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대 인공지능 키우기-80화 (80/183)

< 15. 강행 (4) >

***

인조인간은 금지된 기술이다.

금지된 기술이지만, 그간 샌디는 뉴소사이어티의 명령으로 인조인간 기술을 개발했다. 트랜센던서는 그녀가 알려준 정보를 토대로 인조인간의 청사진을 완성했다.

복제할 대상의 유전자 지도와 인공 줄기세포로 탄생한 인조인간은 급속 성장을 거듭한 탓에 탄생 직후엔 대뇌에 정보가 없다. 그 대뇌에 극세사 전극을 연결하여 기억을 주입하는 과정은 시스템에 인공지능을 설치하는 과정과 비슷한 맥락이었다.

가이우스의 보급함선을 습격했던 인조인간들은 무작위 유전자로 탄생한 병력이었다. 트랜센던서는 가이우스의 보급함선에 리버레이터가 있다는 것을 확률적으로 도출했고 로페즈는 인조인간들에게 그들의 보급함선을 공격할 것을 명령했다.

인조인간들은 샌디가 개발한 백신을 투여받았고, 보급함선에서 리버레이터를 의도적으로 유출시켰다. 리버레이터의 백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가이우스에 알리려는 목적이었다.

그래도 가이우스는 멈추지 않고 작전을 속행했다. 화성의 행성대통령, 알 카즈네 베르도를 살해하는 것이다.

하지만 로페즈는 그러한 상황까지 상정하여 카이우스에게 제안한 것이다. 옵시디아몬을 행성대통령 경호업체로 부상시켜, 자신이 베르도의 곁에 서겠다고. 그가 카이사스에게 주장했던 정보 우위는 단순히 명분이었을 뿐이다.

결과적으로 로페즈는 베르도와 만날 수 있었고 그에게 토성 정부와 가이우스의 음모를 알리게 되었다. 작년 사건들의 영향을 받아 당선된 베르도는 당연히 로페즈라는 인물을 믿어주었다.

로페즈는 자신과 베르도, 베르도를 지킬 옵시디아몬의 사병들, 화성의 군인들을 본떠 인조인간을 만들었다.

산 정상에 오른 인조인간들은 기억의 의지해 자신들이 진짜 인간이라고 믿으며 행동했다. 그들 사이에 있던 로페즈 역시 자신이 진짜 로페즈라고 믿는 인조인간이었다.

예정대로 가이우스의 작업이 시작되었고 자신이 베르도라고 믿었던 인조인간은 사망했다. 현장에서 사망하지 않은 인조인간들은 옵시디아몬이 물리적으로 처분했다.

아무리 인조인간이라고 해도 그것들은 엄연히 인간과 같이 기억과 감정을 가진 생명들이었다. 윤리적으로 절대 행해선 안 되는 일이었지만, 로페즈는 자기 자신과 베르도를 설득하여 인조인간이라도 활용할 수 있다면 가리지 않고 활용했다.

이후 예상대로 카이사스는 로페즈를 호출했고 로페즈는 그를 죽였다.

그렇게 리버레이터와 가이우스를 공략한 후 베르도가 살아있다는 것까지 알리면 전쟁을 늦출 수 있으리라 희망했다. 전쟁을 늦춘 후에는 베르도와 함께 국가적 차원에서 전쟁 예방계획을 세우려는 계획까지 있었다.

하지만 장로회의 태도는 트랜센던서나 로페즈가 예상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장로회의 규모와 구성을 그 시간 안에는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장로회는 전쟁을 강행하겠다는 방침을 내린 것 같았다. 토성은 굉장히 기습적으로 금성을 공격했고 이에 대응하여 베르도가 나섰다.

태양계 지도자 연합의 긴급회의가 진행되었다.

베르도는 로페즈가 제공해준 증거를 활용해 토성 위성대통령을 고발했다.

회의가 끝난 후 로페즈는 트랜센던서에게 명령했다. 전범 기업이 된 가이우스에 승산이 없다는 것을 엘리스에게 알리라고 한 것이다.

엘리스는 빠르게 판단했고 가이우스는 토성과 맺은 조약을 깨버리며 후퇴를 감행했다.

수성 개발위원회의 위원장은 금성에 유감을 표하고 종전 후 금성을 도울 것을 약속했다.

금성 총수부의 행성대통령은 자국에서 벌어지는 사태에 억울함을 호소했다.

화성 정부의 행성대통령은 토성을 전범 국가로 강력히 규탄하고 투표를 열어 결정된 사항인 120분 이내 완전한 종전, 금성에 피해 보상, 대국민 사과, 지도자 파면을 촉구했다.

목성 연합정부의 위성대통령은 토성을 향해 명백한 적개심을 드러내었고 태양계 연합의 결정사항에 토성이 응하지 않을 시 군사적 개입을 고려하겠다고 경고했다.

토성 정부의 행성대통령은 회의가 끝난 후 침묵했다.

천왕성 개척대의 개척대표는 태양계 연합의 결정사항이 완료되기 전까지 토성과의 무기한 단교를 선언했다.

그리고 지도자들이 입장을 밝히기 직전까지도 금성에서는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금성에는 12개의 반중력 부양도시가 있다. 그중 군사기지 역할을 하는 도시 두 곳 중 한 곳은 처참하게 파괴되어 대기권으로 떨어지는 중이다.

다른 11개의 도시 중 여섯 곳에서는 전투가 벌어졌고 폭격이 떨어졌다. 그리고 토성의 궤도 강하 전술타격대가 다섯 도시의 지하를 점령하는 중이다.

이곳 남반구의 5번 상업특화 도시도 전술타격대의 공격을 받는 도시 중 하나다.

지하 51층, 새하얗게 각진 공간의 벽과 천장에는 인공지능이 내장된 기계 구체가 붙어있다.

쿠구궁···.

공간의 중심에 있는 샌디는 지상에서 큰 울림이 있을 때마다 불안을 느꼈다.

그녀의 옆으로 두둥실 떠오른 기계 구체는 경고한다.

“관리자님. 이곳 루시퍼 타워로도 토성 병력이 진입했습니다. 그들은 각 도시의 지하를 수색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발악하는 거야···. 전쟁이 끝나기 전에 도시들을 떨어뜨리려고···. 최대한 피해를 주려고···.”

“이 도시의 반중력 장치는 분산되어 있습니다. 각기 다른 코어에서 동력을 얻고 있으므로 도시가 단번에 추락할 가능성은 적습니다.”

또 다른 기계 구체가 그녀의 옆으로 두둥실 다가왔다.

“관리자님. 이 도시의 5번, 6번, 21번 코어가 파괴되었습니다. 반중력 장치의 출력 저하로 인해 도시가 하강하고 있습니다.”

이대로라면 도시가 금성의 대기권으로 내려가서 산산조각이 날 것이다. 단번에 추락하지 않는다고 해서 도시가 금성의 대기권에 언제까지고 버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천천히 지상에 도달한다고 해도 황산비와 화산 활동에 의해 도시의 위아래가 천천히 녹아버릴 것이다.

샌디는 지하 51층. 이 도시의 거의 맨 밑에 있으니 도시의 추락으로 죽지 않는다면 행성의 뜨거운 열기에 의해 고통스럽게 죽으리라.

“관리자님. 이 도시의 25번, 28번, 30번 코어가 파괴되었습니다.”

쿠우우우···

또 꺼림칙한 울림이 공간에 퍼진다.

쿠우우우···

이번에 닥쳐온 울림은 한차례로 그치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이건 지상에서의 전투가 일으킨 울림이 아닌 것 같다.

“도시의 하층부가 대기층에 진입했습니다.”

***

지하로 대피한 금성 시민들은 방공호에 모여서 공포에 떨고 있었다.

“엄마···. 무서워···.”

“괜찮아. 괜찮아. 곧 군인 아저씨들이 구해주러 올 거야.”

아이의 엄마는 아이를 꼭 껴안은 채 연신 괜찮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우린 모두 죽을 거야···. 죽을 거라고···.”

“개 같은 토성 새끼들···.”

“총수부는 뭐하고 있는 거예요?”

“도시가 떨어지고 있는 것 같은데···.”

“태양계 연합 회의 끝났다면서! 왜 아무도 우릴 구하러 오지 않는 거냐고! 이쯤에서 전쟁이 끝나야 되는 거 아니야?!”

“으아아아앙···!”

“이거 봐. 인터넷도 끊겼어요.”

“이렇게 죽을 수 없어···. 이대로는···.”

누군가는 삶의 의지를 잃어 절망에 빠졌다. 누군가는 전쟁을 일으킨 적국을 욕했다. 누군가는 간절히 구조를 희망했고 누군가는 기도를 했으며 누군가는 안절부절못하며 방공호를 맴돌았다. 그런 사람들만 수십 명이다.

지이잉!

그러던 순간, 방공호의 정문이 열렸다.

정문의 너머에는 지하통로가 있으며 지하통로의 공기는 인간이 호흡하기에 적절한 것이 아니었다. 전술타격대가 억지로 도로를 부수고 내려오는 바람에 외부의 공기와 지하의 공기가 뒤섞인 것이다.

어쨌든 사람들의 시선은 커다란 정문에 집중되었다. 그들의 불안과 기대가 섞인 시선을 받으며 통로에서 나타난 것은 구조대가 아니었다.

그들은 군인이었다.

“코어는 어디에 있지?”

“빨리 찾아. 여기에도 하나가 있다.”

적국의 군인이었다.

지이잉!

외부의 유해한 공기를 감지한 정문이 자동으로 닫혔다.

“뭐 하는 짓입니까? 당신들 지금 도시를 떨어뜨리려고 그러는 겁니까?”

어느 중년 회사원이 나서자 지켜보고 있던 시민들도 하나둘씩 전술타격대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들이 용기를 내어 앞으로 나선 것은 그들의 뒤에 누군가의 가족이, 이웃이, 연인이 있었기 때문일까.

타타타탕!

“꺄악···!”

“무, 무슨 짓을···!”

“맙소사···.”

전술타격대는 가장 앞에서 길을 막던 회사원을 그 자리에서 쏴 죽였다. 그들의 태도에는 이상하리만큼 인간성이 전혀 없었다.

“다 뒈지고 싶어? 들어가!”

퍽!

강화복을 입은 그들의 육중한 발길질에 몇 사람이 나가떨어졌다. 시민들은 민간인 신분이 자신들을 보호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리저리 도망쳤다.

전술타격대는 강압적인 태도로 시민들을 억압한 후 방공호를 돌아다녔다.

“찾았다.”

콰직!

그들은 어느 벽면을 뜯어서 방공호에 숨겨졌던 코어를 찾아냈다. 이어서 그들은 시민들이 보고 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코어에 시한폭탄을 설치했다.

그 카운팅은 고작 5분이었다.

“설치했다. 다음 위치로.”

전술타격대는 들어왔던 정문으로 유유히 빠져나갔다. 방공호에 방치된 시민들은 바깥으로 나갈 수도 이곳에 머무를 수도 없게 되었다. 바깥에 나가면 전쟁통에 휩쓸리든 호흡곤란에 빠지든 죽을 것이 뻔하고 이대로 방공호에 남으려니 코어에 설치된 시한폭탄의 위력이 두렵다.

“민간인을 쐈어···. 사람이···.”

“저 쓰레기 새끼들!”

“어떡해요? 저희 이제 어떡해요?!”

“빨리, 저 폭탄부터···!”

몇 사람들이 코어로 달려가 시한폭탄을 이리저리 살펴보았지만 그것을 안전하게 해체할 수 있는 전문가는 없었다.

“이제 3분도 안 남았어요!”

“여러분! 최대한 정문 쪽으로 붙으세요! 어서요!”

이제 남은 희망이라곤 코어에 설치된 폭탄의 위력이 방공호 전체를 날려버릴 정도가 아니기를 바라는 것뿐이다. 물론 그 희망 대로 폭발에 휩쓸리지 않는다고 한들, 이 도시는 여전히 하강하고 있다는 게 현실이지만.

“흑···. 흑흑···.”

“괜찮을 거예요. 5분으로 설정했으니까 그렇게 강한 위력은 아닐 거야···.”

그들은 뜯어진 벽면에 최대한 물건을 쌓아올린 후 정문에 옹기종기 모였다. 폭탄으로부터 최대한 멀찍이 떨어진 것이다. 이제 2분도 안 남았으리라.

“그, 그냥 나가면 안 돼요···?”

“나가면 숨 못 쉽니다. 정문 열면 이쪽 공기도 빠져나가고요.”

시간은 그들을 기다려주지 않고 무심하게도 흘러간다. 시한폭탄에 표시된 숫자가 1분을 가리키고 50초를 알리고 40초를 알린다.

타타탕···! 타탕···! 퍼엉···!

그 순간, 정문 너머에서 총성과 폭음이 전해져왔다.

남은 시간은 30초다.

지이잉!

다시금 정문이 열렸다. 앞으로 이어지는 통로 멀찍이 전술타격대의 시체가 쌓여있다. 그리고 시체의 주변에는 아무 총이나 주워든 모양새의 휴머노이드 무리가 있다. 그런 휴머노이드 무리 근처에는 곤충의 모습을 한 드론 같은 것이 배회하고 있다.

곧 방공호까지 들어온 휴머노이드 여덟 기가 동시에 큰 목소리를 낸다.

“통로의 공기를 외부와 격리했습니다! 뒤쪽으로 나가십시오!”

남은 시간 10초.

커다란 정문 앞에 모였던 62명은 앞뒤 판단할 겨를도 없이 휴머노이드가 시키는 대로 움직였다. 그러나 10초 안에 62명 모두가 방공호를 빠져나가는 것은 무리다.

“빨리 나가요! 빨리!”

“밀지 마요!”

“터진다···! 곧 터진다고···!”

남은 시간 5초.

휴머노이드 여덟 기는 시한폭탄이 설치된 방향으로 일제히 두 손바닥을 펼쳤다.

“앞사람들 빨리 뛰라고 씨발!”

“살려줘!!!”

“으, 으아아···!”

남은 시간 3초.

키이이이잉···!

휴머노이드 여덟 기는 빠져나가는 시민들의 배후를 감싸는 형태로 에너지 방벽을 전개했다.

퍼어어엉!!!

코어를 잿더미로 만들어버릴 기세의 폭발이 방공호 전체를 뜨거운 폭음으로 집어삼켰다.

지이이이이잉!

휴머노이드 여덟 기는 바로 앞에서 닥쳐오는 고온에 금속의 손바닥이 빨갛게 가열되었다. 에너지 방벽은 금방이라도 사라질 듯 반투명하게 일렁이고 있다.

“어서 빠져나가십시오! 실드 출력이 부족합니다!”

그렇게 버틴 짧은 시간 동안 시민들은 무사히 방공호를 빠져나갔다.

지이잉!

그러자 정문이 자동으로 닫혔다. 방공호에 고립된 휴머노이드 여덟 기는 에너지 방벽을 해제한 후 뜨거운 폭발 속에 전소되었다.

***

기계 구체는 이어지는 나쁜 소식을 전달한다.

“관리자님. 2번 코어도 파괴되었습니다.”

지하 51층에 열기가 퍼지고 있다. 도시 시스템이 단계적으로 마비되고 있는 것이다. 샌디는 이마의 땀을 훔치며 힘겹게 호흡한다.

“바깥···. 우회로는 찾았어···?”

“검색 가능한 네트워크 경로가 없습니다.”

샌디가 이곳에서 마지막으로 본 바깥 영상은 폭격이 쏟아지는 대로변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이곳에서 마지막으로 들은 사회의 소식은 태양계 연합의 회의가 끝났으며 가이우스가 후퇴하고 있다는 것 정도다.

지하에 갇혀서 세상과 고립된 채, 열에 의한 죽음을 기다리는 신세다.

외부와의 정보 차단과 피부로 와닿는 열기는 적잖이 괴로웠다.

아직은 덥다고 느끼는 열기지만 곧 뜨겁다고 느낄 열기가 되리라. 뜨겁다고 느끼는 열기는 곧 화상을 유발할 것이고 온몸을 고기 굽듯 익혀버릴 것이다.

호흡하는 것은 자꾸만 힘들어지는데 천장의 조명까지 불안정하게 깜박인다.

“가이우스는··· 무조건 후퇴했다고 했어···. 토성 이 혼자서, 이 전쟁을 감당하긴 힘들 거야···.”

“관리자님. 체온 유지를 위해 탈의하시는 것을 추천드리겠습니다.”

“어차피, 어차피 나중엔 뜨거워서 다시 입을 텐데 뭐···.”

죽음이 다가온다.

“그보다 대답 좀 해줘···. 응? 리버레이터 백신을 만들고···. 인조인간을 만들고···. 그 사람한테 의지해서, 이번 일을 이 정도로 끝낼 수 있게 된 거잖아···. 맞지···? 내 선택이···.”

“관리자님은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하, 하하. 마지막 길동무가 인공지능이라니···. 나 대체 어떤 인생을 살아온 거야?”

“관리자님. 죽음을 확정하기엔 이릅니다. 구조 가능성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그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데?”

“···.”

“묻잖아···.”

“0.052%입니다. 하지만 이는 외부 정보가 단절되기 직전의 변수를 바탕으로 도출한 확률입니다.”

위로의 말도 희망을 붙잡는 말도 들리지 않는다.

죽기 직전에는 자신의 몸이 걱정되고, 그러다 자신이 죽는다는 확신이 생겼을 때는 가장 소중한 사람이 생각난다.

“우리 엄마 어떡해···. 지금쯤 화성에서 뉴스 보고 계실 텐데···. 진짜 많이 우실 텐데···.”

그렇게 자신의 사고가 바깥의 것들을 걱정한 후엔 다시 현실의 몸으로 돌아온다.

이제는 뜨겁다고 느껴질 정도로 공간이 가열되었다. 바닥에 발을 붙이면 발바닥에 화상을 입을 것이다.

샌디는 의자 위에서 다리를 꼭 껴안는 자세로 앉았다. 그리고 자신의 새까만 머리칼을 쥐어뜯었다.

“씨발···. 나도 살고 싶다고···. 나 아직 못해본 일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데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아무도 없으니까···.”

“관리자님. 진정하셔야 합니다.”

“내 옆엔 사람이 생기면 다 죽잖아···. 그러니까 이대로 뒈지는 것도 그냥···. 하, 씨발 진짜···. 으으으···.”

그동안 메말랐던 눈물샘이 죽기 직전이 되어서야 작동한다. 밀려오는 후회에 지난 삶을 되돌아보니 잘못된 선택들이 있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어서 하기 싫은 일을 해왔고, 정신없이 달려와보니 어느새 소리 없이 울부짖는 자신이 있었다.

어렸던 꿈들은 성장한 현실을 원망하며 기억 속에 메아리치고 있다. 그때는 왜 그랬을까. 돌이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쓸데없는 생각에 잠겨보니 현실감각이 사라지는 것 같다. 이 고통의 연쇄 속에서 신체를 버리고 정신만 멀리 도망치고 싶다.

“관리자님.”

그녀는 고개를 파묻었다. 눈을 질끈 감고 고통에 소리치는 자신의 살갗을 애써 외면한다.

“관리자님. 진동이 감지됩니다. 무언가 접근하고 있습니다.”

카카캉···! 카각···!

벽 속에서 날카롭게 긁히는 소리가 들려온다.

“방금 뭐라고······?”

카아앙!!!

키이이잉! 카가각!

뜨겁게 가열된 체인트루퍼가 새하얀 벽을 가르며 튀어나왔다.

< 15. 강행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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