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 일어서라 (1) >
***
로페즈는 신현조 검사의 집무실에 찾아갔었다.
“저건 차장검사가 되면서 실적 우수자로 받은 훈장이에요.”
“아, 검사님 뉴스에 나오시는 거 봤습니다. 행성대통령님께서 직접 수여하신 거죠?”
“네. 행성대통령님은 저번 정권의 문제를 교훈으로 삼았어요. 공석을 투표를 통해 채우시고 저희 감찰부에는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고 계시죠.”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네요. 정말 잘됐어요.”
현조는 앉은 채 고개를 숙였다.
“다 로페즈 씨의 정의로운 행동 덕분입니다.”
“···.”
- 현조의 웨어러블 손목시계를 통해 심박수 상승을 파악했습니다. 그는 관리자님을 만나 ‘들뜬 상태’입니다.
로페즈는 표정 관리에 들어간다. 현조가 고개를 들고 웃으며 눈을 마주치자, 자신은 아무 말 없이 시선을 피해버린다. 무언가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그러고 보니 로페즈 씨. 여기에 오셔서 하시고 싶은 말씀이 따로 있다고 하셨죠?”
현조는 약간의 불안감을 느끼며 로페즈의 근심을 파악하려 한다. 로페즈는 이에 호응해준다.
“솔직히 검사님께 개인적으로 방문해서 이런 걸 말씀드리는 게 올바른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괜찮아요. 로페즈 씨가 또 저를 찾아주셨다는 건, 경찰에 신고하는 수준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겠죠.”
“네···. 하지만 이것도 저와 검사님 사이의 일종의 그런···. 나쁜 관계가 아닌지 의구심이 들어서요.”
이렇게 말해도 현조는 계속 물어볼 것이다.
그는 누구보다도 정의를 중요시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저랑 로페즈 씨가 나쁜 사람이 아닌데, 어떻게 나쁜 관계가 되겠어요?”
“···그런가요.”
“저는 의원이든 어디 대표든 회장이든, 개인적인 연락과 만남을 모조리 거절하는 편입니다. 그들의 유혹과 불순한 의도를 뿌리치기 위해서죠. 하지만 로페즈 씨는 예외입니다. 저는 로페즈 씨가 올곧은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그렇게 인식하고 있다니 다행이네.’
“그게 실은···. 작년에 화이트홀 페이치 회장의 일인지 필리스버그 정권 교체로 인한 일인지, 저를 죽이려는 세력이 있었습니다.”
현조는 금방 사냥이라도 나설 듯이 포식자의 눈빛을 했다.
“그게 누구, 어디죠? 규모는요?”
“자세한 건 모르지만 저희 회사의 인공지능이 제게 닥쳐올 위험도를 분석해줬습니다.”
“역시 옵시디아몬의 인공지능이네요.”
“네. 그래서 계속 조심하고 있었는데···.”
로페즈는 침을 삼키고 의도적으로 한 박자를 쉬었다.
다음에 말할 것을 강조하기 위해.
“타이시에서 이런 수상한 메일이 왔습니다. 지금까지 살인청부에 시달렸던 제 경험을 참고하자면, 가는 길에 저를 해칠 의도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도착해서가 아니라 가는 길이요?”
“여기 보시면 터널이 있습니다. 미팅 시각은 새벽 3시 10분이고요. 사실 미팅이 아니라 호출이라는 느낌이 강하죠. 아무튼 이 터널은 통계에 의하면 새벽의 교통량이 매우 적은 터널이고요. 앞뒤만 뚫린 고속터널입니다. 폐쇄적이죠.”
“매복했다가 체포하기엔 별로 좋은 환경이 아니네요.”
“아마 현행범으로 체포하시면 될 겁니다. 놈들은 터널의 앞뒤를 막아버리고 저를 위협하거나 무력으로 죽이려 하겠죠. 총기나 폭탄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제 권한으로 경찰특수부대를 투입할 수는 있어요. 그런데 앞뒤가 막힌 터널에 매복할 수는 없으니 터널 밖에서 기다렸다가, 일이 터지면 장갑차를 앞세워 돌입해야겠죠.”
“네.”
“하지만 그런 식으로는 로페즈 씨의 신변이 위험해요. 미끼를 무는 척 터널에 들어가셨는데 다짜고짜 폭탄부터 터뜨리면 어떡해요?”
“상대가 무슨 짓을 하든 제가 10분은 버틸 수 있습니다.”
현조는 눈썹을 살짝 밀어 올리며 예리하게 묻는다.
“어떻게 그런 것까지 구체적으로 예상하시죠?”
로페즈는 씁쓸한 느낌으로 입꼬리를 살짝 밀어 올렸다.
“이런 수법에 많이 당해봐서 압니다. 경험에 기반한 ‘추측’이죠.”
- 근미래 ‘예측’ 연산이 완료되었습니다. 관리자님.
***
현조는 테러리스트처럼 보이는 스무 명의 무리에 소리쳤다.
“전원, 바닥에 엎드리라고 새끼들아!!!”
어떻게 사람이 타고 있는 자동차에 미사일을 쏠 수가 있는가. 어떻게 무기 한 자루 없는 사람에게 저런 식으로 총알을 퍼부을 수가 있는가.
현조로선 이해할 수 없는 쓰레기들이었다. 저런 일을 하는 자들도, 저런 일을 시킨 자도.
“체포하세요.”
“들어가!”
“체포해!”
그가 명령하자 경찰 드론과 휴머노이드가 쏜살같이 투입됐다. 무기를 버리고 바닥에 엎드린 용병들을 구속하고, 뒤따른 무장 경찰들이 한 명씩 수갑을 채웠다.
“다친 곳은 없으십니까?”
바닥에 엎드린 로페즈에게도 경찰들이 다가갔다. 그에겐 수갑이 채워지지 않았다.
“불철주야 고생이 많으십니다. 경관님. 저희는 아무도 안 다쳤습니다.”
“알겠습니다. 안전이 확보될 때까지 이대로 대기해주세요. 어이! 그쪽 두 분도 여기로 모셔!”
로페즈의 옆으로 온 자이칸과 로노에게도 수갑은 채워지지 않았다.
용병들이 줄지어 호송차량에 오른 후 현조가 다가왔다.
“저런 차를 타고 계셨구나. 그런데 어떻게 미사일을 맞고도 멀쩡해요? 저 차 방폭 기능도 있었어요?”
“이런 일을 대비해서 조금 튜닝해놨죠. 검사님이 타이밍 좋게 와주셔서 살았습니다.”
로노는 감탄했다. 로페즈가 검사와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우러러본 것이다.
“형님···. 대표님이 검사와도 아는 사이였습니까···?”
“쉿. 형님이라고 부르지 마. 다물고 있어.”
“앗···. 죄송합니다.”
두 사람은 공권력 앞에 본능적으로 침묵했다.
이후 로페즈는 총격으로 엉망이 된 두 차량을 뒤로하고 현조와 함께 경찰차에 올랐다.
“로페즈 씨. 회사 인공지능으로 더 알아낸 건 있으세요?”
“인과관계와 인간관계를 분석했습니다. 설명해드리자면 굉장히 복잡한 원리이긴 한데···. 결론만 말씀드리자면 타이시뿐만 아니라 신디사이트도 제게 악의를 품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신디사이트요? 제가 아는 그 대기업 말씀하시는 거죠?”
“네.”
현조는 혀를 내둘렀다.
“정권 바뀌고 윗사람을 싹 교체했는데, 이번엔 대기업들이 문제군요.”
“오늘 체포한 용병들을 조사하면 타이시와 연결점이 드러날 것 같습니다.”
“이미 드러났어요. 걔들이 위성국가··· 목성 가니메데에서 온 놈들인데 그쪽으로 타이시가 자금을 넣었더라고요. 타이시가 로페즈 씨를 해치려고 고용한 거죠.”
그 자금 경로의 정황을 감찰부가 물기 쉽게 만들어준 건 트랜센던서다.
“조사가 굉장히 빠르시네요.”
“현 정권의 총애를 받고 있는 감찰부니까요.”
현 행성대통령은 유력후보자가 아니었다. 감찰부와 로페즈가 필리스버그를 잡고 여러 사건이 터진 끝에 클레릭까지 사망하면서 어부지리로 당선된 행성대통령이다.
그러니 당의 힘이 약한 현 행성대통령은 감찰부와 긴밀하게 협조하여 자신의 위치를 보호하려는 것으로 추정된다.
로페즈는 슬쩍 물었다.
“그럼 행성대통령님께서 저를 좋은 이미지로 봐주고 계시겠네요.”
“그거야 말할 것도 없죠. 로페즈 씨는 부패한 전 정권에 맞선 장본인이시잖아요.”
“하하···.”
로페즈에겐 크게 세 가지 가까운 목표가 있다.
그것은 무기 사업, 콜로니 건설, 신기술 개발이다.
그 세 가지 목표가 모두 정부의 허가를 필요로한다. 행성대통령의 신뢰를 간접적으로 얻어낸다면 일의 속도가 매우 빨라질 것이다.
***
45세, 타이시의 젊은 대표인 카빈 로케이트는 새벽에 본사의 로비까지 나와서 서성였다.
“이것들 왜 아무 소식이 없어요?”
“터널에서 작업을 시작했다는 것이 마지막 보고였습니다.”
“그럼 LZ가 그물에 들어오긴 했다는 거 아니에요? 이렇게 오래 걸릴 리가 없는데?”
“아직 파악 중입니다.”
“비싼 용병들인데 일 처리가 이렇게 느리면 쓰나···.”
새벽 4시. 휑한 로비에는 로케이트와 그의 경호원들밖에 없다.
그렇게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지쳐서 퇴근하러 로비 밖으로 나간 순간이었다.
부우웅!!!
뚱뚱한 스포츠카가 로케이트의 앞에 멈췄다.
로케이트는 즉각 반응했다.
“아, 하하하! 회장님! 무슨 일로 여기까지 행차하셨습니까?”
스포츠카의 창이 내려가고 얼굴을 보인 남자는 레니 텔레스터(Lenny Telester). 그는 신디사이트 그룹의 회장이다.
“내가 언제는 이유가 있어서 대표님 만나러 왔어요? 드라이브하는 김에 잠깐 들렀지.”
“어쩐지 회장님께서 왜 운전석에 계시나 했습니다. 하하.”
“잠깐 둘이 이야기 좀 할까요?”
지금은 야심한 새벽이다.
이곳은 인구밀도가 낮은 113번 산업지역이다.
당연히 교통량도 적고 거리에 행인은 거의 없는 시간대다.
“얼마나 중요한 이야기죠?”
“지금 그 일 때문에 퇴근도 못 하고 계신 거 아니었나?”
“···.”
“자꾸 이렇게 기다리게 하지 마요. 급한 일이란 말이야.”
“예. 하하.”
로케이트는 스포츠카의 조수석 문을 열었다. 차내에는 텔레스터 회장 말고 아무도 없다.
이를 확인한 로케이트는 자신의 경호원들에게 가라고 손짓했다.
부우우웅···.
바퀴 없는 스포츠카는 매력적인 엔진음을 내면서 조용한 대로변을 나아갔다.
“그래서···. 하시고 싶은 말씀이란 게···?”
“경찰특수부대가 움직였어요. 사족보행 장갑차까지 대동하면서 터널을 돌파했다고요.”
로케이트의 앞에 홀로그램이 띄워졌다. 터널 밖으로 빠져나가는 경찰 병력들의 사진이다.
“맙소사···. 이 시간에 어떻게 이런 규모가 움직였다는 겁니까?”
“조사해보니 검사 차량까지 있었어요.”
“누군데요?”
“신현조입니다.”
수많은 검사 중에 하필 그 이름은 듣고 싶지 않았다.
“······일이 커졌군요.”
조금은 대담하게, 조금은 과격하게, 한 번에 끝내려고 했는데,
로페즈는 이번에도 당해주질 않았다.
생각해보니 리탄 작업에 실패하고 엑스턴 장군이 태도를 바꾼 순간부터 일이 꼬이고 있다는 느낌이다.
불현듯 그런 사실을 텔레스터와 로케이트는 뒤늦게 인지했다. 지금 자신들이 과거 화이트홀과 필리스버그 정권의 실수를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고.
그때도 로페즈가 피해를 보았고, 로페즈가 살아남았고, 마지막에 신현조가 나섰다.
그런 흐름을 따라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오비탈플래닛은 물의를 일으킨 쪽의 반대편에 서겠다고 했어요. 제 말, 무슨 뜻인지 아시겠어요?”
상황이 심각해졌다.
“예···.”
“그냥 이쯤에서 멈춥시다. 이러다 우리가 좆됍니다.”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만두죠.”
하지만 그들은 지금도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만두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것을.
***
-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만두죠.
로페즈는 현조와 함께 그들의 블랙박스 영상을 보고 있다.
“올바르지 않은 방법으로 이 사람들의 차량 네트워크를 해킹했습니다. ···그래도 검사님이라면 저의 이런 대처를 이해해주실 거라고 믿습니다.”
현조는 잠시 갈등하더니 이내 수긍했다.
“···그래요. 원래 이런 놈들 잡으려면 물밑에서 먼저 움직이는 게 중요하니까···. 로페즈 씨가 제공해주신 이 자료는 제가 잘 건의해서 증거로 쓰일 수 있게끔 만들게요.”
“저는 검사님께 몇 번을 감사하다고 말씀드려도 모자랍니다. 그래도 정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아, 아니에요. 제가 더 감사하죠.”
로페즈는 현조의 수긍하는 태도를 확인한 뒤 트랜센던서의 말을 들었다.
- 신현조의 신뢰 확보, 인공지능 언급, 수사 준비, 모든 작업이 성공적입니다. 이제 마지막 단계가 남았습니다.
현조에겐 이제 시작이지만, 로페즈에겐 이게 마무리 단계였다.
“그리고 저기···. 검사님.”
“예.”
“검사님과 개인적으로 연락할 수단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
또 갈등하는 표정. 이젠 트랜센던서의 조언이 없어도 그의 표정이 읽힌다. 로페즈의 눈이 훈련된 것이다.
“검사님이 이런 거 싫어하신다는 것은 압니다. 그래도 염치 불고하고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는 제 능력으로 검사님과 함께 싸우고 있습니다. 신속한 정보전달을 위해 서로의 개인연락처를 확보해두는 것은 필수불가결하다고 생각합니다.”
침묵하던 현조는 마지못해 로페즈에게 휴대전화를 보였다.
현 정권과 메스컴의 강력한 지지를 받는 감찰부 차장검사 신현조. 그의 번호가 찍혀있다.
“로페즈 씨니까 믿는 겁니다. 아시겠죠?”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화성에서 로페즈를 위협할 상대가 없어질 날이 머지않았다.
생태계에서 어느 종의 위협적인 포식자가 사라진다면, 그 종은 번성할 것이다.
옵시디아몬의 성장 발판은 충분히 마련해두었다. 목표 설정도 끝났다.
‘이제, 거의 다 매듭지었어···.’
화성에서의 오랜 싸움 끝에, 곧 완벽한 탄탄대로를 손에 넣으리라.
< 9. 일어서라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