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 카서스 벨리 (2) >
***
옵시디아몬은 가이우스의 엄청난 주문량을 처리했다. 그리고 그들의 하청업체인 라 코만데도 상당량을 주문했다.
「지난 주 B타입 로보버그 6130기, 드론 하이브 6기, 전자기 플레어 455발, 체인트루퍼 126기, 벡터 미사일 2발을 처리했습니다.」
「추가 주문은 계속 들어오고 있습니다.」
「옵시디아몬 계좌 잔액은 약 2465억입니다.」
화성 외부에서의 주문은 끊임없는 파도처럼 들어왔고 화성 내부에서의 판매실적 역시 하루를 넘길 때마다 폭발적인 상승세를 탔다. 전문가들은 옵시디아몬의 성장지표를 보고 어떻게 그래프가 절벽처럼 뛸 수가 있냐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결코 평범한 성장세가 아니었기에 옵시디아몬은 다시금 여러 매체와 매스컴에서 언급되는 기업이 되었다. 자연스레 옵시디아몬의 주식을 사려는 자들이 몰려들었고 이미 옵시디아몬의 주식을 보유한 자들은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옵시디아몬은 대기업이나 공기업이 아님에도 극악의 입사경쟁률을 자랑했으며 동시에 화성에서 가장 일하기 좋은 직장 3위로 떠올랐다.
개인과 집단,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옵시디아몬의 상승에 올라타려 손을 뻗어댔다. 그 결과, 옵시디아몬은 사업에 있어서 필요한 인력이나 업체를 손쉽게 고를 수 있는 입장이 되었다.
당연히 기존에 로페즈와 함께 하고 있던 화이트홀, 하이게이트, 밀라노이, 오비탈플래닛은 자신들이 할 일을 빼앗기지 않으려 옵시디아몬에 유리한 제안을 자발적으로 펼쳐서 함께 사업을 확장했다.
로페즈는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르고 정신없이 일했다. 결재, 미팅, 협상, 회의 등 회장 직함을 단 사람이 처리하기엔 말도 안 되는 업무량이었지만 인공지능의 보조가 있었기에 어떻게든 가능했다.
그것이 3월. 한 달 만에 벌어진 일이었고 4월이 되어선 옵시디아몬의 시가총액이 28조까지 상승하여 화성의 7위 재벌 집단이 되었다. 이는 화성 시가총액 6위(31조)인 하이게이트와 비슷한 숫자다.
즉, 지표만으로는 대기업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콜로니 사업은 4월이 되어서 건설단계에 올랐고 정부는 기업연계부를 시켜서 옵시디아몬의 인공지능 모듈이 올림푸스 도심의 교통 시스템에 적용될 수 있도록 조치했다. 뿐만 아니라 로페즈는 과학기술로 자국의 국방력에 기여하겠다는 포부를 내세우며 정부에 플라즈마 무기 기술의 청사진을 판매했다.
화성의 정규군은 기업의 손을 빌리지 않고도 플라즈마 무기를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화성 시민들은 로페즈와 옵시디아몬에 찬사를 보냈고 화성의 외교적인 목소리에는 나날이 힘이 실렸다.
이제 로페즈가 아무 거리를 거닐고 있으면 못 알아보는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아이들은 옵시디아몬의 인공지능이 내장된 장난감을 사달라며 부모에게 매달렸고, 청소년들은 옵시디아몬의 인공지능 보조를 받으며 공부했다. 청년들은 옵시디아몬에 취직하는 것이 목표가 되었고 주주들은 옵시디아몬의 몇 없는 발행주를 단 한 주라도 가지는 것이 꿈이 되었다. 도시 생활에 지친 부유한 현대인은 머지않아 완성될 옵시디아몬의 콜로니에 입주를 희망했고 화성 각 지역의 대학교에는 옵시디아몬이 후원하는 장학금 제도가 생겼다.
화성에서는 옵시디아몬의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게 되었다. 옵시디아몬은 단순히 프로그램을 판매한 것이 아니라, 더 우월하게 설계된 새로운 시스템을 사회에 제시한 것이다.
그리고 일각에서는 그런 말이 오갔다. 화성 전체의 범죄율이 올해부터 0%에 수렴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경찰과 검찰이 더 똑똑해진 것도, 정부와 대기업의 높은 사람들이 다들 자진해서 좋은 일을 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우연이 아니라고.
4월 20일에는 옵시디아몬 코퍼레이션이 밀라노이를 인수합병했다. 완전한 형태로 옵시디아몬에 흡수된 밀라노이의 이해관계자들은 로페즈의 열정적인 발표, 매우 낙관적인 미래관, 트랜센던서의 정확한 산출로 불만이나 마찰 없이 설득해냈다.
화성의 모든 곳에 인공지능이 퍼져있다. 사람들의 머릿속에 옵시디아몬과 로페즈가 확실히 각인되었다. 트랜센던서는 각 개인의 모든 것을 손에 쥐고 있다.
사람들은 사회가 투명해졌다며 믿고 있지만, 사실 화성 전체는 완전히 로페즈의 손바닥 위에 들어온 상태다.
투명한 사회, 깨끗한 사회, 자유로운 사회, 밝은 미래.
그 모든 것들이 예외 없는 감시와 인위적인 설계에 의해 거짓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게 위선이라면 어떤가.
이 나라가 잘 살게 되면서 모두가 기뻐하고 있는데.
‘무조건 절대다수가 좋아하는 일이 옳은 일이다.’
로페즈의 사고에는 어느새 그런 개념이 자리 잡게 되었다.
***
정신없이 시간이 흐르고 어느덧 4월 27일.
밀라노이를 흡수한 옵시디아몬은 로페즈의 적극적인 추진력과 트랜센던서의 힘을 빌려 행성대통령 경호업체로 선정되었다. 문자 그대로 화성 내에서 경호업무만 수행하는 것이다.
밀라노이 출신인 현 옵시디아몬 사병들은 가상훈련, 신체 개조, 약물 보조, 지능형 전투복으로 최정예 병력이 되어 재탄생했다.
오늘은 행성대통령의 시범 경호가 있는 날이다. 차후 실전 경호를 수행하기에 앞서, 안전한 장소에서 행성대통령을 시범적으로 경호하는 것이다.
그리고 4월 27일은 개시의 날이다.
“사람은 누구나 취미와 여가활동을 필요로 하네. 행성대통령도 예외는 아니지.”
“그런 것 같습니다.”
알 카즈네 베르도(Al Khazneh Verdo). 85세에 금빛 머리칼을 가진 그는 백색정치당 출신이며 화성의 현 행성대통령이다.
로페즈는 주변 경치를 둘러보며 숨을 들이마셨다.
“이렇게 보니 붉은 토양보다는 숲의 나뭇잎이 더 잘 보이네요. 화성의 자연이 전체적으로 녹색인 모습은 정말 오랜만에 봅니다.”
“산 정상에 올라서 내려다보면 무엇이든 아름답게 보이지.”
베르도와 로페즈는 이 근처에서 가장 높은 산의 정상에 올라왔다.
올림푸스 UN에서 멀찍이 떨어진 미개발 지역이다. 담수 바다와 맞닿은 해안선을 따라 광활한 숲이 펼쳐져 있다.
로페즈의 열 걸음 뒤에는 그의 경호원인 자이칸, 베르도를 경호할 옵시디아몬 사병들이 넓게 산개한 채다. 그리고 열 명 남짓한 정장 차림의 인물들과 무장한 정규군들도 넓은 풀밭에 퍼져있다.
하늘에는 소음 없이 비행하는 A타입 로보버그와 정규군의 드론 및 소형 헬기가 사방을 경계하는 중이다. 그리고 당장 눈에는 보이진 않지만 저 하늘의 구름 위로는 궤도 방어 위성과 화성 정규군의 함대가 위치한 상태다.
“인생도 비슷하다고 생각하네. 옛 지구에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요,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찰리 채플린. 지구의 역사적 인물입니다.」
“네. 들어본 적 있습니다.”
“내가 정치에 발을 들이고 50년이 넘게 지나서야 올바른 정치를 펼칠 수 있게 되었네. 늘 주변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만행들을 보면서···. 그렇게 50년을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이든 멀리서 보았기 때문이네.”
“아마 각하께서는 50년이든 70년이든 얼마나 시간이 걸리더라도 행성대통령을 하시게 되셨을 겁니다.”
“어찌 보면 자네가 그 시기를 앞당겨준 셈이겠지.”
“제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멋진 말이군.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
베르도는 품속에서 십자가가 새겨진 두꺼운 책을 꺼내더니 가슴에 대고 눈을 감았다.
로페즈는 이 좋은 경치를 눈앞에 두고 저렇게 눈을 감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각하. 뭔가 생각에 잠기신 건가요?”
“이 나라와 국민들을 위해 기도를 올리고 있네.”
기도라는 것은 로페즈에게 조금 생소한 개념이었다.
“평소에도 국민들을 위해 일하시면서 여가시간까지 그렇게 쓰셔도 괜찮습니까?”
“사실, 내가 이렇게 천 번 만 번 기도를 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은 단 하나도 없네.”
“그러면 어째서 기도를 하시는지···.”
“내 진심에 의미를 두는 것이지. 이 책임 막중한 자리에 오른 내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지 않기 위해서 방향을 다짐하는 것이네. 그리고, 정치인은 대중적인 종교를 가지는 편이 좋아. 이건 다 내게 필요하기 때문에 믿는 것이지, 진심으로 믿어서 믿는 것이 아니라네. 사실을 믿는 게 아니라 믿음을 믿는 거야.”
대충 무슨 말인지 알면서도 모르겠다.
“아···. 하하. 그런 의미였네요.”
“자네는 어떤가? 자네는 보이는 것을 믿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에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나?”
로페즈는 하늘로 시선을 던졌다.
보이지는 않지만 지금도 저 구름 위, 차가운 우주에 도사리고 있을 적들을 그렸다.
“저는 숫자로 측정할 수 있는 것만 믿습니다. 제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것은 중요하지 않죠.”
베르도는 두꺼운 책을 다시 품속에 집어넣으며 웃었다.
“정말, 옵시디아몬의 회장님다운 생각이네.”
두 사람이 그러고 있으니 산 정상의 바람이 제법 강하게 불어와 발밑의 풀들을 떨게 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발밑의 풀들처럼 떨거나 하지 않았다.
베르도는 뒷짐을 쥐며 뒤로 돌았다.
“이제 내려가지.”
“예. 각하.”
로페즈는 베르도와 나란히 걸었다. 주변에 있던 자들은 어딘가로 통신을 보내며 잠시 그 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4월 27일은 개시의 날이다.
베르도와 로페즈가 산 정상에서 내려가려던 그 순간, 바람의 소리도 새의 날갯짓 소리도 아닌 이질적인 굉음이 그들의 전방에서 들려왔다.
휘이이이이이잉!!!!
정규군, 정부 요원, 사병, 누구나 할 것 없이 동시에 반응했다.
“뭐야?!”
“각하···! 엎드리십시오!!!”
“뭔가 온다! 실드 전개해!”
아까 보았던 아름다운 경치, 그 숲속에서 무수한 유탄 같은 것이 하늘로 포물선 궤도를 그리며 날아오는 것이다.
“여기서 북쪽 방향 2킬로미터 지점에 발사원이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자 하늘 너머에서 주홍빛으로 타오르는 길쭉한 것이 구름을 가르며 떨어졌다.
콰콰콰콰콰콰쾅!!!!
녹음이 우거졌던 숲은 궤도 폭격으로 일순간에 화염이 작열하는 불바다가 되었다.
“이미 발사된 것들이 옵니다!”
상황은 순식간에 위기로 치달았고 산 정상에 있던 자들은 행성대통령을 지키기 위해 미리 설치해둔 에너지 방벽을 돔 형태로 펼쳤다.
팅! 티티팅!
주먹 크기의 유탄처럼 생긴 것이 에너지 방벽에 충돌해서는 폭발하지 않았다.
키이이이잉···!
에너지 방벽에 충돌한 그 물체들은 폭발하는 대신, 번개처럼 전자를 뿜어대며 에너지 방벽을 이루는 인공 입자에 간섭했다.
로페즈는 눈을 번뜩이며 모두에게 들으라고 소리쳤다.
“실드가 꺼집니다···!”
그가 말하기가 무섭게 에너지 방벽이 희미하게 변하며 빈틈을 내어주었다.
휘이이이이잉!!!
그 빈틈으로 또다시 방금과 같은 물체들이 들어왔다.
“발사원이 바다에도 있다!!”
해안과 인접한 바다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물줄기가 솟아오르고, 곧이어 물줄기의 위로 포물선 궤도가 나타나 흐릿한 무지개를 만들었다. 무지개가 끝나는 지점 아래에는 에너지 방벽이 있었고 그 에너지 방벽에는 빈틈이 있었다.
푸쉭! 푸쉭!
유탄처럼 생긴 물체는 공중에서 기체를 사출하며 스스로 궤도를 틀었다. 저런 방식으로 일시적인 비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 에너지 방벽 안으로 떨어진 물체들은 폭발물이었다.
퍼퍼퍼펑!!!
“끄아아악···!”
“아아아아아···!”
“사병, 군인들이 당했다!”
“발사원이 해안에도 있다고! 빨리 쏴!”
“각하가 위험하다! 전술팀 지원 바란다!”
온몸으로 행성대통령을 지키려던 자들은 그 폭발에 휘말려 심각한 화상을 입거나 파편을 맞고 즉사했다. 베르도의 등을 감싸고 있던 로페즈는 팔에 찰과상을 입은 채 베르도와 함께 엎어졌다. 그런 두 사람의 앞으로 자이칸이 뛰어왔다.
“회장님! 각하! 가셔야 합니다!”
로페즈는 자이칸의 부축을 받아 가까스로 일어섰고 이어서 로페즈가 베르도를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베르도의 얼굴에는 두려움보다 당혹감이 가득했다.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것이다.
로페즈는 베르도의 얼굴을 똑바로 보며 소리쳤다.
“각하! 뛰셔야 합니다! 빨리 뛰셔야 합니다!”
“대체 누가···. 누가 이런 짓을···”
로페즈는 베르도를 감싼 채 뛴다. 다시금 해안선으로 강렬한 궤도 폭격이 떨어지고 있다.
콰콰콰콰콰쾅!!!!
해안선의 지도가 바뀔 정도의 화력이다. 또한 산 아래에서는 정부 소속의 지원 병력들이 우르르 몰려오고 있다.
“저기에 계신다!”
“각하를 감싸! 당장!!!”
그들 중에는 휴머노이드나 소형 전쟁기계도 있었고 에너지 방패를 들고 있는 자도 있었다.
그러나 늦었다.
쐐애애애애액!!!!
처음에 들었던 그 소리. 바람 소리도 아니고 새의 날갯짓 소리도 아닌 이질적인 굉음이 바로 뒤통수까지 다가든 느낌.
그 느낌을 로페즈가 감각적으로 인지했을 때는 이미,
퍼어억!!!!
“가, 각하······?”
쏴아아···! 쏴아아···!
머리가 사라진 베르도의 목구멍에서 피가 일정한 박자로 솟아오른다.
촤아아······.
베르도의 피를 뒤집어쓴 로페즈와 자이칸, 그 밖에 모두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굳어버렸다.
철퍼덕···.
머리를 잃은 몸은 모든 관절부가 망가진 인형처럼 풀밭 위에 무너졌다.
“각하께서···. 당하셨···”
“아···. 안 돼!!!!”
서서히 퍼지는 혈흔과 저 멀리서 홀연히 불타는 숲. 시간이 멈춘 것 같은 감각 속에 바람조차 멈춰서, 풀들까지 고개를 숙여 침묵했다.
< 14. 카서스 벨리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