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 골든체인 (2) >
***
애틀라탄 회장과의 우호적인 시작이다.
“정말 멋진 콜로니입니다. 항상 인파가 많은 도심에서 사는 게 답답했는데, 오랜만에 녹음이 우거진 풍경을 구경했어요. 휴양이라도 온 느낌이에요.”
“하이게이트의 자랑스러운 콜로니죠. 허허. 나중에 여유가 되면 본사도 이쪽으로 옮기려 합니다.”
그는 이 하이콜로니에 상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로페즈는 적당한 주제를 꺼낸다.
“이런 완벽한 콜로니를 건설하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겠어요.”
“예. 돈이 꽤 들어갔죠. 여기저기 허가도 받고 투자도 받고···. 그래도 이런 콜로니 하나 가지고 있는 게 회사에는 큰 보탬이 됩니다.”
“부럽습니다. 콜로니는 기업이 만드는 작은 나라나 마찬가지잖아요?”
“어마어마한 비용을 들이고 콜로니를 완성하면 영구적인 수익을 낼 수 있지요. 저 아래에 올림푸스에서 건물을 세울 때와 달리 부동산도 필요 없고요. 잘 키워서 매각하면 그 이익도 엄청나죠.”
“행성과 달리 우주는 땅값이 없으니까요.”
“예. 콜로니 건설과 운영은 여유가 있을 때 정말 좋은 사업입니다.”
“저도 나중에 콜로니 하나 만들어봐야겠어요.”
“옵시디아몬이라면 금방 그럴 수 있을 것 같군요.”
로페즈는 이쯤에서 야망을 드러내기로 한다.
“네. 옵시디아몬은 나중에 거대기업이 돼서 행성을 개척할 테니까요. 콜로니라는 작은 나라를 만들어서 예행연습을 하고 싶네요.”
“오···. 거기까지 내다보고 계시는구나. 젊으신 분이 포부도 크시고, 추진력도 있으시고. 대단하시네. 허허허···.”
그러고 있으니 비서실장이 들어와서 커피 두 잔을 두고 갔다.
타이밍 좋게 이야기가 끊겼으니 본론을 꺼낼 차례다.
“저는 인공지능 기반으로 신기술을 빠르게 개발할 생각입니다.”
“신기술은 어느 분야에서나 막강한 힘이 되지요.”
“네. 그게 옵시디아몬의 궁극적인 목표이자, 핵심 경쟁력입니다. 저는 누구에게나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요. 짧은 시간과 적은 노력으로 누구보다도 빨리 신기술을 내놓을 수 있다고 말이죠.”
애틀라탄은 만족스럽다는 얼굴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더니 로페즈에게 살짝 얼굴을 들이밀었다.
시선을 진심으로 깊게 마주치고 있다는 감각이다.
“우리 로페즈 대표님.”
“네. 회장님.”
“···리탄은 버리고 우리 쪽으로 옵시다. 그 녀석은 페이치의 발끝에도 못미치는 망나니에요. 서서히 저물어가는 저녁 태양 같은 녀석이죠.”
“···.”
“대충 알고 있어요. 작년에 화성에서 벌어진 놀라운 일들, 그 중심에서 대표님이 모든 것을 지휘하고 있었다는 것을요.”
“예리하시네요.”
“우리 로페즈 대표님은 충분히 그럴 그릇이 되는 것 같으니까. 적극적으로 도와줄게요. 진짜 힘이라는 게 뭔지 알게 되실 겁니다. 우리가 키워줄게요.”
“···그 ‘우리’라는 건 골든체인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기습적인 발언이다. 살짝 얼굴을 들이밀고 있던 애틀라탄은 흠칫하며 의자에 허리를 딱 붙였다. 굉장히 복잡한 표정을 하고 있다.
- 기대, 두려움, 놀라움이 순차적으로 드러났습니다. 애틀라탄은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여기서부터는 철저한 허세로 밀어붙여야 한다.’
이제부터 ‘다 아는 척’을 할 것이다.
“허, 허허···. 골든···. 뭐라고 하셨죠?”
“골든체인이요. 다른 말로는 GC.”
“허허허···. 흠, 흠···.”
애틀라탄의 인위적인 웃음소리가 미묘하게 떨리고 있다. 호흡의 박자도 부자연스럽게 어긋난 것처럼 보인다. 아마 심장이 뛰는 속도도 빨라졌으리라.
“회장님. 저는 뭐든지 확실하게 따지는 성격입니다. 그래서 회장님께서 말씀하신 ‘우리’라는 게, 대기업의 비밀모임인 골든체인을 말씀하시는 건지 여쭤보고 싶어요.”
“···이미 다 알고 계셨군요.”
“네. 저는 모든 것을 알고 있어요. 작년 12월쯤부터 화성에선 모르는 게 없게 되었죠.”
허풍이다. 허세다.
그래도 자신 있게 그럴싸한 설명을 덧붙여 내뱉는다.
“필리스버그 정권 때 제 몸을 지키려고 아레스 시스템을 장악했어요. 그 결과로 화성의 모든 정보를 손에 넣었죠. 여기서 제가 말씀드린 정보란, 모든 데이터, 시스템, 서버를 뜻해요. 예전에 화성을 지배했던 아레스 시스템이 어떤 건지 알고 계신다면 아마 이해하셨겠죠.”
“예···. 압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뜻은, 이미 로페즈가 애틀라탄은 물론이며 골든체인 구성원 모두의 약점까지 쥐고 있다는 뜻이 된다.
암묵적인 갑을관계가 역전되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로페즈는 정보의 우위에 있는 척하며, 철저하게 대화의 우위를 점했다.
“지금 회장님이 놀라신 만큼 저도 깜짝 놀랐어요. 골든체인 같은 대기업 연합이 있다는 것도 신기했지만, 설마 그런 독창적인 방식으로 소통하고 있었을 줄은 상상도 못 했거든요. 필리스버그 정권 때는 페이치 회장이 PP와의 다리가 되었을 텐데, 갑자기 일이 그렇게 꼬여버렸으니 리탄이 밉상일 수도 있겠다고 이해는 합니다.”
일리노이 페이치는 골든체인의 구성원이었고 리탄이 페이치의 자리를 차지하면서 그들이 리탄에게 적개심을 품었으리라는 어림짐작.
“예···. 그렇죠.”
“그래서 리탄은 제게 처벌을 받고 있어요. 화이트홀과 옵시디아몬은 협력이 아니라 목줄 관계라고 이해하시면 되겠네요. 덩치에 차이는 있지만···. 자기보다 몸집이 큰 개를 키우는 사람들도 있는 법이잖아요? 제게 리탄은 딱 그 정도 인물입니다. 그러니 제가 리탄과 뭔가를 한다고 해서 경계하진 말아주셨으면 해요.”
“허허···. 그것도 다 들으셨구나···.”
‘들었다고? 내부에서 리탄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구나.’
“솔직히 듣고서 기분이 좋진 않았습니다. 불순한 암약이 오가는 것 같아서요.”
애틀라탄은 끝내 믿어지질 않았는지 마지막으로 떠보았다.
“그럼···. 저희 GC의 목적도 알고 계시겠군요.”
로페즈는 즉답했다.
“네. 저처럼 거대기업을 목표로 하시는 게 아니라, 탄탄한 경영권 유지를 위한 모임이잖아요? 손에 쥔 것을 잃지 않기 위해서,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기 위해서요.”
다 말해버렸다.
알고 있는 정보를 거듭 연결해서 다 아는 것처럼 포장했다. 이제 더는 말할 것이 없다. 애틀라탄이 완전히 속아주었기를 바라는 수밖에.
“흠, 흠···. 예. 저는 지금 상황을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로페즈 대표님. 허허···.”
‘됐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옵시디아몬은 거대기업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그래서 함께 성장할 비즈니스 파트너를 물색하고 있죠.”
“거대기업이라···. 거대기업이 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진심으로 하시는 말씀인지요?”
“전 누구보다도 진지한 사람입니다. 모두가 안 된다고 말해도 무조건 해냈습니다. 지난 사건들과, 오늘날 옵시디아몬의 지표라는 결과물을 보세요.”
결과론적인 설득력. 상대의 말이 선견지명처럼 들리는 착각.
하지만 충분한 실현 가능성이 있다.
“···.”
“진심입니다. 신기술을 만들어서, 거대기업이 될 겁니다.”
애틀라탄은 다시 얼굴을 살짝 들이밀었다. 다만, 이번에는 허리까지 굽혀서 굉장히 저자세라는 느낌이 든다. 자신 있던 눈빛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서 상급자를 대하는 듯 어딘가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다.
“제가 GC에 한번 제안해보겠습니다. 로페즈 대표님을 저희 파티 사냥터에 직접 초대해도 되는지.”
‘파티 사냥터···? 갑자기 뭔 소리야?’
“···알겠습니다. 저희가 서로 도울 수 있는 관계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이것도 진심입니다.”
“예. 그런 방향이 될 수 있게끔 힘을 써보겠습니다.”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애틀라탄 회장님.”
“허허허···. 저야말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로페즈 님.”
***
로페즈는 우주선 택시로 돌아오는 길에 궁금증을 해소했다.
“파티 사냥터···. 파티 사냥터에 초대···. 은어나 암호 같은 말일까?”
- ···그들이 사전에 약속한 은어를 쓰고 있다면 ‘파티 사냥터’라는 소통상황은 파악할 수 없습니다.
트랜센던서조차 버벅거리고 있다.
“파티 사냥터···. 어딘가 도축장이라도 만들어놨나? 비슷한 시간대에 비슷한 장소에서 결제한 기록은 있다며?”
배양육이 상용화된 현대에서 도축은 어느 나라에서나 불법이다.
- 모든 교통 기록을 검색해보았으나 결과는 같습니다. 그들은 오프라인에서의 만남을 은폐하고 있습니다. 혹은, 오프라인에서의 만남이 없습니다.
“애틀라탄 회장의 휴대전화는 아직도 잠잠해?”
- 그렇습니다. 관리자님과 만남 이후 골든체인에 관련된 데이터는 검색되지 않았습니다.
“아니, 자기가 직접 제안해본다고 했잖아. 나를 파티 사냥터에 초대해도 되는지를. 그런데 아무 곳에도 연락을 안 하고 있다고? 아직도?”
- 그렇습니다.
“파티 사냥터···. 초대···. 파티 사냥터···. 초대···. 파티 사냥터라는 장소? 규율? 거기엔 ‘초대’를 받아야 들어갈 수 있다고 했·········.”
그 순간 로페즈는 눈을 번뜩였다.
“야, 씨발! 트랜센던서!”
- 죄송합니다. 관리자님의 기분을 상하게 할 의도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제 검색기술의 특성은 어디까지나 인터넷을 포함한 사이버 영역과 통신 영역의 전자적인···
“아니,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 네?
“파티 사냥터가 진짜 파티 사냥터를 말한 것일 수도 있잖아?!”
- 해당 단어는 온라인 육성게임에서 주로 사용되는 용어입니다.
로페즈와 트랜센던서는 너무 깊게 생각한 것이다. 찾는 것은 바로 앞에 있었는데 최신식 현미경으로 분자를 하나하나 들여다본 꼴이다.
“그러니까, 그 골든체인 대기업 회장들! 게임에서 만난 거 아니야? 자기들끼리만 알아들을 수 있는 줄임말 같은 은어만 쓰면서 소통할 수도 있잖아.”
그런 별도의 공간에서, 자기들의 은어만 쓰면서, 다른 사람의 계정으로, 모르는 사람은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게임 이야기처럼 포장하여 나누었다면 트랜센던서가 검색할 수 없는 것도 이해가 된다. 화성에 존재하는 모든 대화 기록과 채팅 기록을 검색해봐도 그런 식이라면 특정할 수 없다.
- 애틀라탄은 게임 계정이 없습니다.
“주변 인물들은?”
- 애틀라탄의 비서실장, 안티오의 게임 계정 중 ‘파티 사냥터’가 있는 장르의 게임이 검색되었습니다.
“그게 뭔데?”
- 스텔라크래프트5. 오픈 월드 판타지 게임입니다. 안티오 계정의 캐릭터, HG의 채팅 로그를 보시겠습니까?
“캐릭터 닉네임이 HG라고?”
- 그렇습니다. 또한 HG가 소속된 길드명은 ‘황금연합’입니다. 황금연합 길드에는 MN, TS, SS, OP라는 유저가 소속되어 있습니다.
‘MN···. 밀라노이···. TS는 타이시···. SS는 신디사이트···. OP는 오비탈플래닛···. 닉네임들은 우연이 아니야. 길드명이 황금연합이라는 것도 그렇고···.’
모든 퍼즐이 맞아떨어졌다.
“당장 보여줘.”
***
「HG[황금연합]: 저 오늘 LZ와 접촉했습니다.」
「MN[황금연합]: 갑자기요?」
「HG[황금연합]: 어쩌다보니 인연이 닿아서 사업적인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TS[황금연합]: HG 님도 RT와 같은 노선을 타려고 하시는 건가요.」
「HG[황금연합]: RT는 LZ와 협력관계가 아니었습니다. 주인과 펫의 관계였죠. 주인이 LZ였어요.」
「MN[황금연합]: 계속 말씀해보시죠.」
「HG[황금연합]: 생각보다 대단한 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생각보다 그렇게 하얀색은 아니었어요. LZ가 먼저 선수를 쳤습니다. 저희 길드의 존재는 물론이고 저희가 어떻게 소통하는지, 어떤 목적으로 어떤 구성원이 있는지, LZ는 전부 알고 있었습니다.」
「MN[황금연합]: 헐」
「SS[황금연합]: PK해야겠네. 우리 약점을 다 쥐고 있다는 뜻이잖아요.」
「TS[황금연합]: 그래요. PK합시다.」
「MN[황금연합]: 다들 동의하시는 거죠? OP 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HG[황금연합]: 잠시만요! 꼭 PK할 필요는 또 없었습니다. 제가 방금도 말씀드렸듯 LZ는 하얀색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전 PP를 묻어버릴 정도로 강력한 능력치를 갖춘 검은색이라고 봐도 무방한 캐릭터였죠.」
「SS[황금연합]: 결정은 HG 님이 하는 게 아닙니다. OP 님. PK를 허락해주세요. LZ가 수를 쓰기 전에 싹을 잘라야 합니다.」
「HG[황금연합]: 저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합니다. 괜히 PK시도했다가 좋을 것 없어요. 전 PP나 PC도 PK시도했다가 그렇게 된 거잖아요.」
「OP[황금연합]: LZ를 황금연합에 초대하는 것은 불허합니다. 저희 길드와는 규모가 맞지 않습니다.」
「OP[황금연합]: 단, LZ와 친구를 맺고 싶다면 맺으십시오. LZ와 협력하는 것도 자유, 적대하는 것도 자유입니다. LZ는 변수 덩어리이므로, 손을 잡는 것이 득이 될지 실이 될지는 모르는 일입니다. 각자 알아서들 판단하고 행동하십시오. 저희 OP는 관여하지 않겠습니다.」
「SS[황금연합]: 그럼 PK해버립니다?」
「TS[황금연합]: SS 님이 처리하실 건가요?」
「MN[황금연합]: 도울 일이 있다면 돕겠습니다. 저도 LZ에게 반감이 큽니다.」
「HG[황금연합]: 아 이게 아닌데」
「TS[황금연합]: 저도 기회가 된다면 도울 생각입니다. SS 님, MN 님. 저희는 정보를 공유합시다.」
「HG[황금연합]: 님들. 저는 분명히 경고해드렸습니다. LZ는 생각보다 훨씬 강하다고요.」
「SS[황금연합]: 그래봤자 RT보다도 힘이 없는 캐릭터입니다. 아무도 모르게 밟아버리면 그만이죠.」
「OP[황금연합]: 알아서들 하시되 이건 명심하십시오. 저희 OP는 이익과 안전을 추구합니다. 누구든 월드에 큰 물의를 일으켜서 악당으로 정의된다면, 저는 악당의 반대편에 설 것입니다.」
< 8. 골든체인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