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대 인공지능 키우기-42화 (42/183)

< 8. 골든체인 (1) >

***

로페즈는 회사로 돌아오자마자 옵시디아몬 인공지능 모듈의 성과부터 확인했다.

- 공장 가동 후 모듈의 누적 판매량은 50만 회를 돌파했습니다. 화이트홀과 계약 이후 로열티 이익 또한 매초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 금일 옵시디아몬 인공지능 모듈의 이익금 합산은 1255만6000크레트입니다.

화이트홀이 옵시디아몬 인공지능 모듈을 사용함으로써 얻은 이익의 4%는 숫자만 봐도 엄청났다. 리탄과 계약한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는데 회사 건물의 월세 두 달 치를 하루 만에 벌고 말았다.

‘이제 매출로만 따지면 중견기업이다.’

옵시디아몬이 스타트업에서 중견기업으로 거듭나기까지는 4개월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이러한 성장세 덕분에 거래를 제안하는 곳이 부쩍 늘었다.

“전략기획자, 재무담당자, 인사관리자가 필요해. 개발자도 세 배는 늘려야 하고.”

- 이번에도 외부 사이트의 지원 없이 자체적인 채용공고를 내시겠습니까?

“당연하지. 사원들 업무량이랑 앞으로 늘어날 업무량을 계산해서 적합한 숫자만큼 뽑아.”

- 알겠습니다.

로페즈는 대표실에서 나왔다. 아무도 없는 복도의 한쪽으로 커다란 방이 하나 있다. 이 층에서 대표실을 제외한 모든 공간을 차지한 방이다.

자동문에 휴대전화로 권한을 인증해야만 들어갈 수 있는 서버실이었다.

“앗, 대표님!”

서버실에 들어왔을 때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전직 유명 해커인 프녹스다.

“프녹스 씨. 제가 좀 상담하고 싶은 것이 있어요.”

“무슨 상담이요?”

***

트랜센던서의 연산을 보조할 서버, 트랜센던서의 학습 데이터를 저장하고 백업할 서버, 옵시디아몬 웹을 관리하는 서버 등 로페즈와 회사에 필요한 모든 서버 장비가 병렬로 연결되어 연구소 같은 느낌을 준다.

조용한 기계음과 시원한 바람이 감도는 가운데, 로페즈는 프녹스에게만 할 수 있는 은밀한 이야기를 꺼냈다.

“제가 최근에 알아보고 싶은 모임이 있었어요. 아주 비밀스러운 모임이죠.”

“네, 네.”

“그 모임의 구성원들이 제게 위협이 될지 득이 될지 판단하고 싶어서 트랜센던서에게 시켰어요. 정보를 수집하라고. ···모임의 구성원이 누구인지도 알고, 모임의 이름이 무엇인지도 아는데, 정작 그 모임의 구성원들이 어느 곳에서 어떤 방식으로 소통을 하는 건지 찾을 수가 없었어요.”

프녹스는 옆머리를 긁적였다.

“트랜센던서가 못 찾았다고요···? 제가 잘못 들은 건 아니죠?”

“찾을 수가 없었어요.”

“어렵네요···. 더 구체적인 내용을 들려주실 수 있으세요?”

“트랜센던서. 대답해.”

“네. 관리자님.”

수개월 만에 트랜센던서의 목소리를 들은 프녹스는 미어캣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열정적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트, 트랜센던서···! 아, 그렇지! 넌 항상 대표님 주변에 있으니까···. 정말 경이로워···.”

“트랜센던서. 네가 직접 프녹스 씨에게 설명해줘. 난 이쪽 단어를 잘 몰라서.”

서버실에 트랜센던서의 기계적인 목소리가 울렸다.

“관리자님께서 정의하신 모임의 이름을 화성에 존재하는 모든 시스템 영역에서 검색했습니다. 데이터 무차별 검색 결과에 의하면 일치하는 문자열이 없었으므로, 이미 정의된 모임의 구성원들이 사용하는 모든 계정과 인터넷 활동 흐름을 합치했습니다. 그러나 구성원 간의 오프라인 및 온라인 접촉은 일절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구성원들이 같은 장소에서 비슷한 시간대에 동일한 결제를 한 기록이 있던 것을 포함하여, 모든 로그가 말소되어 검색 경로 시작점을 특정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그렇구나. 나는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네.’

로페즈는 프녹스와 트랜센던서의 대화를 조용히 듣기로 했다.

“온라인에서 찾을 수 없다면 오프라인의 연결점은? 카메라나 출입 기록이나 주변 인물들 활동은 조사해봤어?”

“모두 조사했습니다. 그러나 구성원들은 오프라인에서의 연결점도 없었습니다.”

“그럼 대체 어떻게 그런 모임이 유지되고 있다는 거지? 소통을 하긴 할 텐데···. 사람을 건너서 편지나 쪽지 같은 걸 주고받았나?”

“2차, 3차, 4차 인물 활동까지 조사했으나 연결점은 없었습니다.”

“그럼 사람이 아니라 배달 서비스, 드론, 휴머노이드 같은 것들은?”

“배달 서비스, 드론, 휴머노이드, 모든 통신 영역의 파동, 비둘기, 개, 고양이 등 현실에서의 정보 전달 매체가 될 수 있는 요소들은 모두 조사했습니다.”

“···.”

“···.”

프녹스와 로페즈는 동시에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극악의 난제를 마주친 수험생들이 이런 표정을 짓지는 않았을까.

“대표님. 정말 죄송하지만···. 저는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네···. 저도 떠올릴 수 있는 건 다 떠올려봤는데···. 이미 트랜센던서가 다 확인했었네요.”

그리고 로페즈는 처음의 마음가짐으로 돌아왔다.

‘트랜센던서가 못 찾으면 내가 찾아야겠지···.’

이제는 하이게이트의 회장, 애틀라탄과의 만남을 노리는 것 말고 방법이 없다.

***

2월 1일.

화이트홀의 지분 20%를 가진 로페즈는 엄청난 액수의 배당금을 받았다.

‘싹 반올림해서 2900만. 올해 9월에 이만한 액수를 또 받을 수 있다.’

로페즈는 계단식 의자가 부채꼴 모양으로 배치된 장소에 있다. 대충 주변을 둘러보면 100명 정도가 앉아서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정면에는 낮은 단상과 함께 커다란 홀로그램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단상의 가운데에는 의자 여섯 개와 책상 여섯 개가 덩그러니 놓였다. 다섯 자리에 앉은 자들은 딱 봐도 높은 사람으로 보이며, 가운데에 남은 한 자리의 주인은 곧 들어왔다.

- 예. 화이트홀 그룹 정기주주총회를 시작하겠습니다.

단상 옆에서 하얀 정장 차림의 리탄이 등장했다. 그는 곧 가운데 자리에 앉아서 마이크에 입을 댔다.

“하하···. 작년보다 빈자리가 많아졌네요. 이거 생각보다 결의가 빨리 끝날지도 모르겠어요.”

작년엔 많은 이들이 수갑을 차고 감옥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저번에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경영권 결정을 위한 임시주주총회 이후로, 정기주주총회는 처음입니다. 제가 아직 경험이 부족한 만큼, 최대한 준비해왔으니 너그러이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리탄의 옆에 앉은 사람이 무언가를 정리해서 말하고, 또 그 옆에 앉은 사람이 무언가를 정리해서 말하고, 마지막으로 리탄이 전부 정리해서 말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화이트홀의 여러 경영 전략에 대해 버튼으로 찬반투표를 진행하고, 중대한 결정에 대해선 대주주들이 한 번씩 입을 열어 토의를 진행했다.

화이트홀의 주주총회답게 화이트홀에 대한 이야기가 지루하게 오갔다.

그래도 40분이 지난 시점에선 로페즈가 나설 대목이 있었다.

“화이트홀 함선을 이용하는 고객들이 크게 줄었습니다. 그러니 함선보단 우주선 개발에 더 주력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함선 업그레이드와 서비스를 강화할지, 아니면 신식 우주선을 개발하여 시장에 내놓을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주주들은 모두 로페즈의 말에 집중했다. 옵시디아몬을 단기간에 크게 성장시킨 주인공의 의견에 설득력이 있던 것이다.

“함선은 타 행성에 새로운 공항을 여는 절차가 복잡하고 새로운 아이템을 보여주기에도 유연성이 없습니다. 반면에 우주선은 상대적으로 새로운 모델을 개발하기가 쉽고 수출 허가 절차를 통과하는 과정도 간단하니까요.”

리탄은 다른 대주주들의 의견을 더 듣기로 했다.

“동의합니다. 화성에서의 화이트홀 이미지가 안 좋아진 시점인 만큼, 화성 외부의 시장 수익을 강화해야 할 때입니다.”

“예. 저도 앞서 말씀해주신 분들과 이견은 없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화이트홀은 함선보다 우주선에 주력하기로 결정했다.

‘화이트홀의 모든 우주선에 옵시디아몬 인공지능 모델이 들어간다. 이들이 우주선 사업을 확대하면 옵시디아몬의 매출도 확대된다.’

결과적으로 로페즈는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하여 더 큰 이익을 얻어낸 것이다.

저녁 직전에 대표실로 돌아온 로페즈는 옵시디아몬 설립 이래 처음으로 단체 회식을 열었다. 본래 사원들의 퇴근 시간은 오후 6시 30분인데, 오늘은 그보다 한 시간 빠른 오후 5시 30분에 일을 종료시켰다.

회식은 근처 식당의 커다란 단체방을 빌려서 했다. 비싼 배양육이 불판 위에서 먹음직스럽게 익어간다. 업무에 관련된 이야기 대신 잡담을 나누며 각자의 술잔이 오간다.

분위기가 무르익어가는 가운데, 그는 사원들에게 알렸다.

“우리 옵시디아몬은 인류의 과학기술을 앞당길 것입니다.”

그 선언에 진심으로 감격한 프녹스가 열정적으로 박수를 쳤다. 이어서 자이칸이 박수를 치고, 모든 사원들이 작은 환호성과 함께 박수 세례를 보냈다.

그리고 회식이 끝나기 전에 로페즈는 사원들의 월급을 한 명도 빠짐없이 5만 크레트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로페즈는 사원들의 웃는 얼굴을 마지막으로 확인한 후 식당 카운터에서 계산했다.

“8만4000 크레트입니다.”

몇몇 사원들이 물었다.

“대표님! 2차 안 가세요? 내일 주말인데요.”

로페즈는 부드럽게 사양했다.

“저는 체력이 안 되네요. 하하.”

그리고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주었다.

“첫 회식이니까 마음껏 써주세요.”

“네? 아! 괜찮습니다! 방금도 내주셨는데 또 그러기엔 조금 염치가···. 2차는 가자고 하는 사람들이 내겠습니다.”

“저희 회사가 얼마나 큰 이익을 남기고 있는지 다들 아시잖아요? 이 정도 지출은 티도 안 나요. 그리고 제가 하자고 한 회식인데 당연히 제가 끝까지 내드려야죠. 하하하.”

15명 중에 7명 정도는 2차를 가려는 것 같다.

“자이칸 씨도 동생분들한테 맛있는 것 좀 사주세요.”

“예?”

로페즈는 옆에 있던 자이칸에게도 카드를 주었다. 자이칸의 부하들이면서 옵시디아몬의 사원인 전 조직원들은 평상시에 로노를 주축으로 외부 사업장에서 개별적인 일을 하고 있다.

그들은 필요할 때만 쓰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런 자리에 부르기가 어렵다. 그래도 사원들이 다 함께 회식을 했는데 그들만 빼놓는 것은 자이칸의 체면에 좋지 않으리라.

“오늘 일은 다 끝나셨어요. 로노 씨랑 다른 분들도 소외감 느끼지 않게끔 잘 챙겨주셨으면 좋겠어요.”

입단속도 중요하니까. 그들이 절대 변치 않을 충성심을 가지게 해야 한다.

“아···. 예. 늘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방탄 승용차 앞에 경호 휴머노이드 두 기가 대기하고 있었다. 로페즈는 운전석에 올라서 집으로 돌아가는 밤거리를 눈에 담았다.

“트랜센던서.”

- 네. 관리자님.

“연구팀을 만들 거야. 신기술 개발을 위해서.”

- 차후 연구팀이 시뮬레이션으로 활용할 보조 인공지능을 개발하시겠습니까?

“말 안 해도 척척 알아듣네. 바로 그거야. 우리가 저번에 인공지능 모듈을 자동화 시뮬레이션으로 금방 개발했던 것처럼, 연구를 도와줄 인공지능을 만들어줘.”

- 초기 버전을 작성하여 개발팀에 완성을 맡기는 것으로 하시겠습니까?

“그래야지. 갑자기 완성판을 들고 가면 말이 안 되니까.”

- 명령하신 작업을 수행하겠습니다.

***

창밖을 보면 으리으리한 규모의 건축물이 우주 공간에 떠 있다. 가로 폭이 20㎞, 세로 폭이 40㎞인 이 건축물은 올림푸스 UN에서 일직선 위의 고궤도에 위치한 콜로니다. 모양만 보면 새하얀 금속 벌집이 우주에 띄워진 것 같다. 그리고 콜로니 주변을 돌아다니는 함선과 우주선들은 마치 자기 집을 들락날락하는 벌들 같다.

우주선 택시를 이용한 로페즈는 콜로니에 발을 디뎠다. 구조물이 우주 공간에 떠 있음에도 멀쩡하게 거닐 수 있는 중력이 항시 유지되고 있다.

건물의 높이가 올림푸스에 비해 상당히 낮다. 올림푸스 도심의 건물들은 기본 100층이 넘어가는데, 이곳 콜로니의 새하얀 건물들은 평균 30층 정도 되는가 싶다.

천장 전체가 화면이다. 낮 시간대에는 푸른 화면을, 밤 시간대에는 별들이 가득한 우주 공간을 보여주는 화면이다.

주변에는 나무, 풀, 꽃, 돌, 강이 있다. 굉장히 자연친화적인 도시에 건물들은 모두 하얗게 밝은색이다.

“반갑습니다. 로페즈 대표님.”

거리를 지나고 있는데 처음 보는 사람이 인사를 해왔다.

“하이콜로니에 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저는 하이게이트 애틀라탄 회장님의 비서실장, 안티오입니다.”

“아, 반갑습니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애틀라탄 회장님께선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는 별관에서 로페즈 님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쪽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골든체인의 구성원. 하이게이트의 애틀라탄 회장···.’

로페즈는 현재 화성의 진정한 권력자들, 대기업 모임의 빈틈을 찾으러 왔다. 곧 새로운 적대 관계와 우호 관계를 알아낼 수 있으리라.

금성에서의 만남이 평화적인 접촉이었다면, 이번에는 본격적으로 그의 속을 파내는 심리전이 될 것이다.

다시금 언변으로써 정보를 캐낼 시간이다.

< 8. 골든체인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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