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 무력집행 (4) >
***
수수께끼의 인물 샌디는 금성으로 돌아갔다. 20억 크레트는 밀라노이가 정보기술거래협력 관계인 옵시디아몬에 투자금을 보탠다는 명목으로 계좌에 입금받았다.
“대체 이 문제를 어떻게 풀라는 거야?”
대표실에선 로페즈와 프녹스가 머리를 맞대고 있다. 그리고 눈에 보이진 않지만 트랜센던서도 함께 고민하고 있다.
“단순히 수학적인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당신이 이 문제의 정답을 맞힐 확률을 아래의 보기 중에 고르시오···. 이 문제가 뜻하는 ‘당신’이란 대표님을 지칭하는 뜻인가요?”
“적어도 이 쪽지에 한해선 그런 것 같아요. 여기 문제 밑에 참고를 보면···.”
「참고: 정답을 알아내신 분은 문제의 전파자를 찾아가세요! 전파자는 곧 자신의 이전 전파자에게 당신을 인도할 것입니다. 그렇게 전파자와 전파자가 이어진 끝에 최초의 전파자에게 도달하면, 놀라운 접촉과 깨달음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샌디 씨가 제게 전파자라는 입장이겠죠. 그러니 이 이건 제게 주어진 문제라고 보는 게 옳아요.”
「① 20% ② 20% ③ 50%」
「④ 100% ⑤ 0%」
“정답을 모르는 상태에서 다섯 개의 보기 중에 하나를 고른다면 확률은 20%입니다. 하지만 보기에 20%라는 선택지가 중복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둘 중 하나를 찍으면 50%···. 50%를 찍으면 다시 100%···. 논리적인 모순으로 맞출 수 없다고 생각했을 때 0%를 찍으면, 0%가 정답이라는 것을 맞췄으니 또 100%···.”
프녹스의 말대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문제다.
‘뭐 이딴 문제가 다 있지?’
트랜센던서는 스피커로 말했다.
“권리: 3fd019deaf15eb6336028257bc31057a의 데이터 복호화를 시도했으나 의미 있는 문자열은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됐어. 얼핏 보기엔 해시함수를 쓴 것 같은데, 해시로 암호화된 데이터는 키가 없으면 절대 찾아낼 수 없으니까. 그냥 이 쪽지가 정품이라는 걸 증명하는 거라고 여겨야겠지.”
“정답을 알아낸 사람은 전파자를 찾아가고 전파자가 또 전파자를 찾아가고···. 그렇게 최초의 전파자에게 도달하면 놀라운 접촉과 깨달음이 있을 거라고 했습니다. 종교적인 의미일까요?”
“···샌디 씨의 연구소를 후원하고 샌디 씨를 거금으로 구출하려던 금성의 비밀종교 단체가 있긴 해요. 뉴소사이어티라고···.”
“그럼 차라리 이 문제 말고 뉴소사이어티를 파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그러자 트랜센던서가 알렸다.
“금성의 인터넷 및 네트워크 영역은 장악하지 못했습니다. 우선 제가 열람할 수 있는 모든 데이터를 검색해보았으나 뉴소사이어티에 관련된 내용은 금성에 없었습니다.”
“흠······.”
“아주 철저한 비밀종교 단체인 것 같아요. 그래도 샌디 씨는 뭔가 커다란 것을 알고 있어요.”
“리버레이터라는 생물학 무기에 관련된 정보는요?”
“검색 결과, 없었습니다.”
리버레이터에 오염된 연구소는 샌디의 경고에 따라 폭파 후 매립되었다.
“트랜센던서. 샌디 씨는 금성에서 어디로 갔지?”
“마지막으로 식별된 기록에 의하면 우주공항에서 내리자마자 같은 착륙장에 대기하던 수송셔틀을 타고 도심 속 건물로 사라졌습니다.”
이것저것 단서는 있는데 단서끼리의 연관성을 못 찾겠다.
그리고 로페즈는 한창 바쁠 때다. 이런 문제에 정신력을 자꾸만 쏟아붓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트랜센던서. 이 문제의 답은 네가 고민해봐. 꼭 당장 알아낼 필요는 없으니까 꾸준히 풀어보라고.”
“알겠습니다. 관리자님.”
“프녹스 씨는 이만 서버실로 돌아가 보셔도 좋습니다.”
“네. 대표님.”
***
며칠 후 옵시디아몬은 범죄예측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개발해냈다. 범죄예측 프로그램은 간단한 가상 테스트를 통과한 후 화성 정부에 넘겨졌다.
정부의 움직임까지 모두 보고 있는 트랜센던서는 알려주었다. 행성대통령의 결재가 완료된 옵시디아몬의 범죄예측 프로그램이 사법부로 넘어갔다는 것을.
- 기업연계부에서 개발성공 보상금으로 옵시디아몬 계좌에 31억1400만 크레트를 입금했습니다.
“알아. 에밋 담당관님한테 문자 받았어.”
이얀 에밋은 기업연계부의 중견기업실 협력담당관이다. 로페즈는 그와 개인적인 연락망을 형성해냈다. 앞으로도 서로에게 제안할 일이 있다면 언제든 부담 없이 연락하기로 했다.
여담이지만 에밋은 옵시디아몬과 정부 사이의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구축했다는 성과를 인정받아 승진을 앞두고 있다고 한다. 그것도 다 행성대통령의 적극적인 최종승인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 행성대통령은 옵시디아몬이 화성에 크나큰 이익을 가져다줄 대기업이 되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그렇겠지. 정부 입장에서는 자국에 유명한 대기업이 하나라도 더 있는 편이 좋으니까.”
- 옵시디아몬은 화성의 뒤처진 기술력에 보탬이 되는 기업이며, 전례 없는 성장률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는 정부의 입장에서 화성의 외교적인 입지를 끌어올릴 수 있는 계기입니다.
정부나 옵시디아몬이나 서로가 좋은 상황이다.
“···그나저나 레나 씨는 밀라노이에서 이야기 잘 풀어나가고 계시나?”
- 지금까지는 그렇습니다.
“비서가 있으니까 확실히 편하긴 하네.”
같은 순간, 로페즈의 비서인 레나는 밀라노이의 본사에서 엑스턴 장군과 참모급 관계자들을 마주하고 있었다.
그들 모두가 제복을 입고 있는 가운데 레나만 정장 차림이다.
“영상에서 보신 바와 같이 드론 하이브는 인공지능의 전술로써 불리한 전세를 단독으로, 단번에 승리까지 이끌어 냈습니다.”
레나가 밀라노이에 보여준 것은 전장에서 드론 하이브가 활약하는 영상이었다.
“드론 하이브에 적재된 B타입 로보버그는 중수소와 플루토늄 기반의 핵융합을 일으킵니다. 드론 하이브가 전술을 구사하는 동안, B타입 로보버그는 표적의 취약한 부분을 확률적으로 도출하여 공격합니다. 드론 하이브와 로보버그가 각기 다른 지능을 가지고 소통하는 것이죠. 인공지능끼리 전술을 소통하는 과정은 인간들이 통신하는 것보다 압도적으로 빠릅니다.”
놀라운 영상과 이어지는 레나의 자신 있는 주장에 참모진들은 혀를 내둘렀다.
“대단합니다. 놀라워요.”
“인공지능끼리 전술을 계획한다니···.”
“이 정도면 지휘관이 필요 없을 정도군요.”
“스펙도 좋은 것 같습니다. 지형 돌파 능력에 적재 공간 확장성까지 있습니다. 환경에 따라 개조하기에도 매우 용이하겠습니다.”
“이게 있다면 무인병기들을 더 효과적으로 지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엑스턴의 생각도 참모진들과 같았다.
“정말 손에 넣고 싶은 병기에요. 이제 가격에 대한 이야기를 해봅시다.”
그 순간 레나는 로페즈의 조언을 떠올렸다.
- 레나 씨. 엑스턴 장군님은 저보다 아래에 있는 사람으로 여기셔도 됩니다. 옵시디아몬과 밀라노이 사이에 덩치 차이가 있어도 위축되지 마세요.
- 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 엑스턴 장군님과 저 사이에 개인적으로 그럴만한 일이 있었습니다. 얼마든지 강하게 나가셔도 돼요.
“드론 하이브는 175억입니다. 내부에 적재된 로보버그와 전자기 플레어까지 포함해서요.”
방금까지만 해도 칭찬 일색이었던 참모진들은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조용히 엑스턴 장군의 눈치만 살피는 모습이다.
“드론 캐리어급의 가격이군요.”
“기동형 기계화 군락입니다. 드론 캐리어와 비슷한 역할이지만 드론 캐리어와 달리 스스로 전술을 구사할 수 있죠. 적재된 로보버그도 마찬가지고요. 옵시디아몬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전자기 플레어는 웬만한 조준 시스템에 다 대응할 수 있는 성능입니다.”
“···기계화 군락입니까? 지상모함이 아니라?”
새로운 개념이었다.
“지상모함이라고 하기엔 사이즈가 좀 작거든요. 적재된 병기의 특성도 따져보면 군락에 가깝습니다.”
엑스턴이 고민에 빠진 얼굴로 침묵하자 옆에 있던 참모급 관계자가 나섰다.
“흠···. 확실히 175억이라면 나쁘지 않은 가격입니다. 통상의 드론 캐리어보다 이 드론 하이브라는 것이 지상에서는 훨씬 좋아 보이니···. 하지만 유지비가 부담입니다.”
“유지비라고 하심은 무엇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이 드론 하이브를 운용하기 위해선 전자기 플레어와 로보버그를 지속해서 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병기에 탄약을 보급하는 것처럼요. 핵융합을 일으키는 로보버그에 플루토늄이 들어간다면 그 가격이 만만치 않을 텐데요.”
“드론 하이브는 로보버그를 최대 2000기까지 적재할 수 있습니다. 그 영상에 나온 드론 하이브가 다각전차 다섯 기와 전쟁기계로 무장한 4개 분대급의 병력을 해치우는 데 소모한 로보버그 수는 400기도 되지 않죠. 그리고 B타입 로보버그 한 기의 가격은 6만 크레트입니다. 2400만 크레트로 인명손실 없이 4개 분대를 전멸시킬 수 있다면, 충분히 합리적이지 않나요? 폭격을 퍼붓는 것보다 몇 배는 싼 가격 같은데요.”
레나는 고개를 갸웃하면서 싱긋 웃어주었다. 괜스레 그녀의 눈매가 날카롭게 보인다.
“엑스턴 장군님은 어떻게 생각하시죠?”
지극히 부드러운 어조지만 이상하게도 위압적이다. 엑스턴은 허리를 살짝 앞으로 당기며 양손을 양쪽 무릎에 바쳤다. 그러고 있으니 뭔가 본격적이면서도 공손한 자세가 되었다.
“175억. 드론 하이브···. 일단 오늘 이 자리에서는 두 기를 주문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쪽에서 한 가지 제안을 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 레나 비서님께 말씀드리면 되는 건지요?”
“네. 저는 바쁘신 대표님을 대신해서 온 사람입니다. 협상권을 제게 일시적으로 위임하셨어요. 마지막에 컨펌은 대표님이 하시겠지만요.”
“드론 하이브가 시중에 발표되면 국방부에서 무조건 손을 뻗을 것 같습니다.”
“네. 대표님은 그것도 고려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드론 하이브의 수요가 증가할 것이고 그에 맞춘 생산시설까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만일 정부에서 드론 하이브를 주문한다면 밀라노이가 그 생산을 도와드리고 싶습니다. 굳이 옵시디아몬의 공장을 드론 하이브의 규모에 맞게 확장할 수고를 덜 수 있습니다. 옵시디아몬이 드론 하이브를 판매하여 얻을 순이익 비율이 아주 높아질 것입니다.”
“그 대가는요?”
“로열티입니다. 이익금의 1%라면 어떻겠습니까?”
레나는 바로 머릿속의 계산기를 두드렸다.
“175억에서 1%는 1억7500만이네요. 저희는 정부가 우선적으로 자국에서만 드론 하이브를 운용할 것이며, 약 50기를 주문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50기의 가격은 8750억 크레트고 그중 1%는 87억5000만 크레트입니다. 87억 정도면 옵시디아몬이 드론 하이브를 양산하기 위해 공장확장을 하기에 충분한 금액이고요. 어차피 저희도 저희의 공장을 확장해두면 나중에도 쓸 수 있으니 장기적으로 나쁘지 않습니다.”
“···.”
“그러니 1%나 지불하면 저희에게 메리트가 없어요. 전혀.”
조금 욕심을 냈던 엑스턴은 체념해버렸다. 그녀가 주장하는 숫자에 반박할 근거도 생각나지 않고 무엇보다 그녀의 뒤에 있을 로페즈에게 밉상으로 보이고 싶지 않아서다.
“그럼 레나 비서님이 생각하시기에 몇 퍼센트가 적절할 것 같습니까?”
“공장확장에 들어갈 비용은 이미 재정관리팀에서 산출을 해뒀습니다. 약 40억이죠. 저희가 장군님의 제안을 수락했을 때 최소한 20억의 이득은 봐야 대표님께서도 납득하실 것 같습니다.”
레나는 로페즈를 걸고 넘어졌다.
이러면 엑스턴의 입장에서 정말 더는 욕심을 낼 수가 없다. 얻을 수 있는 것만 감사히 받아먹는 수밖에.
“장군님. 0.2%정도라면 50기를 주문받았을 때 17억5000만을 밀라노이가 가지게 됩니다. 그러면 저희는 공장확장에 필요한 40억을 쓰지 않고 22억5000만 크레트의 이득을 볼 수 있습니다.”
***
오후 5시.
로페즈는 레나가 따온 밀라노이의 제안을 전략기획팀과 회의했다. 곧 밀라노이의 제안에 응하는 방향으로 결정이 났다.
그리고 로페즈는 회의가 끝나자마자 빠른 걸음으로 대표실에 서둘러 올라왔다.
그는 대표실의 문이 닫히자마자 책상과 일체화된 키보드를 누르고 말했다.
“레나 씨. 자이칸 씨 좀 호출해주세요.”
트랜센던서는 물었다.
- 관리자님. 어디로 가실 예정입니까?
“샌디 씨가 준 쪽지. 그 문제의 정답을 알아냈어.”
- 정답을 알아내는 것이 불가능한 문제입니다.
“그래도 알아냈다니까.”
로페즈는 왠지 모를 조바심과 기대감을 내비치고 있다.
- 관리자님이 도출하신 정답이란 무엇입니까?
“안 알려줄 거야.”
- ······네?
트랜센던서는 기계적인 음성으로 마치 당황한 사람처럼 얼빠진 소리를 내었다.
곧이어 항시 대기 중인 자이칸이 대표실에 들어왔다.
“자이칸 씨. 금성으로 출장 좀 가주실래요? 중요한 ‘작업’이 있어요. 이런 일은 믿고 맡길 사람이 자이칸 씨밖에 없네요.”
믿고 맡길 사람이 자이칸 밖에 없다는 말에 그는 강한 충성심을 드러냈다.
“알겠습니다. 작업이라면 어떤 작업입니까?”
“샌디 씨를 찾을 거예요.”
“샌디 씨라는 분은······. 죄송하지만 누구입니까?”
“아, 그전에 트랜센던서라는 것에 대해 알려드릴게요. 사실 제가 그동안 자이칸 씨에게 숨겼던 것이 있어요.”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다. 문제의 정답을 찾아냈다더니 말해주지 않고, 갑자기 자이칸을 불러서 금성으로 보낸다고 하고, 이제는 그 무엇보다 중요한 비밀인 트랜센던서의 존재를 자이칸에게 알리려 하고 있다.
“오로지 저, 프녹스 씨, 리탄 회장만이 그 존재를 알고 있는 인공지능이죠. 죽거나 감옥에 들어간 놈들을 빼면요.”
“예?”
- 관리자님?
자이칸과 트랜센던서는 동시에 같은 반응을 보였다.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트랜센던서와 프녹스가 풀지 못했던 문제를 로페즈는 하루 만에 풀어버린 것이다.
「그녀는 절망하고 있습니다.」
- ······알면 죽어요. 모르시는 게 나아요.
- 안 무섭습니다.
- 알면 무서워질 거예요.
태양계에 무언가 있다.
이제 이 일의 실체를 파헤쳐볼 시간이다.
< 10. 무력집행 (4)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