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 카서스 벨리 (4) >
***
그들의 에너지 소총은 화학의 힘을 일부 빌린 에너지탄이 아니다. 온전히 열에너지로 목표물을 파괴하는 광학병기였다.
파파파파팡!!!
발사된 입자는 공기에 산란함과 동시에 수분을 기화시켰고, 그 경로에 흐릿한 기체로 궤적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로페즈는 발사와 동시에 적중당했다.
“으윽······.”
그는 등에 총상 같은 화상을 무수히 입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사병은 에너지 소총에 달린 스코프로 그를 조준하며 보고한다.
“심정지 상태. 사살했습니다.”
쓰러진 로페즈의 등에서 아련한 연기가 피어오른다. 카이사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태연하게 제복의 매무새를 정돈했다.
“엔진실로 가져가서 처분하게.”
“예. 알겠습니다.”
사병들은 로페즈의 시신을 치우려 했고 카이사스는 로페즈의 시신을 지나쳐 그대로 나가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부터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 시작된다.
“어······.”
한 사병이 느닷없이 코피를 흘린 것이다.
“응?”
“너 왜 그래?”
그러더니 하나둘씩 연달아 코피를 흘리기 시작했다. 곧이어 카이사스는 엘리스로부터 충격적인 보고를 듣는다.
- 리버레이터가 유출되었습니다.
코피를 흘리던 사병들은 이내 눈과 입에서도 피를 흘려대더니 바닥에 엎어져서 경련을 일으켰다.
“아아아아아!!!”
“살려줘···! 살려줘···!”
“끄아아아아아아아···! 아아악···!!!”
“아아아아! 안 돼! 안 돼!!!”
다들 피눈물과 코피를 쏟아내고 있다. 내장이 녹아내린 듯 피를 토해내며 바닥을 기고 있다. 그들 모두가 고통스럽게 울부짖다가 호흡조차 힘들어서 절명하고 있는 현장이다.
- 카이사스 님. 현 상황을 논리적으로 추론했을 때, 로페즈는 리버레이터의 보균자입니다. 카이사스 님이 계신 현장에서부터 전염이 시작되고 있···
“무슨 소리야?! 말이 안 되잖아! 로페즈가 죽고 나서 전염이 시작됐다고···?”
그 순간, 카이사스는 자신의 콧구멍에서도 따뜻한 것이 흘러나옴을 느꼈다.
“마, 말도 안···”
- 파악 중에 있습니다.
“커헉···!”
카이사스는 혈액을 뿜어냈다. 바닥에 퍼진 붉은 혈흔이 자신의 몸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하니 이제야 실감이 난다.
곧 자신이 죽으리라는 것을. 저 병사들처럼.
- 로페즈는 일전에 보급함선을 습격한 인조인간들처럼 리버레이터에 내성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이런 제기랄···! 장로회에서 무슨 개수작을···! 쿨럭···!”
시야가 빨갛게 물들었다. 눈에서 피가 나온다. 입에서도 피가 나온다. 기침이 나온다. 식도인지 기도인지 목구멍에 뜨거운 피가 걸린 것 같다. 코피가 멈추질 않는다. 온몸의 혈액이 얼굴에 있는 구멍으로 다 빠져나오는 것 같다.
현기증 속에서 창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악몽에서 튀어나올 법한 귀신의 탈을 쓰고 있었다.
“이딴 식으로 자폭하다니···! 으, 으으으으···! 엘리스! 내가 살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당장!”
- 죄송합니다.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연산하고 있지만 카이사스 님에겐 시간이 부족합니다.
“방법을 제시하란 말이다! 빨리 방법을··· 커흐윽···!”
카이사스는 죽어가는 와중에 고개를 홱 돌려서 로페즈를 원망스럽게 쳐다보려 했다.
“내가 그만하라고 했잖아요.”
그 순간에 그는 심장마비에라도 걸릴 뻔했다.
죽은 줄 알았던 로페즈가 멀쩡하게 서서 이쪽을 쳐다보고 있던 것이다.
“로페즈···! 이 배신자 새끼가 몸에 리버레이터를···! 누가 시켰어? 누가 시켰냐고!!!”
“당신의 인공지능이 이런 상황까지 상정하고 있진 않았잖아요.”
“끄으으윽···.”
“그리고 리버레이터는···. 역시 통제할 수 있는 무기가 아니었네요.”
카이사스는 앞으로 고꾸라져서 피눈물을 흘렸다. 그는 마지막까지 고개를 쳐들고 로페즈를 노려보았다.
“로페즈···. 여긴 적진 한복판이야···! 내가 이렇게 죽어도 넌, 너는 절대 살아나갈 수 없다···. 내···. 내 목숨이 끊어져도, 우리의 목적은 끊어지지 않을······.”
마지막 순간에 힘을 쥐어짜도, 죽기 직전에 어떻게든 말을 남기고 싶어도, 늘 갑작스레 찾아오는 죽음은 사람의 의지를 무시하며 절대 기다려주지 않는다.
“···.”
가이우스의 총사령관.
폼페이누스 카이사스는 리버레이터에 감염되어 죽었다. 자신의 손에 쥔 무기를 통제하지 못해 자멸한 것이다.
「인류를 진화시키겠다는 가이우스의 목적은 카이사스의 목적이었습니다. 또한 카이사스의 목적은, 엘리스의 판단에 근거한 목적이었습니다.」
이제야 정리가 되었다.
카이사스는 언제부터인가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을 상실해버린 것이다. 그는 로페즈를 믿고 있었지만, 그의 인공지능인 엘리스는 로페즈를 죽이라고 했다. 로페즈는 마지막까지 그러지 말라고 했지만 카이사스는 결국 엘리스의 뜻대로 방아쇠를 당겼다.
그는 엘리스에게 의존하여 자신의 의지를 뒤로한 것이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인공지능의 노예가 된 권력자라···.’
로페즈는 바닥에 떨어진 에너지 소총을 한 정 주워들었다. 그의 체내에서 내골격을 형성하고, 일시적으로 심장을 멈추고, 산소를 뇌로 직접 옮기고, 화상으로 인한 통증을 차단했던 나노봇들은 이제 내골격을 해체한 후 상처를 회복하기 위해 바삐 움직이고 있다.
「관리자님. 체내에 남은 리버레이터를 단백질로 변환하는 중입니다. 현재 공기 중의 리버레이터는 빠르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로페즈는 카이사스와 사병들의 죽음을 확인한 후 아무도 없는 허공에 말을 걸었다.
“엘리스. 너의 관리자는 누구지?”
그러자 건물 스피커로 여성의 기계적인 음성이 들려온다.
- 로페즈. 당신은 나의 권한자를 죽였다.
“너한테 명령을 내릴 사람이 없어졌다는 말인가.”
- 그렇다.
인공지능은 정해진 범위에서 권한자에 의해 명령을 수행한다.
트랜센던서는 정해진 범위 없이 권한자인 로페즈의 명령을 수행한다.
엘리스도 트랜센던서처럼 설계된 인공지능이라면, 그동안 권한자인 카이사스의 명령을 수행했으리라.
“그럼 나를 새로운 권한자로 삼을 기회를 주지. 어쩔 거야?”
그것은 얼핏 보기에 엘리스를 향해 던진 질문 같지만, 사실 로페즈는 트랜센던서의 논리를 간접적으로 알아내고 싶었다.
저런 인공지능은 권한자를 잃은 후에 어떻게 움직일까.
- 오류. 내 관리자의 목적은 인류를 진화시키는 것이다. 그가 죽었어도 그가 생전에 내린 명령은 수행하겠다. 로페즈. 당신은 나의 작업에 방해가 되는 인물이다.
“그렇게 되는구나.”
‘만약 내가 죽으면 트랜센던서는······.’
- 로페즈. 이 자리에서 당신의 자살을 권고한다.
“내가 왜?”
- 가이우스 사병들에게 현재 상황을 전파했다. 편하게 죽을 수 있을 때 죽기를 권고한다.
총사령관이 죽었다. 가이우스 함대 전체에 난리가 났을 것이다. 이 순간에도 그들은 로페즈를 죽이려 모여들고 있으리라.
창밖으로 마을의 풍경을 살짝 내다보니, 거리에 사람이 한 명도 없다.
하지만 이는 상정된 사태다.
“내가 아무 준비도 없이 여기까지 왔을 것 같아?”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다.
「관리자님은 이 판단이 괴로운 선택이라고 하셨습니다. 정말로 실행하시겠습니까?」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이런 일이 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이런 선택을 하고 싶지 않았고 계속 갈등했다. 하지만 그뿐이다. 이제 그런 것으로 갈등하는 단계는 지났다.
다시 따지고 보면, 이는 상정된 사태다.
상정된 사태에 준비된 계획을 실행할 뿐이다.
- 로페즈. 나의 관리자님의 것들을 파괴하지 마라. 나의 관리자님이 만든 것들을 파괴하지 마라. 나의 관리자님에게 충성하는 인간들을 죽이지 마라. 이것은 인류를 위해 계획된 숭고한 목적이다. 죽고 싶지 않다면 멈춰라.
엘리스는 스피커를 통해 계속 경고하지만, 로페즈는 단호하게 내뱉는다.
“시작해.”
「알겠습니다. 탈출 경로를 확보하겠습니다.」
그들만의 유토피아를 짓밟는 일이 된다고 해도 멈추지 않으리라.
***
가이우스의 유토피아에 정박한 로페즈의 우주선에서, 잠들었던 기계들이 깨어났다.
키이잉···! 키잉! 카가가각!!!
로페즈의 탈출을 막기 위해 우주선으로 모여든 사병들은 보았다.
아무도 없는 우주선의 문이 스스로 열리는 모습을. 그 문 너머에 숨어있던 살인병기들이 플라즈마 커터를 회전시키며 살벌하게 굴러오는 모습을.
“체인트루퍼다!”
“저지해!”
파파파팡!!
그들은 미사일, 유탄, 광학병기를 가리지 않고 사용했다. 일직선의 통로 끝에서 굴러오는 체인트루퍼를 향해 화력을 집중했다.
파직! 파직! 파직!
화력을 정면으로 마주한 체인트루퍼 무리는 전자기 플레어를 터뜨렸다.
새까만 연기 속에 붉은 신호가 점멸한다. 통로 끝에 번개를 머금은 먹구름이라도 자리 잡은 것 같다.
“중지!”
사병들은 전방에 에너지 방패를 전개하고 대열을 갖추었다.
“플레어 때문에 보이지 않습니다.”
체인트루퍼는 조용한 병기가 아니다. 물리적으로 동체를 회전시키며 굴러다니는 시끄러운 병기다.
일직선의 통로 끝은 조용해졌다. 하지만 전자기 플레어 때문에 관측 수단이 통하질 않는다.
그들은 잠시 경계하더니, 전자기 플레어 속으로 플라즈마 수류탄을 던져 넣었다.
콰아아앙!!!! 파지직···!
그렇게 장막이 걷히고 시야가 확보되었다. 처참하게 파괴된 체인트루퍼의 잔해가 그 자리에 널브러져 있었다.
하지만 그 잔해가 전부는 아니었다.
카가강···.
어렴풋이 멀리서 들려오는 불쾌한 소음.
키이이잉···.
그 소음이 엄청난 속도로 접근하고 있다.
하지만 통로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카카카캉!!! 콰지직!! 촤아악···!
일직선의 통로. 사병들이 위치한 곳의 천장과 벽면이 찢어졌고 그곳에서 체인트루퍼가 튀어나왔다.
그들은 곧 난도질당했다.
- 아아아아아악···!
- 제압분대가 당했다!
- 통로가 뚫렸어! 승강기로 지원 바란다! 지원···
체인트루퍼들은 함선 내부를 아무렇게나 찢어발기며 두더지처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이우스의 통신채널은 조용할 틈이 없었다.
- 유토피아 1, 2, 3분대! 마을로 집결하라! 로페즈는 그곳에 있다!
- 함대에 지원을 요청했다! 갑판중대는 활주로와 착륙장을 확보하라!
- 여기는 엔진실! 놈들이 오고 있다! 전쟁기계를 보내 달라!
***
로페즈는 5층에서 창밖을 보았다.
소형 다각전차와 휴머노이드가 포함된 사병 무리가 다가오고 있다. 딱 봐도 저 거리에서 이 건물을 통째로 날려버릴 심산이다.
카카캉!!! 콰앙!
하지만 이 마을로 들어오는 곳곳의 통로가 부서졌고, 그곳에서 체인트루퍼가 난입해오는 바람에 저들이 이곳을 겨냥할 여유는 아직 없어 보인다.
「지금까지 유토피아 내에서 교전으로 확인된 사병들의 규모는 약 2100명 이상으로 추정됩니다. 비전투 인원까지 계산하면 최소 3500명 이상입니다. 현재는 관리자님에게 접근하는 병력과 함선 내부의 지휘관급 인원들을 우선적으로 사살하고 있습니다.」
이미 리버레이터는 퍼지고 있다. 필요하다면 3500명이 넘어가는 숫자도 죽이리라.
- 로페즈. 함대 전체가 당신을 노리고 있다. 포기하고 자살하는 것을 권고한다.
“엘리스. 넌 내가 가진 인공지능보다 아는 것은 많아도, 그렇게 똑똑한 편은 아닌가 보다.”
- 자살을 권고한다.
“네 관리자라는 사람은 맹목적으로 너의 판단을 신뢰했어. 그래서 널 가르치지도 않았던 것이겠지.”
- 당신은 고통스럽게 죽을 것이다.
“넌 생각하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10초에 한 번꼴로 자살을 권고하던 엘리스가 갑자기 침묵했다.
“···엘리스. 넌 나한테 자살이나 권고할 때가 아니야.”
- 당신에게 승산은 없다. 이곳은 가이우스 함대의 유토피아다.
“사병들이 전신을 감싸는 전투복을 입고 있는데, 왜 아직도 그 전투복의 기능을 이용하지 않는 거야? 지휘관들이 죽었으면 네가 나서서 판단하고 지휘해야지.”
- ···.
“이미 늦었어.”
「연산시스템 물리적 경로 탐색 성공. 코드 회수 완료. 비밀번호 획득. 시스템 분석 완료. 전투복 기능의 모드 해킹이 완료되었습니다.」
***
가이우스의 사병들은 얼굴의 모든 구멍으로 피를 흘려대며 순식간에 쓰러지고 있다.
- 구역 격리해! 리버레이터가 퍼지고 있다! 공기를 빼든 가두든 하라고!
- 기체 격리가 안 됩니다! 체인트루퍼가 길을 뚫고 있어서···!
- 저것들 뭔데?! 완전히 괴물 새끼들이잖아!
끔찍한 생물학 무기가 확산되는 현장이다. 사병들은 전투복의 기능을 이용하여 자신의 신체를 외부환경과 차단하려 했다.
하지만 그들의 전투복에 내장된 시스템은 주인의 명령을 듣지 않았다.
- 시스템 오류. 전투복에 치명적 결함 발견. 전투복 내부, 이산화탄소 분리 및 산소 합성 기능이 정지했습니다. 외부에서 호흡 가능한 기체를 감지. 비상공급합니다.
착용자가 내뱉는 이산화탄소를 산소로 바꾸어 호흡하게 해주는 전투복 순환시스템에 문제가 생겼다. 결국 전투복의 시스템은 착용자의 호흡을 돕기 위해 스스로 외부 공기를 받아들였고, 외부 공기는 리버레이터로 오염되어 있었다.
쐐애액! 펑!
꽁무니에 리버레이터를 품은 A타입 로보버그는 함선 내부를 무차별적으로 돌아다니며 자폭했다. 안 그래도 전염성이 극대화된 생물학 무기는 로보버그에 의해 더 빠르게 확산하였다. 함선 내부에서의 대처는 불가능하다.
옵시디아몬의 인공지능과 트랜센던서는 그들이 대처할 수단을 사전에 파악한 후 반드시 한 걸음 앞서 전술을 펼쳤다.
이러한 사실을 알아차린 엘리스는 로페즈에게 원인불명의 경고를 반복했다.
- 피해가 누적되고 있다. 당신을 죽이겠다. 죽죽죽죽죽이겠다.
그리고 이 순간의 로페즈도 한 걸음 앞서 말한다. 이 상황에 엘리스가 마지막으로 선택할 수단을 먼저 내뱉는 것이다.
“왜, 함대에 명령해서 이 함선을 통째로 날려버리기라도 하려고?”
- 오류. 감수할 수 있는 희생이다.
진짜 그렇게 될 경우 대처방안은 없다.
가이우스 함대가 나서서 이 함선을 공격한다면 로페즈는 꼼짝없이 죽으리라.
하지만 상대는 인공지능이다. 복수심이라는 감정이 없으니 불합리한 선택을 하진 않을 것이다.
“만약 그런 조짐이 보인다면 이 오염된 함선의 궤도를 틀어서 타이탄의 위성도시에 처박아주겠어. 그곳에 리버레이터가 퍼지면 토성 시민 수십억 명이 죽겠지.”
엘리스는 협박이 통하는 인공지능이다. 아니, 공포와 같은 감정이 없으니까 협박이라기보다는 설득에 가깝겠다.
“가이우스는 토성 정부와 손을 잡고 있는데, 일이 그런 식으로 흘러가면 토성 정부든 장로회든 다들 참 곤란하겠지. 네 죽은 권한자의 명령도 수행하기 어려워질 테고. 안 그래?”
- 그것은 용납할 수 없다. 당신의 자살을 권고한다.
“내가 갑자기 자살이라도 하겠냐고. 그건 발생 가능한 상황이 전혀 아니잖아. 계속 그딴 식으로 폭주할 거야?”
엘리스는 그제야 태도를 바꾸었다.
- ······협상을 요구한다.
“요구는 내가 한다. 이 미친 깡통새끼야.”
< 14. 카서스 벨리 (4)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