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 강행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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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탄의 위성도시는 천장의 화면으로 화창한 오후 이미지를 조성했다. 오늘도 평소와 같이 각기 다른 목적으로 이동하는 차량과 사람들이 거리를 누비고 있다. 택배를 들고 어딘가로 향하는 드론은 택배를 받을 사람에게 소소한 기쁨이 될 것이고 노인의 짐을 들어주는 휴머노이드는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는 데 일조하고 있다.
신형 핵융합로를 다루는 시설에서는 최근부터 수소로 탄소를 만드는 효율적 작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전보다 적은 에너지로 더 높은 단계의 핵융합을 할 수 있게 되면서, 토성에 넘치는 수소의 활용성이 대두된 것이다.
우주 전역에서 가장 수요가 큰 대기자원은 역시 이산화탄소다. 뜨거운 행성을 식히는 것보다 차가운 행성을 데우는 것이 테라포밍 측면에서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항성을 두고 공전하는 행성들에서는 순수한 산소를 찾는 것보다 이산화탄소를 찾는 것이 더 쉬워서, 이산화탄소는 산소를 얻기 위한 보편적인 재료로도 가치가 있다.
탄소 역시 활용 범위가 넓은 원소로서 수요가 큰 편이고 산소는 물이나 이산화탄소가 풍부한 곳에서 싸게 수입할 수 있다. 광합성이 가능한 식물성 생명체 혹은 인공 광합성 설비를 통해 산소로 만드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기 때문이다.
토성의 신형 핵융합로는 수소로 탄소를 만드는 단계까지 효율성을 높였다. 결과적으로 토성은 수소, 탄소, 이산화탄소를 수출할 수 있게 되어 무역흑자를 증가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이산화탄소와 산소는 금성의 주요 수출품이기도 하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
신형 핵융합로는 폐쇄적인 네트워크 환경을 구축하고 있음에도 무언가에 해킹을 당했다. 극도로 압축되었던 에너지는 시설 주변의 모든 것을 기화시켰고 뜨거운 공기가 폭탄처럼 터지며 수많은 사상자를 냈다. 건물이 무너졌으며 차량은 녹아내렸고 사람은 고통을 느끼기도 전에 사라졌다.
우주와 환경을 분리하는 두꺼운 바닥과 천장에도 구멍이 뚫렸으며 그 구멍은 재생성 합금이 자동으로 메울 수 있는 면적이 아니었다.
결국 내부의 기체는 산 사람들을 몰고 우주를 향해 빠져나갔다.
그 즉시 2.5㎦에 달하는 구획이 차단되었다. 핵융합로가 있는 구획에 갇힌 사람들은 우주로 끌려가 얼어 죽거나, 건물 내에서 온몸이 터져 죽거나, 숨이 막혀 죽었다.
죽은 이들은 모두 민간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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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성 정부에서는 위성대통령과 국방부장관이 참석한 긴급대책회의가 열렸다.
“이번 테러로 이득을 보는 국가는 금성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조사에 따르면 금성으로 이어진 접속경로가 나왔으니, 토성의 신형 핵융합로에 사고를 발생시켜 국민의 정서를 조장하려는 의도인 것으로 보입니다.”
“고리에 정박한 가이우스에서도 함선 엔진실을 노린 사이버 공격에 의해 함선 한 척과 수천 명의 승무원들을 잃었다고 합니다. 카이사스 총사령관까지 당한 지금, 두고만 볼 수는 없습니다.”
“예. 그리고 가이우스는 개전 상황이 발생했을 때 저희를 돕기로 약속했습니다.”
“금성 총수부는 이번 사건이 자신들과 연관이 없다며 강력히 부인하고 있습니다.”
장관들의 사이에서 침묵하던 위성대통령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우리 토성은, 지금부터 금성을 ‘적국’으로 간주합니다.”
적국.
싸울 상대가 생겼다는 것은 곧 전쟁의 시작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놀라거나 당황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마치 이런 일이 생길 것이라고 예견했다는 사람들처럼.
국방부장관은 전략을 세우기에 앞서 말을 꺼낸다.
“···리버레이터는 무용지물입니다. 가이우스의 배후에서 분열이 있었다고 합니다. 만약 분열된 세력이 금성에 백신을 줬다면, 리버레이터를 사용해도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없고 토성의 국가적 이미지만 실추될 것입니다.”
“리버레이터는 보류하겠습니다. 가이우스가 함께 있으니 괜찮습니다. 그리고···. 화성의 PP가 공석인 지금이 아니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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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성의 정규군 함대가 웅장한 규모로 출격한다. 함포로 무장한 주력함 8척, 극강의 방어 시스템을 자랑하는 지휘함 1척, 강력한 주력함포로 화력을 보강하는 전함 38척, 각 전함에 적재된 각종 함재기가 1320기다. 그리고 행성에 상륙할 병기와 병력들이 수천 단위로 편성되었다.
함대는 일제히 태양을 향해 머리를 향한 채 앞뒤 중력을 왜곡하여 가속을 시작했다.
한편, 금성과 나란히 공전 궤도를 돌고 있는 이 타원형 구체는 지름이 21㎞다. 이것은 외부의 침략을 미리 감지하고 우주라는 전장에서 금성을 방어할 기지이자 모선이다.
금성 함대의 모선인 엑소스포터(Exospotter)는 금성과 약 45만㎞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이곳 엑소스포터의 13번 관측실에서는 토성의 생방송 뉴스를 주시하는 중이다.
- 토성 정부는 타이탄 위성도시의 신형 핵융합로와 81번 구획의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금성의 전쟁 도발 행위에 분명히 의사를 표명했습니다.
- 금일부터, 군사적 권한을 승인받은 위성대통령과 외교관의 24시간 최후통첩에도 근거 없이 부인하는 금성 총수부의 대처를 선전 포고로 간주하겠습니다.
- 우리에겐 자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킬 의무가 있습니다. 계속되는 외교적 냉전과 무역 이권침탈행위에 자국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저항의 불씨를 터뜨릴 권리가 있습니다. 카르다쇼프 신우주문명 국제법, 오메가 데이에 의거하여 최후통첩 후 24시간이 지난 현 시점에서 개전은 선언되었으며···
“정보관님. 타이탄에 주둔했던 함대가 이쪽 좌표로 가속하고 있습니다. 함대 자체는 7개 타격전단급 규모지만 타이탄 위성 이미지의 병력 공백을 봤을 때 5개 여단급 병력인 것으로 예상됩니다.”
모든 방향이 열린 우주 공간에서는 적들의 움직임을 필연적으로 알 수 있다. 적들이 빛보다 일찍 도착한다 하더라도 각국으로 연결된 신호증폭기와 그런 신호증폭기를 이용하는 정찰대의 보고가 있다면 거의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원리다.
그래서 같은 항성계 내의 행성국가에 공격을 가하는 입장인 토성은, 이런 불리한 요소를 최대한 피하기 위해 오메가 데이 방식을 채택했다. 최후통첩 후 24시간 이내에 상대가 조건에 응하지 않으면 전쟁을 선언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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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9일 오후 3시 46분.
엑소스포터 앞에 금성의 함대가 집결했다. 그리고 토성 함대는 그들을 향해 80만㎞까지 접근한 위치에서 속도를 늦췄다. 빛의 속도로 나아가는 광학병기를 사용했을 때 4초 안에 명중하는 거리다.
고요한 우주에서 전쟁은 빛줄기로 시작된다.
양측 함대가 서로를 향해 발포한다. 광활한 공간을 일직선으로 질주하는 형형색색의 빛줄기가 가운데에서 무수히 교차하지만 서로 충돌하는 빛줄기는 거의 없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실제 공간이 훨씬 넓기 때문이다.
함대를 이루는 각 함선은 발사와 동시에 요격을 준비한다. 조용하게 나아간 투사체들은 4초 안에 상대의 방어 시스템 범위 안에 들어온다. 함대는 집단연산으로 특정 좌표의 중력을 비틀거나, 회피 기동을 하거나, 투사체를 투사체로 요격했다.
태양계의 양측 함대에는 실드 기술이 없기에 접근하여 싸우는 것을 서로가 꺼리는 것이다. 그렇게 양측 함대가 공격을 주고받기를 35분. 토성 함대는 전쟁을 빠르게 끝내기 위해 준비했던 전략을 실행한다.
30척의 전함이 위, 아래, 옆으로 크게 퍼지며 금성 함대를 향해 가속한 것이다. 일단 가속 중인 함선을 정확히 공격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금성 함대도 그들의 움직임에 맞추어 산개하는 방식으로 대열을 구성했다.
각 위치에 도달한 토성 전함들은 가속을 늦추면서도 우주 공간을 배회했다. 그러면서 선체의 측면으로 무수한 함재기를 출격시켰다.
금성 함대의 입장에서는 전함들이 꽁무니로 고철 파편을 뿌리고 다니는 것처럼 보였다.
전함들은 금성 함대의 30만㎞ 앞까지 접근하여 이동, 함재기 출격, 함포사격을 계속했다. 거의 발사와 동시에 명중하는 거리에서 산개된 투사체는 요격하기가 매우 어렵다.
콰아앙! 콰아앙!
금성 함대의 몇 함선과 토성 함대의 몇 전함이 파괴되며 웅장한 폭음을 토해냈다. 동시에 금성 함대에서도 함재기를 내보내 전함들의 함재기에 대응했다. 서로가 맞불을 놓은 상황에 실드는 없었고, 1초에 수백 명이 죽는 접근전이 펼쳐진다.
어지러이 움직이며 개별 전투를 수행하는 함재기들은 목표물과의 거리에 따라 광학병기나 물리적 발사체를 선택적으로 발포했다. 그리고 토성 전함들은 기동성이 떨어지는 모선, 엑소스포터를 노려 주력함포를 발포했다.
우주에서 인간의 목숨을 불태워 펼쳐지는 폭죽놀이는 무수한 폭발을 일으켰다. 근접한 전함들의 주력함포에 완벽히 대응하지 못한 엑소스포터에는 피해가 누적되었다.
그러나 토성 전함들의 전략은 딱 거기까지만 먹혔다.
“자기장 계산 완료했습니다!”
“파멸 분광기에 출력집중, 포격 가능합니다.”
엑소스포터 역시 모선으로서 함대를 보호하기 위해 주력함포를 갖추고 있었다. 하나의 주포로 구성된 파멸 분광기는 600m의 포신을 자랑한다.
치지지지지직···!
지이이잉!!!
중성자 병기가 아광속으로 가속된 중성자를 사출하자 청록색의 빛을 내뿜으며 유연하게 꺾인 궤적을 그린다.
발사와 동시에 적중한 청록색 빛줄기는 토성 전함을 장작 패듯 반으로 쪼개버렸다. 엄청난 고열에 전함 내부의 물질이 분해되고 공기는 플라즈마로 변하여 열핵융합 폭발을 일으켰다.
콰콰콰콰콰쾅!!!!!
엑소스포터의 파멸 분광기에 스치기라도 하면 대처할 겨를도 없이 그대로 폭발하는 것이다. 파멸 분광기는 0.1초도 안 되는 발사를 5번 거듭 반복하였는데, 한순간 우주를 가로지르는 청록색 빛줄기가 점멸이라도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 빛줄기가 한 번 점멸할 때마다 토성 전함이 서너 척씩 폭발했다. 그리고 파멸 분광기의 궤적과 전함의 장렬한 폭발에 말려든 함재기들도 수십 기씩 연달아 폭발했다.
마치 태양의 모습을 표방한 듯 둥글게 퍼지는 폭발이 이어졌다.
그 끝에 금성 함대는 승리를 예감했지만,
“6시 방향에서 미확인 함대가 접근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희망은 산산이 부서졌다.
지휘주력함 3척, 전함 8척, 호위함 4척이 전방위적인 실드를 전개하며 접근해오는 것이다.
가이우스 함대의 실드는 3만㎞ 이하의 접근전에서 막강한 위용을 발휘했다. 그들의 접근을 저지하기 위한 금성 함대의 화력집중은 무용지물이었다.
반면에 가이우스 함대의 모든 함포를 동원한 전탄 사격은 파괴적이었다. 그들의 물리적인 발사체는 접근전에서 한 방 한 방이 위용을 발한다.
금성 함대는 엑소스포터의 함재기까지 모조리 출격하면서 대항하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함대의 병력이 줄어가는 속도가 시시각각 눈에 보일 정도로 빨랐고 그 와중에 토성 함대가 다시금 가속하며 투사체를 퍼붓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초토화 작전이었다. 금성 함대의 집단연산과 방어 시스템은 다각도로 들어오는 화력을 막아낼 수 없었다.
끝내 가이우스의 지휘주력함 3척이 동시에 엑소스포터를 노려 수십 발의 핵미사일을 퍼부었다. 금성 함대의 연산은 수십 초 내로 다가오는 핵미사일을 요격했다. 광학병기보다 훨씬 느린 핵미사일을 요격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계속 접근하여 다각도로 화력을 퍼붓는 가이우스 함대 때문일까.
금성 함대의 시스템은 핵미사일 중 단 한 발을 놓치고 말았다. 그리고 그 한 발은 회피기동이 어려운 모선을 노렸다.
쿠우우우우우우!!!
둥글게 퍼지는 폭발 속에, 금성 함대의 상징적인 모선이었던 엑소스포터는 뜨거운 잔해가 되었다.
이날 금성의 시민들은 대낮의 하늘에서 작은 별들이 무수히 떠오르는 광경을 눈에 담았다.
모선을 잃어버린 금성 함대는 결국 행성의 궤도 선에서 지원을 받기 위해 후퇴를 감행한다. 금성으로 오는 적들의 침입을 막지 못한 것이다.
이제 우주에서 막지 못한 전쟁의 불길은 행성까지 퍼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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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 총수부에는 뉴소사이어티의 교리를 믿는 자들이 다수 있다. 당연히 행성대통령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의 신성한 방어 구체가 파괴되었습니다. 이제 적들은 행성까지 밀고 들어와서, 우리의 선조가 세운 천상의 도시들을 무차별적으로 공습할 것입니다.”
창문 하나 없는 지하 방공호의 회의실. 각 자리에 앉은 자들의 얼굴에는 짙은 패색이 역력하다.
“피난민 수용은 계속하고 있으나, 공항이 마비 상태입니다. 일단 모든 방어 위성을 도시의 위로 옮겨야 합니다. 군사기지를 적도에 배치하고 상공에 전력을 집중할 때입니다.”
“가이우스라는 거대기업이 토성과 결탁했습니다. 이건 처음부터 계획된 일이 분명합니다. 그간 지구에서 진행되었던 우리의 종교적 활동들을 그들이 전부 와해했던 때부터 준비된 것입니다.”
“엄연히 정부와 국민이 있는 국가를 무력으로 정복하려 하다니···. 국제적으로 비난을 받아야 마땅한데, 오히려 토성에서의 신형 핵융합로 사건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각하. 태양계 연합 회의가 조속히 진행되어야 합니다. 저들이 스스로 카서스 벨리를 만들었다는 근거와 선제공격을 해왔다는 사실로 연합의 지원을 받아야 합니다.”
이들은 분노하고 있었다. 역사를 학습하지 못하고 과거의 실수가 되풀이되는 상황에 심히 분노하고 있었다.
분쟁은 수단으로 쓰면서 전쟁은 혐오하는 모순이었다.
“옳습니다. 그리고 이 시기에 화성의 PP가 정체불명의 세력에 살해당했다는 것까지 마땅히 추궁해야 합니다. 저들은 인류의 근간이 되는 태양계에서 가장 끔찍한 집단행동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이건 태양계 지도자들이 힘을 합쳐 심판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때마침 누군가 회의실로 들어와 행성대통령의 귀에 무언가를 보고한다.
“···.”
보고를 들은 행성대통령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되묻는다.
“뭐, 뭐? 방금 뭐라고 했어요?”
방금까지 열을 내던 자들은 입을 닫고 시선을 모았다. 상황 변화에 민감해진 귀와 눈이 집중하는 가운데, 놀라운 사실이 전파된다.
“그···. 베르도 행성대통령이 금일 태양계 연합 긴급회의를 열겠다고 합니다.”
“바, 방금 베르도···. 알 카즈네 베르도라고···?”
“화성 PP가 어떻게···”
“살아있습니까? 설마 살아있던 겁니까?!”
“예. 그렇습니다. 홀로그램으로 진행할 테니 예외 없이 반드시 참석하시라고···. 불참자가 있어도 30분 뒤에는 무조건 시작하겠다고 합니다.”
행성대통령은 호흡을 가다듬고 총리와 군사수장에게 진심을 다하여 요청한다.
“계속 밀리고는 있지만 한 시간···. 딱 한 시간만 버텨줄 수 있겠습니까?”
총리가 대답을 망설이는 사이에 군사수장이 확답을 내놓는다.
“제 모든 것을 걸고 반드시 수호하겠습니다.”
곧 전쟁의 판도는 외교적으로 역전되리라.
< 15. 강행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