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대 인공지능 키우기-48화 (48/183)

< 9. 일어서라 (2) >

***

감찰부 회의실에서 현조가 브리핑을 하고 있다.

“이처럼 타이시와 신디사이트의 대외적인 관계는 전무한 것으로 보이나, 카빈 로케이트와 레니 텔레스터의 암약 행위 등으로 기업범죄에 있어 긴밀한 협력을 나누었던 것으로 파악됩니다.”

현조가 띄운 자료화면에는 터널에서 로페즈를 살해하려던 용병들이 나타났다.

“이들은 ‘작업자’라고 불리는 용병들입니다. 카빈 로케이트가 이 용병들에게 비밀회선으로 거액의 가상화폐를 전송한 정황이 확인되었습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검사장이 물었다.

“로케이트는 확실히 덜미를 잡혔지만, 텔레스터는 어떻게 잡으려는 생각이지? 그놈도 뭔가 걸린 게 있나?”

“네. 준비한 영상을 틀어드리겠습니다.”

회의실에는 늦은 새벽에 스포츠카 내부의 블랙박스 영상이 나왔다.

- 그래서···. 하시고 싶은 말씀이란 게···?

- 경찰특수부대가 움직였어요. 사족보행 장갑차까지 대동하면서 터널을 돌파했다고요.

- 맙소사···. 이 시간에 어떻게 이런 규모가 움직였다는 겁니까···?

- 조사해보니 검사 차량까지 있었어요.

삑.

현조는 허공에 손짓하여 영상을 일시 정지했다.

“두 사람은 사적인 접촉은 물론이며 공적인 접촉조차 없던 관계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나눈 대화를 들어보면, 예전부터 두 사람 사이에 어떤 관계가 형성되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이 이번 사건에 어떤 식으로 연관되어 있는지, 다음을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현조는 다시 영상을 재생했다.

- 누군데요?

- 신현조입니다.

- ······일이 커졌군요.

원래 이다음에 오비탈플래닛을 언급하는 장면이 나오지만, 그 부분은 로페즈가 삭제해버렸다. 잘린 영상은 트랜센던서가 자연스럽게 이어붙였으며, 그렇게 조작된 영상을 현조가 받아서 쓰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현조도 이 영상이 트랜센던서에 의해 조작되었다는 것은 모른다.

- 그냥 이쯤에서 멈춥시다. 이러다 우리가 좆됍니다.

-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만두죠.

“용병들을 고용하여 로페즈를 터널에서 죽이려 했던 자는 로케이트입니다. 그러나 ‘이 일’을 멈추자고 먼저 제안한 것은 텔레스터입니다. ···텔레스터는 ‘우리’라는 표현을 썼죠. 무언가 더 잘못되면, 두 사람이 함께 좆된다는 겁니다.”

“검사 차량까지 조사했군. 아직 뉴스에 나오지도 않은 사건인데 벌써 알고 있는 걸 보니···. 이미 저걸로 영장 때릴 수 있어.”

현조는 고개를 끄덕이며 영상을 종료했다.

“예. 시작은 이 영상을 근거로 하면 될 것입니다.”

그의 브리핑을 들은 부장급 이상의 검사들은 다들 납득했다는 눈치다. 그러나 검사장은 아직 동의하지 못한 것 같다.

검사장은 꺼진 화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현조 검사. 지금 보여준 저 영상의 출처가 누구지? 저런 대화를 나누는데 멍청하게 블랙박스를 켜놓지는 않았을 거 아니야. 뭔가 전자적으로 조작을 했다는 건가? 신디사이트 회장이라는 사람의 차량에 침투해서.”

“아, 해당 블랙박스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상태로 사용자가 전원을 꺼버려도 녹화와 녹음이 가능하게끔 해킹된 기기입니다.”

“그러니까 내 말은, 그 대담한 짓을 현조 검사가 직접 애들 움직여서 했냐는 거야.”

“아닙니다. 여기 관계도를 보시면···.”

현조는 화면 옆에 붙은 관계도를 가리켰다. 타이시의 카빈 로케이트, 로케이트의 측근들, 신디사이트의 레니 텔레스터, 체포된 용병들, 피해자인 로페즈, 자이칸, 로노가 있다.

“로페즈는 사회적인 정의를 실현하는데 앞장섰습니다. 결과적으로 화이트홀 회장 및 수뇌부 교체, 통합공화당 해체, 필리스버그 정권의 붕괴라는 엄청난 여파를 일으킨 인물입니다.”

“그래서?”

“그런 일을 벌였으면 당연히 로페즈를 적대하는 자들도 생기기 마련입니다. 로케이트와 텔레스터가 그랬던 것처럼, 죽은 페이치와 관계성이 있던 세력들이 이 두 사람과 손을 잡았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거야 그렇겠지. 근데 내가 물어본 건 저 블랙박스를 누가 어떻게 왜 해킹해서 현조 검사에게 제공했냐는 말이야.”

“로페즈가 스스로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자신을 죽이려는 자들의 자료를 확보한 것입니다. 이전에 그가 메스컴에서 언론과 공권력의 힘을 빌려 살아남았던 것처럼, 이번에도 저를 통해서 감찰부에 적극적인 협조를 해주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 앉은 검사장도 필리스버그 정권이 붕괴하면서 대거 잡혀간 높은 이들의 공석을 차지한 인물이다. 따라서 그로선 현 정권과 현 정권을 만들어낸 로페즈에게 신뢰를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현조가 설명한 것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다.

“···음. 그래. 알겠어.”

“그리고 제가 브리핑에 사용한 다른 근거자료들도 로페즈의 제공을 받은 것이 많습니다. 로페즈의 자회사인 옵시디아몬에서 어떤 인공지능을 개발했다고 합니다. 그 인공지능이 사전에 로페즈에게 위험을 경고한 것이죠. 그래서 로페즈가 터널에서 살아남은 겁니다.”

“무슨 인공지능인지는 모르고?”

“예. 그건 기업비밀이라고 합니다.”

“아무튼 로페즈가 수집한 저 자료도 엄밀하게 따지면 불법이야. 우리도 영장이 없으면 저렇게 안 하는데, 일반인이 저러면 안 되지. 아무리 자기가 살고 싶고 정의를 구현하고 싶어도 불법은 불법이잖아.”

검사장의 지적에도 현조는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영장 나올 때까지 기다리면 사람이 죽습니다. 사람 죽인 놈은 화성 밖으로 도망가버리고요. 그리고 뭘 알아야 영장이 나오는 게 아니겠습니까? 이 정도는 눈감고 넘어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작년 필리스버그 정권 때도 이러한 방식이 없었다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을 것입니다.”

필리스버그 정권 때 큰 활약을 보인 현조가 그렇게 주장하자, 검사장은 차분히 눈을 감았다.

그러기를 5초.

“······이번에는 넘어가겠지만 다음부터는 이러지 말자고.”

“예.”

“그 옵시디아···. 로페즈의 인공지능이 위협을 감지하고 범죄를 잡는데 그렇게 효율적이라면, 차라리 내가 상부에 건의해서 그 인공지능을 정부가 수입하는 것이 나아. 그런 훨씬 투명한 방법이 있다고. 무슨 말인지 알겠지? 신현조 차장검사.”

“예. 죄송합니다.”

“그럼 됐고. 이 커다란 건은 현조 검사가 물어왔으니, 현조 검사가 책임지고 전담해서 진행해. 다른 친구들도 불만 없을 거다.”

앉아있는 검사들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음···. 할 수 있겠지?”

“예. 물론입니다. 영장 나오고, 압수수색에 들어가서 이 자료들이 진짜라는 것만 증명되면 게임 끝입니다.”

“그래. 우리 현조 검사 덕분에 감찰부 평판이 더 좋아지겠어.”

***

회의실에서 나온 현조는 화장실 거울 앞에서 머리를 정돈하고 있다. 그러고 있으니 뒤에서 동급 검사가 들어와 소변기 앞에 섰다.

“현조. 오늘 브리핑 깔끔했어.”

“감사합니다.”

“그런데, 으음···.”

그는 몸을 부르르 떨고는 바지를 잠갔다. 현조와 계급은 동급이지만 선배인 검사다.

“현조야. 타이시는 몰라도 신디사이트는 아래쪽만 적당히 때리고 넘어가는 게 좋지 않겠냐?”

“네?”

쏴아아···

그는 현조 옆으로 와서 손을 씻었다.

“타이시의 대표, 로케이트는 용병들 써서 터널 막고 무고한 시민한테 미사일까지 날렸으니 답도 없지만···. 가만히 있던 신디사이트는 다르잖아. 텔레스터 회장님이 로케이트랑 친구 먹었다고 해서 친구가 수갑 찰 때 같이 찰 필요는 없잖아?”

“선배님. 왜 로케이트는 그냥 로케이트라 부르시고 텔레스터는 텔레스터 ‘회장님’이라고 부르십니까?”

현조는 자기도 모르게 거울 속의 선배를 쏘아보았다.

“···실수. 그냥 붙인 거야. 에이, 괜히 꼬투리 잡지 말자. 무섭게시리.”

“그렇게 느끼셨다면 죄송합니다.”

현조는 그대로 돌아서 화장실을 나가려 했다.

“야, 야! 현조야. 너 진짜 왜 그렇게 화가 많냐?”

그러는 도중에 어깨를 붙잡혀서 나가진 못했다.

“죄송하지만 저는 잡담 나눌 시간이 없습니다.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라면 나중에 합시다.”

“현조야. 신디사이트는 대외적인 규모도 커서 우리나라의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대기업이야. 그런 기업이 이미지가 나빠지면, 경제에 굉장히 안 좋은 영향을 줄 거라고.”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나는 네가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너의 엄청난 공적들도 인정해. 진짜로. ···그래도 한 번에 대기업 두 곳을 엮어버리는 건 너무 선을 넘지 않았냐? 그 기업에서 일하시는 분들과 그 기업 덕분에 삶의 질을 높인 분들은 무슨 죄냐?”

“제가 언제 신디사이트를 통째로 밀어버린다고 했습니까? 죄지은 회장 놈이랑 그 회장 똥구멍 핥아준 놈들만 잡아서 사이좋게 감옥에 넣을 겁니다.”

“봐, 봐, 이거 봐. 넌 너무 속에 화가 많다니까. 우리 감찰부, 한 식구잖아? 현조야. 무조건 내 말대로 하자는 게 아니고, 그냥 선배의 조언에 귀를 열어달라는 거야. 우리 나중에라도 후회할 짓은 하지 말고 살자고.”

“선배님.”

“왜?”

“저도 선배님께 진짜 값진 조언 하나 해드리겠습니다.”

“뭔데?”

“선배님이나 후회할 짓 하지 마세요.”

***

2월의 기후조작 시스템은 올림푸스 도심에 햇볕을 증폭시켰다.

화창한 오후.

높은 타워에 붙은 홀로그램 전광판들이 일제히 뉴스 화면으로 전환되었다. 도심의 행인들은 신호등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전광판을 올려다보았다.

- 타이시의 카빈 로케이트 대표가 오늘 오후 1시경, 오피스텔에서 체포되었습니다. 구속영장을 발부한 감찰부는 신현조 검사를 담당으로 지정했으며, 카빈 로케이트 대표의 범죄 혐의만 26건이 적발되었다고 발표했습니다.

전광판에는 수갑을 차고 법원 앞으로 끌려가는 로케이트의 모습이 나왔다. 법원 앞에는 기자들이 포진해있었다.

- 터널에서 지정살해를 청부한 동기가 무엇인가요?

- 제가 한 일이 아닙니다. 억울합니다.

- 자택 컴퓨터 하드디스크의 데이터를 지운 이유가 뭐죠?

-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전부 로페즈의 조작극입니다. 감찰부는 속고 있습니다. 화성 전체가 그 인간에게 속고 있다고요.

-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주장하셨는데,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요?

- ···.

아나운서는 이어서 말했다.

- 감찰부에서 공개한 주요 내용으로는 5일 전 112번 산업지역과 113번 산업지역을 통과하는 터널 총격 사건입니다. 해당 사건의 피해자인 옵시디아몬 로페즈 대표가 사건 당일, 용의자로 카빈 로케이트 대표를 지목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이에 감찰부는 긴급 사전 조사를 통해···

***

얼마 뒤, 로케이트의 수많은 유죄가 입증되었다. 그는 재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이 소식을 접한 레이 텔레스터 회장은 신디사이트 본사 앞으로 경호원이나 비서도 없이 쓸쓸히 걸어 나왔다.

“레이 텔레스터. 당신을 살인교사, 부정 대선자급 상납, 사냥기업육성, 탈세, 자금세탁, 주가조작, 부품기술 밀반출 및 밀반입 등 45건의 혐의로 체포한다.”

본사 앞에 경찰차가 세 대나 있었다. 그중 형사로 보이는 사람이 텔레스터의 손목에 수갑을 채웠다. 그리고 경찰 휴머노이드 두 기가 양쪽에서 텔레스터와 팔짱을 끼웠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당신이 한 발언은 법정에서 불리하게 사용될 수 있습니다. 당신은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고 질문을 받을 때 변호인의 대리를 받을 수 있습니다. 변호사를 쓸 돈이 없진 않으실 테니, 국선변호인은 해드리지 않아도 되겠죠.”

그 모습을 주변 행인들이 신기하다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동물원 안의 원숭이라도 된 기분이군요.”

“언론 발표 없이 체포하는 거니까 조용히 갑시다.”

텔레스터는 다른 경찰차 두 대를 곁눈질했다.

“검사님은 어디 계시죠? 왜 경찰들만 있어?”

“검사님의 직속 요원이 집행합니다.”

“저는 형사님 차로 가는 거겠죠?”

“잔말 말고 타십시오.”

텔레스터는 의외로 고분고분하게 경찰차에 올랐다. 이어서 그의 양옆에 휴머노이드 두 기, 운전석에 형사가 탑승했다.

그렇게 세 대의 경찰차는 지정된 경로를 따라 이동한다. 회사원들이 가득한 사무지역을 통과하고, 고속터널을 통과하고, 도심의 중심으로 들어가는 길목 앞까지 도달하여 신호등을 기다린다.

“형사님. 팔이 불편한데 수갑 좀 풀어주시겠어요?”

“···예. 회장님.”

휴머노이드가 전자석으로 잠긴 수갑을 풀어주었다. 두 손이 자유로워진 텔레스터는 근심 가득한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피곤한 일 하시는데 형사 봉급이 참 짜요. 그렇지요?”

“···.”

“저기 위에 의자에 앉아서 혓바닥으로 친목질만 하는 것들은 국민들 세금으로 풍족한데···. 그걸로도 모자라서 나 같은 사업자들한테 전화하고, 찾아오고, 술자리에 부르고. ···그런 것들이 현장에서 고생하시는 형사님 같은 분들이랑 어떻게 같은 공무원이냐는 거지. 그게 어딜 봐서 ‘공무’냐는 말이야.”

운전석의 형사는 식은땀을 흘리며 붉은 신호등만 원망스럽게 쳐다보고 있다.

텔레스터는 차내 룸미러로 그런 형사의 상태를 확인하고는 씩 웃었다.

“그러니까 이럴 때 내가 형사님 같은 분들 챙겨줘야지, 나라가 안 챙겨주는 걸 나라도 나서서 챙겨줘야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곧 신호등 바뀌겠네.”

“···예.”

“뭐가 터져서 누가 죽더라도 죄책감 갖지 마요. 지금부터 죽을 놈들은 뒤에서 경찰 욕하던 놈들이라고 생각하라고. 당신은 그냥 돈 받고 과속운전만 해주면 되니까.”

“···알겠습니다.”

두 사람이 입을 다물자 차내는 고요해진다. 바깥에서는 도로에 정차한 차량, 공중을 누비는 드론, 인도를 다니는 사람들이 저마다의 삶을 위해 바삐 움직이고 있다.

텔레스터는 바삐 돌아가는 거리를 구경하더니 침묵을 깼다.

“형사. 이 세상에 널리고 널린 천한 놈들은 몰라. 어떤 놈들은 나를 손가락질하고, 또 어떤 놈들은 내가 자기네 손바닥 위에 있는 줄 알겠지.”

“···.”

“하지만 난 그렇게 쉬운 사람이 아니야. 난 다른 놈들처럼 그렇게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라고.”

그리고 허공에 부양하는 신호등이 녹색으로 바뀌었다.

그 순간 신호등은 단 한 사람을 위해 타인의 죽음을 신호했다. 이제 통과해도 된다는 녹색의 빛으로.

콰콰콰콰콰쾅!!!!!

직후, 폭발이 일어나며 뒤에 있던 경찰차 두 대가 뒤집혔다. 거리에 있던 자들은 자욱한 폭연 속에서 핏방울이 되어 바닥을 물들였다. 드론들은 떨어졌으며, 인근 상가의 유리는 모조리 깨져버렸다.

그것은 ‘테러’라는 이름의 ‘수단’이었다.

사람들의 비명, 절망, 고통의 절규가 곳곳에서 울려 퍼진다.

운전대를 잡은 형사의 손이 떨렸다.

“아···. 아아···.”

“밟아.”

“아···.”

“밟으라고!”

부우웅!!!

끔찍한 죽음과 혼란이 메아리치는 가운데 경찰차 한 대가 도주를 감행했다.

< 9. 일어서라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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