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 비히리비엘 (2) >
***
카르민펙토스 재단의 생체병기 수백 마리가 붉은 살결을 일으키며 파도처럼 몰려온다.
“후퇴! 후퇴해!!!”
그들은 왔던 길로 잽싸게 되돌아가기 시작한다. 이어서 체인트루퍼와 로보버그가 그들의 뒤를 막아주었다.
퀴이이이이익!!
선두의 생체병기들은 회오리치는 주둥이를 벌리며 타액을 흘려댔다. 꼬리를 휘두르고 강력한 산성 물질을 쏘아댔다.
쐐액! 퍼퍼펑!
키이이잉!!! 카가가가각···!
로보버그가 녀석들의 주둥이로 들어가 폭발하고 체인트루퍼가 녀석들의 무리로 뛰어들어 작동이 멈출 때까지 플라즈마 커터를 회전시켰다. 머릿수가 많아도 너무 많아서 붉은 무리에 톱날이 들어가 살점을 분쇄하는 것만 같다.
라 코만데의 사병들은 지하 7층으로 올라왔다. 무리에서 이탈한 몇 생체병기가 그들의 뒤를 쫓는다.
타타타탕!!!
후열의 사병들이 사격을 가하고 유탄을 쏘지만 화력이 부족하다. 생체병기의 전신을 두른 갑피가 괴이하게 단단하다. 여기엔 전쟁기계도 전차도 없다. 또한 지금쯤이면 체인트루퍼와 로보버그가 지하 8층에서 전멸했으리라.
“끄아아아악!!!”
“씨발···!”
“쟨 이미 늦었어! 뛰어!”
녀석들의 꼬리에 다리를 잘린 사병이 고통에 신음했다. 생체병기는 낙오된 사병에게 하이에나처럼 몰려들어 그를 산 채로 해체했다.
촤악! 쩌업! 쩌업! 으직!
“아아아악!!! 으아아아아아아아!!!”
폭파병이었던 사병은 죽기 직전에 최후의 발악으로 수류탄 꾸러미를 터뜨렸다.
콰앙!!!
폭발의 중심에서 푸른 혈액이 사방으로 방출되었다. 누구의 것인지도 모를 살점이 바닥을 구르며 일시적인 적막을 가져왔다.
그들은 지하 6층, 5층, 4층을 지나 3층까지 단번에 올라왔다. 전투복의 신체능력향상 기능이 있어도 긴장감과 두려움에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고요하다.
옆 사람들이 뛰는 소리와 헉헉대는 소리밖에 안 들린다. 그렇게 그 끔찍한 괴물들로부터 조금은 벗어났겠거니 생각하던 순간이었다.
애당초 괴물은 그들의 근처에 있었다.
콰아악!!
달리던 사병들의 발밑에서 바닥을 찢고 튀어나온 것이다. 콘크리트 파편과 돌멩이가 튀어 올랐고 그 사이에서 생체병기 두 마리가 꼬리를 휘둘렀다.
쩌억!
그 꼬리에 강타당한 한 명은 옆으로 날아가며 내장을 길게 쏟아냈다. 주변의 사병들에겐 죽은 동료의 핏방울이 거품처럼 튀었다.
“쏴! 쏘라고!”
“으아아아! 죽어!!!”
칼을 휘둘러도 닿을 거리에서 방아쇠를 당긴다. 에너지탄이 생체병기의 갑피를 가까스로 뚫는 것 같으면서도 두 마리는 쓰러지질 않았다. 움직임이 말도 안 되게 빠르다. 전투복의 조준 보정 시스템이 없다면 육안으로 절대 인식할 수 없는 속도다.
또 한 명, 또 두 명이 녀석들의 꼬리에 당했다. 또 한 명, 또 두 명이 녀석들의 산성 물질에 당했다.
격통의 비명을 지르는 자, 죽어서 말이 없는 자, 공포와 분노로 소리 지르는 자의 목소리가 광기 어린 합창을 이루었다.
동료의 것인지 자신의 것인지 알 수 없는 탄피가 밟힐 때쯤, 유탄과 수류탄을 퍼부어 두 마리를 간신히 쓰러뜨렸다.
“바닥에서 튀어나왔잖아···. 이것들 땅굴도 팔 줄 아는 거야?”
“페트릭이 죽었어! 이 개새끼가 죽였다고!”
누군가의 동료였던 사병은 이미 죽은 자를 보며 울분을 토해냈다. 그래도 상사는 냉정하게 발걸음을 재촉했다.
“···최대한 신속히 이동한다. 시체는 버려.”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탈출하기 위해 다시 뛰었다. 배후의 먼 곳에서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괴성이 불안하다. 쫓기고 있다는 압박감이 자꾸만 등을 떠밀고 끊임없이 뒤를 돌아보게 만든다.
아까부터 등 뒤에서 괴성이 쫓아오는 것 같은데 정작 뒤를 돌아보면 아무것도 없다.
아까 지하 8층에서 보았던 것들이 현실일까. 마치 악몽 속에서 쫓기는 것 같다.
지하 2층을 지나는 도중에 가장 후방에 있던 레이븐이 알려온다.
“상사님. 아까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본부와 통신이 두절됐습니다.”
“알아. 위에서 대기하던 로보버그도 다 우리를 도우러 내려갔으니까, 지상으로 전파 전달이 안 되는 거지.”
“예. 그렇습니다.”
이곳은 지하 286미터다.
지상으로 연결된 지하 1층의 승강기 통로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
지하 1층으로 올라왔다. 지상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가 눈에 보인다.
천장이 없는 승강기다. 저곳으로 불그스름한 햇빛이 들어오고 있다.
그때 후열에 있던 전투 휴머노이드 레이븐이 음성을 크게 출력했다.
“상사님! 발밑에서 진동이 감지됩니다! 생체병기들이 접근하고 있습니다!”
“괜찮아! 다 왔으니까! 다들 죽기 살기로 뛰어!”
앞으로 100미터. 더도 말고 덜도 말고 100미터만 뛰면 된다. 이대로 승강기 통로를 따라 지상으로 나가면 끝이다. 저 괴물들은 시설과 함께 먼지로 돌아갈 것이다.
“상사님! 녀석들의 진동이 저희와 같은 높이로 올라왔습니다!”
“뭐? 그게 무슨 소리···”
퀴이이이이···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상상력은,
그 상상력이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이 클수록 뚜렷해진다.
퀴이익······
벽 속에서 놈들의 겹쳐진 괴성이 들려온다.
그것들이 벽 속에 있었다.
“이런 미친! 뛰어!!!”
푸화아악!!!!
그들의 후열 쪽에서 벽이 폭발했다. 벽을 이루던 단단한 합금이 흙더미와 함께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사각! 사각! 사각! 사각! 사각!
그 속에서 아까 보았던 거대한 녀석이 혐오스러운 수십 쌍의 다리를 놀리며 땅굴을 넓히고 있었다. 동시에 녀석의 다리 사이로 생체병기들이 개처럼 뛰어서 난입해온다.
사병들은 그 누구도 감히 맞서려 하지 않았다. 일전에 두 마리를 해치우는 것도 버거웠던 생명체들이다. 그런 생명체들이 저만한 숫자로 실내에 쏟아지듯 들어오고 있다. 머리로 판단하기 전에 몸이 먼저 반응한다. 어쨌든 이대로 뛰는 것이다.
“허억···! 허억···!”
“헉, 헉, 씨발···!”
가장 후열에 위치한 사병들은 죽음을 직감했다. 가장 선두에 있던 상사는 부하들의 죽음을 직감했다.
그 순간이었다.
“······상사님!”
후열에서 사병들과 함께 뛰고 있던 레이븐이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레이븐과 같은 분대원들은 소리쳤다.
“레이븐! 뭐하는 거야?!”
상사는 가장 먼저 승강기 앞에 도착했다. 뒤따른 사병들이 승강기 앞에 멈춰서 사격대열을 갖추었다.
레이븐은 상사에게 조용한 무전을 보낸다.
- 상사님. 지상의 드론 하이브와 통신이 연결되었습니다. 이 사태에 가장 적합한 조치를 취하라는 명령입니다.
그리고 상사는 소리쳤다.
“이 새끼야, 네가 드론 하이브의 명령을 왜 따라?! 인포시어의 명령이 아니라면 거부해!”
이 순간에도 레이븐의 배후로 생체병기가 몰려오고 있다.
- ······드론 하이브가 각 분대의 휴머노이드 분대원에게 명령을 내렸습니다. 시설 전체를 폭발시킬 계획이기 때문에, 병사들이 지상으로 탈출한 후 전함을 통해 핵폭발의 여파로부터 안전한 거리를 벌려야 합니다.
“레이븐······? 무슨 짓이야···?”
“뭐야, 어디 가?!”
“다들 뭐 하는 거야?”
상사의 통제 아래에 있던 휴머노이드 분대원들이 갑자기 레이븐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가보겠습니다.”
“무사히 탈출하십시오.”
“상위 명령을 입력받았습니다. 이곳에 남아 시간을 벌겠습니다.”
“이게 옳습니다.”
휴머노이드 분대원들은 각자 마지막 인사를 했다. 누군가는 그런 모습을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고, 누군가는 함께 도망치자며 소리쳤고, 누군가는 침묵했다.
그들 가운데 상사는 소리치는 사람이었다.
“이 새끼들아! 명령에 복종해! 내가 현장의 책임자라고! 이제 지상으로 올라가면 끝이잖아, 왜···.”
그러는 사이에 ‘인간’ 사병들은 모두 승강기의 앞에 무사히 도착했다.
- 그동안 저를 동료로 대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일단 올라가! 위로 올라가라고!”
사병들은 승강기 통로를 이용해 위로 도약했다. 손바닥과 발바닥으로 벽을 거미처럼 짚어서 멈춘 후 전투복의 추진력을 빌려 도약하기를 반복하고 있다.
“상사님···!”
“레이븐! 그럼 너라도 와! 너 하나 정도는 우리랑 같이 탈출해도 상관없잖아!”
“상사님! 이제 가셔야 합니다!”
“그게 아니라! 다른 휴머노이드는 몰라도 너는 다르잖아! 씨발 네가 우리랑 몇 년을 같이 싸웠는데 버리고 가냐고! 기계라고 다 똑같은 기계인 줄 알아? 씨발!”
- 가십시오. 상사님.
퀴이이이익!!!! 퀴이이익!!!
휴머노이드 무리는 코앞까지 몰려든 생체병기를 향해 자신들이 가진 화기를 가리지 않고 사용했다.
“상사님! 다들 올라갔습니다! 우리도 가야 합니다!”
곧이어 레이븐의 마지막 통신이 상사의 굳어버린 다리를 억지로 움직이게 했다.
- 저는 기계로 태어났지만, 군인이 되어 죽겠습니다.
***
결국 상사는 부하들의 뒤를 따라 승강기 통로를 올라왔다. 드디어 지상이다.
올라오자마자 보이는 것은 상공에 떠오른 전함 두 척과 착륙장에 내려온 강습셔틀 여러 대다. 그리고 직육면체의 드론 하이브가 착륙장의 중심에 있으며, 근처의 체인트루퍼들이 사방에서 멀찍이 떨어진 채 승강기 통로를 에워싸고 있다.
부우우우우웅!!!!!
드론 하이브의 뒤에서 로보버그 무리가 새까맣게 튀어나와 상사의 배후로 지나갔다.
그리고 상사는 자신이 지나온 승강기 통로의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처음에 보았던 그 어둡고 깊은 통로가 이제는 괴물의 목구멍이 되었다.
퀴이이익!! 퀴이익!!!
저 통로 밑에서 붉은 살점이 들끓으며 이쪽으로 올라오고 있다. 엄청난 숫자의 괴물들이 통로를 이루는 벽의 모든 면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다.
콰콰콰콰쾅!
녀석들의 머리 위로 로보버그 무리가 쇄도하며 폭발을 일으켰다.
같은 순간, 지하의 생체병기들 사이에서 해체된 부품이 마지막 배터리로 할 수 있는 일은, 음성출력이었다.
- 함께 싸울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가까스로 지하에서 탈출한 사병들은 무사히 강습셔틀에 올랐다. 여섯 대의 강습셔틀은 궤도로 오르고 있는 전함의 꽁무니를 쫓아서 출력을 뿜어냈다.
한편, 지상의 시설 출입구로는 생체병기들이 혐오스럽게 튀어나왔다. 마치 어두운 통로가 괴물들을 위쪽으로 토해내는 것 같다.
퀴이이이이이익!!!!
키이이이이잉!!!! 카카카캉!!
녀석들의 괴성에 맞추어 체인트루퍼가 굉음을 토해냈다.
이윽고 체인트루퍼가 녀석들의 무리에 달려들었다. 동시에 드론 하이브는 플라즈마 줄기를 쏘아냈다.
콰아아아아아아!!!!!
주변의 생체병기를 분쇄하던 체인트루퍼는 곧 순식간에 덮쳐져 파괴되었다.
퀴이이익!!!!
이제 수백의 생체병기들은 드론 하이브를 향해 몰려든다.
지이이잉! 콰아아아아아아!!!!
드론 하이브는 마지막까지 플라즈마 줄기를 사출해댔다. 그 가공할 위력에 생체병기들은 떼 지어 소멸했다. 그러나 그 숫자가 너무 많았다.
- 트랜센던서 님의 명령을 확인. 시설을 폭파하겠습니다.
드론 하이브는 괴물들에게 둘러싸였다. 반중력 장치로 허공에 떠 오른 동체가 녀석들과의 충돌로 위태롭게 휘청인다.
치이이이익!!!
생체병기들은 드론 하이브에 달라붙어서 산성 물질을 쏘아대기 시작한다. 그 물질에 드론 하이브의 신소재 장갑도 검게 타오르는 비누처럼 녹아내리고 있다.
***
인포시어 함교에서는 제라드와 로페즈가 넓은 창 앞으로 보이는 행성에 주목하고 있었다.
“대령님. 전함 두 척이 궤도에 진입했습니다. 안전거리는 확보됐습니다.”
제라드는 아무 말 없이 로페즈를 보았다. 지상에 남겨진 드론 하이브는 지하시설의 소형핵폭탄에 원격 명령을 내릴 유일한 수단이었다.
「관리자님. 사이드3 드론 하이브의 마지막 음성메시지를 재생하겠습니다.」
- 짧은 시간이었지만 관리자님을 섬길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목표 달성을 축하드립니다.
“···저 괴물들을 쓸어버려.”
「알겠습니다.」
작고 붉은 행성의 어느 한 점에서 거대한 흙먼지가 대기로 치솟았다. 그 순간 보였던 새하얀 빛은 이 항성계의 적색왜성보다 밝았던 것 같다.
함교의 사병들은 환호성을 내질렀다.
제라드 대령은 로페즈를 보며 박수를 쳤다.
로페즈는 옅게 웃었다. 아주 옅게.
“회장님. 임무는 성공했습니다. 굉장히 위험하고 불리한 임무였는데···. 정말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제라드는 표정으로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었다.
“저는 이번 난관을 헤쳐나가면서 회장님께 감복했습니다.”
「진실」
그랬던 사람의 머리 위에 처음으로 텍스트가 띄워졌다.
< 13. 비히리비엘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