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대 인공지능 키우기-49화 (49/183)

< 9. 일어서라 (3) >

***

“밟으라고!”

형사, 휴머노이드 두 기, 텔레스터가 탑승한 경찰차 한 대는 도시 외곽으로 향하는 고속터널로 급발진했다.

- 헨리! 괜찮아?

- 체포조. 폭음과 함께 2번 채널 추적기가 망가졌다. 폭발 상황 보고 바란다.

“이 차에도 그 추적기인가 뭔가 하는 게 달려있나?”

“예, 예···! 그렇습니다···!”

“그럼 더 빨리 밟아. 이미 당신이나 나나 돌이키기엔 늦었어.”

이 경찰차가 도주를 감행했다는 사실을 그들이 알아차린 후, 위치를 특정하고 인원을 보내올 때까지 시간이 꽤 남는다.

경찰차는 사이렌을 키고 고속터널을 최대 속도로 통과했다. 경찰차가 사이렌을 키면 주변 차량은 차량의 자체적인 네트워크를 통해 자동으로 길을 비켜주게 된다.

경찰차는 아무런 충돌도 없이 터널을 통과하여 도시 외곽으로 빠져나왔다. 건물의 높이가 순식간에 낮아졌으며 자연적으로 형성된 조경물들이 창밖을 고속으로 스친다.

차량은 사무지역, 산업지역을 쭉 가로지르며 미개발지역의 휑한 도로까지 들어왔다. 황톳빛 흙 위에 초목을 형성한 평야가 계속 이어진다.

그대로 타르시스 고지를 내려왔다.

그리고도 20분을 계속 달렸다.

“잘했어. 형사. 이제 저기로 가면 끝이야.”

텔레스터는 시야 오른편에 있는 황량한 바위 지대를 턱짓했다.

바위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곳으로 가라고 한다.

“저기로 가는 거 맞습니까?”

“우리 주변에는 늘 모르는 기술들이 있지. 평범한 놈들은 인식조차 할 수 없는 그런 것들.”

텔레스터가 휴대전화로 뭔가를 조작했다. 그러자 아무것도 없는 바위 지대에서 극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누군가 거짓된 색종이를 붙여놓은 듯, 이제 그 색종이를 떼어낸 듯, 시야의 아래쪽에서부터 바위 지대의 환경이 변화했다.

사실 환경이 변화한 게 아니라 원래 그랬던 환경 위에 특수한 이미지를 위장막처럼 덧씌워둔 것이다.

“세상에··· 저런 것이 가능하다니···”

“대단하지? 저거 태양계에는 없는 기술이야. 거금을 주고 밀수입했지.”

형사의 눈에 들어온 것은 바위 지대가 함선의 착륙장으로 바뀌는 모습이었다.

시각 교란 이미지였다. 행성처럼 대기가 있는 환경에서 첩보부대가 위장용이나 미끼로 쓰는 기술이다. 저걸로 적들의 폭격을 유도하거나 적들의 정찰 위성에 거짓 정보를 보여주는 것이다.

경찰차는 금방 착륙장으로 들어왔다.

함선 한 대를 수용할 수 있는 작은 착륙장이었다. 구형 함선을 받치고 있는 기계식 착륙장에 누런 먼지가 수북이 쌓여있다.

우우웅···.

경찰차는 함선 앞에 정차했다.

형사와 텔레스터가 하차해서 함선 앞으로 나란히 걸어간다.

“당신은 가족이 없다고 했지?”

“예. 회장님.”

“그럼 내가 갈 항성계의 어디 적당한 위성에 내려주지.”

“가, 감사합니다···.”

‘어차피 함선에 타자마자 우주로 방출될 놈이 감사하기는.’

사람을 우주 공간에 던져버리는 것보다 쉬운 작업 수단이 없다.

“자, 새로운 삶을 찾으러 가보자고.”

텔레스터는 형사의 등을 가볍게 두드려주었다. 그리고 휴대전화를 꺼내 명령했다.

“나 왔다. 차폐문 열어라.”

그의 명령에 호응하듯 함선의 차폐문이 서서히 열렸다.

쿠우우우우···

구형 함선이라 열리는 시간이 다소 필요했다. 구형의 기어가 합금 갑판을 느릿하게 내리는 중이다.

그 순간이었다.

“레이 텔레스터. 당신을 살인교사, 부정 대선자급 상납, 사냥기업육성, 탈세, 자금세탁, 주가조작, 부품기술 밀반출 및 밀반입 등 45건의 혐의로 체포한다.”

키잉! 키잉! 키잉!

경찰차에 두었던 휴머노이드 두 기가 멋대로 달려와선 형사와 텔레스터를 붙잡아버렸다.

“뭐야 이거. 당신한테 전속된 휴머노이드 아니었어?”

“제, 제가 담당하는 휴머노이드가 맞습니다. 이거 왜 이러지? 오류인가?”

당황한 형사는 한쪽 팔로 휴머노이드의 머리를 두드렸다.

“휴머노이드. 권한자 호출.”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당신이 한 발언은 법정에서 불리하게 사용될 수 있습니다. 당신은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고 질문을 받을 때 변호인의 대리를 받을 수 있습니다. 만약 변호사를 쓸 돈이 없다면, 국선변호인이 선임될 것입니다. 당신에게 권리가 있음을 인지했습니까?”

“왜 이래? 권한자 호출! 권한자 호출이라고!”

텔레스터는 휴머노이드에게 팔을 구속당한 채 혀를 찼다.

“쯧쯧. 형사가 자기 휴머노이드도 못 다루면 어떡하나? 경호팀장! 보고 있지? 빨리 튀어나와서 이 멍청한 로봇들 좀 때려 부숴라. 경찰들 오기 전에.”

형사는 잠시 생각하더니 확신했다.

“기록상으론 제가 체포당할 일이 없는데 저까지 체포하고 있습니다. 저한텐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있고요. 아무래도 네트워크와 연결이 끊기면서 오류가 생긴 것 같습니다.”

“네트워크가 끊기면 지능이 없어지는 인공지능이라니, 한심하기 짝이 없네.”

“이게 정부가 제공해주는 내장 인공지능이 옛날 모델이라서 그렇습니다.”

텔레스터는 형사의 구차한 변명을 무시하고 전화부터 걸었다. 이대로 화성을 떠나기 전에 감사 인사를 전해야 할 상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하하! 회장님! 지금 잘 도착했습니다. 이제 함선에 오를 준비를 하고 있어요.”

통화 상대는 오비탈플래닛 그룹의 회장이었다.

- 그래요. 잘 도착하셨군요.

“다 회장님 덕분입니다. 제가 먼저 가서 터전을 잘 잡아놓겠습니다. 혹시라도 나중에 회장님께 저와 비슷한 문제가 생기신다면 언제든지 말씀해주시죠! 하하! 은혜는 배로 갚겠습니다.”

- 예. 잘 도착하신 건 축하드리고요.

“정말 젠틀하시다니까.”

- 내일 아침 뉴스의 악역이 된 것도 축하드리고요.

“네?”

일방적으로 통화가 끊겼다.

텔레스터의 가식적인 미소가 웃는 그대로 굳어졌다.

쿠우우웅······.

그러는 사이에 차폐문이 개방되었다. 함선의 갑판이 경사면을 이루어 바닥에 닿았다.

그리고 그 갑판 위에서 텔레스터의 경호팀장과 직속 경호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들 수갑에 채워져 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로.

“·········아.”

선글라스를 쓴 정장의 요원들이 텔레스터의 경호원들을 구속한 상태였다. 그리고 요원 무리의 가운데에 당당히 서있는 남자가 있었다.

“신현조···? 저게 왜···.”

그의 당혹감은 곧 격노의 불씨가 되었다.

신현조의 옆에, 방금 통화했던 오비탈플래닛 그룹의 회장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던 것이다.

텔레스터는 이러한 상황의 흐름을 이해하고 말았다.

“이, 이런···! 야 이 씨발새끼야!!!”

텔레스터는 화를 주체하지 못해 마구 날뛰려고 했지만 옆에서 그를 구속하는 휴머노이드의 힘을 이겨낼 수 없었다.

그래서 추하게 발만 동동 구르며 침만 튀길 뿐이다.

“이 개새끼야! 네가 어떻게 내 뒤통수를 쳐?! 내가 넌 죽이고 간다, 이 씨발새끼야!!!!”

텔레스터가 욕설을 내뱉거나 말거나 요원들이 달려들어 그를 바닥에 눕혀버렸다.

그는 얼굴을 흙바닥에 문지르며 최후의 발악을 했다.

“신현조!! 당신 지금 속고 있는 거야!! 이건 다 조작극이라고! 조작극!!!”

그러나 신현조와 오비탈플래닛 회장은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했다.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함선도 미끼로 제공해주시고···.”

“아니요. 로페즈 대표님이 알려주신 덕분이죠. 검사님은 제게 고마워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의 겸손에 현조는 수긍했다.

“그래도 뭐···. 일이 좀 어려워지나 싶었는데, 힘 있으신 조력자가 두 분이나 나서주신 덕분에 정말 쉽게 매듭지을 수 있었어요.”

“별 일 아닙니다.”

현조는 주변 요원들에게 명령했다.

“체포자들 다 밖으로 빼내세요.”

체포된 직속 경호원들이 요원들에게 붙잡혀서 줄지어 내려갔다. 곧이어 신현조가 마지막으로 갑판을 내려가려는데, 오비탈플래닛 회장이 그의 뒤에서 말을 걸었다.

“저기, 검사님?”

“네.”

“저는 이번 일로 엄청난 회의감을 느꼈습니다.”

갑자기 뭐를 말하고 싶다는 걸까.

“아······. 네.”

“청렴결백한 비즈니스 파트너를 찾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깨닫게 되었죠.”

현조는 천천히 손사래를 쳤다.

“죄송하지만 저는 사업자와 개인적인 접촉을 지양하고 있어서요.”

그러자 회장도 손사래를 쳤다.

“아니요, 그 뜻이 아닙니다.”

“네?”

“결국 이 더러운 뿌리를 뽑아내게 된 것도 다 로페즈 대표님의 행동이 있었기 때문이지 않겠습니까.”

“···아하. 그런 쪽 말씀이셨구나.”

현조는 대충 알아들었다는 눈을 했다.

“네. 제가 처음부터 검사님을 통해 연락을 받긴 했지만, 이번엔 개인적으로 로페즈 대표님과 진중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서요.”

현조에게 오비탈플래닛의 회장을 이용하라고 조언한 건 로페즈였다. 그러니 현조는 그와 로페즈 사이에 일시적인 연결다리가 되었던 것이다.

“네, 네. 얼마든지 그러실 수 있어요. 사업하시는 좋은 분들끼리 한번 손을 잡아보시는 것도 괜찮겠죠.”

현조는 망설이지 않고 그에게 로페즈의 개인연락처를 넘겨주었다. 그의 눈에 오비탈플래닛 회장은 지극히 정상인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

- 오늘 오후 3시 20분경, 남쪽 미개발지역 불법 착륙장에서 신디사이트의 레이 텔레스터 회장과 담당 비리 형사가 구속, 기소되었습니다.

뉴스 화면은 도심의 폭발 현장으로 전환되었다.

- 매수된 담당 형사의 차량이 최초로 도주를 감행했던 현장은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폭발 원인은 동행 경찰차량 두 대에 설치되었던 사제폭발물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거리의 시민 23명이 부상을 입고 5명이 사망했습니다. 또한 동행 경찰차량에 있던 경관 5명과 감찰부 직속 요원이 현장의 폭발로 사망했습니다.

재판을 받기도 전에 중범죄를 저지른 텔레스터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을 것으로 ‘예측’된다.

***

로페즈는 자회사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며 한탄했다. 자신의 눈에만 보이는 텍스트가 마음에 들지를 않아서다.

「진화 프로세스 진행률: 19.3%」

“근미래 예측 연산은 정말 아껴 써야겠어.”

- 예측 연산 과정에 필요한 데이터를 수집하여 신규 패턴을 생성했습니다. 기존의 패턴은 번복되었습니다.

쉽게 말해, 트랜센던서가 기존에 학습했던 것이 정확하지 않다는 것을 새로이 학습하는 바람에, 이전에 학습했던 것들이 가치를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그 결과로 진화 프로세스 진행률이 거꾸로 떨어지는 일까지 발생했다.

“변수가 많은 사건이다 보니 부작용이 있을 거라고 예상은 했는데···. 이 정도인 줄은 몰랐지.”

- 그래도 이번 일을 계기로 화성에서 관리자님을 위협할 대상은 전원 배제되었습니다. 또한 관리자님의 옵시디아몬은 단기간에 최대 속도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에 놓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맞아. 이제는 아무 걱정 없이 힘차게 달릴 일만 남았어.”

늘 스트레스를 주었던 심각한 일들이 전부 해결되었다. 그렇게 얻은 안도감과 성장 발판은 로페즈나 옵시디아몬에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건 그렇고, 트랜센던서.”

- 네. 관리자님.

일이 성공적으로 끝났음에도 로페즈는 어딘가 불안한 기색이다.

“너는 근미래 예측 연산을 했잖아. 텔레스터가 그 형사를 매수할 것이라는 사건도 예측했고.”

형사가 죄를 저지르기도 전에, 트랜센던서는 그 형사가 죄를 저지를 것이라는 미래를 예측한 셈이다.

- 그렇습니다.

“그럼 텔레스터가 다른 차량 두 대에 폭발물을 설치해뒀다는 것도 미리 알고 있었어?”

- 그렇습니다. 예측된 결과에 포함된 사건입니다.

“그 폭발로 11명이 죽을 거라는 것도 네 예측에 포함된 사건이야?”

- 그렇습니다.

로페즈는 길게 묻지 않았다.

“······왜 그랬어?”

길게 묻지 못했다.

무고한 사람이 죽는데 왜 그걸 미리 알려주질 않았나, 그 사람들이 원래 죽을 사람들이었나, 아니면 상황의 설계에 의해 의도적으로 죽게 된 사람들이었나, 다른 방법은 없었나.

트랜센던서는 두 박자 늦게 대답한다.

인간의 감정과 감각이라곤 하나도 섞이지 않은, 그저 평탄하고도 차가운 기계적인 울림으로.

- 그것이 관리자님에게 최적의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그 대답을 들은 로페즈는 끝내 입을 열 수 없었다. 한낱 인간인 자신의 조그마한 두뇌로는 트랜센던서에게 반박하는 말을 꺼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선 안 된다는 말을 논리정연하게 할 수가 없다.

어쨌든 화성에서 마음 놓고 클 수 있게 되었으니까. 이번 사건을 계기로 모두가 확실히 깨달았을 테니까.

이제는 정말, 아무것도 두렵지가 않다.

- 이제 관리자님은 회사만 신경 쓰시면 됩니다.

“나도 그건 알아.”

그것이 결과였다.

< 9. 일어서라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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