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 무력집행 (2) >
***
엑스턴 장군의 목소리가 차량 내에 퍼졌다.
- 제가 갑작스레 이런 부탁을 드릴 입장이 아니라는 걸 압니다. 그래도 로페즈 님은 굉장히 합리적이고 계산적이시지 않습니까. 저희를 조금만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밀라노이가 로페즈에게 도움을 요청할 정도의 일이란 무엇일까. 일단 트랜센던서의 보고에 따르면 밀라노이에 딱히 특별한 일은 없다고 했다. 그들은 평상시의 업무. 즉, 전투활동이나 경호, 첩보 활동, 병참지원, 군사 훈련, 무기개발 등의 통상적인 일을 하고 있다.
“이야기부터 들어보죠.”
“지구에 불법 연구소가 있습니다. 그 연구소를 후원하는 단체에서···”
「뉴소사이어티가 후원하는 이름 없는 연구소입니다.」
그가 한 문장 한 문장을 말할 때마다 트랜센던서가 텍스트를 띄워주었다.
“연구소의 위기를 알아차리고 연구소장을 구출해달라는 의뢰를 했습니다.”
「연구소는 생물학 무기에 노출되었습니다.」
「연구소장의 이름은 샌디 옵시디언입니다.」
로페즈는 그 부분에서 반응했다.
“그 사람 이름이 옵시디언이에요?”
“역시 다 알고 계시는군요. 맞습니다. 샌디 연구소장이라는 개인. 그 한 명만 구출하면 되는 의뢰입니다. ···그런데 생물학 무기 때문에 인물을 구하러 갈 통로를 열 수가 없습니다.”
“전투복을 입으면 상관없지 않아요?”
“예. 병사는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병사를 투입해서 통로를 개방하면 비무장 상태인 인물이 생물학 무기에 노출될 위험성이 있습니다.”
“지상에서 땅을 파고 내려가면요?”
“그러면 지구의 방사능에 피폭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시설이 무너질 염려나 굴을 파는 도중에 적습에 당할 위험도 있습니다. 적들이 누구인지 얼마나 있는지 어디에 있는지를 아직 모릅니다. 그래서 아직 포착되지 않은 적들이 매복 중인 것으로 파악됩니다.”
위험하고 복잡한 문제에 직면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는 뜻인 것 같다.
어쨌든 문제 상황을 해결하는 것은 로페즈와 트랜센던서의 특기라면 특기라고 할 수 있다.
“연구소를 후원하는 단체는 뉴소사이어티입니다. 이 일의 위험성이 커지면서 처음에 제시한 의뢰금이 조금 더 올랐습니다.”
“얼마죠?”
“75억에서 82억으로 늘었습니다. 로페즈 님께서 도움을 주신다면 그중 20억을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교전 상황이 발생할 경우 현장에 남겨진 적들의 기술을 회수하실 수 있도록 조치하겠습니다. 어떠십니까?”
로페즈는 늘 그랬듯 머리를 굴렸다.
‘최근에 건물을 사서 재정 상태가 나빠지긴 했다···. 20억이라면 거절하기엔 아쉽지. 조금만 도와주면 금방 해결될 일 같은데.’
그리고 트랜센던서는 로페즈의 사고방식과 성격을 이해하고 있다.
「관리자님. 지구는 무정부 행성입니다. 태양계 각지의 불법 실험이 모이는 행성이기도 하며 그런 실험과 기술을 놓고 무력충돌이 자주 발생하는 전장이라고 여길 수 있습니다.」
‘적을 마주쳤을 때 적들의 기술을 탈취할 수 있다면 장기적으로 20억 이상의 이득을 볼 수 있다.’
「변수 통제가 어려운 환경이지만 일반적인 경로로 구할 수 없는 기술을 습득할 기회가 될 것입니다.」
‘그래. 화성 인터넷으로 얻을 수 있는 기술은 거의 다 얻었어. 옵시디아몬과 트랜센던서가 더 성장하기 위해선 화성 바깥의 기술도 탐색해야 한다.’
‘지구는 옵시디아몬의 무기가 활약할 현장이 되기도 하겠지. 샌디 옵시디언이라는 인물의 가치도 신경 쓰이고···. 여러모로 얻을 수 있는 게 많아.’
그렇게 생각해보면 엑스턴 장군이 제시한 20억은 덤으로 딸려오는 소소한 이익 정도로 느껴진다.
“알겠습니다. 방법을 찾아드리죠.”
- ···감사합니다. 저희가 가지고 있는 의뢰내용과 현장 정보를 암호화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
개인 우주선 같은 소형 비행체의 출력으로는 행성 간 이동이 어렵다. 그래서 로페즈는 리탄에게 말해서 화이트홀의 예비함선을 빌렸다. 화성에서 지구까지 가기 위해선 중력조작 기술을 갖춘 엔진과 강력한 가속 능력이 있는 함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구 궤도에 적함이나 우주선이라도 있다면 도주 능력과 내구성을 고루 갖춘 함선이 필수적이었다. ···함선에 적재할 것들이 있기도 했고.
함교의 넓은 유리창 너머로 방사능에 오염된 황무지 행성이 보인다.
“지구의 중력권에 진입했습니다. 로페즈 님.”
함교의 승무원들은 리탄이 엄선해서 데려다 놓은 화이트홀의 엘리트들이라고 한다.
“이대로 지구 궤도를 돌아주세요. 밀라노이의 강습셔틀과 접촉해야 합니다. 스텔스라서 중력장으로 탐지해야 할 거예요.”
“알겠습니다.”
머지않아 함선은 밀라노이의 우주선과 접촉할 수 있었다.
로페즈는 아무도 없는 통로에 슬쩍 들어와 말했다.
“트랜센던서. 준비됐지?”
- 언제든지 투하할 수 있습니다.
옵시디아몬이 그간 화성에서 끌어모았던 기술의 정수로 어떤 병기를 만들 수 있는지 보여주겠다.
***
서울은 옛 지구의 동양에서 베이징, 도쿄와 나란히 최고로 유명했던 도시라고 한다. 좁은 땅에 극도로 밀집된 도심은 주변 산악지형보다 높아서 완전히 새로운 환경을 구성했다.
비록 지금은 폐허가 된 문명의 잔재지만 과거의 찬란했던 건물 높이는 평균 층수가 기본 100층을 넘는다. 특히나 도심 위에 새로운 인공의 땅을 만들어서 그 땅 위에 또 도시를 짓는 경이로운 건축기술은 세계적으로 유명했다는 기록이 있다.
물론 서울도 예외 없이 핵전쟁의 여파를 피할 수는 없었다. 2중층으로 이루어진 도심의 위쪽은 완전히 붕괴해서 콘크리트의 산사태라도 뒤집어쓴 것 같다.
따라서 보병들이 은폐할 장소가 매우 많다고 볼 수 있으며, 아직 발견되지 않은 적들은 도시 폐허라는 콘크리트 숲에 매복한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는 진입조. 좌표에 도착했다.”
외부 환경과 완전히 차단되는 전투복은 밀라노이의 사병들이 극한환경에서도 움직일 수 있도록 해준다. 전투복은 착용자의 뇌파와 연결되어 착용자가 원하는 움직임을 지원해준다.
그들의 일부는 주변 건물의 깨진 창가로 단번에 뛰어올랐다. 그 도약 높이가 8층 정도는 되는 것 같다.
“여기는 저격조. 움직임은 탐지되지 않는다.”
그리고 상공에는 날렵한 디자인의 납작한 비행체들이 느린 속도로 도시 위를 돌고 있다.
“여기는 드론 파이터. 특이사항 없다.”
저격조와 드론 파이터들의 정보를 전달받은 진입조는 기민하게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여기는 진입조. 도착했다. 구출대상은 우리 발밑에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 지휘부에서 모든 채널에 알린다. 진입조는 진지 구축을 시작하고, 다른 조는 진입조를 엄호한다.
“진입조. 알겠습니다.”
- 저격조. 알겠습니다.
- 드론 파이터. 알겠습니다.
“건설 차량 투입해.”
쿠우우···
반중력 추진기로 기동하는 건설 차량이다. 밀라노이가 기존의 건설 차량을 전장에서 진지구축에 용이하도록 개조한 모델이다. 말만 차량이지 실제로 생긴 모습만 보면 하반신이 없는 로봇이나 거꾸로 뒤집힌 문어처럼 생겼다.
목표지점에 도착한 건설 차량들이 신속하게 진지 구축을 시작한다. 조립식 건설자재를 가져와 배치하고 자재와 자재를 끼운다. 연결된 자재는 스스로 건설되는 기계가 되어서 작업을 보조한다.
건설 차량이 자재를 조립하면, 조립된 자재는 살아있는 생명처럼 금속의 기둥이나 벽을 세워가면서 건축물의 형태를 빠르게 구축한다.
그렇게 작은 건축물을 만들기까지는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진지구축이 완료되었다.”
진지 내부는 건설 차량 한 대와 사람 세 명이 들어오면 꽉 차는 넓이다. 내부로 들어온 건설 차량은 오염된 토양 위에 액체를 쏟아냈다.
쏴아아!
“내부 방사능 제거작업을 시작하겠다.”
진지는 자체적으로 내부 공기를 빼냈다. 진공 상태가 된 곳에서 토양에 스며든 인공 미생물이 방사성 원소와 화학반응을 일으킨다.
이렇게 해도 모든 대기와 모든 토양이 오염된 지구라는 행성의 특성상, 방사능을 깔끔히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적어도 인체에 치명적이지 않을 수준으로 방사선 피폭량을 낮추는 것까지는 가능하다. 그 방사선이 인간의 세포에 미치는 미약한 영향 정도는 현 의료기술로 치료가 가능하다.
연구소로 내려갈 굴을 파기 전에 외부의 방사선 피폭량을 최대한 낮추고, 샌디 연구소장이 있을 지하로 인원을 보내서 그녀에게 전투복을 입힌다.
그대로 구출하면 작전 성공이다. 그런 계획이다.
“굴착 작업을 시작하겠다.”
위이이이잉!!! 카카카카카캉!
마침내 건설 차량이 드릴을 써서 굴을 파기 시작한다. 굴을 파 내려가는 와중에도 드릴에서는 인공 미생물이 뿌연 액체의 형태로 마구 뿜어져 나온다.
진지에 들어온 세 사병은 잡담을 나누었다.
“아이디어 좋네. 누구 머리에서 나온 거야?”
“그야 엑스턴 장군님이겠지.”
“궤도에서 우릴 지원할 화이트홀 함선이 왔다는데.”
“그거 화이트홀이 아니라 옵시디아몬이야.”
“옵시디아몬? 아, 전에 우리 회사랑 계약한 곳?”
“거기 대표랑 엑스턴 장군님이랑 친분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어.”
“로페즈였지. 작년에 떠들썩했잖아. 요즘엔 거의 연예인이나 다름없고.”
“밀라노이 본사에서 수십 명이 죽었다고 하더라. 적습을 받아서 엑스턴 장군님도 당하실 뻔했는데 그쪽 대표가 도와줬다고 하던데.”
“적습? 어디?”
“일급기밀이래. 그날 본사에서 살아남은 지휘부 인원들 말고는 아무도 몰라.”
시시콜콜한 잡담을 나누던 중, 상황이 발생했다.
- 적습이다!
- 드론 파이터가 당했다!
***
콰콰콰콰쾅!!!!
땅이 울릴 정도의 폭격이다.
진지에 위치한 사병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네 다리로 기동하는 다각전차와 전쟁기계들이었다.
키이잉!!!
다각전차는 강력한 출력의 플라즈마 줄기를 상공으로 뿌려대며 드론 파이터들을 저지했다. 그 푸르게 요동치는 빛줄기에 구름조차 찢어졌다. 동시에 전쟁기계들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진군하며 온갖 발사체들을 진입조가 위치한 곳으로 퍼붓는다.
“엄폐! 엄폐하라!”
밀라노이의 사병들은 주변 구조물로 엄폐했다. 그런 직후, 다각전차의 미사일과 유탄이 날아와 진지에 직격했다.
콰콰쾅!!!
“놈들이 진지를 파괴하려 한다! 저격조! 적들의 수를 보고해!”
같은 순간, 주변 건물의 상층에 매복했던 저격조는 레일건으로 적들을 조준했다.
“다각전차 다섯 기! 전쟁기계는······!”
전쟁기계의 숫자를 말할 수 없었다.
그 숫자를 제대로 셀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림잡아 50기 정도다······.”
그리고 저격조의 위치 또한 발각되었는지 몇몇 전쟁기계들이 저격조가 있는 곳으로 화력을 집중했다.
콰아아!!!!
진지 근처에 엄폐한 사병들은 저격조가 매복한 건물이 통째로 무너지는 광경을 보았다.
“씨발! 좆됐다! 저 커다란 것들이 어디에 매복했던 거야?! 궤도 정찰함은 뭐 했어?!”
“전력 격차가 너무 크잖아! 우리는 기계 같은 거 안 가져왔다고!”
그러는 와중에도 진지는 적들에게 타격받고 있다. 이대로라면 진지가 무너져서 작전 실패다. 아니, 작전 실패는 고사하고 투입된 인원들의 목숨조차 보장할 수 없는 불리한 상황이다.
엄폐했던 사병들은 휴대용 미사일 발사기로 다각전차를 공격했다. 에너지 소총으로 전쟁기계를 저지하려 방아쇠를 당겨댔다. 가속한 입자를 쏘아대는 에너지 소총 계열의 광학병기와 에너지탄은 적들의 장갑을 파괴했다.
몇 전쟁기계가 쓰러지고 몇 사병들이 죽어나갔다. 그러나 서로에게 공격을 퍼붓는 와중에 화력의 격차는 절대적인 전력 격차가 되었다.
- 확인했다. 해당 좌표에 폭격을 가하겠다. 전 병력은 폭격에 대비하라.
밀라노이의 우주전폭기가 대기층으로 내려오면서 빨갛게 가열되었다. 이윽고 적들의 위로 파상 공세가 쏟아져 내린다.
콰앙! 콰앙! 콰앙! 콰앙! 콰앙!
0.8톤의 묵직한 철갑탄이 상공에서 가속되어 떨어진다. 단계적으로 내리꽂히는 철갑탄 폭격에 콘크리트 파편과 흙 알갱이가 튀어 오른다. 철갑탄에 직격당한 전쟁기계와 다각전차가 2차 폭발을 일으키며 파괴된다.
그렇게 우주전폭기가 지나간 후 폭격이 잠잠해졌다.
곧이어 뜨거운 폭연이 바람에 따라 걷혔다. 하지만 밀라노이의 적들은 예상보다 몇 배는 더 강한, 정체불명의 세력이었다.
“저, 적들이 실드를 전개했다!!!”
그것은 외부 항성계의 최첨단 기술이었다. 일정한 영역에 인공 입자를 가속하여 모든 운동 에너지를 상쇄한다는 기술이다.
살아남은 다각전차와 전쟁기계들은 반투명한 에너지 방벽을 전개한 채 전진을 시작했다.
이제 작전이라는 것은 밀라노이 사병들의 머릿속에 떠오르지도 않는다.
“실드라니···. 여긴 태양계잖아···. 저건 반칙이라고···!”
몽둥이를 든 원시인 무리가 중세의 군대를 상대한다면 이런 느낌일까.
- 진입조! 당장 후퇴해!
전투복을 입고 있으니 인간의 달리기를 초월하는 속도로 후퇴할 수는 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봤을 때, 전투복의 반중력 추진기와 보행능력 정도로는 저 다각전차와 전쟁기계들로부터 무사히 벗어날 수 없으리라.
“망했어! 우린 다 뒈질 거야···!”
“이상한 소리 지껄이지 마!”
“후퇴! 일단 후퇴해!!!”
적들이 에너지 방벽을 전개했으니 견제사격도 의미가 없다. 지금 현장에 투입된 밀라노이의 사병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적들에게 등을 보인 채 전력으로 도망치는 일뿐이다.
“어······?”
도망치려던 그들의 다리가 그 자리에서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도망치려던 방향에서 더 압도적인 것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저건···.”
공중에 살짝 떠서 다가오는 이상한 물체.
그 너비는 25미터, 높이는 대략 50미터.
직육면체의 구조물 같은 것이 다가오는 모습을 보니 외계인이라도 마주한 기분이다. 그 물체의 새까맣고 매끈한 표면 위로 직선적인 푸른 선이 지나고 있다. 외계인이 아니라면 외계의 유물이라도 보는 것 같다.
- 계속 그 방향으로 후퇴하라고!
저만한 존재감이라면 지휘부도 분명 보았을 것이다. 분명 보았을 것인데, 계속 저것이 있는 방향으로 후퇴하라고 한다.
사병들은 굳었던 다리를 가까스로 움직였다.
그러면서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인, 미지의 두려움을 희망으로 바꾸려 노력한다.
“저, 저거 우리 편이지? 제발 그렇다고 대답해줘.”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함교에서 주시하고 있던 로페즈는 트랜센던서에게 명령했다. 소리 없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는 행위로써.
- 기동형 기계화 군락, 관리자님의 신체 네트워크와 연결 성공. 전술타격 프로토콜 가동. 무력집행 작전 개시.
- 반갑습니다. 관리자님. 저는 드론 하이브(Drone Hive)입니다. 보조 권한자 트랜센던서 님의 명령을 이행하겠습니다.
- 지금부터 현장의 모든 적대물체를 파괴하겠습니다.
< 10. 무력집행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