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 섬멸 작전 (1) >
***
“제독님. 제가 선물을 가져왔습니다.”
로페즈의 휴대전화는 책상 위에 홀로그램을 띄웠다.
“전술강습병기. 두 쌍의 플라즈마 커터를 접목한 체인트루퍼(Chaintrooper)입니다.”
홀로그램 속의 체인트루퍼는 사슬을 감은 농구공이나 동그란 철 수세미처럼 생겼다. 그런 형태 위에 푸른빛으로 점멸하는 고리 네 개가 끼워져있다. 최소분자 단위로 연마된 흑요석 플라즈마 커터였다.
“지름 1미터에 일회성 실드 배터리를 내장하고 있습니다. 포대를 빌려서 적군 근처에 떨어지면 사슬이 무한궤도 차량의 바퀴처럼 회전하며 기동력을 끌어올립니다. 적에게 근접하기 전까지 실드로 한 번 방어하고, 접근해서는 동체를 둘러싼 두 쌍의 플라즈마 커터가 주변 적들을 베어버리는 현대판 기병이죠.”
코만데 제독은 로페즈가 선보인 획기적인 무기에 감탄을 감추지 못했다.
“다음은 구속폭탄입니다. 보병이 수류탄 쓰듯 던질 수 있는 투척물이죠. 유탄처럼 쓸 수도 있습니다. 실드 기술의 원리를 접목해서, 구속폭탄이 터진 지점에 에너지 장막을 형성합니다. 지금까지 실드를 방어목적으로 사용했다면, 구속폭탄은 실드를 공격목적으로 활용한 결과입니다. 폭발반경의 적들은 실드에 갇혀서 공격도, 방어도 할 수 없는 행동불능상태에 빠질 겁니다.”
홀로그램 속에 나타난 것은 이론적인 설계도 따위가 아니었다. 실제로 완성된 무기를 넓은 격납고에 배치한 모습이다.
“마지막으로 이건 벡터(Vector) 미사일입니다. 발사대만 있다면 단거리 미사일로 사용하거나 궤도 화력지원 등으로 지상에 강력한 위력을 발휘합니다. 압축된 일회성 실드를 내장하여 적들의 요격을 한 차례 막아낼 수 있습니다. 그래도 도중에 요격당한다면 날아가던 방향으로 산란된 플라즈마 줄기를 사출합니다. 산탄총처럼 다 뚫어버리는 식이죠. 게다가 끝까지 요격당하지 않고 목표지점에 적중한다면 해당 반경의 목표물들은 폭발지점에서 전방향, 다각도로 퍼지는 플라즈마 줄기에 벌집이 될 겁니다.”
벡터 미사일 역시 별도의 격납고에 두 발 정도 쌓여있는 것이 보인다. 이것도 이미 이론적인 개발단계와 프로토타입 실험단계를 거쳐 완성된 것이다.
코만데는 그래도 설마 하며 물었다.
“지금 보여주신 것들···. 전부 완성품이에요?”
“네. 화성에서 팔리길 기다리고 있어요. 함선으로도 좀 가져왔고요. 벡터 미사일은 개발 허가까진 받았는데 수출허가는 아직 못 받아서요. 그래도 대충 밀수출할 수는 있어요.”
“아···. 그 미사일이 제일 마음에 들었는데. 그보다 실드 기술은 어떻게 구현했어요? 그거 태양계에는 없는 기술입니다만.”
“직접 개발했습니다.”
라 코만데의 전쟁기계를 전장에서 회수하여 원리를 밝혀낸 기술이지만, 어쨌든 그렇다고 치자.
“···정말입니까?”
“옵시디아몬은 인류의 과학기술을 앞당기는 기업입니다. 연구팀의 개발을 돕는 보조 인공지능이 가상으로 수없이 시뮬레이션하고 피드백을 초 단위로 반영하거든요. 신기술 개발속도가 압도적으로 빠를 수밖에 없었죠.”
“대단합니다. 제 예상보다 훨씬.”
로페즈는 고민하는 표정을 짓는다.
“예. 아무튼 일단 보여드리긴 했는데···. 대령님이 제독님께 따로 말씀은 드렸나요? 제가 무엇 때문에 망설이고 있는 지를요.”
코만데는 책상 위에 자기 두 손을 모아 깍지를 끼웠다. 그 행동의 의미는 트랜센던서가 알려준다.
「그는 미리 준비한 대답을 꺼내려 합니다.」
“리버레이터입니다.”
“리버레이터···. 그게 뭐죠?”
샌디의 연구소에 퍼졌던 생물학 무기. 금성에 국가적 재난을 일으킬 수 있으며, 어느 국가든 예외 없이 큰 혼란을 유발할 수 있는 반인륜적 무기이며, 백신의 개발이 매우 어렵고 라 코만데의 배후세력이 전쟁에 사용할 핵심전력이다.
로페즈는 알면서도 모르는 척을 했다. 그야 라 코만데에서 로페즈에게 직접 리버레이터를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니까.
‘거기까지는 나에게 오픈할 생각이 있다는 마음인가.’
“단백질 형태의 생물학 무기입니다. 저번에 회장님께서 말씀하셨다고 하더군요. 우리가 그 무기를 개발하진 않았지만, 그러한 무기를 사용한 라 코만데에 거래를 여는 것은 조심스럽다고.”
“네. 맞습니다. 그래서 그 무기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좀 알려주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라 코만데에 옵시디아몬의 신무기를 팔아도 된다는 확신을 가지고 싶습니다.”
“그 불안한 마음 이해합니다. 알려드리죠.”
로페즈는 귀를 기울였다.
“우리는 전쟁을 앞두고 있어요.”
그건 알고 있다. 그것보다 코만데가 말하는 ‘우리’라는 집단의 정체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그러니 지금 로페즈가 던져야 할 대사는 코만데의 발언에 대한 평범한 반응이 아니다.
오히려 당신이 알려주겠다고 한 그 정보가 나에게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것을, 나의 정보력은 거기까지 도달했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
그래야 코만데는 로페즈를 설득하기 위해 더 많은 정보를 내뱉게 될 것이다. 그래야 그럴 확률이 높아진다.
“전쟁을 앞두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어요. 토성과 금성이잖아요? 행성의 기체를 주요 수출품으로 쓰고 있는 두 국가가 기업적으로 냉전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것···. 거기에 무언가 외부세력이 개입해서 토성 정부를 설득하고 있죠. 때마침 토성 정부는 그러한 경쟁에 지쳐버렸고, 지구와 같은 무정부 공간에서 분쟁이 벌어지고 있었어요. 제독님. 저도 그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순간, 제독의 오른쪽 눈매가 살짝 떨렸다. 그리고 로페즈의 말이 끝난 직후 호흡을 작게 들이마신 것 같다. 트랜센던서는 그 변화의 이면을 간파했다.
「코만데는 당황한 기색을 숨겼습니다.」
“예. 저도 회장님의 정보력이라면 거기까진 알고 있었으리라 짐작했어요.”
‘거짓말.’
「거짓말입니다.」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저희 둘의 이야기가 여기서 더 진전될 수 있다는 거니까요.”
아직 당신의 대답에 기대하고 있다.
“회장님은 금성과 토성의 오랜 냉전을 끝내러온 외부세력의 정체와 목적이 궁금하다는 것이겠죠.”
“네. 거대기업이죠?”
어림짐작이다.
“거대기업입니다. 이스페라(Ispera) 항성국가에서 탄생한 가이우스(Gaius)가 토성 정부와 결탁했어요.”
거대기업은 한 나라의 정부에 손을 내밀 정도로 큰 집단이다. 당연히 그런 집단이라면 자신들의 행동과 판단에 크나큰 책임을 동반해야 하는 법인데.
“단순히 금성과 전쟁을 벌여서 정복하자고 손을 내민 건 아닐 거잖아요. 태양계 연합이 전쟁행위를 보고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요. 대체 목적이 뭐죠?”
“하나의 숭고한 목적이 있습니다.”
“숭고한 목적이요?”
“인간의 수명입니다. 아니, 인류의 수명입니다.”
뭔가 뭉뚱그린 대답이다.
“죄송하지만 그 정도 설명으로는 납득할 수 없어요.”
“우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숭고한 목적, 목표를 달성하려 합니다. 전쟁은 없어졌지만 분쟁은 계속되고 있는 인류를 보세요.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탄생하고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났습니까. 2599년이 된 오늘도 인간은 이성과 합리를 내세우며, 본능적인 행위를 반복하고 있어요. 그것이 과거의 지구를 폐허로 만들었고, 인류의 존속마저 끊어버릴 뻔했습니다.”
로페즈는 일단 수긍하는 태도를 보이기로 한다.
“뭐, 저도 그 말씀에 동의합니다. 충분히 오래 살 수 있으면서도 오래 살지 못하는 그런 동물이 인간이죠.”
“평화의 시대가 계속된 후엔 반드시 전쟁이 시작됩니다. 그것은 지난 역사가 증명해요. 수많은 이유와 사건이 있겠지만 언젠가 전쟁이 터지리라는 것을 사람들은 알고 있어요. 알고 있으면서도 무시하고, 외면하고, 미루죠. 마치 과거 지구의 인류처럼요. ···로페즈 회장님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부정은 못하겠네요.”
“그래서 사람을 가상세계에 보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브레인 업로드 정책을 펼치는 항성도 있어요. 모든 사람의 두뇌에 시스템을 삽입해서 비이성적인 집단행동을 통제하는 국가도 있고요. 하지만 그런 것도 다 의미가 없습니다. 결국 인간은 무엇을 하든 정신은 인간인 채로 있을 것이고,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겁니다.”
“···.”
“개인과 집단. 인류의 수명을 지속하기 위해선 인류가 새로운 종으로 태어나는 것밖에 방법이 없습니다. 인간은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더 나은 종으로 진화하는 것입니다. 선택적이며, 인공적이며, 필수적인 진화라고 하죠. ‘알고 있는’ 우리는 ‘모르는 우리’가 어떤 종으로 진화할지 선택을 강제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인류가 영원히 존속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죠. 거부하는 자들을 자연선택과 같이 지워버리고 받아들이는 인간만 살아남으면, 그게 곧 진화입니다. 그래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며 숭고한 목적이라고 말씀드린 겁니다. 이해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로페즈는 눈을 감고 제독과 똑같이 책상 위에 손을 올려 깍지를 끼웠다. 그렇게 침묵하기를 몇 초.
“······제가 제독님께 말씀드렸죠. 옵시디아몬은, 저는 인류의 과학기술을 앞당긴다고요.”
“예. 그쪽은 확실히 그런 목적을 가지고 계셨죠.”
“그럼 제가 인류의 과학기술을 앞당기려는 ‘이유’는 아세요?”
“흠···.”
코만데는 모르겠다는 표정을 했다. 그 이유를 몰라서 모르겠다는 표정이 아니라, 로페즈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몰라서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제가 인류의 과학기술을 앞당기려는 이유는, 인류의 존속을 위해서였습니다. 제독님께서 주장하셨듯 ‘모르는 자들’이 언젠가 죽을 때를 대비하여 외부 항성계에 유토피아를 건설하려는 목적이었죠. 인간이라는 종의 존속을 위해서 미리 대피하려는 겁니다. 미리 대피해서, 올바른 문명을 이루고 지속가능한 인간사회를 구축하려는 것이죠.”
코만데는 이제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를 확인한 로페즈는 결정타를 넣는다.
“제독님···. 저는 제독님처럼 그런 목적을 가진 집단이 존재했다는 것에 감명받았습니다. 진심으로요. 이 우주에 차고 넘치는 어리석은 인간들을 보면서, 저만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제독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희망을 느꼈어요.”
“허······. 이것 참······.”
코만데는 감동했다.
로페즈는 선하게 웃었다.
“끝도 없이 어리석은 선택으로 죽어가는 사람들···. 그깟 전쟁 몇 번으로 그들의 미래를 구원할 수 있다면 당연히 돕겠습니다. 제독님. 저도 그 숭고한 목적을 이루는 데 동참하게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코만데는 책상 위에 올려둔 깍지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보기에···. 회장님은 정말 생각이 깊으신 분입니다. 무엇이든 예상 범주를 뛰어넘으시는군요.”
“저도 제독님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하고 있었죠. 저희는 다른 길을 나아가고 있지만 목적지는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 같네요.”
“······전화 한 통만 하고 오죠.”
“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제독이 나간 후 로페즈는 휴대전화를 두드렸다.
「관리자님을 감시하는 카메라는 없습니다. 근거리 네트워킹으로 코만데의 개인 휴대전화에 접근했습니다. 그리고 일부 시스템 영역 간섭에 성공했습니다. 적합한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도청해.」
「알겠습니다.」
***
코만데 제독은 같은 층의 화장실에 들어갔다. 이 본사에서 제독만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었다.
그는 자동으로 닫히는 화장실 문을 뒤로하고 세면대 앞 거울을 보면서 어딘가로 전화를 건다.
몇 차례 신호음이 울렸다.
“예. 보좌관님. 게일 라 코만데 제독입니다.”
- 무슨 일이시죠?
“선각자를 찾았습니다.”
- ······누구죠?
“화성의 중견기업, 옵시디아몬 코퍼레이션의 회장입니다. 로페즈라고 합니다.”
- 내부 서버에서 검색 좀 할게요.
“예.”
잠시 후.
- 상당히 적합한 인물이네요. 로페즈는 저희의 구원 리스트에 있는 사람입니다. 잠재기대치와 능력이 매우 뛰어나요.
“그 사람이 리버레이터의 존재를 밝히더니 가이우스의 목적까지 알아냈습니다. 엄청난 정보력과 화성에 어울리지 않는 기술을 갖추고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 ···그걸 스스로 알아냈다고요? 제독님이 말씀해주신 건 아니고?
“저는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놀랐다는 말입니다. 어쩔 수 없이 이야기에 응해줬는데···. 로페즈는 저희와 같은 목적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구원받아야 할 사람이 아니라, 구원할 사람입니다.”
- 선각자로 들어오기 위해선 심사를 거쳐야 합니다. 그 부분에 대해선 말씀드렸어요?
“아직입니다. 그래서 말씀드리는데, 로페즈가 선각자 심사를 받게 하고 제 라인으로 올려도 되겠습니까?”
- 제독님 라인으로 올리시겠다면 제독님께서 직접 심사해주셔야 합니다.
“예. 물론입니다.”
- 그럼 총사령관님께 허가를 받은 후 임무를 하달해드릴게요. 제독님 라인으로 올리는 것이므로 대규모 무력충돌 임무나 장기작전 명령이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세요.
“예.”
- 장로회가 지켜보는 가운데, 전장이라는 무대에서 그의 능력과 제독님의 안목이 증명되어야 할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귀중한 선각자를 놓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전장에서 우리의 활약을 지켜봐 주시죠.”
- 행운을 빌겠습니다. 제독님.
< 12. 섬멸 작전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