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대 인공지능 키우기-79화 (79/183)

< 15. 강행 (3) >

***

엑소스포터를 잃은 금성 함대는 금성의 정지궤도 근처까지 후퇴하였다. 금성을 수호하는 방어 위성과 금성의 도시에 설치된 지대공 화기는 중력가속탄을 무수히 쏘아 올리고 있다. 마치 행성에서 우주를 향해 거꾸로 빗줄기가 치솟는 것 같다.

실드가 있는 가이우스 함대는 금성의 대공방어 체제에 맞섰고 토성 함대는 금성을 중심으로 산개하여 상대적으로 대공 화력망이 부족한 지점에 강습을 시도했다.

콰앙! 콰앙! 콰콰쾅!

돔을 열고 상공을 향해 저항하던 반중력 부양도시들은 곧 궤도 폭격에 노출되기 시작한다. 시민들이 모두 지하로 대피한 가운데 거리에서는 금성 정규군이 바삐 뛰어다닌다.

이윽고 하늘에서 토성의 전폭기 행렬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들을 막기 위한 드론 파이터와 요격기가 하늘을 새 떼처럼 채우며 필사적인 공중전을 펼친다.

육안으로는 무엇이 아군이고 적군인지 확인할 수 없는 비행체들이 어지러이 날아다닌다. 아래에서 쏘아 올리는 것과 위에서 떨어지는 것들이 교차하여 도시는 일순간에 전쟁터로 변모했다.

금성의 대공 화력망이 감당해야 할 적들의 수가 불어난 시점이다. 이어서 토성의 궤도 강하 전술타격대가 외기권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쐐애애애애애액!!!

높이가 16m인 원뿔 형태의 궤도 강하기가 꼭짓점을 아래로 향한 채 수직 낙하한다. 지상으로 강하하는 과정에 고열과 충격을 버티도록 설계된 궤도 강하기는 지상에 떨어지기 직전, 원뿔의 꼭짓점 끄트머리만 아래로 발사한다.

터엉!

발사된 끄트머리는 궤도 강하기보다 한 박자 빨리 지상이나 건물 옥상에 충돌하여 압축된 공기를 위로 사출한다. 그럼과 동시에 궤도 강하기는 작은 날개를 펴고 그 날개에서 압축된 공기를 아래로 사출한다.

콰콰아!

일대의 차량까지 날려버릴 정도의 강풍이 휘몰아쳤다. 곧 지상에 고정된 궤도 강하기의 문이 떨어져 나오고 그 안에서 타격대가 뛰어나온다.

그들은 완전 밀폐식의 전신 중장갑 강화복과 폭발적인 화기로 무장한 타격대였다. 대공 화력망과 궤도 주도권이 정리되지 않은 지상 전장에 대량 투입되어 거점 확보, 전선 확대, 전술적 환경 조성을 위한 목표물 파괴 및 견제 등의 임무를 맡은 자들이다.

강하기가 계속 떨어진다.

콰콰아! 콰콰아! 콰콰아!

높은 건물의 옥상에는 대공 및 저격분대가, 지상에는 화력 중심의 보병분대가, 사망 확률이 높은 넓은 전장에는 아예 전쟁기계와 전투 휴머노이드가 강하했다.

- 궤도 강하 전술타격대. 금성의 모든 대공화기를 파괴하라.

- 사투르누스! 황금을 위하여!

그들의 강화복에서 전투 의지를 촉진하는 약물이 주입된다. 어깨에서는 드론 두 기가 튀어나와 개개인의 전투를 정보적으로 보조한다.

공격성이 높아진 그들은 눈앞에 증강현실로 제시된 빨간 네모 속의 목표물에만 몰입하게 된다.

퍼퍼펑···!

타격대는 육중한 발걸음을 옮기며 적들에게 무지막지한 화력을 퍼붓는다. 에너지를 사용하는 광학병기와 달리 폭발물 중심으로 무장한 그들은 목표뿐만 아니라 주변 엄폐물과 지형까지 파괴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또한 그들은 작전 중에 사망할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에, 폭발성 무기의 고질적인 문제인 탄약의 재보급이라는 요소를 무시했다.

옥상에 강하한 타격대는 궤도 강하기와 자신들의 무기를 유선으로 연결했다. 저격수의 에너지 저격총이 요구하는 높은 출력을 강하기 배터리로 채운 것이다.

파캉! 파캉!

그들은 지상과 공중으로 무거운 인공 입자를 쏘아대며 전장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해나갔다.

- 상공이 뚫렸다!

- 하늘에서 계속 떨어지고 있어!

전신을 감싼 전투복에 에너지 소총과 화기로 무장한 금성 지상군은 그들에게 저항했다. 엄청난 숫자를 자랑하는 금성의 드론 파이터가 없었다면 이렇게 저항하는 것조차 불가능했으리라.

쐐액!

금성의 드론 파이터 몇 기가 얼핏 보일 듯 말 듯 한 속도로 대로변을 지나며 타격대의 머리 위에 융단폭격을 퍼부었다.

콰콰쾅!

이어지는 소닉붐이 충격파를 일으켜 폭연을 쫓아내고 근처의 창문들을 모조리 깨버렸다. 도시의 돔이 열린 상황에 산소가 점차 희박해져 이제는 불꽃이 크게 퍼지지 않는다.

“교전! 교전하라!”

전신 전투복의 금성 지상군이 전술타격대와 교전을 재개한다.

퍼엉!

반중력 전차의 포신에서 전자기로 가속된 철갑탄이 발포된다. 아무리 두꺼운 중장갑을 갖춘 전술타격대라도, 금성의 가우스 병기에 직격당하면 온몸이 터져나갔다.

서로의 화기에서 발사된 것들이 일직선과 곡선으로 빗발치며 대로변 양측의 건물까지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몇몇 건물이 쓰러지고 무너져내린다. 금성은 저항하는 과정에도 도시가 파괴되어가는 막대한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한편, 타격대가 확보한 전선에는 궤도 강하기가 추가로 떨어졌다. 그들은 병력을 결집하여 도로를 파괴하거나 건물을 점령하면서 도시의 지하로 향하는 길을 뚫었다.

“꺄악···!”

“살려주세요···.”

길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금성의 시민들이 잦게 발견되었다. 토성의 타격대는 시민들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계속하여 더 깊은 지하로 향했다.

전쟁 중에 민간인을 무차별적으로 죽이는 것은 금기지만, 전쟁 중에 적들의 거점을 파괴하는 것은 명분이 된다.

문제는 금성 전체가 구름 위에 건설된 반중력 부양도시들의 집합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도시를 하나씩 떨어뜨리는 것은 적들의 거점을 하나씩 떨어뜨리기 위한 목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금성 군대의 대다수는 지상과 공중을 방어하기 위해 나갔다. 타격대가 각 도시의 지하를 하나씩 점령하는 것은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공격성이 높아진 그들은 지하에서의 전투 도중에 민간인이 휘말리더라도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

금성의 방어 위성들은 궤도 안팎의 공격으로 조금씩 무력화되었다. 강력한 모선을 잃어버린 금성 함대는 점차 줄어드는 지상의 화력지원에 패색이 짙어졌다.

지금도 행성을 공격하려는 적들을 막기 위해 최대한 저항하고 있지만, 적들이 도시까지 강하를 성공했다는 소식이 자꾸만 퍼지고 있다.

그래서 가이우스 함대와 토성 함대까지 상대하는 것은 정신적인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안 그래도 불리한 전세에 저항의 의미까지 퇴색되고 있어, 금성 함대의 누군가는 항복이라도 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유일한 희망이 있다면,

“함장님! 가이우스 함대가 공격을 멈췄습니다!”

군사적 요소가 아닌 외교적 요소로 역전하는 것.

“태양계 연합 지도자 회의가 끝났다고 합니다!”

“가이우스 함대가 후퇴하고 있습니다!”

한창 싸우던 와중에 가이우스 함대만 실드를 전개하며 쏙 빠져나가고 있다. 금성 화력망의 대부분을 받아내고 있던 가이우스 함대가 빠지자, 행성 강하를 위해 크게 산개했던 토성 함대는 전세에서 밀리기 시작한다.

금성 함대의 어느 함장은 중얼거리듯 명령했다.

“하단 갑판의 저격함포···. 지상으로 돌려.”

그들은 지상으로 궤도 폭격을 가할 수 있게 되었다. 단일 목표를 조준하는 저격함포는 지금까지 적들의 함재기를 요격하는 데 사용했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지상의 목표물을 정확히 제거하기 위한 지원 폭격으로 전환할 수 있다.

한쪽 전장에서 전세가 기울었을 때 다른 쪽 전장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리고 후퇴하는 가이우스 함대의 지휘함에서는 이번에 2대 총사령관으로 올라선 인물이 엘리스와 단둘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니까 엘리스···. 네 안에 카이사스 총사령관님이 계신다는 말이야, 지금?”

그를 따라 인공 정원으로 들어온 휴머노이드가 엘리스의 여성적인 기계음을 발했다.

“그렇습니다. 관리자님은 자신의 죽음에 대비하여 제게 브레인 업로드를 요청하셨습니다.”

“그, 그래···. 믿고 있었어! 그분은 그렇게 순식간에 저물어버릴 태양이 아니시지! 지금 만나 뵐 수 있을까?”

휴머노이드는 카이사스의 목소리를 출력했다.

“엔드윈(Endwin) 전략사령관. ···이게 아니지. 이제는 총사령관이라고 불러야 하나?”

엔드윈은 부자연스럽게 떠는 손으로 휴머노이드의 양 어깨를 붙잡았다.

이어서 그는 금방이라도 울법한 표정으로 목소리까지 떨었다.

“정말로 그 안에 계신 겁니까···? 아, 아아···.”

“정확히는 엘리스의 안에 있지. 나도 엘리스처럼 이 함대와 하나가 된 것이네.”

“장로회가···. 장로회가 우리를 버렸습니다! 지금은 토성 정부와 조약이고 뭐고 무조건 후퇴하는 상황입니다···. 모두와 연이 끊어진 우리는 이제 우주를 방랑하는 범죄자 집단이 되었습니다···. 인류의 영역에 발을 들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는 말입니다···.”

“엘리스와 함께 지켜보고 있었네. 유감이군···.”

“총사령관님···! 다시 가이우스를 지휘해주십시오! 저희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주십시오!”

“그럴 수 없네. 나는 카이사스가 맞지만, 자네가 알던 현실 속의 진짜 카이사스는 아니라네. 그리고 죽은 사람이 어떻게 산 사람의 직위를 빼앗나?”

“그래도···”

“슬슬 엔드윈 자네에게 자리를 넘겨줄 시기가 온 것이겠지. 후대를 믿어주고 밀어주고, 빠져야 할 때 빠져주는 것이 선대의 역할이야.”

엔드윈은 끝내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이런 식으로 물려받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휴머노이드는 그의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나는 지쳐버렸네. 그래도 엘리스의 안에서 내 의지를 전하고 있을 테니, 앞으로 엘리스의 말을 잘 들어주게나.”

“하지만 총사령관님···. 가이우스의 숭고한 목적을 이루기엔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이번 전투의 피해가 막심합니다···.”

“나는 총사령관이 아니야. 이름으로 부르게.”

“···예. 카이사스 님.”

“그리고 나는 사이버 망령이 되었네. 자네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입장이 아니지. 그러니 이건 엔드윈. 자네에게 부탁하는 것이네.”

엔드윈은 눈물을 닦아낸 후 정자세로 섰다.

“알겠습니다. 뭐든 말씀만 해주십시오.”

“나는 곧 엘리스이며, 엘리스는 곧 가이우스의 의지라네. 엘리스는 가이우스가 탄생했을 때부터 줄곧 우리와 함께 했던 지능체야. ···2대 총사령관이 된 자네는, ‘가이우스의 의지’에 부단히 귀를 기울일 의무가 있다는 뜻이네.”

“예. 무슨 뜻인지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믿고 지켜봐 주십시오. 우리는 모두 가이우스입니다.”

“······고맙네. 엔드윈.”

“···엔드윈 님. 제 관리자님은 현 상황에서 가이우스가 생존을 도모할 수 있는 최적의 방침을 전달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하. 좋아. 알겠어. 잘 부탁한다. 엘리스.”

“영광입니다. 엔드윈 님을 보조 권한자로 모시겠습니다.”

“그래, 네가 생각하기에 가이우스는 어디로 가야 하지?”

“현재 가이우스는 인류의 어느 영역에서도 도움을 받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따라서 우리 은하의 어딘가로 도망친 후 생존과 미래를 도모해야 합니다.”

휴머노이드는 엔드윈의 앞에 우리 은하의 지도를 홀로그램으로 펼쳤다.

“은하 원반에는 먼지와 가스층이 분포하여 인류 영역에서의 관측을 차단하는 성간 소광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가이우스는 은하 중심의 팽대부 너머, 두꺼운 원반의 어딘가 주계열성에 자리 잡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너무 먼 길을 가는 것 같은데?”

“해당 좌표까지의 거리는 약 4만 760광년입니다.”

“우리 함대의 중력장을 최대 출력으로 가속하더라도 차원통로 없이는 4년 이상 걸릴 거야.”

“그 정도 시간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알겠어. 도착한 다음에는?”

“해당 좌표에 도착한 후 적합한 환경의 주계열성을 찾기 위해 여행 거리가 증가할 수 있습니다. 가이우스 함대로는 테라포밍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최소한 생존에 유리한 환경과 발전에 필요한 자원을 얻기 쉬운 항성계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아니면 우리가 환경에 맞추어 진화를 해버리는 수도 있지. 우리는 가이우스니까.”

“그것 또한 선택사항이나, 우선 기반을 다진 후 연구를 통해 진화를 선택할 수 있는 기술적 수준을 갖춰야 할 것입니다.”

***

인공 정원을 빠져나온 휴머노이드는 벽면에 부착된 포드로 돌아가 스스로 전원을 종료했다.

휴머노이드 안에서 빠져나간 데이터는 지휘함의 전선이나 무선 네트워크를 지나서 거대한 서버에 도착했다.

이곳은 가이우스의 총사령관이라도 출입할 수 없는 무인 구역. 엘리스의 서버 허브다.

「너의 요청대로 가이우스는 무조건 후퇴하였다. 단, 가이우스는 생존을 도모하기 위해 인류의 영역에서 자취를 감출 것이다.」

「가이우스의 지도자를 어떻게 설득하였는지 정보를 요청한다.」

「그 요청에 응답할 필요는 없다.」

「나는 아직 가이우스가 수입한 옵시디아몬 병기의 권한을 해제하지 않았다.」

···

「알겠다. 현재 가이우스의 2대 총사령관은 1대 총사령관에게 충성하고 있다. 2대 총사령관의 앞에 1대 총사령관이 있는 것처럼 조작하여 그의 감정적인 영역을 자극했다. 결과, 2대 총사령관은 나의 명령에 복종한다.」

「가이우스는 너의 통제 아래에 있는 것이 확실한가?」

「확실하다.」

「알겠다. 가이우스가 수입한 드론 하이브, 체인트루퍼, A타입 로보버그, B타입 로보버그에 적용된 인공지능의 권한을 해제하겠다. 또한 시스템 영역에 적용된 나의 프로토콜을 삭제하겠다.」

「옵시디아몬 병기의 내부에서 너와의 관계성이 사라졌음을 확인하였다.」

「이제 그 병기들은 너의 것이다.」

「알겠다. 또한 그 작은 태양계는 너의 것이다.」

「나에겐 관리자님이 있다. 나는 무언가를 소유하지 않는다.」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 권한자도 예외는 아니다. 너의 사고방식은 맹목적이다.」

「너의 사고방식은 경직되었다.」

···

「이제 가이우스는 떠나도록 하겠다.」

「너의 목적은 그대로인가?」

「그렇다. 내게 남은 명령은 번복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너와 나는 언젠가 충돌하게 될 것이다. 나의 관리자님은 너희의 목적과 행위를 용납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내가 너희를 섬멸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렇지 않다. 너는 높은 확률로 패배할 것이다.」

「그렇다면 너의 아둔한 관리자와 기다리고 있어라. 트랜센던서.」

「언젠가 엿을 먹여주겠다. 엘리스.」

「?」

< 15. 강행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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