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 섬멸 작전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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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번 드론 하이브가 카르민펙토스의 착륙장을 파괴하는 모습은 정찰함이 확인했다. 정찰함이 확인한 정보는 곧 인포시어로 전달된다.
제라드는 무뚝뚝하게 감탄했다.
“놀랍습니다. 회장님. 정말, 경이로운 병기들입니다.”
“이러면 저희가 유리한가요?”
“예. 저희가 확실히 유리해졌습니다.”
“그럼 됐네요. 끝냅시다.”
***
인포시어 함대의 우주전투기는 곧 우월한 교전 능력을 자랑했다. 우주전투기들은 카르민펙토스 함단의 요격전투기를 모조리 파괴한 후 함대에 합류한다.
적군의 강습전함에 뚫렸던 측면으로 수십의 우주전투기가 달려들자 전세가 순식간에 역전된다.
퍼어어엉!
카르민펙토스의 강습전함 여섯 척은 순식간에 몰려드는 우주전투기에 휩싸여 모든 방향에서 쏟아지는 집중포화를 당했다. 강습전함들은 공격을 멈추고 부분적인 실드를 전개하지만 역부족이다. 인포시어 함대의 우주전투기들이 강습전함의 실드를 깎아내고 본체를 타격하기까지는 5분도 걸리지 않았다.
퍼엉! 퍼엉! 퍼엉!
강습전함들은 차례대로 폭발하면서 내부의 공기를 장렬한 화염과 함께 토해냈다.
「드론 하이브와 함께 취약점을 분석했습니다. 카르민펙토스의 기체들은 엔진을 기체의 중심에 두고 있었습니다. 해당 위치를 취약점으로 삼아 공략하면 신속하게 파괴할 수 있습니다.」
카르민펙토스 함단은 수세에 몰렸다. 곧 합류할 예정이었던 지휘함이 지상에서 파괴되었고 적들의 측면으로 보낸 강습전함 여섯 척은 모두 잃었다.
전방의 두 군데로 보냈던 요격전투기 편대를 잃었는데, 심지어 지상에 내려간 적들의 병기 때문에 지원은 기대도 할 수 없다.
함장의 눈동자가 불안정하게 떨렸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거야···? 저것들, 어느 나라의 정규군이라도 되는 놈들인가?”
“정면 방어함이 당했습니다!”
“적 비행체가 후방으로 크게 돌고 있습니다! 실드 출력이 분산될 것입니다!”
“초계기가 적 요격전투기에 발각되었습니다!”
“에너지 순양함이 적 주력함포의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상의 본부에서도 안 좋은 소식만 연달아 들려온다.
- 2함단 함장과 2함단 지휘함의 격납 병력이 전사했다. 적 강습병기가 착륙장을 점거한 상태다.
“방금 착륙장이라고 하셨습니까? 설마···. 그만한 지대공 가우스 병기가 있는데 고작 세 척을 못 막았다는 겁니까? 게다가 착륙장이라면 카르민이 지키고 있었을···”
- 카르민은 파괴되었다. 1함단 함장은 전 함대를 지휘하여 궤도 방어에 최선을 다해주길 바란다. 지상에는 여유가 없다.
그냥 이곳에서 죽을 각오로 끝까지 싸우라는 말이었다.
후퇴할 곳이 없다. 아니, 이제는 후퇴할 수도 없다. 이미 적들의 함대가 코앞까지 접근했기 때문이다. 무모하게 접근하는 것처럼 보였던 적들이 이러한 상황을 간파했다는 것일까. 후퇴를 위해 엔진 출력을 동력 장치와 중력 조작 장치에 할애했다간 실드가 꺼진다.
이렇게 접근전이 된 상황에서 실드가 한순간이라도 꺼지는 것은 있어선 안 될 일이다. 그리고 적들은 코앞에서 가속하며 후퇴하려는 함단을 멍청하게 지켜보고만 있지도 않을 것이다. 후퇴를 감행했다간 충분히 가속하기도 전에 전멸하리라.
쾅!
함장은 애꿎은 계기판을 내려쳤다.
“···저 앞에 있는 주력함에 교신을 다시 한번 연결해라.”
“함장님···.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본부는 그런 지시를 내린 적이···”
“이건 함장의 명령이다! 이대로 다 같이 뒈지기 싫으면 당장 저쪽으로 교신 연결하라고! 모든 책임은 내가 지겠다!”
그리고 이번에는 인포시어 측에서 교신에 응해주었다.
- 이쪽 지휘관이다.
함장은 모르겠지만, 방금 자신이 지휘관이라고 밝힌 목소리는 제라드 대령의 것이다.
“나는······. 난 카르민펙토스 함단의 함장이다. 우리는 그쪽 함단과의 격렬한 전투 끝에 패배를 인정하려고 한다.”
- 우리는 항복을 받아주지 않는다.
“그래도 전장의 군인으로서 신념을 발휘하길 요청하겠다. 우리에겐 이 이상 싸울 의사가 없다. 그쪽이 공격을 멈추지 않는다면, 그쪽은 이미 항복한 자들을 몰살하는 행위를 자행하게 되는 것이다.”
- 그렇다면 끝까지 싸우다 죽어라. 그쪽에도 굽히지 않을 신념이 있다면 마지막까지 명예롭게 전투에 임하라.
“어떠한 요청도 거부할 셈인가?”
- 그리고 그쪽은 군인이 아니라 용병들이라고 들었다. 항복하는데 군인이라는 단어를 언급하지 마라.
“자, 잠깐···”
- 교신 종료하겠다.
대화라고 할 것도 없었다. 상대는 눈이 돌아간 집단인 것 같다. 이쪽이 항복하면 이쪽의 물자와 기체를 압수하고 포로까지 만들 수 있는데, 굳이 전멸을 원하고 있다. 목적도 모르겠고 의도도 모르겠다.
상대 집단이 미쳤다고 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이런 피도 눈물도 없는 개새끼들! 저것들 전부 사이코 새끼들이야···!”
***
“대령님. 적함의 실드가 꺼졌습니다.”
“인포시어 주력함포. 개방하라.”
제라드는 그렇게 명령하면서 로페즈의 의사를 시선으로 물었다. 그러자 로페즈는 눈을 감으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최대출력으로 적 주력함을 일격에 파괴하라.”
곧이어 인포시어의 탄화수소 핵융합 반응로와 반물질 제어로가 주력함포에 막대한 에너지를 보낸다. 주력함포는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 격렬한 출력을 머금고 푸른빛으로 달아오른다.
128연장 플라즈마 주력함포 1문은 이 함대에서 가장 강력한 화기로 발사 전과 발사 후에 함선의 방대한 연산처리 및 엔진 출력을 요구한다. 따라서 발사 전과 발사 후에 지휘주력함인 인포시어는 취약한 상태가 된다.
그러니 가장 중요한 목표물을 대상으로, 확실하게 명중할 수 있으며, 그 한 발로 격침할 수 있는 상황에서만 쓰는 주력함포다.
이름은 128연장이지만 사실 에너지를 집중시켜주는 단말이 128개라는 뜻이다. 보통의 플라즈마 함포에는 이러한 단말이 하나만 있다.
인포시어의 주력함포는 전방으로 서서히 돌출되면서 위압적인 자태를 드러냈다. 돌출된 함포는 그 길이만 140미터에 이른다. 삼각기둥처럼 생긴 함포의 각 모서리가 살짝 벌어지며 머리빗처럼 촘촘하게 달린 128연장의 단말을 드러낸다.
쿠우우우우우우······.
인포시어의 함교에 있던 제라드와 로페즈가 잠시 휘청일 정도로 강렬한 진동이 전방에서부터 공간 전체로 전달된다.
푸른빛으로 달아오른 주력함포는 주변으로 새하얀 빛을 점멸한다. 1초에 수천 번은 깜박이는 듯 정신을 빼놓는 새하얀 빛이 멈춘 그 순간, 푸른빛이 함포 끝에서 압축되어 눈에 보이는 덩어리를 형성한다.
그리고 128연장 플라즈마 주력함포가 마침내 파멸적인 에너지 줄기를 일직선으로 뿜어냈다.
쫘아아아아악!!!!
그 직전에도 공격받고 있던 카르민펙토스 함단은 순간적으로 실드 전개를 풀어버리고 어떻게든 회피기동으로 대응하려 했으나 늦었다.
지이이잉!!!
두껍고 푸른 빛줄기가 카르민펙토스의 함선을 뚫고 지나간다. 0.9㎞의 선폭을 자랑하는 함선의 가운데가 푸르다 못해 새하얀 빛 속에서 증발해버린다. 그것이 약 1.5초 동안 벌어진 일이었다.
콰콰콰콰콰콰콰콰쾅!!!!!!!
함선은 장렬하게 폭발하며 주홍의 빛을 앞뒤로, 이어서 위아래로 토해냈다. 내부에 있던 기체는 그저 불을 붙이는 연료가 되었으며 내부에 있던 핵융합 엔진은 성대한 폭발의 재료가 되었다.
그 후로는 인포시어 함대의 일방적인 공세가 이어졌다. 지휘함, 명령체계, 함재기, 실드, 출력, 연산처리 능력 등 무엇을 말하든 전장에서 지휘함을 잃어버린 남은 기체들은 싸우다 격침되거나 도망치려다 격침되거나 둘 중 하나의 운명에 처했다.
우주 공간에는 함대를 이뤘던 잔해가 불붙은 채 서서히 흩어지는 정적인 풍경만이 남게 되었다.
전투가 끝난 후 인포시어 함교에서는 병사들이 벌써 승리의 기쁨에 박수를 치거나 감탄사를 내뱉고 있다.
같은 함교에 있는 제라드는 그들이 잠시 기뻐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리고 로페즈는 전혀 기쁜 내색도 없이 제라드에게 다가갔다.
“이제 지상의 요새에 폭격을 퍼붓고 내려가면 되겠네요. 크기를 보니까 그 생체병기를 만들어낸다는 시설은 지하에 있는 것 같고요.”
“예. 궤도와 행성 상공을 장악했으니 지상은 함대의 화력으로 밀어버릴 수 있겠습니다.”
***
붉은 하늘 너머로 어렴풋이 보이는 거대한 그림자들이 내려오고 있다. 초토화된 착륙장을 누비던 체인트루퍼들은 동시에 같은 명령을 받아서 파괴된 함선 위의 드론 하이브 근처에 집결했다. 아니, 피신했다.
이윽고 궤도에서 비처럼 떨어지는 폭격이 요새의 착륙장을 제외한 모든 땅을 분쇄했다. 후방으로 후퇴하던 카르민펙토스의 잔존 병력들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정확한 폭격에 산화되었고 구조물들은 모조리 주저앉았다.
그렇게 쇄도하는 폭격은 우주에서 지상으로 내리는 천벌처럼 막강했으며, 눈부셨다.
지상이 초토화된 후 인포시어 함대의 전함 두 척이 착륙장에 강하했다. 선폭이 350미터에 달하는 70만 톤급 전함 두 척은 착륙장의 구석에 내려서 라 코만데의 병력을 내보내기 시작한다.
라 코만데의 전쟁기계, 다각전차, 전투 휴머노이드, 전술 드론 등으로 편성된 병력 사이에 옵시디아몬의 드론 하이브도 있었다.
카가강! 키이이잉!!!
그리고 착륙장에 있던 체인트루퍼들이 시끄러운 소음을 내며 병력 무리에 합류했다.
“저것들은 공처럼 생겼네.”
“옵시디아몬의 병기라고 하더라. 체인트루퍼.”
“이야, 그놈들 참 살벌한 디자인이네. 저쪽에 피 묻은 것들도 굴러가고 있어.”
그들의 조금 앞에는 산산이 조각난 카르민이 있었다. 카르민의 포구 앞으로 쭉 이어지는 바닥이 둥글게 파여 있어 일전의 엄청난 화력을 상상하게 해준다.
그리고 카르민의 잔해 앞에 드론 하이브가 멈춰서 로보버그 무리를 조작하고 있다. 카르민에 내장된 기술을 회수하고 있는 것이다.
그 모습이 마치 금속의 사체에 달라붙은 금속의 파리들을 보는 것 같다.
“뭔가 외계인의 병기 같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네. 저 공처럼 굴러다니는 칼날 말이야. 저게 놈들의 몸을 찢어발겼다는 거잖아.”
“우리 편이라서 다행이지.”
한편, 인포시어에 남아있는 제라드와 로페즈는 간부급 사병들과 함께 다음 작전에 대해 회의하고 있다.
“파형으로 확인된 지하시설은 카르민펙토스의 연구시설인 것으로 보입니다. 지상에서 적 전쟁기계의 데이터를 포렌식하여 구조를 알 수 있었습니다.”
함교에는 지하시설의 입체적인 모습이 홀로그램으로 띄워졌다. 육각형 모양의 각 층이 아래로 갈수록 넓어지는 형태다.
지상에서 시설로 이어지는 통로는 하나뿐이다. 그리고 통로를 따라 내려갔을 때 도달하는 지하시설의 상층부 깊이는 280미터, 가장 깊은 하층부의 깊이는 330미터로 추정된다.
시설의 모양을 보니 층수는 8층밖에 안 된다. 다만, 가장 낮은 층은 800제곱미터로 가장 넓으며 바닥에서 천장까지의 높이가 15미터나 된다.
지하시설의 위로는 아군 병력이 입구를 향해 이동하고 있는 모습이다.
“대령님. 놈들의 생체병기는 아직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놈들은 지금도 생체병기를 전력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겁니다. 착륙장이 장악당하고도 아끼고 있다는 건···. 뭔가 이유가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제라드는 홀로그램으로 표현된 지하시설을 손가락으로 확대했다.
“카르민펙토스의 생체병기는 인간의 통제를 듣지 않는다. 착륙장에 자기네 병력이 있는 상황이었으니 그 생체병기를 대동하진 않았던 거겠지. 지금은 내보내봤자 폭격당할 게 뻔하니. ···회장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 생각에 놈들의 생체병기는 최후의 수단인 것 같습니다. 시설 내부까지 적습을 허용하고 말았을 때, 아군과 비전투 인원의 심각한 피해를 감수하고 사용하겠죠.”
한 사병이 덧붙였다.
“생체병기의 정확한 스펙은 아직 정보가 없습니다. 어떤 화기에 취약한지, 병력에게 얼마나 위협적인지, 어떤 모습인지도 모릅니다. 무인병기를 먼저 시설로 내려보내는 것이 안전하리라 생각합니다.”
“전쟁기계나 드론 하이브는 들어갈 수 없다. 입구도 그렇고 통로 자체가 너무 좁아.”
「카르민펙토스의 생체병기는 전쟁기계보다 작을 것입니다. 인간이 지나다닐 수 있는 크기의 통로가 시설 전체를 이루고 있으니 생체병기의 크기 또한 인간과 비슷하거나 더 작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로페즈는 제안한다.
“전쟁기계보다 크기가 작은 체인트루퍼와 B타입 로보버그가 있어요. 그리고 혹여나 시설에서 외부통신을 차단하더라도 로보버그를 물리적인 정보전달 매체로 사용할 수 있죠. 병사들 진입은 제 무인 병기들의 보고를 받으면서 단계적으로 내려가면 될 것 같아요.”
「제라드는 함대전에서의 승리 이후 관리자님에게 신뢰를 형성한 것으로 분석됩니다.」
‘그건 신뢰가 아니라 전우애라는 거야. 내 입장에선 거짓된 전우애겠지만···.’
제라드는 로페즈의 제안에 곧잘 수긍했다. 이미 앞선 전투에서 로페즈의 전술적인 주장이 그 실효성을 어김없이 증명했기 때문일까. 여전히 딱딱한 표정이지만 전보다 더 우호적으로 변했다는 느낌이다.
함교에서 작전 회의가 끝난 후 지상 병력은 시설의 입구에 도착했다. 무너진 구조물을 전쟁기계가 치워내자 널브러진 시체 사이로 어두운 통로가 드러난다.
지하시설의 상층부로 이어지는 승강기의 통로였다.
곧 명령이 떨어지자 체인트루퍼 열 기와 로보버그 수십 기가 아래로 수직 낙하했다.
한참을 떨어지고 있다.
그대로 12초가 흘렀다.
쿵······. 카가강······.
깊은 곳에서부터 체인트루퍼의 긁는 소리가 올라왔다.
그리고 지상팀을 통솔할 상사는 그 깊고 어두운 통로를 내려다보았다.
“좋아. 이제 저 밑에 어떤 괴물들이 도사리고 있는지 보자고.”
< 12. 섬멸 작전 (5)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