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 나만이 할 수 있는 일 (1) >
***
“대표님, 이건···. 도대체···.”
“이게 다 뭐죠? 샌디 씨.”
어림잡아 150㎡는 될법한 새하얀 정육면체의 공간이다. 그런 공간의 벽과 천장에 기계 구체가 주렁주렁 빼곡하게 붙어있다. 그리고 구체와 구체를 연결하는 두꺼운 케이블도 정신없이 얽혀있다.
공간의 중심에는 60개의 모니터와 알 수 없는 기계 장치들이 모여 하나의 커다란 컴퓨터를 이루고 있는 것 같다. 혹은 최첨단 잡동사니라도 보는 것 같다.
그 커다란 기계의 앞, 의자에 앉은 샌디가 있었다.
“이 방 전체에 인체 형상 홀로그램이 있어요. 로페즈 씨, 이쪽으로 접속해주시겠어요?”
***
화성의 옵시디아몬 대표실에 있는 로페즈는 그녀의 요청에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대로 키보드를 몇 번 두드리자 대표실의 모든 창문이 닫히고 문이 잠겼다.
이어서 대표실 천장의 각 모서리에 있는 인식 장치가 눈에 보이는 레이저로 로페즈의 신체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스캔했다.
화성의 궤도에서 금성의 궤도까지 띄엄띄엄 이어지는 신호증폭기를 따라 양자로 이루어진 데이터가 인공 중력장에 의해 전송된다.
그렇게 화성의 로페즈와 금성의 샌디 사이에 실시간 연결이 완료되었다. 지연시간은 1.4초 정도다.
샌디의 앞에는 로페즈가, 로페즈의 앞에는 샌디가 실물에 가까운 홀로그램으로 등장했다.
“궁금하신 게 많으실 것 같아요.”
“네. 엄청 많습니다. 다 대답해주시나요?”
“테스트를 통과하시면서 본인의 자격과 능력을 증명하셨으니, 제가 알고 있는 것은 뭐든지 대답해드릴게요. 아, 로페즈 씨가 성공적으로 소환되셨으니 저···. 자이칸 씨였나요?”
- 예. 자이칸입니다.
“자리를 비켜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알겠습니다.
자이칸은 그녀의 공간에서 나갔다.
이제, 로페즈의 질문과 샌디의 대답이 교차할 시간이다.
“그 문제로 절 테스트하신 건가요?”
“네.”
“그 테스트로 저의 어떤 자격과 능력을 증명했다는 거죠?”
“눈에 보이는 것, 생각하는 것, 그리고 눈에 보이는 것과 생각하는 것의 바깥에서 전체적인 틀을 볼 수 있는 눈을 증명하셨어요. 그래서 로페즈 씨는 저라는 전파자에게 뭐든지 질문할 수 있는 자격을 얻으신 거예요.”
“그렇다면 제가 정답을 알려드리지 않았는데 추궁하지 않으시는 이유는 뭔가요?”
“결과를 아니까요. 음···. 그래도 혹시 모르니 물어볼게요. 이 문제에 직면한 후 로페즈 씨가 내린 정답이 뭐죠?”
“네. 확실히 그 문제의 초점은 문제 자체에 있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이 문제의 정답을 맞힐 확률을 아래의 보기 중에 고르시오. 복수정답은 없습니다.」
“문제에서 말하는 당신이란, 쪽지를 받은 저를 뜻합니다. 제가 정답을 맞힐 확률을 제시된 보기 중에 고르라고 했죠. 수학적으로, 논리적으로 생각했을 때 복수정답이 나올 수 있는 경우가 있으나 문제에서는 복수정답이 없다고 단언했어요.”
“그렇죠.”
“그리고 복수정답이 없다는 것은 정답이 하나만 있다는 해석이 됩니다. 혹은 정답이 없다는 해석도 되죠.”
“그리고요?”
“그리고 혹은, 정답이 하나만 있음과 동시에 정답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문제를 푸는 주체 대상이 ‘당신’, ‘로페즈’이기 때문입니다. 육안으로 문제를 보고 해석하고 확률을 도출해야 하는 관측자이자 주체가 저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계속하세요.”
“그러나 문제에서는 요구했습니다. 보기 중에 하나를 고르라고요. 결국 문제를 푸는 저의 두뇌는, 눈으로 본 정보 이면의 새로운 문제를 정의했습니다. 그것은 아직 관측되지 않은 문제가 있을 가능성에 근거를 둔 것입니다. 그 근거의 주체 또한 로페즈. 접니다.”
“네.”
“보기에 제시된 확률들은 제가 새로이 알아낸, 제가 직접 관측하거나 정확한 계산을 할 수는 없지만,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되는 이면의 문제에 정답이 되어주질 못합니다.”
“결론에 가까워지셨네요.”
“네. 저는 이 문제의 정답을 압니다. 하지만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이 문제의 정답은 푸는 사람에 따라, 해석에 따라, 수학의 연구가 거듭됨에 따라 늘 바뀌기 때문이죠. 우리의 눈과 머리로만 알 수 있는 모순의 이면에, 확률적이며 가변적인 정답의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눈에 잘 보이게 정지된 글자와 숫자를 보고 내린 정지된 정답은, 문제가 제시한 보기의 정지된 정답 중에 있으면서도 없다.
그리고 복수정답이 없다.
그러나 각 보기의 항목이 해석과 조건에 따라 모두 정답이 될 수 있다.
즉, 정답은 하나만 존재하거나 없다.
즉, 정답이라는 이름의 확률과 정답의 존재는 매 순간 다르다. 시간, 해석, 조건, 관측자 등 온갖 특정할 수 없는 요소들에 의해.
“그래서 정답은요?”
「‘당신’이 이 문제의 정답을 맞힐 ‘확률’을 아래의 보기 중에 고르시오. 복수정답은 없습니다.」
이 모순적인 확률 문제는 로페즈에게 질문을 던진 것이다. 얼핏 정지된 것처럼 관측되는 확률 문제에 시시각각 흘러가는 시간을 대입하여 풀 수 있냐고.
‘당신’은 볼 수 있냐고. 알 수 있냐고.
장황하게 설명했지만 결론은 간단하다.
“그래서, 어쨌든 ‘제가’ 그 문제를 맞힐 확률이라는 정답은 ‘제’ 머릿속에 있으니, ‘저는’ 보기 중에 정답을 알고 있습니다.”
“···.”
“그리고 참고에 따르면 정답을 알아낸 사람은 전파자를 찾아오라고 했고요. 문제를 본 순간부터 정답을 알고 있던 저는 이 순간에 이렇게, 샌디 씨를 어렵지 않게 찾아냈습니다. 이게 제 결론입니다.”
이는 트랜센던서의 도움 없이 로페즈가 스스로 찾아낸 해답이었다.
***
43분 후.
로페즈는 대표실 의자에 허리 전체를 기댔다.
“하···.”
너무 많은 것을 알아냈다. 절대 가볍게 무시할 수 없는 문제들이었다.
“수백 년 만에 전쟁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했어···.”
- 모든 대화 내용을 들었습니다. 누구라도 충격받을 내용이었습니다.
뉴소사이어티는 금성의 비밀종교 단체다. 그들은 금성의 집권 세력인 ‘총수부’와 밀접한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뉴소사이어티는 ‘구체’를 섬긴다. 극에 도달한 모든 천체와 질량이 ‘구체’의 모양을 띄고 있기 때문에, ‘신이 자신의 형상을 본떠 인간을 창조했다’는 종교적인 메시지를 더 거시적인 관점으로 비튼 것이다.
뉴소사이어티는 ‘신이 자신의 형상을 본떠 인간뿐만 아니라 우주의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는 교리를 가지고 있다. 확실히 존재하는, 질량이 있는 미시세계의 입자와 초거대블랙홀까지 모두 구체의 형상을 띄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을 이루는 세포 또한 구체의 형상을 띄고 있으며 세포를 원자 단위로, 원자를 중성자와 양성자 단위로, 중성자와 양성자를 쿼트 단위로 보아도 결국 구체의 형상을 띄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 우주가 탄생했을 당시 빅뱅의 모습 또한 구체의 형상이었을 것이며 그 빅뱅으로 인해 팽창하는 지금의 우주 또한 구체의 형상이라고 한다. 다중우주론을 언급해도 그 모든 우주가 구체이며, 인간이 인식할 수 없는 우주 밖의 세상까지 모두 구체라고 한다.
그 세상은 신들의 영역이며 신들 또한 태초부터 구체의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한다.
“단순한 광신도라고 생각했는데 규모도 있고 나름의 설득력도 있어.”
- 뉴소사이어티는 ‘구체’ 외의 모든 종교를 이단으로 단정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주 전역에는 갖가지 종교가 있다. 뉴소사이어티는 자신들보다 규모가 작은 종교집단을 이단심판이라는 명분으로 ‘정화’하고 있다.
“그게 말이 정화지, 다 죽이거나 세뇌한다는 말 아니야?”
- 그렇습니다.
샌디는 뉴소사이어티의 연구지원을 받으면서, 그들의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준비의 일환으로 뉴소사이어티의 지원을 받아 지구에 비밀연구소를 세우고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힘을 키웠지만, 저번 사건으로 모든 것을 잃었다고 한다.
“어느 쪽이나 아군으로 삼을 수가 없잖아···.”
샌디의 연구소를 생물학 무기 리버레이터로 공격한 세력은 토성에 본사를 둔 사설군수업체인 ‘라 코만데(La-Comande)’였다. 라 코만데는 그녀의 연구소로 사람을 보내 리버레이터 강화를 의뢰했고, 그녀는 거절했다.
이후 샌디는 수년간 착실히 키워온 연구소의 모든 것을 잃었다.
그밖에 라 코만데에 관련된 정보는 그녀도 모른다고 답했다. 이어서 그녀는 자신의 전파자에게 로페즈를 데려다줄 수 있다고 말했지만 로페즈는 거절했다.
당장 정보를 파야할 곳은 뉴소사이어티가 아니라 먼저 이 일을 주도한 것으로 보이는 라 코만데 세력이기 때문이다.
- 관리자님. 금성의 감시위성에 라 코만데의 함선과 접촉한 함대가 있었습니다.
“···함대? 함선도 아니고 함대?”
트랜센던서는 로페즈의 앞에 상당한 규모의 함대 영상을 보여주었다. 다만, 함선 하나를 이루는 픽셀이 스무 개도 안 되는 것 같다.
- 토성 궤도를 찍은 영상을 280배 확대했습니다.
“저 함대는 어디 건데?”
- 정보가 없습니다.
“라 코만데 위에 더 큰 군사조직이 있다고 생각하는 게 맞으려나.”
- 토성 정부와 관련되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함대를 다룰 수준이라면···. 그냥 어느 나라에서 독립한 거대기업일 수도 있겠지.”
- 그렇습니다.
“문제는 저 라 코만데가 사용한 리버레이터라는 게 한 행성에 재난을 일으킬 수 있을 정도로 위협적인 무기라는 거야.”
오늘날 국가규모 집단들의 방어 시스템은 경이로운 수준이다. 핵미사일 수천 발을 쏘아도, 신식 함대의 플라즈마 샤워를 받아도, 극도로 가속한 함선이 행성에 돌진해도 막아낼 수 있다. 넓게 뚫린 공간인 우주에서 적대적인 움직임은 필연적으로 감지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각 위성, 우주선, 정찰선, 태양계의 인터넷 통신을 이어주는 신호증폭기까지 그런 적대적인 움직임을 온갖 관측 수단으로 사전에 알아차릴 수 있다.
하지만 생물학 무기라면 어떨까. 유기물이 없어도 이산화탄소만 있다면 증식하며 어떠한 환경에서든 변이를 일으키고, 공기의 흐름이나 움직이는 물체를 스스로 인식하여 멀리 퍼지려는 습성까지 있는 리버레이터라면 어떨까.
목표 행성에 조금씩 들여와서 주요 도시에 터뜨리면 엄청난 혼란이 야기될 것이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리버레이터의 말도 안 되는 능력을 알아차리기도 전에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할 것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적국의 대대적인 공격이 들어온다면, 그 뒤는 상상도 하기 싫다.
- 뉴소사이어티에는 단 하나의 인륜적 목적이 있습니다.
“그래···. 구체의 형상을 한 신들이 인간을 구원하러 오기 전까지 인류를 하나의 종교로 묶어 분쟁 없이 존속시키는 것···.”
- 라 코만데의 리버레이터는 뉴소사이어티의 목적과 완전히 반대되는 요소입니다.
금성의 모든 도시는 돔 형태의 거대한 구조물에 보호받고 있다. 그런 돔 형태의 도시에서 리버레이터가 터진다면 다른 행성보다 훨씬 심각한 피해가 야기될 것이다.
- 뉴소사이어티는 라 코만데, 토성 정부에 의해 수많은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하기 전에 금성 정부, 총수부에 영향력을 행사하여 토성에 선제공격을 가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우려되는 것은 금성과 토성의 전쟁이다.
“···라 코만데의 목적은 모르지? 왜 금성을 저격하는 듯한 무기인 리버레이터를 가지고 있는지.”
- 그렇습니다.
그저 다른 행성들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할 수는 없다. 태양계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인류의 근간에 크나큰 상처를 남길 것이다.
“태양계의 모든 국가는 화성을 중심으로 태양계 연합을 형성하고 있어. 연합 안에 있는 두 국가가 전쟁을 시작하면, 다른 국가들이 개입할 거야.”
- 토성이나 라 코만데가 외부 항성계의 정부와 비밀방위조약을 체결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게 문제야. 태양계 안에서 해결될 일이면 모르겠는데···. 만약 내가 토성의 지도자라면, 뭔가 이유가 있어서 정말로 금성을 칠 생각이라면, 외부 항성계와 동맹을 맺은 다음에 싸움을 걸 것 같아.”
- 그렇게 된다면 약 500년 만에 4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는 것입니다.
로페즈는 이마를 감싸 쥐었다.
“어쩐지 요즘 너무 잘 풀린다 싶었어···.”
- 이 사건은 근미래 예측 연산이 불가능합니다. 최소한 금성, 토성, 라 코만데, 라 코만데와 접선한 함대 세력의 방대한 데이터가 필요합니다.
“미치겠네.”
- 최적의 해답은 전쟁이 발발하기 전에 옵시디아몬의 본사와 관리자님의 주거환경을 외부 항성계로 옮기는 것입니다.
“화성은 내가 태어나고 자란 나라야. 여긴 내가 지금껏 살아온 태양계라고.”
- 위험요소를 회피하지 않으실 겁니까?
국가 사이에서 벌어질 크나큰 사건을 로페즈가 무조건 막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이번엔 환경과 변수의 크기 자체가 너무도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도 최소한, 최악의 사태가 되는 것을 막으려는 몸부림 정도는 쳐봐야 하는 게 아닌가. 누구라도 그럴 능력이 있다면 말이다.
“나는······.”
로페즈는 책상 위에 올린 두 손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전쟁을 막아야겠어.”
< 11. 나만이 할 수 있는 일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