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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인공지능 키우기-52화 (52/183)

< 10. 무력집행 (1) >

***

하이게이트 그룹의 회장은 에리카 애틀라탄이다. 그리고 그의 딸인 에리카 애니아나는 로페즈와 계열사 계약을 체결한 참이다.

사업적인 이야기가 끝난 후 그녀는 선뜻 사적인 이야기를 꺼내왔다.

“로페즈 씨도 그 연락 왔나요?”

“무슨 연락이요?”

애니아나는 테이블 위에 팔꿈치를 걸치고는 로페즈에게 살짝 다가들었다.

“리오네에서 발간하는 ‘올해 주목할 인물 20명’이요. 오늘부터 시간 내줄 수 있는 인물들을 찾아서 연락을 돌리고 있다던데요. 제 친구가 거기 편집장이거든요.”

“아···. 저는 처음 듣는 이야기네요.”

“아직 로페즈 씨에겐 연락이 안 갔구나···. 제가 로페즈 씨 이야기 많이 했거든요. 작년부터 올해 초까지 화성의 커다란 변화를 일으킨 중심인물이라고 자랑했어요.”

‘내 자랑을 왜 그쪽이···’

“하하. 감사합니다.”

“그래서 로페즈 씨랑 일 때문에 만날 일이 있다고 하니까 안 믿어주더라고요···.”

로페즈는 그제야 이해했다.

“만약 제게 연락이 온다면 애니아나 씨와 함께 가서 눈도장이나 찍어야겠네요.”

“와! 정말요?”

“리오네 정도면 유명한 출판사잖아요. 이참에 제 인지도를 높이면 옵시디아몬의 이미지 마케팅에 도움도 될 거고···.”

그리고 ‘올해 주목할 인물 20명’ 중 누군가와 좋은 접촉이 생길 수도 있는 일이다. 조금만 시간을 내서 적당히 인터뷰하는 것으로 인맥을 넓힐 기회가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애니아나와 함께 가서 리오네의 편집장이라는 사람에게 눈도장을 찍어두면, ‘리오네의 관련자’와 ‘애니아나’의 우호도 또한 증가할 것이다.

로페즈는 그런 계산까지 마친 후에 애니아나와 구두로 약속했다.

“제가 사실 그런 자리가 익숙하질 않아서···. 아는 사람이 함께 가주면 편할 것 같습니다.”

“네, 네! 물론이죠! 로페즈 씨라면 꼭 연락이 갈 거예요. 아마 로페즈 씨가 콘텐츠의 첫 번째 표지를 장식하게 될걸요?”

“그거 재밌겠네요.”

***

엑스턴 장군은 밀라노이 본사의 참모실에 앉았다.

“작전부. 브리핑 시작해.”

“예.”

엑스턴과 참모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한 사병이 홀로그램을 띄웠다.

홀로그램에 나타난 행성은 검푸른 바다와 몇 대륙을 지닌 황무지 행성이었다. 액체 상태인 바다가 있으나 가장 추운 극관에도 얼음은 없으며, 황토색의 대지와 구름이 먼지처럼 쌓여서 생명력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 주변을 공전하는 회백색 위성과 자잘한 우주쓰레기들도 보인다.

한때는 찬란한 생명을 꽃피웠으며, 또 한때는 진보한 문명이 태동했던, 이제는 과거 문명들의 핵전쟁으로 방사능에 오염된 폐허이자 무법지대로 전락한 행성이다.

「지구(Earth)」

「좌표: 북위 37.5 동경 127 서울(Seoul)」

「목표: 샌디 옵시디언(Sandy Obsidian) 구출」

“그 여자 이름이 옵시디언이라고?”

“샌디 연구소장이라고 부릅니다.”

“계속해.”

“해당 연구소는 금성의 비밀종교 단체, 뉴소사이어티(Newsociety)가 후원하는 인공생체물질 연구 및 실험시설입니다. 생명공학으로 인공생명체를 만들어 애완동물이나 기계부품 등을 대신하려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특징적인 사항으로는, 복제인간에게 인체실험을 진행하기 위해 지구에 연구소를 세운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29일 전부터 뉴소사이어티의 후원을 받아 ‘질병 저항’ 유전자를 개발하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엑스턴은 시가에 불을 붙이며 물었다.

“그 연구소 상황은?”

“폭격을 받은 후 원인불명의 전염병에 노출되어 시설 내부의 모든 구역과 통로를 차단했다는 정보가 있습니다. 폭격을 가한 상대는 특정하지 못했습니다.”

“뉴소사이어티가 제시한 금액은?”

“샌디 연구소장을 무사히 구출한다는 조건만 충족하면 75억 크레트입니다. 계산은 밀라노이 화물선에 금괴를 담아 보내겠답니다.”

“그 여자 하나가 그렇게 대단한 인물인가?”

“금성의 인터넷을 찾아본 결과에 의하면 검색되는 내용이 거의 없었습니다. 명문대학원을 박사로 졸업한 후 활동 정보가 없습니다.”

엑스턴은 이마를 긁적이며 시가를 한 모금 더 마셨다. 그런 직후 참모들을 돌아보며 명령했다.

“우리 병사들이 들어갔다가 누군지도 모르는 상대한테 폭격이라도 맞으면 안 되겠지. 상공에는 드론 파이터 배치하고 궤도에는 정찰함이랑 우주전폭기 띄운다. 작전실행 준비해.”

***

리오네의 편집장이라는 사람은 로페즈를 보자마자 화들짝 놀라서 탄성부터 내질렀다.

“어?!”

애니아나는 친구의 반응에 어깨를 으쓱했다.

“내가 전에 말했지? 진짜라니까.”

“어, 어어! 그, 처음 뵙겠습니다. 알리시아 페니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로페즈입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로페즈는 사실 ‘올해 주목할 인물 20명’의 첫 번째 인터뷰 대상이었다고 한다. 심지어 인터뷰를 요청하는 메일은 진작에 보내놨다고 한다.

“아, 제가 공적인 메일은 사원을 통해 확인하고 있어서요. 메일들이 쌓여서 누군가 실수로 체크하지 못한 것 같네요. 하하···.”

“옵시디아몬은 워낙 바쁠 때니까요. 정말 괜찮습니다. 바쁘신 와중에 이렇게 찾아와주신 것으로도 저희는 너무 감사하죠.”

공적인 메일은 비서인 레나와 트랜센던서가 관리한다. 그리고 레나의 업무 적응을 도와주는 보조 인공지능에는 트랜센던서가 개입하고 있다.

‘스팸으로 처리했나?’

로페즈가 의문을 품는 순간 트랜센던서가 눈치 좋게 텍스트를 띄웠다.

「리오네의 메일에는 인터뷰 요청내용이 있어 처리작업을 뒤로 미루었습니다.」

‘중요도에서 밀렸구나.’

곧 리오네의 사원 몇 명이 들어와서 반중력으로 부양하는 카메라와 마이크를 켰다. 로페즈는 페니 편집장과 애니아나가 지켜보는 가운데 인터뷰를 시작했다.

인터뷰 내용은 나중에 잘 정리해서 콘텐츠로도 발행될 거지만, 인터뷰 도중에도 진정성을 위해 인터넷 방송을 진행한다고 한다.

“자, 시청자 여러분! 오래 기다려주셨습니다. 올해 주목할 인물 20명! 그 첫 장을 장식하실 분을 모셔왔는데요.”

로페즈의 앞에서 인터뷰를 진행할 사원은 리오네의 직장인임과 동시에 유명한 인터넷 방송인이라고 한다. 직업을 하나만 가지는 사람은 거의 없는 오늘날, 이상한 일은 아니겠다.

그는 굉장히 유쾌하게 생긴 젊은 남자다.

두두두두두둥!

스피커로 효과음이 나온 후 카메라가 로페즈의 상반신과 얼굴을 담았다.

“바로 옵시디아몬의 대표! 로페즈 님을 모셨습니다! 박수!”

현장에서 박수를 치는 사람은 한 명뿐이다.

로페즈는 눈 근육에 살짝 힘을 주었다. 그러자 기계안이 멀리 떨어진 모니터 화면을 확대해주었다.

화면에 정신없이 올라가고 있는 글자들을 로페즈는 처음 보았다.

그것은 인터넷 방송의 채팅창이라는 것이었다.

「오 뭐야」

「와」

「?」

「미쳤다」

「저 분이 방송에 나와도 되는 거?」

「지금까지 리오네를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

「어떻게 섭외함?」

「내일 갑자기 리오네가 사라지면 음모론 부활이다.」

「이거 진짜예요?」

「처음부터 세게 나가네」

「뒷사람들은 무슨 죄냐!!!」

「존경합니다. 형님.」

「?」

「절대 자살하지 않는 분이네」

「(박수)(박수)(박수)」

「여기 뭐하는 방인데 시청자가 이렇게 많음?」

「저는 절대 박수치지 않습니다. 만약 제가 박수를 친다면 그건 화성에 뿌리내린 거대한 타의.. 읍읍!! 살려주세요! 집에 선글라스 쓴 이상한 남자들이 읍읍!」

「멋있다!!!」

「저 사람은 마지막으로 인터뷰 했어야지;;」

「와」

「미친」

로페즈는 채팅창이라는 것을 확인한 후 시야를 축소했다. 정신없이 올라가는 코드는 봤어도, 정신없이 올라가는 누군가의 반응들은 쉽사리 읽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후 질문에 대답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로페즈의 모습이 실시간으로 송출되었고 실시간으로 들어오는 시청자들의 반응에 따라 돌발적인 질문이 들어오기도 했다.

‘좀 더 진중한 분위기를 원했는데···.’

농담도 많았고 장난치는 시청자들도 많았다. 애인이 있냐는 질문이나 하루에 화장실을 몇 번 가냐는 질문도 있었다. 로페즈는 적당히 웃어넘기기에 바빴고 그러면서 모든 발언에 조심해야 했다.

내뱉는 모든 말이 실시간으로 송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년에 벌어진 여러 사건들에 대해선 자세한 이야기를 꺼낼 수 없었다.

그래도 진중한 모습을 보여줘야 할 순간에는 미리 준비한 대사를 내뱉을 수 있었다.

“인류의 과학기술을 앞당기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국방력 증강을 위해 무기사업으로 분야를 확장하는 중이죠.”

“콜로니 사업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무조건 사람이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발적으로 오고 싶어지는 회사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사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일을 하면서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늘 신경 쓰고 있습니다.”

“근래에 건물을 옮겼습니다. 자리가 많이 남아서 사원을 더 채용할 예정이고요.”

이야기가 퍼질 것이고 그 이야기를 들은 자들 중 몇 사람은 로페즈나 옵시디아몬을 통해 기회를 잡으려 할 것이다. 로페즈 개인의 인지도가 더욱 높아질 것이며 옵시디아몬의 또렷한 목적의식도 인터넷 세계에 전파하는 계기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인터뷰가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페니 편집장이 누군가를 소개해줬다.

“로페즈 씨 다음으로 인터뷰하실 분이에요.”

“로페즈 님. 정말 팬입니다.”

로페즈는 그가 누군지 모른다. 훤칠한 키에 조각 같은 미남이고 눈매가 왠지 아련하게 생겼다.

「빈(Veen). 현재 극장개봉 중인 영화 ‘떨어진 별을 잡은 이’에 출연하여 슬픈 연기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모으고 있는 신인배우입니다. 나이는 20살입니다.」

트랜센던서의 텍스트 설명 직후 소리 없이 자막만 나오는 그의 명장면이 재생되었다.

우주선으로 오르려는 여배우의 소매를 그가 소심하게 붙잡고 있는 장면이다.

「매일 밤이 되면 널 올려다볼게.」

「이 땅에서 너의 별이 보이니까! 너도 그쪽 별에서 날 봐달라고!」

「그러면 네가 나를 잊어도, 내 별은 기억해줄 거잖아···.」

하마터면 오글거려서 경련을 일으킬 뻔했다. 그래도 그건 로페즈의 개인적인 감상일 뿐, 대중들이 그를 칭송하고 있다면 무조건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 나이에 인기배우라면 올해 주목할 인물이 될 수도 있겠다.’

이제 막 떠나려던 참에 좋은 만남이 생긴 것 같다.

“빈 님 맞으시죠? 영광입니다. 저도 그 장면을 보고 울뻔했어요.”

“그 장면이요? 으악! 부끄러워요!”

“하하하. 왜요? 전혀 부끄러워하실 일이 아닌 것 같은데요.”

“제가 아직 그때 그 연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거든요···.”

대중들은 감동해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데 정작 연기를 한 본인은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

그 말이 로페즈에게 하여금 빈의 가치가 높아 보이게 만들었다.

“경험이 부족한 게 한스러워요. 너무 일찍 데뷔한 것 같기도 하고···. 딱 로페즈 님 정도의 나이와 외모가 부럽습니다. 나이가 좀 있어야 진실성도 보이고 멋지잖아요. 영화배우든 사업자든, 사람들 앞에 서는 직업이라면···.”

대충 자신의 경험이 부족한 게 한이라는 말투다.

“그럼 짧은 광고 같은 거 찍으시는 건 어때요? 이번에 인기를 얻으셨으니 광고 제의가 많이 들어오진 않았어요?”

“타이시나 신디사이트에서 광고 모델했던 분들이 괜히 욕먹고 있어요. 그래서 소속사에서도 당분간 기업의 광고는 거절하라고···.”

‘됐네.’

“제가 빈 님의 소속사를 설득시켜주면요?”

“···네?”

“아, 죄송합니다. 제가 말을 너무 빨리 진행했네요.”

“하하···.”

로페즈는 두 손을 모으는 공손한 제스처를 취했다.

“옵시디아몬은 급성장을 이루고 있어요. 그래서 그 성장률에 맞추어 떠오르는 혜성 같은, 젊은 광고 모델이 필요하거든요. 혹시 빈 님에게 다음 작품 계획이 없으시다면 어떻게···. 제안을 드려보고 싶네요.”

빈은 속으로 생각했다.

‘옵시디아몬이 주는 광고면 받아도 되는 거 아닌가···?’

화성에 옵시디아몬만큼 정의롭고 깨끗한 이미지의 기업이 어디에 있는가. 최근에 감찰부와 협력한 오비탈플래닛을 제외하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로페즈의 말을 들어보니 자신의 이미지와 옵시디아몬의 이미지가 꽤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다.

‘빠른 성장, 혜성같이 등장한···. 젊은···.’

그리고 빈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로페즈는 짐작하고 있었다. 거절할 생각이었다면 이미 거절하는 말을 꺼냈을 법한데 대답이 느려지고 있다.

결정을 하는 것에 그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면, 결정권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면 된다.

“아, 꼭 지금 대답해주시진 않으셔도 됩니다. 충분히 필요하신 만큼 고민해보시고, 소속사의 의견을 참고해서 해주시면···. 그렇게 하면 될 것 같은데요···?”

빈은 입을 살짝 벌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랬었죠. 참···. 소속사에서 된다고 하면··· 괜찮을 것 같네요. 하하하.”

전과 같은 방식이다. 빈은 이미 설득했으니 빈의 뒤에 있는 소속사를 설득할 말을 내뱉어줘야 한다.

“그렇다면 결정을 기다리고 있을게요. 그때까지 옵시디아몬은 광고모델을 쓰지 않고 있을 테니까요.”

“어, 저 때문에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로페즈는 선하게 웃어주었다.

“빈 님이 아니면 제가 만족을 못할 것 같아서요. 회사의 이미지를 대변하는 사람을 구할 거라면 가장 잘 어울리는 분을 쓰고 싶다는 욕심입니다. 옵시디아몬의 이미지에 어울리는 빈 님 같은 분이요.”

이 내용이 소속사로 전달되면 거절당할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

일정이 끝난 로페즈는 회사로 돌아가는 길이다. 얼마 전에 더 좋은 방탄 승용차를 뽑았다. 따로 튜닝하지 않아도 방폭 기능까지 붙은 모델이다.

“떠오르는 신인배우와 떠오르는 신생기업. 좋은 매치인 것 같아. 이렇게 광고모델은 구한 셈이라고 봐도 되겠지?”

- 관리자님의 제안은 매우 높은 확률로 받아들여질 것입니다.

“근거는?”

- 관리자님의 제안은 관리자님, 빈, 빈의 소속사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관리자님과 옵시디아몬의 사회적 이미지를 고려한 변수를 추가하면 더욱 거절할 이유가 없는 제안입니다.

정말 모든 일이 잘 풀리고 있다. 옵시디아몬도 자신도 이대로만 가면 되겠다.

로페즈는 진심으로 만족하여 저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만에 음악이라도 틀어보려고 손가락을 뻗으려는 그 순간이었다.

- 전화가 왔습니다.

“누구야?”

- 밀라노이의 클레이브 엑스턴 장군입니다.

< 10. 무력집행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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