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 새로운 삶 (1) >
***
로페즈는 대표실에서 모든 것을 보고 있었다.
- 클레릭이 사망했습니다.
도로의 카메라로 보인다. 클레릭의 차량이 고가도로를 지나는 중에 폭발했다. 불길에 휩싸인 차량을 중심으로 소방대가 몰려들고 있다.
그리고 클레릭을 죽인 작업자는 하얀 마스크를 쓰고 유유히 현장을 빠져나갔다.
행성대통령은 아레스 공간에서 말했다. 12월 2일, 1번 연구지역 허블대학교 졸업축제에서 클레릭을 제거하겠다고.
“···.”
하지만 그 말과 달리 클레릭은 도로 위에서 살해당했다. 아마도 행성대통령이 아레스에서 도청당할 것을 예상하고 심리전을 건 것이다.
- 관리자님?
“괜찮아.”
그러나 로페즈는 놀라울 정도로 무덤덤했다.
***
비슷한 시각, 연설을 마친 행성대통령은 리무진으로 돌아왔다.
널찍한 좌석 한쪽에는 홀로그램으로 앉아있는 국무총리가 있었다.
“죽었나?”
“사망 확인됐습니다.”
“인터넷에서 쓸데없는 소리 지껄이는 것들, 전부 통제하세요.”
“아레스를 쓸까요?”
“당분간 그건 못 쓰고. 통신검열원 센터장들한테 표적 지시하세요. 정치적인 편향을 조금이라도 드러내는 글은 모조리 검열하라고. 선거운동 기간이니까 명분도 되잖아.”
“예. 그렇게 지시하겠습니다.”
행성대통령은 국무총리의 홀로그램을 꺼버렸다.
‘내가 다 계산하고 있었지. 네가 지금까지 만난 상대와는 다를 거다. 로페즈···.’
압도적인 전력 격차가 있다. 그러니 늘 로페즈보다 한 걸음만 앞서면 승리는 확정적이다.
‘클레릭이 갔으니 일단 당선은 됐고···. 아레스도 처음부터 다시 만들고···. 트랜센던서는 당선된 후에 로페즈를 죽여서 회수하면 되겠군.’
그때 리무진에 내장된 알림 서비스가 동작했다.
- 필리스버그 님. 긴급 속보가 있습니다.
“빠르기도 하지. 방송국 새끼들.”
유력한 후보자가 대낮의 도로 위에서 죽었으니 금방 떠들썩해질 만도 하다.
“뉴스 틀어.”
그리고 행성대통령의 앞에 뉴스 화면이 재생되었다. 아나운서의 말하는 속도가 상당히 빠르다.
- 긴급 속보입니다. 8분전, 1번 연구지역과 3번 사무지역을 잇는 고가도로에서 기호 2번. 하메네스 클레릭 후보의 사망이 확인되었습니다. 현재 원인불명의 차량 폭발사고로 추정되고 있으며, 자세한 사고 경위는 아직···
그 순간, 방송국의 뉴스 화면이 멋대로 전환되었다.
- 안녕하십니까. 감찰부 부장검사 신현조입니다. 우선 시작하기에 앞서 모든 채널을 무단으로 점거한 점, 국민 여러분께 너그러운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뭣···?”
- 제가 지금부터 말씀드릴 내용은 절차와 규정을 무시하고 그저 감찰부 부장검사의 권한으로 수집한 자료일 뿐입니다. 따라서 판단은 국민 여러분께 맡기려고 합니다.
행성대통령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구, 국무총리···! 당장 나와!!”
다시금 그의 앞자리에 국무총리가 홀로그램으로 소환됐다.
“각하···! 통신검열원 최고센터장이 지시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게 뭔 소리야?!”
“저, 저번에 실적이 좋았던···. 최고센터장으로 임명받은 네트로어 미셸입니다. 그 여자가 인터넷 검열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말도 안 돼···. 이게 다 무슨 일이야···?”
- 반갑습니다. 통신검열원의 최고센터장, 네트로어 미셸입니다. 저희 통신검열원은 본래 사회적, 도덕적, 법적으로 위배되는 인터넷 컨텐츠와 작성물을 검열하는 국가기관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제 휴대전화로 보여드리는 문자와 같이, 통신검열원의 그러한 목적은 변질된 지 오래입니다.
「현 시간부로 정치적인 편향을 드러내는 글은 모조리 검열하세요.」
- 이 문자는 2분 전에 통신검열원의 모든 센터장들에게 도착한 지시입니다. 이 타이밍이 우연이었을까요? 방금 기호 1번의 유력한 경쟁 후보였던 기호 2번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했는데 말이죠.
이어서 채널은 충격적인 화면으로 전환되었다.
- 죽었나?
- 사망 확인됐습니다.
- 인터넷에서 쓸데없는 소리 지껄이는 것들, 전부 통제하세요.
다시 현조가 등장했다.
- 충격적이게도 저 두 사람이 이 나라의 행성대통령과 국무총리입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사건은 10월 말, 화이트홀 고발 시점으로 돌아갑니다.
이번엔 통화 녹취록이었다.
- 페이치! 이 좆같은 새끼야!!!
- 각하···. 한 번만 도와주십시오···. 간청드립니다···.
- 이 판국에 뭘 어떻게 도와? 이미 너나 나나 끝장이야. 나는 이전처럼 강력한 정치를 펼칠 수 없게 되었고, 너는 경영을 할 수 없게 되었어.
- 각하···. 그래도 인멸하라고 명령하신 것은 각하께서···.
- 내가···? 난 그런 기억이 없는데?
- ···예? 아니, 저와 함께 화성 시민들을 철저하게 지배하시겠다는···. 영원히 정상에 군림하기 위해서···. 그렇게 주문하시지 않으셨습니까···.
- 아니야. 전부, 전부 네가 한 거야. 전부 네놈의 욕망이야. 난 아무 상관이 없어. 나는 페이치 네놈과도, 통합공화당과도 아무런 관계성이 없다고.
“아···. 안 돼···! 당장 저 방송국 채널 정지시켜! 당장!”
“저, 그게···. 방송국들은 지금 채널을 쓰고 있는 상태가 아니라고 합니다···.”
현조는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 여러분은 기억하십니까? 세상에 드러난 첫 번째 피해자. 로페즈 씨를요.
이어서 당시의 로페즈다.
- 저는 절대 자살하지 않습니다.
- 만약 제가 자살하거나, 실종되거나, 사고사를 당한다면. 하다못해 대낮의 거리에서 미친 사람에게 이유 없는 살인을 당한다면.
- 그것은 화성에 뿌리내린 ‘거대한 타의’에 의한 ‘입막음’입니다.
그가 심어놓은 복선.
그 복선은 강력한 설득력을 내포한다.
“저 빌어 처먹을 새끼들···!”
- 화이트홀 페이치 회장과 행성대통령 사이에 유착관계가 있던 것입니다. 보충자료는 화이트홀의 현 회장인 일리노이 리탄 씨가 제공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용감하게 화이트홀을 고발하셨던 고 클레릭 의원님께서 제공해주신 자료 또한 준비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이미 죽어버린 클레릭까지 매스컴에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행성대통령은 거의 패닉상태가 되었다. 그 자리에 얼어붙어서 입 밖으로 욕도 꺼내지 못하게 되었다. 무언가를 지시할 수도, 대책을 마련할 수도 없다. 이미 여기까지 만천하에 드러난 이상, 방법이 없다. 걷잡을 수 없이 늦어버렸다.
- 현 옵시디아몬 대표, 로페즈 씨는 지금까지 무수한 위협을 받아왔다고 주장하셨습니다. 이 사건은 여러분 모두가 알고 계실 겁니다. 전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던 대학로 번화가 폭탄테러 사건입니다. 사건 피해자 중에는 ‘당연히’ 로페즈 씨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로페즈 씨가 사고에 휘말렸을 때 현장 구조대에 떨어진 상황 정의는 ‘폭탄테러’였습니다. 이는 정부 시스템이 폭발 직후에 즉시 결정한 사항이라고 합니다.
- 그리고 이 의도적인 테러에서 살아남은 로페즈 씨는 입원 중에 또다시 살인청부의 위협에 노출되었습니다. 살인청부를 받은 범인은 화이트맨스터 출신의 프레드릭 실장이었습니다. 그가 자백한 내용의 핵심 부분만 들려드리겠습니다.
- 그래도 복수할 기회가 생겼었잖아. 그 기회를 누가 줬었지? 기억이 안 나네.
- 의원님···. 난 최선을 다했어요···.
- 무슨 의원? 너한테 작업을 의뢰한 사람의 이름이 뭐지?
- 플로리다 진···. 샤리트···. 의원님···. 로페즈만 죽이면···
- 각하가 좋은 자리를 하나 내어줄 거라고······.
- 그 역시 ‘누군가의’ 음모에 의해 살해당한 의원입니다. 저희는 고 샤리트 의원의 죽음을 ‘꼬리 자르기’로 판단하여 비밀수사를 계속했습니다.
- 이후 또 몇 가지가 발견되었습니다. 폭탄테러 사건의 유가족들과 반대 시위로 대치했던 자들이 누군가에게 뇌물을 받은 정황이 확인된 것입니다. 이들의 자금 경로를 추적한 결과, 화성공공은행과 세무부의 소행임이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드러난 두 기관은 모두 정부에 소속된 국가기관입니다.
- 마지막으로, 저희가 고용한 화이트해커팀은 정부의 고위관료들이 ‘아레스’라 불리는 시스템을 이용하여 화성의 모든 데이터를 통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여기서 말씀드린 고위관료란 행성대통령과 국무총리, 상임위원회 위원장과 부위원장, 대법원장입니다. 저희는 그 외에도 연계된 부패 윗선들이 더 있으리라 추정하고 있습니다.
“각하······. 방금···.”
“···.”
“···상임위원회 자동결정 시스템에서 탄핵안 결정에 대한 사이버 소집이···. 그리고···. 선임 대법관이 대법원장 대신 각하를 불구속···”
“닥쳐···. 다 닥치라고···.”
***
화성 국민들은 몰랐다. 자신들의 일상과 도시 전반의 시스템을 관리하고 지켜주는 온갖 인공지능 시스템이 사실 부패 권력층에 의해 전부 통제되고 있었으리라곤.
2598년 12월 2일 이후, 아레스가 관리하던 여러 시스템은 아레스의 통제를 벗어나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 시작했다.
선대의 행성대통령들이 구축해둔 시스템들은 본래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상임위원회가 만장일치로 찬성한 탄핵안은 국가비상 의사결정 시스템에 의해 즉시 통과되었다. 동시에 사법부의 시스템 역시 대법원장의 권한을 일시적으로 박탈했으며, 모든 의사결정권을 선임 대법관에게 양도했다.
시스템으로 나라를 지배하려던 자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시스템에 의해 철저한 심판을 받았다. 복잡한 탄핵과 구속 절차는 완벽한 시스템에 의해 인간의 의사결정보다 월등히 빠른 조치를 내렸다.
충격의 도가니에 휩싸였던 화성에도 결국 새로운 해는 떠올랐다.
2599년 1월 1일. 백색정치당의 기호 5번 알 카즈네 베르도가 화성의 41대 행성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그는 공약을 실천하기에 앞서, 너무 일찍 받은 행성대통령 직무에 적응하는 기간을 가지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2599년 1월 20일. 고위관료, 정치인, 어딘가의 임원, 누군가의 청부업자들이 대거 구속되었다.
로페즈는 치밀하게 준비하여 단번에 끝내버린 것이다. 행성대통령을 상대로 오래 끌면 질 것이 뻔했기 때문에.
그리고 작위적인 부패의 결과는 필연적이었다.
2599년 1월 23일. 에두스 비숍 필리스버그 전 행성대통령이 파면, 구속되었다.
***
필리스버그는 특수범 이송차량 앞에 섰다. 그의 두 손에는 강력한 전자석으로 고정된 수갑이 채워져 있다.
경찰, 검사, 경호원, 기자, 시민, 유가족 등 투명한 통제선 밖으로 모여든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대다수는 비난을, 기자들은 질문을, 소수의 추종자들은 옹호의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그들이 뭐라고 목소리를 높이거나 필리스버그의 귀에는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앞에 세워진 특수범 이송차량이 실감이 안 났다. 장갑차를 길게 늘인 듯한 바퀴 없는 이송차량이 곧 들어올 범죄자를 향해 주둥이를 한껏 벌리고 있는 것 같다.
“들어가세요.”
그는 등을 떠밀려서 이송차량 안으로 들어왔다. 미사일이 떨어져도 버티는 특수 합금의 각진 공간이다. 양옆으로 돌출된 합금이 의자 대용이라고 한다.
키이잉···
뒤에서 문이 닫혔다.
절대 빠져나갈 수 없는 밀실이 외부의 소음을 완벽하게 차단했다.
세상에 홀로 남겨진 기분이다.
그는 터덜터덜 걸어서 의자 같지도 않은 돌출부에 엉덩이를 앉혔다. 그리고 고개를 푹 숙여 지난날들을 회상했다.
회상하면서, 후회했다.
죄책감에 후회하는 것이 아니다.
지난날에 주어진 갖가지 선택지를 잘못 고른 것에 대한 후회다.
그때 안일하게 행동하지 않았다면, 조금만 다르게 결정했다면, 조금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이렇게 처참히 패배하지 않았으리라.
키이잉···.
이제 막 출발했는데 문이 열리는 소리.
그는 알 수 없는 기대감을 느끼며 고개를 들어보았다. 문이 열린 방향은 그가 들어왔던 방향이 아니었다.
“···?”
운전석 쪽에서 차단문을 열고 나온 사람의 정체는 일말의 희망조차 완전히 깨부숴버렸다.
필리스버그의 얼굴이 심히 일그러졌다.
“때늦은 새해 선물을 받은 기분이 어때?”
“···로페즈, 이 개새끼야!!!!!!”
그는 수갑을 찬 그대로 로페즈에게 뛰어들었다. 이에 로페즈는 어린아이를 상대하는 듯한 태도로 임했다.
쿵!
살짝 옆으로 물러나 다리를 걸어버린 것이다. 필리스버그는 애꿎은 차단문에 머리를 박고 바닥을 기었다.
“으으으···! 씨발놈아! 죽여버리겠어! 죽여버릴 거야!!!”
필리스버그는 로페즈의 목을 물어뜯을 기세로 달려들었다.
콰악!
로페즈는 한 손으로 그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꾸구구구국···!
그 손아귀 힘이 인간의 영역을 넘어섰다.
“끄아아아아아!!! 아아아악!!!!”
“자리에 가서 앉아.”
“닥쳐!!! 넌 내가 죽인다!! 네가 내 모든 것을 망쳤어!! 죽어어어어!!!!”
콰당탕!
로페즈는 그를 구석으로 집어던졌다.
통증으로 이성을 되찾았는지, 필리스버그는 성난 짐승처럼 숨을 몰아쉬며 두 눈을 부라렸다.
“아레스에 접속한 시점에서, 이미 네 측근 세력들의 모든 전자기기를 확보했어.”
“그래서 어쩌라고!!”
“전부 트랜센던서가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지.”
로페즈는 성큼성큼 걸어가 그의 앞머리를 거칠게 움켜쥐었다.
“으윽···!”
“씨발새끼야. 한 번 물어보자.”
“···.”
“넌 날 왜 그렇게 괴롭힌 거냐?”
필리스버그는 눈꺼풀을 부르르 떨며 식은땀을 흘려댔다.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나 더러울 수가 있냐고. 이 쓰레기 새끼야.”
“···.”
“그렇게 다 죽여서라도 트랜센던서를 손에 넣고 싶었어? 아무도 모르게? 아레스가 있었는데도 만족이 안 돼서?”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야······.”
그의 웅얼거림에 로페즈는 답해주었다.
“처음부터 한참 잘못됐지.”
필리스버그에겐 딱 한 가지 의문이 있었다. 이대로 재판이 끝난 후 감옥에 들어가면 영원히 알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네놈이 아레스에 백도어를 심었다는 건 예상하고 있었다···.”
“나도 네가 그걸 예상할 거라고 예상했어.”
“그래서 거짓 정보를 흘렸는데···. 클레릭을 졸업축제에서 죽이겠다고···. 그리고 널 속여서 한 박자 늦게 죽였는데···. 왜 그 인간을 구해주지 않은 거냐? 나중에 네놈의 개가 될 차기 행성대통령 아니었나···? 너무 쉽게 죽었잖아.”
“아, 그게 네 설계였어?”
로페즈는,
사악한 미소를 머금었다.
“난 분명 그 인간한테 경고했어. 주변의 모든 것을 경계하고, 실시간으로 보고하라고. ···그런 간단한 명령도 안 듣는 사람이 행성대통령이 되면 내가 통제할 수 있겠어?”
“이거···. 나보다 더한 새끼잖아···.”
“착각하지 마. 클레릭이 그대로 죽게 내버려 둔 건, 내가 너보다 낫다는 증거야.”
어쨌든 클레릭이 죽은 탓에 지금 행성대통령은 부패에서 거리가 먼 사람이다. 로페즈가 마음만 먹었다면 클레릭은 얼마든지 보호할 수 있었다.
차량 블랙박스, 로보버그, 휴머노이드로 보고 있었다. 작업자가 클레릭의 차량에 오르는 것도 보았다.
그런데도 현장의 자이칸에게 지시했다.
- 이제 빠지세요. 상황 종료입니다.
- 예? 계속 보호해드려야 하는 거 아닙니까?
- 괜찮습니다. 이것도 다 계획의 일부니까요. 일단은 제 지시에 따라주세요.
자이칸은 고개를 갸웃하며 현장을 벗어났다. 그리고 그렇게 고개를 갸웃하는 자이칸의 모습을 클레릭이 마지막으로 보았다.
모든 것이 설계된 것이다. 모두 설계의 재료로써 이용된 것이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거쳐온 모든 시간의 흐름과 사건들이.
“멋대로 떠들긴···.”
“충동적인 마음이 생겨. 내가 이 자리에서 널 직접 사형해버리고 싶다고.”
“그럼 죽여. 어차피 네 손에도 피는 묻었다. 혼자서 정의로운 척하지 말라고, 이 위선적인 새···”
“정의는 지랄.”
“···뭐?”
“당장 널 죽이는 정도론 내 복수심을 해소할 수가 없어서야. 단지 그뿐이지.”
로페즈는 다시 운전석 쪽으로 걸어갔다. 차단문을 열기 직전, 그는 필리스버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필리스버그. 140세 시대에 무기징역이나 한 번 받아봐라.”
“···.”
“네가 살아온 인생보다 더 긴 삶을 감옥 속에서 보내게 되겠지. 그러면서 사람들에게 끝도 없이 욕먹을 거야. 네가 살아있는 내내, 네가 죽어서도 계속, 사람들은 널 영원히 욕할 거야. 영원히.”
“···그딴 건 상관없다. 병신 같은 원숭이 새끼들, 멋대로 욕하라고 하지.”
키이잉···.
로페즈는 차단문 너머로 사라지며 말했다.
“아무렴.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쓰레기가 된 걸 축하한다.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고 오래오래 살아라.”
< 7. 새로운 삶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