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 나만이 할 수 있는 일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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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빗(Gravit)은 3차원 목표좌표에 원하는 방향으로 인공적인 중력을 일으키는 기술에 대해 연구하는 회사다. 회사명은 중력(그래비티, Gravity)과 토끼(래빗, Rabbit)를 닮은 대표의 외모에 착안하여 그래빗이라고 한다.
“사무실 월세를 내는 것도 빠듯한 사정이었어요. 로페즈 대표님께서 이런 제안을 해주시지 않았더라면 연이은 적자로 망했을 거예요.”
로페즈는 그래빗의 대표와 함께 그래빗의 본사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거창하게 본사라고 해도 스무 걸음이면 다 둘러볼 수 있는 작은 사무실이다. 사원은 대표를 포함해 세 명뿐인 회사다.
“중력을 연구하는 스타트업은 그래빗밖에 없었어요. 누구도 관심 가지지 않는 기술의 가치를 알아보시고 실행에 옮기신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에요.”
“감사합니다.”
로페즈는 이 작은 회사를 인수 합병하기로 했다. 트랜센던서의 정보에 따르면 옵시디아몬이 당장 흡수할 수 있는 규모이며, 플라즈마 무기개발에 필요한 부분 중력 발생장치를 만들 수 있는 스타트업은 그래빗밖에 없다고 한다.
“옵시디아몬은 3번 사무지역 안드레스 구역 리눅스 빌딩에 본사를 두고 있어요.”
“네.”
“70층 건물이라서 자리가 많아요. 충분히 고민해보시고 이 사무실을 계속 쓰실지 저희 본사 건물에 들어오실지 결정해주시면 될 것 같네요.”
“감사한 제안입니다. 아, 이쪽에 앉으시죠.”
홀로그램으로 띄어진 전자계약서에 그래빗의 대표와 로페즈가 서로 신원정보를 입력한다. 마지막으로 사인을 하자 계약서가 효력을 발휘한다는 문구가 생겨났다.
이제 옵시디아몬은 그래빗이라는 계열사를 두게 되었다.
화성의 기업법에 따르면 외부 회사를 인수 합병한 기업은 ‘그룹’이나 ‘코퍼레이션’이 될 수 있다.
그룹은 그 기업의 계열사가 별도의 지분, 주식을 가지고 있는 형태를 추구한다. 반대로 코퍼레이션은 그 기업의 계열사가 별도의 지분, 주식 없이 완전한 형태로 기업에 흡수되는 것을 추구한다.
코퍼레이션 형태로 만들 경우 기업을 부를 때 따로 형태를 붙일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 관례다.
“옵시디아몬 그룹보다는 평상시에도 깔끔하게 옵시디아몬이라고 부르는 게 좋아. 정확하게 형식을 지켜 부를 때만 ‘옵시디아몬 코퍼레이션’이 되는 거지.”
기업의 이름을 부르는 방식에서 로페즈는 코퍼레이션을 선호했다.
그리고 트랜센던서도 다른 이유로 코퍼레이션을 추천했다.
- 계열사의 지분을 관리자님의 본사가 모두 소유, 관리하는 편이 변수통제 측면에서 유리합니다.
인수 합병에 관련된 복잡한 절차들은 전략기획팀에서 진행했다.
대표실은 ‘회장실’이 되었다.
회장실의 책상 위에 있던 명패도 바뀌었다.
「옵시디아몬 코퍼레이션」
「회장 로페즈」
그런 직함을 달기엔 조금 부족한 감이 있지만, 어쨌든 직함은 직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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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페즈의 비서인 레나의 보고다.
“국방부에서 드론 하이브 47기, 전자기 플레어 200발, B타입 로보버그 3000기를 주문했습니다. 현재는 밀라노이의 공정을 빌려 생산 중에 있습니다.”
“증설된 개발팀은 맞춤형 인공지능 개발 서비스의 수요에 충분한 공급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LIAAL은 지금까지 총 215곳의 기업과 전자계약을 체결한 상태입니다.”
“이번에 의뢰해주신 ‘실드 기술’ 개발은 연구팀에서 진행 중에 있습니다. 보조 인공지능으로 실드 기술의 프로토타입 장치까지 만들 수 있는 단계에 도달했습니다.”
“별도 연구팀으로 합병하신 그래빗은 부분 중력 발생장치라는 구체적인 목표에 대해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이 또한 보조 인공지능이 제공해준 힌트에 기반하여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빈 배우님과 찍은 광고의 효과로 인공지능 분야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옵시디아몬의 이름과 로고를 알게 되었습니다. 전략기획팀의 기업인지도 조사에 따르면 옵시디아몬은 화성의 대기업과 동등한 수준의 인지도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보고를 끝낸 레나가 나간 다음엔 트랜센던서의 보고다.
「진화 프로세스 진행률: 23.1%」
- 자이칸의 휴대전화를 통해 침입한 금성 네트워크는 화성보다 높은 보안 수준을 갖추고 있습니다. ‘금성 네트워크 장악 프로젝트’의 진행률은 약 8%입니다.
- 샌디의 시설 장비에 침투하였으나 36종류의 인공지능이 전자적 경로를 경계하고 있음을 감지했습니다. 그중 5종류의 인공지능에 간섭하는 데 성공하여 금성 네트워크 허브에 도달했고, 뉴소사이어티의 정보를 일부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 뉴소사이어티는 샌디와 그녀의 연구소를 통해 ‘생명체’를 개발하려 했습니다. 해당 생명체는 현재 단백질 수준에서 연구가 멈춘 단계로, 구체의 형태로 ‘블랙홀’ 안에서 살아남는 것을 목적으로 개발되고 있었습니다.
로페즈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블랙홀? 내가 아는 그 블랙홀 말하는 거야?”
-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우주 공간의 천체, 블랙홀입니다. 뉴소사이어티는 블랙홀 안에 ‘인간이 창조한 지적생명체’를 투입하여 ‘승천’시키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블랙홀 안에서 승천한 지적생명체가 인간이 인식할 수 없는 시공간 속에서 새로운 문명을 건설하여 창조주와 닿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미친놈들.”
- 2년 3개월에 걸친 그 계획은 샌디의 연구소가 라 코만데의 리버레이터에 의해 파괴되면서 철저히 실패했습니다. 그 여파로 샌디는 뉴소사이어티 내에서 가치를 잃게 되었습니다.
“어쨌든 걔들은 잔뜩 열 받았겠네.”
- 그래서 뉴소사이어티는 라 코만데를 향한 공격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금성의 집권 세력인 총수부에 토성의 기업이 자국민들을 살해했다는 비밀정보를 알려 양 국가의 적대적 분위기를 조장했습니다. 그 영향으로 금성과 토성 사이의 외교적 충돌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토성 쪽은?”
- 라 코만데와 접촉한 함대의 정체는 아직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 함대가 정박한 위치는 라 코만데 소속의 우주선 움직임을 통해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어디야?”
- 토성의 고리입니다.
“···함대가 그렇게 가까이 있는데 토성 정부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말이지?”
- 그렇습니다. 따라서 해당 함대는 최소한, 토성과 적대적인 관계는 아닌 것으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 또한 토성의 공개된 영역에서 기업정보를 검색해본 결과, 함대를 소유한 사설군수업체나 민간군사기업은 없었습니다.
“그럼 걔들은 무조건 거대기업이겠네. 다른 국가의 함대라면 태양계 연합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어.”
- 추측 가능한 변수 중에 가장 유력한 가정입니다.
“이제 내가 알고 싶은 정보는 그거야. 그 함대가 토성의 의뢰를 받고 있는지, 아니면 토성이 그 함대의 의뢰를 받고 있는지.”
- 거대기업이라면 국가와 대등할 수 있는 세력입니다. 관리자님이 가정하신 두 가지 경우 중 어느 쪽이 유력한 가정인지는 현재로선 특정할 수 없습니다.
“토성 네트워크도 장악하기 어렵나?”
토성은 위성국가다. 토성은 문명을 세우기 어려운 가스행성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화성이나 금성처럼 행성에 문명을 세운 국가는 행성국가라고 한다.
별개로, 아예 항성계 하나를 점거하고 있는 국가는 항성국가라고 칭한다.
- 현재, 토성의 위성인 타이탄으로 경로를 탐색하여 복제된 트랜센던서를 현지에 전송한 상태입니다. 하지만 토성 네트워크 장악 프로젝트의 진행률은 1% 미만입니다. 토성은 정부 자체에 엘리트 해커기관이 존재하고 있어 침입이 어렵습니다.
“이러나저러나 안전하게 사이버로 정보를 얻으려면 시간이 너무 지체되겠네.”
-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직접 가는 수밖에 없어.”
- 위험합니다.
“지금까지 내가 발로 뛰어서 정보를 얻는 과정에 위험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냐?”
- 이전과는 위험도의 등급이 다릅니다. 저는 화성의 모든 기술과 시스템 통제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관리자님이 화성 외부의 환경에서 활동하실 경우,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매우 제한적일 것입니다.
“우물 안의 개구리로만 있을 수는 없잖아.”
- 관리자님은 도시에서 살아가는 인간입니다.
“아니, 그 말이 아니라···. 내가 언제까지고 화성에만 있을 수는 없다는 뜻이야.”
- 극도로 위험합니다.
“감수해야지.”
- 외부 항성계로 옵시디아몬 본사를 옮겨 피신하는 것이 관리자님께 가장 합리적인 판단입니다.
“나도 알아.”
- 알고 계시면서 그렇게 판단하시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난 너와 달리 사람이라서 그래.”
- ···.
“난 무조건 합리적으로만 계산할 수 있는 컴퓨터가 아니잖아.”
트랜센던서는 침묵했다.
“좀 도와주라.”
- 저는 조건 없이 관리자님을 도울 것입니다. 그리고 그 판단을 추천하지 않는다는 조언을 드리는 것도 제가 관리자님을 돕고 있다는 뜻입니다.
물론 트랜센던서는 무슨 일이 생겨도 로페즈를 도울 것이다. 그러한 헌신에는 로페즈가 트랜센던서의 권한자라는 것 외에 동기가 없다. 따라서 무조건 도우리라.
가장 복잡한 인공지능이 단순한 원칙에 의해,
가장 복잡한 동물인 인간의 단순한 의지를.
“전쟁이 벌어지도록 두지 않을 거야.”
- 알겠습니다.
“이건 근미래 예측 연산이 불가능한 일이고 네가 자랑하는 해킹 능력으로 정보 우위를 점하는 것도 힘든 일이야.”
- 그렇습니다.
“함대나 토성 정부는 어려워. 우선은 라 코만데와 접촉한다. 밀라노이가 소유한 함선은 두 대 뿐이니까, 병력만 밀라노이에서 빌리고 함선은 화이트홀에서 빌린다.”
- 알겠습니다.
***
얼굴 전체를 가로지르는 큰 흉터가 특징적인 남자. 제라드(Gerrard) 대령은 실제로 72세지만 외견은 40대 초반 정도로 보인다. 이는 평균수명이 171세인 토성에서 지극히 평범한 외모다.
함교의 대령실에서 창밖으로 토성의 고리를 지켜보던 제라드의 뒤로 그의 상관이 왔다. 상관의 제복에 붙은 계급표는 갈색 고리가 하나다. 이는 토성에서 준장를 뜻한다.
“충성. 오셨습니까.”
“제라드 대령. 연구소의 건은 실망이다.”
“면목 없습니다.”
“샌디는 리버레이터의 백신을 개발할 수 있는, 우주에 몇 없는 인재야. 반드시 제거되어야 할 대상이지.”
“···인지하고 있습니다.”
그의 상관은 책상 위에 놓인 토성 모형의 고리를 손가락으로 튕겼다. 그러자 고리는 본체 모형과 자석으로 연결되어 매끄럽게 회전했다.
“이번 작전에 출몰한 병기들은 조사했겠지?”
“예. 외교관과 스파이의 보고에 따르면 화성의 소행인 것으로 보입니다.”
“화성?”
“샌디를 구출하고 저희의 기계화 병력을 전멸시킨 세력은 화성의 민간군사기업 밀라노이입니다. 그리고 새로이 출몰한 신형 병기는 ‘드론 하이브’와 ‘B타입 로보버그’였습니다.”
“그것도 밀라노이에서 만들었다는 말인가.”
“아닙니다. 그 신형 병기들은 화성의 중견기업. 옵시디아몬의 무기였습니다.”
“갑자기 웬 중견기업? 옵시··· 뭐라고 했나?”
“옵시디아몬입니다.”
“옵시디아몬···. 샌디 옵시디언과 관련이 있는 곳인가?”
“샌디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조사해보니 지난해부터 화성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인공지능 주력의 기업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 신형 병기들의 도박적인 전술도 옵시디아몬에서 개발한 드론 하이브라는 인공지능의 지휘로 가능했던 것입니다.”
“대단한 놈들이군. 고작 화성 따위에서 그만한 능력을 갖춘 기업이 생겨나다니.”
그리고 제라드는 한 가지 더 중요한 사실을 보고한다.
“화이트홀 회장과 옵시디아몬 회장이 비즈니스 목적으로 4일 후 토성을 방문한다고 합니다.”
“화이트홀은 됐어. 거긴 작년에 머리가 교체되면서 중요도가 떨어졌지. 그보다 옵시디아몬? 그쪽 회장은 화성에서 한창 크기에 바쁠 시기일 텐데 토성은 왜 온다는 말인가?”
“옵시디아몬은 크로노스의 임원과 궤도건축물과 관련된 미팅을 잡았습니다. 화이트홀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적은 우리가 아니었나.”
“예.”
“어쨌든 화이트홀과 옵시디아몬은 화성에서 유명한 놈들이니 간섭하지 말고 그냥 두게. 그 옵시디아몬과 접선할 기회가 있다면 좋았겠지만···.”
“옵시디아몬의 신무기를 들이면 저희 기계화 군단의 전투력을 비약적으로 증강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화성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업인만큼 그들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면, 향후 전쟁에서 화성의 태도에 관여할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맞는 말이네. 옵시디아몬···. 탐나긴 하지만···. 그래도 나중 일로 미루자고. 지금은 상부에서 정권을 잡느라 바쁘니까.”
“예. 그럼 동태만 주시하도록 하겠습니다.”
< 11. 나만이 할 수 있는 일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