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대 인공지능 키우기-59화 (59/183)

< 11. 나만이 할 수 있는 일 (3) >

***

로페즈는 토성으로 출발하기에 앞서 호위라는 명목으로 밀라노이의 병력을 빌렸다. 이어서 화이트홀의 함선을 빌리려고 리탄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 저도 함께 가고 싶습니다!

그가 왜 이러는 건지 모르겠다.

“왜요?”

- 화이트홀 회장인 제가 토성으로 출장을 간다고 하면 화성 매스컴에 알려질 거예요. 정부도 자국 대기업의 새로운 수출로 확장에 주목하겠죠.

“네.”

리탄의 목소리에는 의욕이 넘쳤다.

- 화성이라는 나라 자체를 저희 배후에 세우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겁니다! 밀라노이의 사병들을 고용하셨으니 위험한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거잖아요? 제가 로페즈 님과 함께 가면 로페즈 님의 위험부담을 덜어드릴 수 있습니다!

로페즈는 리탄의 속내를 간파했다.

‘그게 아니라···. 화이트홀 회장과 옵시디아몬 회장이 함께 출장을 갔다는 식으로 자국에 선전효과를 노리는 거겠지. 옵시디아몬이 승승장구하니까 나와의 관계진전까지 추구하는 것 같고.’

‘···하지만 리탄이 하는 말이 틀린 건 아니다. 안전확보는 중요하니까. 대기업과 떠오르는 중견기업의 회장 두 명이 토성으로 간다는 사실은 확실히···. 화성이라는 행성국가를 뒤에 세우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렇게 된 김에 이 일의 정교함을 보강해보자.

“리탄 씨. 토성에서 접촉할만한 사람은 있어요?”

그는 즉답했다.

- 토성은 행성에 땅이 없는 위성국가잖아요? 그래서 토성, 타이탄의 궤도건축기술은 태양계에서 제일이에요.

토성은 가스행성이다. 수소와 헬륨이 대기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으며 토성 내부의 중심 부분만 고체로 이루어져 있다. 대기층의 혹독한 가스구름은 엄청난 자전력에 의해 적도에서 시속 1800㎞의 초강풍을 몰아치고 있다. 구름 위에 금성처럼 문명을 건설하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구름의 밀도나 강풍이나 행성 내부에서 방출되는 엄청난 에너지 때문에 도시의 안전성을 도저히 보장할 수 없다.

그래도 토성은 강력한 자기장과 주변 위성까지 감싸주는 광범위한 자기권을 가지고 있다. 테라포밍은 반드시 천문학적인 비용을 요구하는 작업인데, 토성은 행성의 핵을 건드리거나 궤도에 인공 자기장을 형성하는 거대위성을 잔뜩 띄울 필요가 없다는 요소가 있다. 따라서 토성은 초기 문명을 건설하기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환경이었다.

토성은 위성인 타이탄에 문명이 세워진, 우주개척시대 인류의 두 번째 국가이며 태양계에서 가장 선진화된 위성국가다.

- 로페즈 님! 제가 다 알아서 미팅을 잡겠습니다. 예전에 화이트홀은 토성의 궤도조선소를 건설한 업체와 협력한 경험이 있어요.

“그게 어디죠?”

- 토성의 궤도건축시장을 거의 독점하고 있는 대기업, 크로노스(Kronos)입니다. 크로노스는 등급별 임원과 임원대표로 이루어진 대기업인데 제가 그쪽에서 서열 2위인 임원과 미팅을 잡을 수 있어요. 화이트홀은 궤도조선소와 함선의 건설방식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로페즈 님의 옵시디아몬은 마침 콜로니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고 하셨으니 궤도건축물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겠죠. 하하! 어떠십니까?

리탄의 이 정도 의욕과 정성이라면 거부할 이유가 없다.

‘내가 리탄한테 설득도 당해보네.’

- 어때요? 괜찮은 제안이잖아요? 네?

“그래요. 리탄 씨. 같이 갑시다.”

그러면서 로페즈는 생각했다.

‘리탄은···. 이제 강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나에게 충성하고 있어. 매우 자발적으로···.’

이야기가 끝난 후 리탄은 속전속결로 약속을 잡았다.

그렇게 화이트홀 그룹 회장과 옵시디아몬 코퍼레이션의 회장이 토성으로 출장을 가게 된 것이다.

당연히도 그 ‘좋은 소식’은 화성과 토성 양국의 각종 매체를 통해 금방 전파되었다.

***

화이트홀의 예비함선 1척, 밀라노이의 우주전투기 3기와 호위함 2척이 토성의 궤도항구에 정박했다. 호위함은 함선보다 세 배는 작은 크기지만 엄연히 함선의 일종이다.

함선과 우주선을 나누는 기준은 항속거리다. 함선은 엔진의 출력으로 중력을 조작하고 빠르게 가속할 수 있어 항성계 내외부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반면에 우주선은 그러한 엔진이나 시스템 없이 가속에 의지하여 이동하기 때문에 항성계 내에서도 행성 간 이동이 오래 걸린다. 그래서 우주선은 행성이나 콜로니 같은 하나의 거점을 두고 그 근방의 우주공간을 누빌 수 있다.

엔진의 출력에 따른 기술을 실현하고, 인공 중력장과 외우주의 각종 천체들이 일으키는 힘을 버티도록 설계된 함선은 자연히 크기가 커졌다. 예외적인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함선과 우주선을 비교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크기를 보는 것이다. 함선은 선폭이 수백 미터 단위로 설계되지만 우주선은 백 미터만 되도 상당히 큰 편이기 때문이다.

타이탄의 궤도에 세워진 거대한 구조물은 위성국가 타이탄의 위성도시로서 유명하다.

화이트홀 함선에서 내린 로페즈, 리탄, 두 사람의 경호원들은 위성도시에서 초고층 마천루 엘리베이터를 타고 타이탄의 수도, 리게이아(Ligeia)에 발을 들였다.

푸른 하늘과 조금 쌀쌀한 기후는 타이탄의 테라포밍이 성공적이었음을 증명한다.

로페즈는 방금 자신이 타고 내려온 엘리베이터를 올려다보았다.

“왜 화성에는 저렇게 우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걸까요.”

옆에서 나란히 걷던 리탄은 자기 지식을 뽐냈다.

“타이탄은 테라포밍 전에 추운 위성이었죠. 탄화수소가 액체로 존재할 수 있을 정도로 추웠어요.”

“그게 왜요?”

“타이탄의 테라포밍을 위해선 액체 상태의 탄화수소를 하늘로 올려 온실효과를 일으킬 필요가 있었어요. 그래서 타이탄에 처음 도시가 건설되었을 때는 대기에 날씨를 조작하는 인공 입자를 뿌리고, 지상의 탄화수소 바다를 하늘 위로 올려야 했죠. 그 많은 질량을 전부 위로 올리는 일을 우주선 같은 거로 했다간 너무 오래 걸리니까요. 아예 마천루 엘리베이터를 세워버린 것이죠.”

그러자 트랜센던서가 텍스트를 띄워 리탄의 지식을 정정했다.

「엄밀히 말씀드리자면 궤도의 위성도시가 먼저 세워진 후 지상의 테라포밍 작업이 시작된 것입니다. 관리자님이 타고 내려오신 마천루는 초기 타이탄의 테라포밍뿐만 아니라 건설자재 운반, 인력 운반, 비상탈출경로 등의 목적으로 건축된 다목적 구조물입니다.」

「화성은 올림푸스 화산의 경사면에 우주공항이 있기 때문에 마천루 엘리베이터의 건설 필요성이 없었으며, 화성 테라포밍 당시의 건축기술로도 타이탄의 마천루 엘리베이터와 같은 구조물은 건설할 수 없었습니다.」

「참고로 금성은 반중력 부양도시로 대기권 위에 건설되었기 때문에 궤도와 이어질 별도의 높은 건축물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로페즈는 자신의 지식이 늘었다고 여기며 리탄의 주장에 대충 수긍해주었다.

두 사람은 각자 호텔을 잡은 뒤 예정대로 크로노스의 서열 2위라는 임원과 삼자미팅을 진행했다. 로페즈가 굳이 리탄과 함께 미팅을 진행한 이유는 크로노스의 건축기술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크로노스의 건축기술은 화성의 오비탈플래닛과 동급이거나, 그보다 낮습니다.」

크로노스는 오비탈플래닛과 규모가 비슷하다. 물론 건축기술면에서 따지면 크로노스가 더 유명하긴 하지만, 로페즈는 이미 오비탈플래닛 그룹의 이퀄리아 어스틴 회장과 매우 긴밀한 관계를 형성한 상태다.

그런 상황에서 옵시디아몬이 콜로니 건설을 위한 협력대상으로 오비탈플래닛이 아니라 크로노스를 선택한다면, 오비탈플래닛과의 관계에 흠이 생기게 된다.

그래서 로페즈는 임원과의 미팅에서 적당히 성실한 태도로 호응만 해주고 적당히 성실한 태도로, 다음에 구체적인 기회가 생긴다면 크로노스에 주문을 고려하겠다는 식으로 응했다.

마지막에는 슬쩍 물어보았다.

“아, 그리고 임원님.”

“네. 회장님.”

“혹시 라 코만데라는 사설군수업체를 아시나요?”

민간군사기업이 다목적 군사조직이라면 사설군수업체는 용병집단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물론 알고 알죠. 거기가 기계화 군단으로는 토성에서 업계 1위입니다.”

“저희 옵시디아몬의 무기도 기계화, 무인화를 추구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라 코만데와 비공식적으로 접촉할 방법을 찾고 있는데···. 혹시 아시는 라인이 있다면 빌려주실 수 있을까요?”

임원의 눈에는 로페즈가 화이트홀의 회장인 리탄과 비슷한 위치의 인물로 보였을 것이다. 최근에 화성에서 떠들썩하기도 하고, 그러니 이 정도 호의는 베풀 수 있다.

“저희도 태양계 바깥에서 위험한 건설을 진행할 때 라 코만데의 호위를 받고는 했죠. 그쪽 대령이었나···? 그렇지, 제라드 대령! 그분과 연락망이 있는데 제가 연결해드릴까요?”

‘대령이라면 충분한 계급이다.’

로페즈는 선한 미소를 한껏 드러냈다.

“아···. 하하. 그렇게 해주신다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리탄은 선한 미소를 한껏 드러내는 로페즈를 바로 옆에서 지켜보며, 전신으로 오한을 느꼈다.

‘흐! 이 사람이 아군이라서 존나 다행이네. 귀신 같은 사람···.’

***

미팅이 끝난 후 크로노스 서열 2위 임원의 개인연락처를 일단 받긴 받았지만, 이 인맥을 나중에 쓸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일단 임원 덕분에 라 코만데와 정상적으로 접선할 방법을 찾았다.

리탄은 화이트홀 함선으로 돌아갔다. 이제부터는 로페즈의 개인적인 일정이다.

그는 마천루 엘리베이터에 올라서 타이탄의 위성도시로 돌아왔다. 정지궤도에 건축되어 타이탄의 자전 속도와 동일한 속도로 돌아가는 이 구조물은 전체적인 형태가 반쯤 베어먹은 도넛처럼 생겼다.

구조물 전체가 도시다. 구조물의 양끝단까지 길이가 325㎞이며 기본적인 통로의 너비는 평균 4㎞다. 천장의 높이는 약 1㎞로, 매우 좁은 반쪽짜리 도넛처럼 생겼지만 막상 인간의 몸으로서 이렇게 활보하고 있으면 상당한 개방감이 느껴진다.

로페즈의 눈에는 평범한 상가나 주거시설보다 기업건물이 더 잘 보였다.

「토성은 탄화수소 기반의 가공물과 수소 기반의 연료가 주요 수출 품목입니다.」

무인 택시의 창밖으로 플라스틱, 고분자 신소재, 고분자물질 재활용, 다이아몬드 가공업체, 구형 우주선의 연료, 온실가스 발생기 등 토성의 풍부한 탄화수소를 활용하려는 사업체들이 스쳐간다.

로페즈는 30분을 이동한 끝에 라 코만데의 본사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라 코만데의 커다란 본사는 위성도시 구조물의 벽면에 밀착된 상태로, 각종 우주 비행체와 함선들이 정박할 수 있는 별도 항구를 소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트랜센던서는 친절하게도 로페즈의 눈에만 보이는 빨간 네모를 쳐주었다.

그 네모 안에는 우주 공간에서 라 코만데의 본사로 정박한 함선 한 채가 들어가 있었다.

「저번에 함대와 접촉한 그 함선입니다. 현지 네트워크의 검색 결과, 해당 함선은 라 코만데의 주력함선입니다.」

‘그 정체불명의 함대와 접촉했던 관계자가 본사에 돌아왔다는 거겠지.’

이어서 트랜센던서는 함선의 스펙을 표시해주었다.

「함명: 인포시어(Infoseer)」

「함종: 지휘주력함」

「함번: LAC-1」

「건조: 라 코만데&크로노스」

「운용: 라 코만데」

「무게: 약 190만t」

「선폭: 1.2㎞」

「작전범위: 은하계」

「엔진: 탄화수소 핵융합 반응로 4기, 반물질 제어로 1기」

「무장: 128연장 플라즈마 주력함포 1문, 4연장 요격포 256문, 2연장 절단 레이저 방어함포 90문, 핵미사일 중력가속사출 발사대 외 격납된 비행체 및 강습병기 다수」

전투를 위해 만들어진 함선은 화이트홀의 함선과 비교도 되지 않을 온갖 기술을 머금고 있었다.

***

본사에 들어서자 보이는 사원들은 모두 남자다. 그리고 모두가 제복을 입고 있으며, 가슴팍에 처음 보는 계급장을 붙이고 있다.

로페즈는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병의 안내를 받으며 올라갔다. 그는 곧 제라드 대령과 만날 수 있었다.

제라드는 반가운 기색을 아낌없이 드러냈다.

“설마 로페즈 회장님께서 저를 찾아와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하하. 그런가요? 실은 눈치가 보여서 이렇게 개인적인 미팅으로 잡고 싶었거든요.”

질문을 유도하자.

“눈치요?”

대화의 흐름을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하자.

“밀라노이···. 라고 말씀드리면 아실까요? 저희 화성의 민간군사기업인데.”

“알고 있습니다.”

제라드는 알고 있다는 말만 툭 내뱉을 뿐 그 이상은 말하지 않았다. 먼저 질문을 던진 로페즈도 대화가 툭 끊긴 상황에 잠시 입을 닫았다.

그렇게 서로의 동태를 살피는 시간이 지나가는가 싶었는데, 제라드는 그저 딱딱한 표정으로 일관했다.

제라드가 원하는 게 뭘까.

라 코만데가 원하는 게 뭘까.

“···저는 신무기를 팔고 있어요. 민간군사기업이나 사설군수업체는 아니지만 그런 쪽으로도 사업을 확장했죠. 저희는 주력인 인공지능을 바탕으로 세상에 없던 신무기를 개발하고 있어요.”

“봤습니다. 드론 하이브, 로보버그, 전자기 플레어는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그리고 라 코만데는 기계화 군단을 주력으로 삼고 있죠.”

“예. 저희에게 드론 하이브와 같은 계산적인 인공의 지휘관이 있다면 전투력을 증진할 수 있을 겁니다. 드론 하이브와 같은 병기는 사병 중심으로 구성된 밀라노이보다 기계 중심의 병력을 갖춘 저희 라 코만데에 더 잘 어울립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인공지능 중심으로 개발된 옵시디아몬의 신무기는 라 코만데의 병기와 아주 궁합이 좋겠죠.”

“그럼 저희와 거래를 트시겠습니까?”

“그걸 고려하고 싶어서 밀라노이의 시선을 피했어요. 그래서 이렇게 제라드 대령님과 만나게 된 거죠. 기계화 군단을 이끄는 라 코만데와 인공지능 병기를 개발하는 옵시디아몬은 언젠가 만날 수밖에 없었어요.”

“동감하는 바입니다. 그런 옵시디아몬에서 이렇게 회장님이 직접 오셨으니, 영광으로 여기겠습니다. 관계가 이어진다면 다음에 저희 쪽에서 화성의 본사로 찾아뵙도록 하죠.”

표정 변화는 없는 사람이지만 의도는 확실하게 알아냈다.

‘상부에 건의하겠다거나 의논하겠다는 말은 꺼내지도 않고 있다. 따라서 제라드 대령의 상부는 옵시디아몬을 사전에 조사한 상태다. 그리고 우리와 거래를 하는 방향으로 지시를 내렸을 거다. 높은 확률로.’

잠정적인 결론에 도달한 로페즈는 얼굴에서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죄송하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 확답은 못 드리겠어요. 제라드 대령님의 생각은 잘 알았으나 제라드 대령님의 책임자분들과도 진중한 이야기를 나눠야 할 것 같아서요.”

“확실히···. 그쪽에선 회장님이 오셨는데 이쪽에선 제가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군요. 원하신다면 다음에 일정을 확인해서 라 코만데의 제독님이 나오실 수 있도록 조율하겠습니다.”

‘제독···? 여기서 장군이나 대표 같은 위치인가.’

“그렇게 해주시겠다니 감사합니다. 추가로 한 가지 더 여쭙고 싶은 게 있는데요.”

“뭐든 말씀만 하시죠.”

“도저히 그냥 보고는 지나칠 수가 없어서요. 저는 한 집단을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반드시 알아야겠습니다.”

“예.”

“지구의 연구소에 떨어뜨린 그 말도 안 되는 생물학 무기, 그거 라 코만데가 만든 거 아니죠?”

“···.”

안 그래도 굳어있던 제라드의 표정이 더 딱딱하게 굳어진 느낌이다.

“지구는 무정부행성이고 불법적인 일들이 벌어지는 무법지대이니 연구소를 습격했다는 내용 자체에는 관심이 없어요. 하지만 그런 반인륜적인 무기를 사용했다는 것은···. 솔직히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쭈어보겠습니다.”

로페즈는 어느새 미소를 지웠다.

“그 생물학 무기를 사용한 것은 라 코만데의 자의입니까, 타의입니까?”

“죄송하지만 그 내용은 기밀 사항이라 대답해드릴 수 없습니다.”

“그렇게 대답하실 줄 알았어요.”

그렇게 대답할 줄 알았다는 것은 진심으로 내뱉은 말이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오로지 허풍, 허세, 거짓된 태도로 최대한의 정보를 뽑아낼 것이다.

“토성의 고리에 스텔스 함대가 숨어있는 게 보였어요.”

기습적인 발언이었으나 제라드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표정으로 아무것도 드러나지 않는 사람이다. 역시 사병이라도 숱한 전장을 거쳐온 군인이라는 건가.

제라드는 오히려 부정하지 않고 당당하게 나왔다.

“예. 함대가 정박해있긴 합니다만, 회장님께서 크게 신경 쓰시진 않으셔도 됩니다. 그보다 그 사실을 알아내신 능력이 놀랍습니다. 혹시 그 정보를 어떻게 알아내셨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보였다고 할까요, 관측되었다고 할까요. 둘 다 비슷한 말이지만 엄연히 다르니까요.”

“그게 보이셨습니까?”

그때 로페즈의 왼쪽 안구가 빛을 발했다.

이 퍼포먼스는 기술력의 우위를 과시한다. 실제로 우위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렇게 보이게끔 착각을 유도하는 것이다.

“네. 제 눈에는 다 보였습니다.”

사실 하나도 안 보였다.

“···흥미로운 회장님에, 심상치 않은 기업이군요. 죄송합니다. 저희에게 크나큰 오해가 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반응을 보니 일단은 통한 것 같다.

< 11. 나만이 할 수 있는 일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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