기업들이 마음껏 활약하면서 기술약소국 이미지도 벗어나고. 덩달아 경기까지 좋아져서 뭐 하나 트집 잡을 게 없는 사람이잖아. 전쟁까지 있었는데도.”
“본성이 나쁜 사람이라고 말한 게 아니다. 아빠 말은, 뭔가 중요한 게 결여됐다는 말이지.”
“방금은 인간답지 않다면서?”
애틀라탄은 애니아나의 뒤로 걷는다. 그러자 두 사람의 경호원들이 양옆으로 갈라지며 길을 연다.
“···30년 넘게 회사일하면서 겪었다.”
“뭐를?”
“너무 가파르게 빨리 올라간 사람은 추락할 때도 걷잡을 수 없다고.”
“그건 당연하지. 어쩔 수 없는 거야.”
애니아나도 높은 풍경을 뒤로하고 그를 따라 걷는다.
“단지···. 로페즈 회장을 너무 가까이하면 위험한 일에 휘말릴 것 같다는 예감이 드는구나.”
“아빠의 30년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예감이야?”
“뭐···. 그렇다는 말이지···.”
“어차피 다 끝났잖아. 전쟁보다 위험한 일이 어디 있겠어?”
“애니아나. 세상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있다.”
“나도 알아.”
“정말 많은 집단이, 세력이 있다. 우리가 꿈에도 모르는 일들이 지금도 세상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말이란다.”
“···.”
“그래서 우리는 적군을 잘 골라야 해. 아군도 잘 골라야 하고. 친구는 더 잘 골라야지. 아빠가 보기에 로페즈 회장은 딱 아군. 그 이하나 그 이상의 관계가 되어선 안 되는 인물이야.”
“그래도 좋은 사람이잖아.”
애틀라탄은 지난 일들을 떠올리며 진심으로 딸을 걱정해준다.
“그 사람이 나쁘고 위험하다는 게 아니란다.”
“그럼···?”
“···그 사람을 중심으로 발생하는 사건들이 위험하다는 말이지. 곁에 있다간 언젠가 휩쓸릴 게다.”
< 16. 전쟁은 끝났으나 (4)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