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대 인공지능 키우기-63화 (63/183)

< 12. 섬멸 작전 (2) >

***

연구팀 팀장은 로페즈와 같은 허블대학교를 나와 인공지능 분야의 전문가인 사람이다.

“오셨습니까, 회장님. 외부일정은 어떠셨나요?”

연구자들은 각자의 컴퓨터나 실험실을 오가며 신기술개발에 열의를 다하고 있다.

“네. 잘 됐습니다.”

“반물질 연구보고서와 양자컴퓨터 연구보고서를 올려놨습니다.”

“고생하셨어요.”

로페즈는 회장실이 있는 70층으로 왔다. 데스크에 앉은 레나도 그에게 짧은 보고를 올린다.

“아, 회장님. 콜로니 관련해서 외부협력업체 다섯 곳과 미팅을 끝냈습니다. 정부의 허가 절차는 오비탈플래닛 측에서 완료했다고 합니다.”

“크라우드 투자자랑 콜로니 입주자 예약은 어떻게 됐죠?”

“성공적인 수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보고서로 정리해뒀는데 지금 바로 확인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결제는 제가 했는데, 오비탈플래닛에 보내기 전에 최종 확인은 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네. 제 자리로 전송해주세요.”

곧이어 로페즈는 자기 자리에 앉자마자 연구팀의 반물질 연구보고서부터 확인한다. 연구팀의 수준과 트랜센던서의 수준이 다르기 때문에, 로페즈는 트랜센던서의 자문을 구해 연구팀의 보조 인공지능으로 어떤 힌트를 제시해야 할지 정해야 한다.

- 반물질이 낼 수 있는 에너지보다 반물질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에너지와 비용이 더 큽니다. 열역학 1법칙에 의하면 반물질을 통상이동수단의 연료로 사용하는 것은 극히 비효율적입니다.

“그럼 함선급의 기체에나 쓸 수 있는 연료라는 건 변함이 없네.”

오늘날 엔진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다. 화성의 민간용 함선은 보편적으로 수소 핵융합 기반의 원자로를 사용한다.

그리고 반물질은 아주 먼 거리를 이동하기 위해 폭발적인 추진력을 얻을 때나 쓰는 연료다. 다른 엔진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출력을 자랑하기 때문에 반물질 엔진이 가장 강력한 엔진이라는 것은 정설이다.

- 반물질 엔진은 고도의 기술력을 요구합니다. 함선 여행 서비스를 주도하는 화이트홀은 과거 정부로부터 반물질 엔진의 청사진을 투자로 받아 생산, 적용하고 있습니다.

“그 엔진이 돌아가는 구체적인 원리는 우리 연구팀이 이론적으로 밝혀냈어. 내가 원하는 건 우리의 콜로니에 반물질 엔진을 접목하는 것. 그리고 그 반물질을 무기에 접목하는 것. 이렇게 두 가지야.”

- 함선급의 기체는 반물질 엔진의 출력을 감당할 수 있는 구조물이 됩니다. 이는 콜로니도 마찬가지입니다.

“무기는?”

- 반물질을 폭발물로 사용했던 사례가 있습니다. 하지만 반물질은 플라즈마와 같이 에너지 사출의 방향을 유도할 수가 없기 때문에 별도의 동체를 요구합니다.

“미사일이나 폭탄 같은 동체에 넣어야만 쓸 수 있다는 말이야?”

- 그렇습니다.

“콜로니에 접목할 수 있다고 했으니 일단 무기화는 보류하고.”

로페즈는 양자컴퓨터 연구보고서를 화면에 올렸다.

“양자컴퓨터는 일반 컴퓨터와 상호보완적인 관계야. 양자컴퓨터를 굳이 개인용 컴퓨터로 만들자면 만들 수는 있지만 그러진 않지. 어차피 그 비싼 양자컴퓨터의 보조는 방대한 연산을 요구하는 기관에서나 쓰이니까. 양자컴퓨터의 연산능력을 네트워크를 통해 받을 수도 있고.”

- 저를 ‘거대 인공지능’으로 만들기 위해선 저의 알고리즘에 최적화된 양자컴퓨터가 필요합니다.

“내가 보기엔 우리 연구팀이 양자컴퓨터 해석은 잘 해낸 것 같은데. 어때?”

- 제가 도출한 설계도와 일치합니다. 해당 설계도에 약간의 개조를 더하면 제게 최적화된 양자컴퓨터를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화성에서는 양자컴퓨터보다 살짝 성능이 떨어지는 바이오컴퓨터를 주로 쓰고 있어. 우리가 알아낸 양자컴퓨터의 청사진 정도로는 너에게 딱 맞는 개조를 하기에 무리가 있지.”

화성의 양자컴퓨터와 다른 나라의 양자컴퓨터는 급이 다르다. 그리고 양자컴퓨터는 핵심기술 보호정책이라는 것이 적용되는 물건이라서 수입하는 것 또한 할 수 없다. 그렇다고 다른 나라에서 양자컴퓨터의 설계도를 훔쳐 오자니 그 과정이 번거롭다. 당장 필요하다면 할 수는 있겠지만 당장 필요한 건 아니고.

지금의 로페즈에겐 이러한 사업보다 더, 매우, 훨씬 중요한 과제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 관리자님. 회수팀을 구성하여 지구에 보내는 것은 어떻습니까?

“갑자기 웬 지구?”

- 지구는 옛 인류가 갖춘 모든 분야의 기술력이 잔재한 행성입니다. 과거 인류의 핵전쟁과 급한 화성 이주정책으로 인류는 기술적 데이터의 손실이 막심했습니다.

“별로 흥미가 생기지 않는데.”

- 현 인류는 현 인류의 과학기술이 옛 지구의 인류보다 우월하다는 보편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분석했을 때, 이는 착각입니다. 지구에는 현 인류가 놓쳐버린 과학기술의 옛 청사진들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로페즈는 흥미가 없다고 말했지만 트랜센던서는 다시 설득을 해왔다. 그리고 로페즈는 트랜센던서의 그러한 모습을 그냥 무시하고 넘기진 않는다.

그가 이 세상에서 가장 신뢰하는 것은 그 무엇도 아닌 트랜센던서이기 때문이다.

“지구는 쓰레기장이 아니라 보물섬이었다는 건가···.”

- 적절한 비유입니다.

“네가 그렇게 판단한다면 시도해서 손해는 보지 않겠지. 알겠어. 네 말대로 회수팀을 구성해보자. 지구는 위험한 곳이니까 호위병력이 필요할 거야. 버려진 기술을 회수하고 탐지할 연구팀 쪽 전문가도 있어야겠지.”

- 인원과 계획을 구성하겠습니다.

***

2599년 2월 20일. 로페즈는 올림푸스 화산 경사면의 공용 착륙장에 도착한다. 그가 방탄 승용차에서 내리자 운전석의 자이칸이 뒤따라 내렸다.

“정말 혼자서 가셔도 괜찮겠습니까?”

“이 일에 주변 사람을 끌어들이고 싶진 않아요.”

위협적인 사건이 있어도 늘 평정심을 유지하는 자이칸에게만 넌지시 알려주었다. 전쟁을 막으러 간다고.

“레나 씨와 프녹스 씨의 말씀을 잘 들어주세요. 잘 지켜주시고요.”

“예. 이쪽 일은 이쪽 사람들에게 맡겨주십시오.”

“가보겠습니다. 들어가세요.”

“···반드시 살아서 돌아오시길 빌겠습니다.”

높은 지형의 바람이 두 남자의 사이를 스친다. 로페즈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후 등을 보인다. 화성에 남을 자이칸은 그런 로페즈의 뒷모습을 지켜보다가 방탄 승용차에 올랐다.

- 드론 하이브 다섯 기, B타입 로보버그 2500기, 체인트루퍼 50기, 벡터 미사일 한 발을 격납했습니다.

로페즈의 앞에는 라 코만데의 지휘주력함인 인포시어가 대기하고 있었다.

여담이지만 밀라노이의 엑스턴 장군은 어째서 라 코만데의 함선이 화성에 왔냐고 물었고 로페즈는 화성을 위한 일이니 물어보지 말라고 답했다.

인포시어에는 옵시디아몬의 신무기를 격납했다. 함선 앞에서 대기하던 제라드 대령과 사병들이 로페즈를 마중한다.

“이번 전투에 함께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회장님. 목숨을 걸고 임하겠습니다.”

“저도 목숨을 걸었어요. 꼭 이깁시다.”

새로운 바람이 두 남자의 사이에 흘러들어온다. 이번 바람은 머나먼 곳의 어딘가에서 불어온 듯 서늘했다.

***

로페즈는 인포시어의 개인실에서 고뇌에 잠겼다.

「코만데 제독의 휴대전화 시스템은 화성의 기술력으로 장악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라 코만데가 사용하는 통신회선과 전파는 암호화되어 추적이 어렵습니다. 데이터로 정보를 수집하는 방식은 사용할 수 없습니다.」

‘보좌관은 뭐고 총사령관은 뭘까. 거대기업이라는 가이우스의 구성원일까.’

제라드 대령의 위에 코만데 제독이 있었다.

코만데 제독의 위에 어느 보좌관이 있었다.

그 보좌관의 위에 총사령관이 있었다.

그 총사령관의 위에 장로회가 있었다.

그들은 인류를 새로운 종으로 진화시키려 한다. 구체적인 과정은 모른다. 하지만 전쟁과 리버레이터라는 생물학 무기도 마다하지 않고 수단으로 쓰려는 자들이다.

로페즈가 선각자로서 그들의 구성원이 되기 위해선 제라드 대령과 함께 어떤 임무를 성공시켜야 한다. 장로회가 지켜보는 가운데, 그 임무에서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야 한다.

‘가이우스의 안에 장로회가 있는 건가. 아니면 가이우스의 위에 장로회가 있는 건가. 장로회는 화성 기업의 주주들 같은 개념일까.’

거대기업이라는 규모도 와닿지 않는데 그보다 큰 집단이 버티고 있다면, 자신은 뭘 어떻게 해야 하는가.

뭘 어떻게 해야 전쟁이라는 비극을 막을 수 있는가. 뭘 어떻게 해야, ‘구원 리스트’에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 모두를 죽이겠다는 그들을 막을 수 있는가.

‘내가 어쩌다 여기까지 왔지······.’

어느새 개인실의 창밖으로는 우주 공간이 스치고 있다.

***

오늘날 각 항성계는 차원통로로 연결되어있다. 함선으로 우주를 횡단하는 것보다 압도적으로 빠른 우주 교통수단이다.

차원통로는 중력을 이용해 목표좌표까지의 공간을 왜곡하는 거대한 반지 모양의 구조물이다. 그 중력장을 통과하기 위해선 최소한 함선급의 기체가 필요하다. 그밖에 구체적인 원리에 대해선 전 인류가 기술적 안전을 위해 유지하는 비밀이라고 한다.

그러나 인포시어는 차원통로를 이용하지 않고 사전에 준비한 좌표로 이동하는 중이다. 차원통로로 연결되어 개척된 다른 항성계가 아니라 우주의 외딴 곳으로 가려는 것이다.

당연히, 인류가 개척하지 않은 곳에서는 법과 상식 따위 통하지 않으리라.

로페즈는 제라드 대령과 함께 인포시어의 함교에서 어느 소령의 브리핑을 듣기 시작한다.

“카르민펙토스 재단(Carminefectos Foundation)입니다. 여러 불특정 민간군사기업과 사설군수업체의 후원을 받고 있는 단체입니다. 놈들은 각 항성계에서 범죄자 신분의 용병을 고용하여 준군사조직을 이루고 있습니다. 신생 재단이지만 이상하게도 그 규모의 성장 속도가 매우 빠릅니다.”

함교의 상황판 앞으로 입체적인 홀로그램이 나타나 목표지점을 이미지화했다. 작은 항성을 공전하는 작은 행성이 하나 있으며, 그 행성의 주변으로 소규모 함대가 정지궤도에 있다.

“놈들의 보급선이 남긴 빛 경로를 추적한 결과, 적색왜성의 공전궤도를 돌고 있는 화산 행성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화성보다 살짝 작으며 넓은 마그마 바다에 수백의 활화산이 요동치고 있는 격동의 행성이었다. 이산화탄소가 깔린 짙은 대기층의 위로 적색왜성의 빛을 받아내며 붉은 하늘을 이루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마디로 대지와 하늘까지 온통 붉은, 지옥 같은 행성이다.

“놈들은 이 행성에 숨어서 생체병기(Organic Weapon)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생체병기는 생물학 무기와는 다른 개념이다.

하나의 생명체가 병기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카르민펙토스 재단은 이 외딴 행성에 연구소와 준군사조직을 세워 인공생명체를 만들고 있다.

또한 생물학, 생명공학 등 생물적 요소로 병기를 만드는 것은 우주 전역의 금기다.

“카르민펙토스 재단이 개발하는 생체병기는 인공지능 기반의 전쟁기계와 달리 인간의 명령을 듣지 않습니다. 이 생체병기의 전략적인 목적은, 적대적인 목표지점에 투하하여 그 근처의 인간을 상대로 파괴행위를 하는 것입니다.”

로페즈는 질문한다.

“그게 저희의 숭고한 목적을 방해할 수 있을 정도로 위협적인 일인가요?”

라 코만데, 가이우스 등이 추구하는 숭고한 목적이란 인류의 선택적 진화이자 ‘존속’이다.

소령은 그 부분에 대하여 설명한다.

“문제는 놈들의 생체병기가 스스로 ‘생식’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심지어 이 생체병기는 우주 횡단 능력까지 갖추려는 목적으로 개발되고 있습니다. 만약 완성체가 된다면 항성과 항성을 오가는 은하계 범위의 이동은 아니겠지만···. 같은 항성계 내에서 행성과 행성을 오갈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될 것입니다.”

인간이 만든 생체병기가 인간의 통제를 따르지 않으며, 스스로 번식할 수 있고 우주 공간을 누빌 수 있다는 것. 이는 인류의 존속에 위협이 된다.

“진공, 극저온과 극고온, 우주의 방사선까지 견뎌내는 생체병기입니다. 이것들이 완성체가 되어서 카르민펙토스 재단에 의해 우주 곳곳으로 수출되는 일을 막아야 합니다. 통제 불가능한 생체병기가 인류의 영역에 확산되고 그 숫자가 불어난다면, 인류는 위기를 맞이할 것입니다.”

거기에 제라드 대령이 덧붙인다.

“마치 과거 지구의 선조들이 핵무기를 통제할 수 있는 무기로 여기고 그 핵무기에 의해 자멸할뻔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게 반복되는 인류의 실수, 비극적 종말의 새싹을 미리 짓밟아버리려는 겁니다.”

“···게임에 나오는 외계생명체 군단 같네요.”

“예. 그래서 이 카르민펙토스 재단. 이들 집단은 인류의 존속에 위협이 됩니다. 이들은 상부에서 표적으로 지정한 대상이며 한 놈도 남김없이 말살되어야 할 반인륜적 집단입니다.”

‘그 상부가 장로회를 말하는 건가. 아니면 가이우스의 총사령관인가···. 아니면···’

“그렇습니다. 저희의 임무 목표는 이 적색왜성 항성계에 자리 잡은 카르민펙토스 재단을 섬멸하는 것이며, 놈들의 행성에 상륙해 모든 생명체와 시설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인간도 포함이겠죠?”

“예. 그리고 그곳에서 연구한 모든 기록 또한 예외 없이 파기되어야 합니다.”

아무것도 회수하거나 얻으려 하지 않는다. 그저 그곳에 있는 모든 것을 파괴하거나 죽이는 임무다.

로페즈는 이 일의 옳고 그름을 따지고 싶지 않아졌다. 전쟁을 막기 위해 시작한 일이고 정보 우위를 점하기 위해 필요한 일이고 그들의 내부인이 되기 위해 통과할 일이다.

어느 한쪽의 숭고한 목적이라던가 성스러운 전투라던가 필요악이라던가 어쩔 수 없는 폭력이라던가 관심 없다.

누가 더 나쁜 놈들인지 고민할 것도 없다. 그런 것까지 따졌다간 머리가 터질 것이다. 머리가 터지기 전에 속이 망가질 것이다.

“회장님께서는 이 임무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 제독님 라인으로 선각자 권한을 임명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로페즈는 일단 카르민펙토스 재단을 멸하는 데 앞장서기로 한다. 여기서 활약한다면 무언가 더 알 수 있는 것이 있으리라.

머지않아 그들은 붉게 타오르는 적색왜성과 화산 행성, 그리고 반드시 섬멸해야 할 적들의 준군사조직 함대를 눈에 담을 수 있었다.

< 12. 섬멸 작전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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