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대 인공지능 키우기-32화 (32/183)

< 6. 시민의,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1) >

***

로페즈는 눈을 떴다.

“···!”

그는 악몽에서 방금 깨어난 사람처럼 화들짝 놀라며 허리를 세웠다.

보이는 것은 불 꺼진 어둠 속의 VIP 병실이다. 몸의 감각을 되찾아보니 아픈 곳은 없다. 손목에 침이 꽂혀있거나 하지도 않다. 완전히 회복된 채 의식이 돌아온 것이다.

“···트랜센던서?”

- 11월 13일 오전 4시 16분. 관리자님은 이틀 만에 깨어나셨습니다.

“나 이번에도 죽을 뻔한 거야?”

- 안면 함몰, 경독맥 출혈, 심혈관 파열, 부분 내출혈, 골절, 타박상, 3도 화상, 파상풍 감염, 부분 심정지, 과다출혈성 돌발적 쇼크 및 반혼수상태 등의 문제가 있었으나 무사히 회복되었습니다.

“···미친.”

- 폭탄테러가 있었습니다. 현장조사 결과에 의하면 범인은 차량에 탑승하여 기폭과 함께 자살한 것으로 보도되었습니다.

“범인이 누구인지는 특정됐고?”

- 범인의 신원과 목적에 대한 정보는 보도되지 않았습니다. 이를 근거로 추측하자면···

“누가 날 작업하려고 했네.”

- 그렇습니다. 그리고 관리자님이 반혼수상태에 빠져계셨을 때 프레드릭에 의한 살인 시도가 있었습니다.

로페즈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 프녹스와 자이칸이 프레드릭을 제압하여 경찰에 넘겼습니다.

“두 사람이 내 병문안이라도 왔던 거야?”

- 저는 관리자님의 안전 확보를 위해 자율적으로 행동했습니다. 프녹스의 차량 네트워크에 침입하여 그가 관리자님의 보호자가 되도록 조치했습니다. 또한 프녹스의 입을 빌려 자이칸을 동행시켰습니다.

트랜센던서는 명령 없이도 로페즈를 지키려 했다.

하지만 로페즈의 마음속에는 감동보다 무언가 억울함이 차올랐다. 자신이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가, 왜 이렇게 고통받아야 하는가, 왜 이렇게 몇 번이고 목숨을 잃을뻔해야 하는가. 왜 계속 누군가가 자신을 해치려 하는 건지 알면서도 알 수가 없어 억울하다.

죽음의 공포와 고통은 로페즈의 뇌리에 깊게 박힌 쐐기가 되었다. 눈앞에서 차량이 폭발했을 때 엄습해왔던 감각이 아직도 뚜렷하다. 트라우마라도 생길 정도로 강렬한 기억이었다.

죽었다고 생각했다. 몸이 기억한다.

실제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었다

“···.”

로페즈는 이불을 움켜쥐며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려는 울분을 억지로 삼켰다.

- 관리자님. 전달사항이 하나 더 있습니다.

“뭔데······.”

- 어제 새벽, 신원 정보가 없는 침입자 세 명이 회사에 들어왔습니다. 그들은 옵시디아몬 서버와 제 학습 데이터가 저장된 트랜센던서 서버를 전자적으로 파괴했습니다.

“······지켰어야지.”

- 해당 빌딩의 카메라를 확보하여 미리 포착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서버를 파괴하기 전에 데이터 백업은 성공했습니다.

“나는 지켰으면서 왜 그건 안 지켰어? 그것도 내 재산인데 왜 안 지켰냐고. 이제 명령이 없어도 알아서 판단할 수 있던 거 아니야?”

- 관리자님.

결국 토해내고 말았다.

“그것도 내 재산이야!!! 그것도 나의 일부라고!!! 내가 손에 피 묻혀가면서,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손에 넣은 재산이라고!!!! 그 씨발놈들이 들어와서 분탕 치는데 왜 당하기만 했어!!!? 백업만 하면 끝이야? 다 죽여버렸어야지!!! 그냥 다 죽여버리라고!!!”

- 관리자님이 그렇게 반응하시는 것을 이해합니다. 천천히 냉정함을 되찾으시길 바랍니다.

“이해···? 네가 뭘 이해하는데? 넌 그냥 코드로 작성된 프로그램일 뿐이야. 내가 무슨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넌 절대 몰라. 씨발, 아무도 모른다고···. 아무도 내가 이렇게 사는 거 몰라···. 아무도······.”

- 죄송합니다.

트랜센던서의 갑작스러운 사과에 로페즈는 입을 다물었다. 할 말이 없어졌는데 아직도 쌓인 것은 많아서 이불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대로 목이 아프도록 소리를 질렀다.

쏟아내고 쏟아내도 멈추질 않았다. 쏟아내는 도중에도 자신이 꼴사납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끓었던 감정은 곧 가라앉기 마련이다.

“···미안하다. 네가 판단하기에 그게 최선의 대처였다면 그게 맞는 거겠지···. 넌 온갖 상황을 다 계산했을 텐데···.”

- 관리자님의 명령 없이 안전성을 최우선으로 하여 대처했습니다. 당시 상황의 알고리즘에 따르면 최선의 대처였으나, 모험심 없이 최고의 결과가 나오진 않았습니다.

트랜센던서에겐 인간의 직감, 모험심, 상상력과 같은 의사결정 능력이 전무했다. 따라서 로페즈의 명령 없이 최선의 대처를 했지만, 그 대처라는 것이 전부 안전성에 초점을 둔 ‘피해 최소화’였다는 것이다.

이후 로페즈는 퇴원하는 길에 뉴스를 시청했다.

폭탄테러가 화제의 중심이 된 가운데, 로페즈도 피해자였다는 사실이 대중들에게 밝혀졌다. 범인이 누구인지, 사용한 폭탄이 무엇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한 배경 속에서 이번에도 위기를 맞이했다는 로페즈의 소식에 사람들은 의혹을 제기했다.

화이트홀에서 교체당한 권력자들의 복수다, 해체된 통합공화당의 횡포다, 여러 이야기가 있었지만 가장 대두되는 것은 예상외로 행성대통령에 관련된 의혹이었다.

구체적인 내용은 트랜센던서가 알려주었다. 차를 잃어버린 로페즈는 무인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다.

- 폭발 당시, 현장 근처에 치안유지로봇이 거의 없었습니다.

‘번화가였는데.’

- 그리고 폭발 직후, 정부의 치안 시스템이 폭발 원인을 테러로 단정 지었습니다. 이 소식이 구조대에 전파되면서 2차 테러에 대한 위협으로 구조활동이 지연되었습니다.

‘사고일 수도 있었는데 곧장 폭탄테러라고···.’

- 시민들은 정부의 시스템이 내린 결정에 문제가 있다며 항의했지만, 정부에선 시스템에 오류가 없었다는 답변만이 돌아왔습니다.

“시스템 위에 있는 사람이 테러라고 결정했구나.”

- 그렇습니다. 피해자의 유가족들은 현장에서 행성대통령의 해명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습니다.

- 그리고 유가족의 시위에 맞서는 행성대통령 옹호자들까지 출몰하며 무력충돌이 발생했습니다.

트랜센던서가 보여준 영상에는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시위하는 장면이 있었다. 그러다 그 유가족들의 반대편에서 또 다른 시위대가 출몰했다.

그들은 깃발이나 팻말을 들며 외쳤다. 나라를 못 믿는 국민들에게 미래는 없다고.

그리고 그들은 유가족들과 달리, 마이크에 대고 큰소리로 구호를 외치며 거리 전체를 시위하는 분위기로 물들여버렸다.

그리고 그들은 유가족들과 달리, 전원이 얼굴을 마스크로 가리고 있었다.

로페즈는 그들의 떳떳하지 못한 태도를 간파했다.

“다음 대선의 밑 작업이야. 옹호하는 층을 형성하려는···.”

- 그들은 ‘나라를 믿는 국민’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있습니다. 그들이 슬로건을 중심으로 세력을 형성한다면 현 행성대통령이 움직이기에 유리해집니다.

“내가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고 다른 수를 모색하려는 거야. 무조건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을 텐데 살아남았으니까. 내게 의식이 없는 사이를 노려 회사에 급히 작업자를 보냈지만 트랜센던서는 손에 들어오지 않았고. 이제 저쪽이 불리해졌다는 증거지.”

- ‘나라를 믿는 국민’ 세력의 일부 주동자 중, 소득에 적합하지 않은 경제활동을 보인 자가 있습니다.

“갑자기 목돈이 생긴 것처럼 행동하는 것들이 있겠지. 그것들이 직접 오더를 받은 놈들이야.”

- 하지만 일부 주동자가 그럴 뿐, 모두가 그렇진 않습니다.

“원래 돈은 주동자만 받는 거야.”

트랜센던서는 갑자기 말이 없더니, 조금 늦게 질문했다.

- 그게 사실이라면 주동자가 아닌 시위자들은 무엇으로 움직이는 것입니까?

트랜센던서의 사고능력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에 로페즈는 답했다. 인간으로서.

“주동자들의 개소리를 진심으로 믿는 병신들이겠지.”

- 관리자님이 주장하시는 그들의 일관성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원래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멋있어지거나 병신이 되거나 둘 중 하나거든.”

로페즈는 듣고만 있어도 스트레스가 쌓이는 뉴스를 꺼버렸다.

- 관리자님이 처한 현 상황에서 구상하신 다음 계획이 있습니까?

한순간이지만, 로페즈의 눈빛에서 인간성이 사라졌다. 늘 선했던 그의 인상은 이제 무언가 결여된 듯, 누구에게 보여줄 수 없는 위험한 표정이 되었다.

“복수할 거야.”

선악을 기준으로 삼았을 때 그는 명백히 ‘악’에 가까운 표정을 지었다.

“···나 이제, 더는 안 되겠어.”

그것은 새하얗던 사람이 시달리고 시달린 끝에, 새까맣게 각성하는 모습이었다.

***

다음날 이른 아침, 출근하기 전 로페즈는 버츄얼기어를 착용하고 침대에 누웠다. 가상세계의 자동차 매장으로 접속하려는 것이다.

눈을 뜨고 있으면 새까맣던 화면이 차츰 흰색으로 바뀌었다. 거추장스럽게 비밀번호를 입력하거나 현실 세계의 안전을 확인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그의 모든 계정을 트랜센던서가 확보했으며, 현실 세계에서 그의 몸을 지키고 있는 일 또한 트랜센던서가 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워있는 몸의 감각이 점차 옅어지더니 새하얀 세계를 부유하는 느낌이 들었다.

로페즈는 그대로 가상세계의 자동차 매장에 접속했다. 시야 끝의 지평선에서 매장 건물이 가까워지더니 한 걸음 앞에 멈췄다.

매장에 들어서자 로페즈와 같이 버츄얼기어로 접속한 사람들이 자동차 딜러를 한 명씩 데리고 있다.

‘현실과 별반 차이가 없다고는 하지만···. 역시 실물로 보는 게 더 나았어.’

가볍게 자동차를 구경하고 있으니 금방 딜러가 왔다.

딜러는 이미 로페즈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간단한 인사가 오간 후 로페즈는 원하는 모델을 요청했다.

“스페이스Y의 트루퍼 모델 중에 기능이 많은 종을 보고 싶습니다.”

“다기능을 추구하신다면 단연코 A9이 최고입니다.”

딜러가 허공에 손짓하자 입체적인 차량 이미지가 생성되었다. 현실과 거의 다를 것 없는 모습에 촉감까지 그대로 구현되었다.

“트루퍼 A9의 외부 장갑과 유리는 화약 총기류의 모든 구경에 대한 방탄 내성을 갖추고 있습니다. 수류탄과 같은 폭발물에 대한 방폭 기능까지 갖추고 있어 재래식 미사일 정도는 직격해도 끄떡없습니다.”

딜러는 로페즈가 ‘안전’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곧장 인식했는지, A9의 편의 기능에 대해선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

“내부는요?”

“내부에는 외부와 격리된 산소공급기, 냉각장치, 발열장치, 전파방해차단장치, 보조엔진, 접이식 보조바퀴가 있습니다.”

딜러가 차의 기능을 하나씩 말할 때마다 해당 기능에 부합하는 부품이 투명하게 점멸했다.

“이걸로 할게요.”

“아···. 가상 시승은 안 해보시나요?”

“네. 차를 잘 아는 친구가 있어서요.”

로페즈는 4800만 크레트짜리 방탄 승용차를 그 자리에서 결제했다. 전에 타고 다녔던 차는 2500만 크레트였다.

차량이 완전히 파괴된 것에 대한 자동차 보험금과 재산 보험금, 생명이 위독했을 정도의 사고에 대한 응급입원치료 보험금까지 합해서 2863만 크레트가 들어왔었다.

그러니 4800만 크레트에서 2863만 크레트를 뺀 값. 1937만 크레트를 지출했다고 계산하면 되겠다.

- 계좌 잔액은 1644만 300크레트입니다.

가상세계의 매장에서 구매한 자동차는 한 시간이 지나기도 전에 스스로 로페즈의 주차장을 찾아왔다.

“이 차도 새로 연결해.”

- 알겠습니다.

“너의 학습 데이터는 네가 직접 회사로 전송할 수 있지?”

- 그렇습니다.

“서버 복구는 프녹스 씨한테 맡기면 되겠고···.”

로페즈는 출근하는 길에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상대는 금방 통화에 응했다.

“클레릭 의원님.”

***

클레릭은 혼자서 철문을 열고 들어왔다. 한쪽만 투명한 유리창 너머의 취조실에 프레드릭과 형사가 앉아있다.

그리고 그 장면을 먼저 도착해 지켜보던 사람이 있었다.

“리탄 회장···? 그쪽이 왜 여기 있어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인데요. 의원님.”

늘 하얀 정장을 입던 리탄은 이상하게도 지금은 검은 정장을 입고 있다.

“그거야 나는···. 여기 서장한테 얼굴 좀 보이려고 왔지, 취조실 쓰는 김에.”

“저는 제 회사에서 해고당한 놈이 깽판을 쳤다길래 교육해주러 왔죠.”

클레릭은 분리된 공간에 리탄 말고는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한 후 물었다.

“혹시 리탄 씨도 로페즈 님이···?”

“네. 그 새끼가 여기에 사람을 보낸다고 하던데요. 자세한 이야기는 그 사람 통해서 들으라고.”

“이번엔 무슨 꿍꿍이인지 모르겠군요.”

그때 철문이 열렸다.

들어온 사람은 자이칸이었다.

“리탄 회장님, 클레릭 의원님. 반갑습니다.”

두 사람은 그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 저번에 리탄의 저택에서 로페즈의 편으로 등장했던 작업자다.

“아, 진짜 뭔데? 당신이 로페즈가 보낸다고 한 사람이었어?”

자이칸은 리탄과 시선을 마주하더니 고개도 돌리지 않고 철문을 잠가버렸다.

클레릭은 당혹감을 표출했다.

“왜, 왜 그래요? 둘이 서로 구면이야?”

클레릭은 자이칸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의원님은 저거 몰랐어요? 저번에 토로스 구역에서 난리 치다가 수갑 찼던 깡패인데 로페즈가 풀어줬잖아요. 저택에서도 봤고.”

리탄은 자이칸을 손가락질하며 ‘저것’이라고 했지만, 자이칸은 불편한 기색도 없이 바로 물었다.

“프레드릭은 어디 있습니까?”

“취조실에 있어요.”

그러자 자이칸은 아무 말 없이 취조실의 유리창 앞에 섰다. 그의 왼손에는 수상한 서류가방이 들려있었다.

클레릭은 물었다.

“가져오신 그건 뭐죠?”

자이칸은 사악하게 웃으며 답했다.

“자백제입니다.”

리탄은 불안감에 떨리는 목소리를 냈다.

“대체 뭘 자백하게 하려고···?”

< 6. 시민의,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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