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 일어서라 (5) >
***
옵시디아몬의 연구팀 팀장은 신기술 브리핑을 시작했다.
“이건 내장형 인공지능을 접목한 로보버그입니다. 외부 네트워크의 지원 없이 로보버그 사이의 자체적인 연결성을 추구했습니다.”
각 팀장들과 로페즈의 앞에 로보버그 한 기가 날아다닌다.
“후면 꽁무니 부분에 2차 엔진과 중수소를 넣었습니다. 첩보용으로 운용하다가 필요에 따라선 꽁무니 부분의 일회성 엔진을 폭발적으로 가열하여 최대 320m/s로 가속할 수 있습니다. 화약 계열의 총탄보다 살짝 느린 속도지만, 충분한 살상력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살상용으로 개조된 로보버그에 대한 힌트를 연구팀에 넘겨줬더니 금방 개발해왔다. 이제 살상용 로보버그는 옵시디아몬이 처음으로 판매할 무기가 되었다.
로페즈는 각 팀장들이 보는 앞에서 그를 칭찬해주었다.
“짧은 기간에 새로운 병기를 창조하셨네요. 우리 연구팀의 개발로 통상의 로보버그들은 도태될 겁니다. 나중엔 모두가 옵시디아몬의 로보버그를 사용하게 되겠죠. 정말 훌륭합니다.”
“감사합니다.”
“생산관리팀은 바로 로보버그 생산에 들어가시고 영업협상팀은 연구팀과 협의해서 밀라노이에 판매를 준비해주세요.”
“예. 대표님.”
“알겠습니다.”
“중수소 분열을 응용한 일회성 엔진 기술은 법무팀에서 신기술 등록을 해주시고요.”
“바로 처리하겠습니다.”
브리핑이 끝난 후 엘리베이터로 올라오니 통로 앞의 데스크에 미모의 여성이 앉아있었다.
「레나(Lena), 26세」
「이번에 비서로 채용되었습니다. 뛰어난 사교성과 협상 능력으로 대기업 계열사에서 협상 관련 부서의 1군 비서를 했습니다. 경력은 5년, 이직 기록은 1년에 1.2회로 잦은 편입니다.」
로페즈는 그녀에게 악수를 청했다.
“죄송합니다. 인사가 늦었네요. 로페즈입니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일어나서 굉장히 영업적인 미소로 악수에 응했다. 왠지 능숙한 프로라는 느낌이 물씬 풍긴다.
“안녕하세요. 로페즈 대표님. 이번에 비서로 채용된 레나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릴게요.”
「그녀는 관리자님을 탐색하고 있습니다.」
‘저 표정이···?’
여성 평균보다 살짝 큰 키에 약한 웨이브가 들어간 레드와인색 장발이다. 그리고 카리스마 있는 눈매로 눈웃음을 짓고 있는데, 저 미소 뒤에서 상대방을 탐색하고 있다는 것이다.
트랜센던서가 텍스트로 알려주지 않았다면 절대 몰랐으리라.
“하하. 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우선 간단한 이야기부터 나눌까요?”
“네. 좋아요.”
트랜센던서가 눈치 좋게 휴머노이드를 조작하여 대표실에 커피를 놔두었다. 레나는 커피를 마실 때 눈을 갸름하게 뜨는 특징이 있었다.
그런데 트랜센던서의 정보에 따르면 그 특징도 그녀의 평상시 습관이 아니라고 한다.
아마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를 첫인상으로 보여주려는 의도인 것 같다.
“레나 씨는 이미 면접에서 합격하셨고 이렇게 채용까지 되셨잖아요? 그래서 이참에 참고로 여쭈어보고 싶은 게 있네요.”
“예.”
“이직을 거의 1년에 한 번꼴로 하셨는데요. 보통 다른 비서분들은 한 직장에 적응해서 수년은 계시는 편이거든요. 레나 씨의 이직에는 뭔가 이유나 목적이 있으셨나요?”
처음부터 모든 것이 능숙해 보였던 레나는 잠시 멈칫하더니 커피를 내려놓았다.
“···이건 로페즈 대표님이셔서 할 수 있는 이야기인데요.”
“네.”
“비서로서 흔한 고충이에요. 제 이전 상사들은 꼭 어딘가가 정상이 아니었어요. 누구라고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심하신 분은 폭언을 일삼기도 하셨고 퇴근 이후의 시간까지 통제하면서 저를 노예처럼 부리셨어요. 24시간, 1년 내내 항시 대기 상태였던 때도 있었고요.”
「진실」
그런 어두운 이야기를 꺼내면서도 레나의 표정은 전혀 어두워지지 않았다.
“이런······. 죄송합니다. 괜한 걸 여쭤봤네요.”
“아, 괜찮습니다. 대표님에겐 꼭 말씀드리고 싶었던 내용이기도 하니까요.”
그녀에게 특별취급을 받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이전 상사들과 나는 다르다는 것을 기대하고 있다.’
“저는 절대 그러지 않을 겁니다. 저희 옵시디아몬은 사원의 입장과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는 것도 강점이니까요.”
“맞습니다. 그래서 계약이 끝나가던 참에 인사부 메일을 받고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대표님에 대한 건 저도 뉴스나 기사를 통해 알고 있었거든요.”
레나도 로페즈의 대외적인 이미지를 접한 인물이었다. 로페즈는 선한 미소로 화답한다.
“저를 좋게 봐주시는 것 같아 다행이네요.”
“그런 언행과 태도까지 다 합쳐서 존경하고 있습니다. 대표님.”
“하하···. 다시 한번 잘 부탁드릴게요.”
“저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기본적으로 우호적인 감정이 있다면, 레나가 진심으로 충성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를 완전한 아군으로 만들면 프녹스처럼 트랜센던서라는 비밀을 공유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나중에 곤란한 일이 생겨도 설명이 쉽고, 그녀의 적극적인 도움을 기대할 수 있다.
이후 로페즈는 레나에게 업무 적응을 도와줄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주고 옵시디아몬의 현황과 목표에 대해서 알려주었다.
***
자회사의 건물을 마련하기로 했다.
- 관리자님의 계좌 잔액은 5905만 4300크레트입니다. 옵시디아몬 계좌 잔액은 약 11억 1200만 크레트입니다.
“알겠어.”
로페즈는 대표실 컴퓨터로 레나에게 말했다.
“재정관리팀에 사이렌 씨 좀 대표실로 호출해주세요.”
- 네. 알겠습니다.
잠시 후 재정관리팀의 사이렌 팀장이 대표실에 올라와서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네. 대표님 말씀이 옳습니다. 지금 86층부터 93층까지 사원들로 만원입니다. 건물을 옮겨야할 시기이긴 합니다. 묶여있는 보증금 7000만에 월세 630만도 무시할 수 없는 지출이고요.”
“이번에 하이게이트, 오비탈플래닛, 밀라노이, 정부와 협업하게 되었어요. 재정 상태로 볼 때 건물을 하나 사버려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사이렌 씨가 보시기엔 어떤가요?”
“학습기, 맞춤형 인공지능 개발 서비스, 옵시디아몬 인공지능 모듈 판매 및 로열티로 재정 상태는 계속 괜찮았습니다. 말씀하신 대기업들과 계약을 체결하면서 적지 않은 자본금도 모았습니다. 다만, 도심의 건물을 매입하기엔 아직 한참 부족합니다.”
“흠······. 뭔가 빠른 방법이 없을까요?”
로페즈는 그렇게 물어보며 기대하는 눈빛을 보냈다. 그러자 사이렌은 자기 턱을 어루만지며 고민하더니 자기 나름의 해답을 제시했다.
“주식상장이 완료되었습니다. 일부 지분을 오픈해서 대표님의 경영권에 무리가 가지 않을 정도만 투자를 유치하심이 어떠신지요?”
현재 옵시디아몬은 다수의 투자에 폐쇄적인 방침으로 외부에 발행한 주식이 없다. 이는 로페즈가 자신의 경영권을 온전히 소유하기 위해 방어적인 태도를 취한 결과다.
“···물론 대표님께서 경영권에 각별히 신경 쓰신다는 걸 압니다. 사원들도 다들 대표님의 독자적인 경영방식에 굉장히 만족하고 있고요. 하지만 대표님께서 빠른 길로 자본을 확보하시고 싶으시다면 일부 주식을 공개해서 투자를 받으시는 것이 가장 확실합니다. 대표님의 인지도와 옵시디아몬의 성장률을 따져봤을 때 투자자들이 물밀 듯 참여해올 것이 분명합니다.”
‘정론이다.’
결국 로페즈는 고민 끝에 결정을 내렸다. 그것은 사이렌의 의견을 약간 변형한 방식이었다.
로페즈에게 이른바 ‘목줄’이 채워진 사람은 화이트홀 그룹 회장인 일리노이 리탄, 하이게이트 그룹 회장인 에리카 애틀라탄, 밀라노이 장군인 클레이브 엑스턴이다.
그들에게 상당량의 주식을 매도하여 자본을 확보함과 동시에 ‘목줄’을 강화했다. 이러면 리탄, 애틀라탄, 엑스턴이 로페즈와 사적인 만남을 갖거나 옵시디아몬의 주주총회에 참석하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 된다.
세 사람의 지분을 합쳐도 로페즈의 지분에는 미치지 못하며, 세 사람을 제외한 불특정 다수의 지분을 합쳐도 세 사람 중 한 사람의 지분에는 미치지 못하도록 주식을 매도했다.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과정이었지만 트랜센던서의 긴밀한 도움으로 가능케 했다.
- 옵시디아몬 계좌 잔액은 약 67억 9400만 크레트입니다.
투자라는 개념의 위력을 몸소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 12번 사무지역 세타우리 구역 셀라시에 빌딩 86층부터 93층의 계약이 해지되었습니다. 도중 해지로 월세 630만 크레트가 지출되었으며, 보증금 7000만 크레트를 반환받았습니다.
- 3번 사무지역 안드레스 구역 리눅스 빌딩을 매입했습니다.
- 건물 인테리어, 외부 장식 등의 비용과 매입비 합산 62억 6000만 크레트를 지출했습니다. 옵시디아몬 계좌 잔액은 5억 3400만 크레트입니다.
구름까지 닿는 타워는 너무 비싸서 도심의 빌딩을 선택했다. 타워가 아닌 건물은 건설에 들어간 시간과 노력의 비용이 대체로 적다. 건물을 짓는다는 과정과 절차가 매우 간단해진 오늘날이기도 하고, 화성에는 빈 땅이 많다. 그래서 건물마다 위치, 높이, 역할, 기능, 건설 당시 투입비용에 따라 가격 차이가 극심하여 잘 검색하고 알아봐야 한다.
리눅스 빌딩의 층수는 70층, 교통이 편리하고 관리도 잘된 건물이다. 지하에는 백화점과 이어지는 지하상가가 있어서 사원복지로도 유용하게 쓸 수 있다.
70층에는 대표실과 서버실, 67층부터 69층까지는 연구팀을 도울 슈퍼컴퓨터를 병렬로 배치했다. 연구팀이 더 좋은 장비로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으리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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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데믹(Pandemic)
범유행전염병으로 생물재해를 일으킬 수 있는 전염병은 위험도에 따라 6단계의 경보등급으로 분류된다. 그중 최고 등급인 6단계를 일컫는 용어가 판데믹이다.
그 예시로 옛 지구의 페스트, H1N1, 변형 에볼라 등이 있다.
인류는 거의 모든 질병으로부터 해방되는 생물학&의학 기술을 갖추었지만, 반대로 그러한 기술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생물학 무기의 위험성도 배로 증가했다. 누군가는 이를 과학의 양면성이라고 한다.
생물학 무기는 우주 전역에서 금지되는 전쟁범죄지만 그러한 국제법이 우주 전역에서 암암리에 사용되는 생물학 무기를 모두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문명의 고도화로 전쟁과 같은 원시적인 무력충돌은 수백 년째 벌어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정치, 외교, 종교, 이념, 자원 등으로 발생하는 분쟁은 인류의 역사 이래 단 한 번도 끊이질 않았다. 얼마나 풍족하든, 얼마나 결핍되었든 인류는 그러한 원시적인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여기는 베타. 서쪽 발사대도 장악했습니다.”
우주전투복을 입은 용병들이 시체를 치우고 있다. 직선적인 디자인에 회백색의 실내 구조에서 창밖을 보면 그저 멀찍이 떨어진 별들만 있는 무한한 우주가 펼쳐진다.
“좋아. 시체는 격리실에 넣어서 우주로 방출한다.”
“대원들 복장 해제합니까?”
“아니. 장비는 절대 벗지 마. 오염된 시설이다.”
이곳은 태양계에서 800광년 떨어진 곳이다. 그들이 장악한 시설은 금광이 매우 풍부한 떠돌이 소행성의 채굴장이었다.
대원들의 대장급으로 보이는 용병이 전투복의 헬멧 옆에 손가락을 올렸다.
“여기는 알파, 베타. 서쪽과 동쪽 방어병력의 전멸을 확인했습니다.”
- 그 시설 관리자들은?
“예외 없이 전멸입니다. 모든 시체에 안구와 입에서 피를 토한 흔적이 있습니다.”
- 잘 먹혔군.
“예. 그렇습니다. 교전은 없었습니다.”
- 이쪽으로 좌표 전송해. 채굴함을 보내줄 테니 거기서 우주선 타고 본진으로 귀환해라.
“예.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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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안면 전체를 가로지르는 흉터가 특징적이다. 겉보기에 나이는 40대 초반 정도로 보이며 큰 키에 다부진 몸이 제복 아래로 은근히 드러난다.
그는 아무것도 없는 어두운 공간 속에 홀로 서서 다리를 어깨너비로 벌린 채 뒷짐을 지고 있다.
지이잉···
곧이어 그의 앞에 커다란 화면이 켜졌다.
화면이 켜졌으나 화면 안에는 마이크를 뜻하는 아이콘만 덩그러니 떠 있다.
- 제라드 대령.
“예.”
화면 속에서 누군가 말할 때마다 마이크 아이콘을 지나는 선이 위아래로 맥동했다.
- 이번 작전에 중대한 착오가 있었다.
“무엇입니까?”
- 골든플랜트에 투입되었던 대원들이 채굴함에 들어왔다. 그 때문에 채굴함까지 리버레이터(Revelator)에 오염되었다.
“···리버레이터는 우주의 방사선을 견딜 수 없도록 설계되지 않았습니까?”
- 그 정보를 도출한 것이 착오였다. 한 시간 전에 실험장에서 긴급회신이 도착했다. 리버레이터는 극저온과 극고온, 방사선에도 저항력을 가지는 방향으로 급속 돌연변이가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골든플랜트를 격납한 채굴함은 본진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 어차피 이번 일에는 우리 측 대원이 아니라 용병을 썼겠지?
“예. 그렇습니다.”
- 4만 톤의 황금이 아깝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원격으로 좌표를 바꿔서 근처 아무 항성에 충돌시켜라.
“채굴함의 승무원들도 함께 처분합니까?”
- 그래. 한 명도, 그 무엇도 돌아올 수 없게 해라.
“예. 알겠습니다.”
- ···예상보다 이른 시기에 완성되었어.
“예.”
- 실험은 성공이다. 골든플랜트 건이 정리되면 리버레이터 연구와 실험에 참여했던 모든 관계자들을 살처분하도록.
“아직 급속 돌연변이에 대응하는 백신이 개발되지 않았습니다.”
- 제라드 대령. 내가 처음에 했던 말 잊었나? 리버레이터는 백신이 개발되면 안 된다. 그건 우리가 태양계를 공략할 핵심무기라고.
“저번에 말씀하셨던 초토화 작전의 준비단계가 이것입니까? 모든 인류를 말살하고 구원 리스트에 등록된 자들만 살아남는···.”
- 숙지하고 있으면 서둘러 진행해라. 장로회가 재촉하고 있다.
“예. 조속히 작업에 착수하겠습니다.”
인류를 새로운 종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것이 그들의 계획이었다.
< 9. 일어서라 (5)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