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대 인공지능 키우기-33화 (33/183)

< 6. 시민의,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2) >

***

허블대학교(University of Hubble).

지구를 떠난 인류가 화성에 가까스로 정착하여 처음으로 설립한 국립대학이다. 이 대학교가 설립된 장소는 머지않아 1번 연구지역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허블대학교에서 배출한 인재들의 업적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래도 그중 가장 큰 업적을 손에 꼽자면 역시 화성의 테라포밍이다.

과거의 인재들은 화성의 기권, 수권, 지권, 생물권을 인간이 맨몸으로 생존하기에 적합한 환경이 되도록 바꾸었다. 특히나 지구의 800분의 1밖에 되지 않는 화성의 자기장 문제를 해결한 업적은 지금도 모든 행성의 교과서에 등재되어 있다.

로페즈를 안내한 교수는 교수실에서 들어와서도 계속 그 이야기를 했다.

“당시 거의 고체 상태였던 핵에 지능형 입자타격탄을 퍼붓겠다는 발상은 위험하면서도 도전적이었죠. 그때는 대기를 붙잡을 중력도 약해서 도시 전체가 콜로니였고요. 외우주에서 철을 가져와 핵에 넣은 것 또한 대단한 업적입니다.”

로페즈는 능숙하게 호응한다.

“저도 교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생각합니다. 그 도전적인 시도로 핵에 방사성 붕괴를 일으키지 못했다면 지금쯤 화성 사람들은 뚜껑 있는 도시에서 살고 있었겠네요.”

“지금이야 어느 행성이든 핵까지 쉽게 파고 내려갈 수 있지만, 그때의 과학 수준으론 지각을 뚫는 게 참 고역이었어요. 때마침 올림푸스 화산이 뚫어놓은 마그마길이 있어서 참 다행이었죠.”

그래서 화성의 대도시가 올림푸스 화산을 중심으로 타르시스 고지에 형성된 것이다.

로페즈는 교수의 이런저런 이야기에 어울려주었다. 그렇게 쌓은 신뢰는 곧 로페즈가 개인적인 이야기를 꺼낼 수 있게 해주었다.

“네. 교수님. 저는 인공지능학과에서 나왔어요.”

“벌써 몇 년 전인지 기억도 안 나네요. 그쪽 과에서 로페즈라는 학생이 만점으로 조기졸업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정말 놀랐습니다. 가뜩이나 커트라인이 높은 학과인데···. 저는 또 인재가 탄생했거니, 했는데 정말로 인재가 되어서 모교에 돌아오셨군요.”

앞서 교수의 신뢰를 얻기 위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사실 로페즈로선 교수의 신뢰를 이미 받고 있던 것이다.

“아직 제가 그렇게 대단한 인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하하! 아직이요?”

“언젠가는 대단해지겠죠. 저한테도 목표가 있으니까요.”

교수는 밝게 웃으며 제안했다.

“그럼 우리 로페즈 씨가 그 목표라는 것을 재학생들에게 알려주시는 건 어떠세요? 이렇게 방문하신 김에 간단한 강연을 좀 부탁드리고 싶은데···. 하하하.”

로페즈는 교수를 따라 웃으며 흔쾌히 승낙했다.

“간단한 강연이라면 10분 정도로 괜찮을까요?”

“어휴, 10분이면 충분하죠. 어차피 길게 해봤자 학생들은 듣지도 않아요. 짧게 해야 팍! 집중하고 듣지.”

교수의 간단한 부탁을 들어줬다. 이번엔 이쪽의 간단한 부탁을 할 차례다.

“괜찮네요. 아 참, 혹시 그럼 그 강연 끝나고 교수님 학과 연구실 좀 구경해도 괜찮을까요?”

로페즈의 앞에 앉은 사람은 나노공학과의 교수였다.

“네! 얼마든지 둘러보세요. 혹시 연구실에서 보고 싶은 실험 기구라도 있으신지요?”

“보고 싶다고 말씀드려야 할지···. 개인적으로 나노학과 연구실에서 뭐 좀 만들어가고 싶은 게 갑자기 생각나서요.”

“아하. 어려운 일도 아니죠. 인공지능학과 나오셨으면서 나노학과 실험 기구도 다룰 줄 아세요?”

“네. 하하.”

“이거 봐. 진짜 인재라니까. 잠깐만요.”

교수는 그러면서 허리를 굽히더니 서랍에서 전자카드를 꺼내 로페즈에게 내밀었다.

「학과 방문객 출입증」

“연구실에 이거 찍고 들어가시면 돼요. 반납은 학과 사무실에 하시고요. 저는 이따가 수업이 있어서 가봐야겠어요. 이왕이면 오신 김에 연구실을 직접 안내해드리고 싶었는데 이거 아쉬워서 어쩌지···. 조교라도 붙여드릴까요?”

“아, 괜찮습니다. 그렇게까지 실례할 수는 없죠. 어차피 금방 둘러보고 나갈 거예요.”

이제 나노학과 연구실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

강연을 마치고 나오는 로페즈에게 사인을 요청하는 대학생들이 몇 명 있었다.

“제 롤모델이세요! 진짜 멋지세요!”

“감사합니다. 공부 열심히 하세요.”

로페즈가 강연에서 10분간 한 이야기는 대학생들에게 희망과 경고를 동시에 심어주는 내용이었다. 강연 시간이 짧아서 그랬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학생들이 시작부터 끝까지 집중해주었다.

‘내 이미지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10분이었겠지···.’

나노학과 연구실은 강연장의 바로 옆 건물에 있었다.

「나노학과 연구실」

「실습 기자재와 민감한 도구가 있는 곳입니다! 타 학과 학생 및 외부인의 출입은 관련 학과 교수의 허락을 받고 오시길 바랍니다! 제발! -학생회 일동-」

로페즈는 교수에게서 얻은 출입증을 찍고 연구실에 들어왔다. 실제 환경과 굉장히 흡사한 연구실이다. 아직 실습 중인 수업이 없는지 지나다니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

이어서 그는 생명공학 연구실을 찾아 들어갔다.

‘여기인가.’

연구목적으로 제작된 나노프린터. 그것과 무선으로 연결된 단말기에 메모리 칩을 꽂았다. 그러자 트랜센던서가 알렸다.

- 전원 확인. 구성요소 확인. 재료 확인. 성공적으로 설계도를 입력했습니다. 출력하시겠습니까?

로페즈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위이이잉······.

정적 속에 나노프린터의 조용한 울림만이 5분간 이어졌다.

- 관리자님이 설계하신 나노봇 10㏄를 생리식염수에 담아 약 20㏄로 출력했습니다.

이후 집으로 돌아온 로페즈는 곧장 작업실에 들어갔다.

빈 방을 트랜센던서의 컴퓨터 장비, 프린터, 프린터 재료 및 분해한 잡동사니로 채운 공간이다.

로페즈가 의자에 앉자 휴머노이드가 작업실로 따라 들어와 주사기를 내밀었다. 곧 로페즈는 주삿바늘을 손목 혈관에 찔러 넣었다.

또 죽을 뻔했던 사건은 로페즈에게 신체 개조의 필요성을 느끼게 해주었다.

- 나노봇과 연결되었습니다.

- 이제부터 관리자님의 체내 모니터링, 감염 및 내상의 자가회복, 신경물질의 선택적 분비가 가능합니다.

***

짜악!

자이칸은 구속된 프레드릭의 뺨을 때렸다.

“너도 자백제 맞아보니까 기분이 어때?”

“아······. 으으···. 아, 아파여······.”

“너 이름이 뭐야?”

“나는 프레···. 프레드릭······.”

자백제를 맞은 프레드릭은 취한 사람처럼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정신을 못 차렸다.

“맞아. 넌 프레드릭이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넌 화이트맨스터에서 해고당했지.”

“으으으···.”

“다 로페즈 때문이라고 생각했어. 그렇지? 걔 진짜 나쁜 놈이잖아. 사실 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병신이 아닌데, 걔가 널 병신으로 만들었어. 그렇지?”

“그 새끼 때문이야······. 나, 난 아무 잘못 없어···.”

“그래도 복수할 기회가 생겼었잖아. 그 기회를 누가 줬었지? 기억이 안 나네.”

자이칸의 몇 걸음 뒤에는 형사가 있다. 그리고 자이칸이 심문하는 모습을 유리창 너머의 리탄과 클레릭이 지켜보고 있었다.

“아······. 의원님···. 난 최선을 다했어요···.”

“무슨 의원? 너한테 작업을 의뢰한 사람의 이름이 뭐지?”

지켜보고 있던 형사는 심각한 표정으로 한탄했다.

“뭔가 엄청난 일이 벌어진 것 같네···.”

프레드릭은 반쯤 감긴 눈으로 대답했다.

“플로리다 진···. 샤리트···. 의원님···. 로페즈만 죽이면, 각하가 좋은 자리를 하나 내어줄 거라고······. 그 자리에 오르면···. 화이트홀에 복수도 할 수 있고···.”

취조실 밖의 두 명은 충격의 도가니에 빠졌다.

“와! 진짜 행성대통령까지 연결된 거였어?! 설마설마했는데···!”

“이, 이건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이네. 너무 위험한 짓이야 이건···.”

그러자 리탄은 클레릭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렇다고 여기서 발 빼면 안 되죠.”

“이건 아니야. 이 나라의 통치권자에게 대항한다고? 절대 불가능해. 도리어 로페즈 님이 짓밟힐 거야···.”

하지만 리탄은 오히려 이런 상황을 반기는 눈치다.

“의원님. 정신 차리세요. 우리가 먼저 짓밟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할 거라고요.”

“그래도···.”

“흐흐흐. 로페즈 그 새끼, 몇 번 뒈질뻔하더니 이를 제대로 갈았네. 아주 딴사람이 되어버렸어.”

“···내가 사람을 다 망쳐놨군.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정말 최고라고요! 안 그래도 통합공화당에 갖다 바친 돈이 얼마인데! 행성대통령이 저 지랄을 했다고 하면 화이트홀 이미지가 크게 회복되겠어! 우린 가해자에서 피해자가 됐으니까! 안 그래요? 아하하하!”

몇 시간 뒤, 심문을 마친 자이칸과 형사가 취조실 밖으로 나왔다.

“이미 흉기로 사람 한 명을 찌른 놈입니다. 어떻게든 자르려던 꼬리를 그대로 다시 붙여놨으니까, 나중에 로페즈 대표님이 전화하셨을 때 즉시 받으시면 되겠습니다. 두 분 모두요.”

리탄은 어깨를 들썩이며 애써 웃음을 감췄고, 클레릭은 근심 가득한 얼굴로 고개만 끄덕였다.

***

로이 마이크 케블라 치안정감은 산업지역경찰청장이다. 그는 집무실에서 도시안전국장과 함께 용무를 보고 있었다.

“조사에 의하면 114번 산업지역의 폭력조직과 115번 산업지역의 무기 암거래상들이 일종의 유대를 형성한 것으로 보입니다. 밀수품 운송수단은 주로 가정용 드론이나···”

“잠깐, 전화 좀.”

케블라는 휴대전화 화면을 슬쩍 보더니 말했다.

“나가서 커피라도 좀 마시고 오게. 통화가 길어질 것 같군.”

“예. 20분 뒤에 오면 되겠습니까?”

“그쯤이면 되겠지.”

“실례하겠습니다.”

도시안전국장이 나간 뒤, 케블라는 책상 아래의 버튼을 눌렀다.

키이잉···.

50층에서 밝은 햇빛을 투과하던 유리창들이 일제히 내려오는 커튼에 가려졌다.

케블라는 전화를 받았다.

“아이고, 의원님. 고생이 많으십니다.”

- 그래. 혹시 자네가 바쁜 와중에 전화한 건 아닌지 모르겠네. 통화가 좀 길어져도 괜찮겠나?

“괜찮습니다. 때마침 20분 정도 시간이 났습니다. 주변에 듣는 사람은 없고요.”

- 요즘 일이 자꾸만 터져서 자네가 참 고생이 많겠어.

“아닙니다. 하하. 별말씀을···. 가끔 이렇게 바쁠 때도 있어야 일할 맛이 나죠. 그리고 요즘엔 의원님께서 저보다 훨씬 바쁘시지 않겠습니까.”

케블라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 우리 자유지구당이 통합공화당 놈들 공석을 채우느라 다들 바쁘긴 하지. 음···. 요즘 돌아가는 일들을 보면 자네는 같은 편을 참 잘 골랐어.

“같은 편이라고 말씀해주시니 마음이 든든하네요. 의원님은 앞으로 당 대표나 대선까지 쭉쭉 나가셔야죠?”

- 허허허···. 일이 잘 풀려야 그렇게 되겠지.

“멋지십니다. 앞으로도 계속 잘 될 겁니다. 제가 정말 의원님 한 분만 굳게 믿고 있습니다.”

- ···그래서 말인데, 자네가 아는 가장 높은 검사들 중에 믿을만한 녀석 있나?

클레릭은 담배 한 모금을 길게 내뱉고는 진중하게 물었다.

“제 후배 중에 검사는 많죠. 그런데 믿을만한 녀석이라고 하심은···. 어떤 부분을 말씀하시는 건지요?”

- 이런 세상에 이런 판국이어도···. 아주, 아주 정의로운 녀석이 하나쯤은 있지 않겠나? 바보처럼 성실하고 올바른 녀석 말이야. 뼛속까지 정의로운 인물이 필요해.

“그런 녀석들 중에 높은 사람은 없습니다.”

- 괜찮아. 그런 녀석 능력이 닿지 않는 범위의 준비는 내 쪽에서 다 해줄 테니깐. 말 잘하고, 인상 좋고, 정의로운 녀석이면 돼.

“예. 제 선에서는 딱 한 명 있습니다.”

- 그 친구 이름이랑 개인연락처 좀 알려주겠나?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유도리가 없습니다. 정치인과는 개인적인 연락을 완전히 차단하고 사는 놈이라서요. 이유라도 알려주시면 제가 먼저 연락을 해두겠습니다.”

그렇게 묻자, 클레릭의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케블라는 통화가 끊긴 건가 싶어 휴대전화 화면을 확인하고는 다시 말했다.

“의원님? 이유라도 알려주시면 제가 먼저···”

- 그래. 잠깐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어.

“예. 하하.”

다음 순간, 클레릭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인생을 건 도박만큼 두려우면서도 간절히 기대하게 되는 말이었다.

- ···행성대통령을 심판할 거야.

“·········예?”

- 그놈의 임기가 만료되기 직전에 탄핵시켜버릴 거라고.

전쟁 다음으로 나라가 크게 뒤집히는 일이다. 그런 일이 아무도 모르게 준비되고 있던 것이다.

같은 시각, 트랜센던서는 로페즈의 귓속에 알렸다.

- 관리자님.

“왜?”

- 플로리다 진 샤리트 전 의원을 납치했습니다. 이후 정보 습득은 성공적이었습니다. 이제 어떻게 처분하시겠습니까?

이에 로페즈는 단 한순간의 고민도 없이 무미건조하게 명령했다.

“죽여.”

< 6. 시민의,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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