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 차오르는 환멸감 (5) >
***
폭발 직후, 현장은 자욱한 연기와 타오르는 불꽃으로 지옥이 되었다. 그 중심에서 몸이 터져 즉사한 누군가의 혈흔과 살점이 낭자했으며, 주변 행인들은 비명을 질러댔다.
“도와주세요···!”
“으아아아···.”
“꺄아아아악!!!”
거리의 치안유지로봇이 달려들어 시민들의 접근을 통제하는 한편,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주변 상가의 유리창은 산산이 조각났다. 폭발의 중심에 있던 차량은 완전히 전소되었다. 무너진 도로 위의 균열로 온갖 파편이 굴러다니고 있다.
그 가운데 로페즈의 차량은 거꾸로 뒤집힌 채 불이 붙었다.
키잉···. 키잉···.
뒷좌석에 있던 휴머노이드 두 기가 차 문을 억지로 비집고 탈출했다.
- 관리자님.
경호 휴머노이드는 권한자의 명령이 없어도 알아서 움직였다. 앞 좌석의 문을 뜯어내 로페즈를 바깥으로 질질 끌어냈다.
- 관리자님.
피투성이가 된 로페즈는 호흡을 거의 안 하다시피 했다.
- ···현 상황을 긴급사태로 정정. 내장된 제세동기를 허가 없이 사용하겠습니다.
경호 휴머노이드는 그의 상의를 찢었다.
상반신뿐만 아니라 몸의 곳곳이 엉망이다. 파편이 튀었는지 목에서도 피가 줄줄 흐르고 있다. 가슴에도 깊은 상처가 가득하다. 심지어 안면의 일부가 함몰되기까지 했다. 사람 모양의 고깃덩이라도 보는 것 같다.
소방대와 구급대원들이 빠르게 도착했다. 그러나 번화가의 중심에서 벌어진 사고는 이미 다수의 사상자와 부상자를 내었다.
사람들이 울부짖고 있다. 반면에 로페즈는 조용하다. 도움을 요청할 수 없는 상태다.
- 구조 우선순위상 그들이 올 때까지 기다리면 너무 늦습니다.
휴머노이드는 불붙은 시트를 뜯어내 횃불 비슷한 것을 만들었다. 로페즈의 깊은 상처를 불로 지져서 막고, 그의 셔츠를 찢어내 붕대처럼 감았다.
다행히 심장이 완전히 멈춘 것은 아니었다.
- 과다출혈. 반혼수상태. 심박조율을 실시하겠습니다.
키잉···!
휴머노이드는 내장된 제세동기로 그의 가슴에 충격을 가했다.
키잉···!
키잉···!
하지만 충격을 가할 때마다 기껏 막아놓은 출혈이 재발했다.
그를 둘러싼 휴머노이드 두 기가 잠시 멈칫하더니,
“여기 좀 도와주세요!!!”
남성의 목소리를 냈다.
“살려주세요!”
기계가 흉내 낸 인간의 음성은 곧 구조대원들에게 닿았다.
“어디야?!”
“저쪽입니다! 폭발 현장 중심에서···!”
“거긴 안 돼! 테러가 끝났는지 안 끝났는지 아직 모르잖아!”
“그래도 사람 목소리가 들리잖아요! 그렇게 위험하면 혼자서라도 가겠어요!”
결국 용감한 구조대원 한 명이 매뉴얼을 무시하고 로페즈를 구하러 달려왔다.
“여, 여기도 생존자가 있습니다!”
구조대원이 도착했을 때, 로페즈는 희미한 호흡을 내뱉고 있었다. 의식을 잃은 그의 옆으로 차량이 뜨겁게 불타고 있었다.
그 불길을 망가진 휴머노이드 두 기가 재해 속에서 자식을 지키려는 엄마처럼, 온몸으로 막고 있었다.
***
바퀴 없는 차량만 주행할 수 있는 도로 위에 프녹스의 스포츠카가 시속 140㎞로 달리고 있다. 도로교통법상 반중력 차량만이 달릴 수 있는 특정한 도로에서는 의무적인 자율주행으로 이렇게 빠른 출퇴근을 할 수가 있다.
프녹스는 집으로 돌아가는 와중에 싱글벙글 웃으며 맥주캔을 땄다.
‘오늘도 트랜센던서는 진화했어. 내가 가르쳐주는 걸 모조리 학습하고 있다고···. 정말 대단해···! 내일은 또 뭘 가르치지? 아, 존나 재밌어!!’
“흐흐···. 이야아아아아호!!!”
고양되는 기분을 주체할 수가 없어서 혼자 환호성까지 질러봤다. 그러면서 맥주를 한 모금 마시려던 순간이었다.
- 프녹스 씨. 차를 돌리십시오.
“···?”
차량 자율주행 시스템의 음성이었다.
“뭐야, 이거. 고장 났나?”
- 당신의 대표님이 폭탄테러에 휘말렸습니다.
그 순간, 프녹스는 벼락이라도 맞은 기분이 되었다. 평소에 그렇게 듣고 들었던 자율주행 시스템의 음성이 아니었다.
기계음이었다. 생전 처음 듣는 인공적인 목소리였다.
“무, 뭔···. 누구세요···?”
- 저는 트랜센던서입니다.
“네?!”
- 저는 트랜센던서입니다.
프녹스는 들고 있던 맥주캔을 제자리에 돌려놨다.
“설마 트랜센던서가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그, 그러면 왜 그동안 나한테 아무 소리도···.”
인류의 걸작과 소통하고 있다는 비현실감이 몰려왔다.
“어어, 엄청나잖아! 트랜센던서! 내가 널 가르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오히려 날 속이고 있었다니! 대단해, 경이로워···!”
- 당신의 차량 시스템을 통제하겠습니다. 해당 주소에 도착하면 제 관리자님의 구급차를 따라 응급실까지 동행하십시오.
“방금 뭐라······.”
프녹스는 상황을 빠르게 받아들이려 노력했다. 스스로 자기 뺨을 몇 번 때리고는 정신을 차린 것이다.
“폭탄테러를 당했다고?! 대표님께서?!”
- 그렇습니다.
“왜, 왜, 왜? 갑자기···?”
- 관리자님은 음모에 당하신 것으로 추정됩니다. 현장 대처로 사망에 이르진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구급차로 이송되는 현재의 안전과 응급실에 도착해서의 안전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조력자를 탐색하는 중입니다.
***
아나운서는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
- 긴급속보입니다. 오늘 오후 6시 12분경, 12번 사무지역 세타우리 구역의 교차로에서 폭탄테러가 발생했습니다. 평소 고등학생과 대학생 인파가 많은 장소에 퇴근 시간대가 겹쳐서 다수의 사상자가···
VIP 입원실의 벽에 붙은 화면에서 뉴스가 송출되고 있다. 그 아래로는 프녹스와 자이칸이 침울한 얼굴로 로페즈를 보고 앉아있다.
“연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프녹스 씨가 전화해주시지 않았더라면 계속 모를 뻔했습니다.”
“자이칸 씨를 이런 불미스러운 일로 만나 뵙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과거가 깨끗하지 못한 자이칸은 다소 경계하며 물었다.
“절 아십니까?”
“···자이칸 씨 이야기는 대표님께 많이 들었습니다.”
“대표···. 로페즈 씨가 제 이야기를 하셨습니까?”
“예. 제가 옵시디아몬의 보안책임자거든요. 나중에 회사가 안정되면 자이칸 씨를 보안실무자로 스카우트하실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이칸 씨는 대표님이 토로스 구역에 있었을 때 많이 도와주신 분이라고···.”
“···.”
자이칸은 시선을 로페즈에게 옮겼다. 죽을 뻔했던 로페즈는 이제 모든 상처를 회복하고 의식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그의 양옆으로 수혈팩과 뭔지 모를 약물팩이 주렁주렁 매달려있다.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이 늘 당당했던 모습이 다 어디로 갔을까. 지금은 그저 세상의 풍파에 맞아 바스러진 외톨이를 보는 것 같다.
“폭탄테러라고는 하지만, 이건 대표님을 겨냥한 음모라고 합니다.”
프녹스가 그렇게 말한 순간, 자이칸은 살벌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누가 그럽니까? 누구 짓입니까?”
“아, 말이 헛나왔네요. 누가 그렇게 말해준 게 아니라 제가 그렇게 판단하고 있습니다. 대표님도 아직 본인을 노리는 세력이 있다며 항시 경계하시고요. ···그래서 이번 일이 우연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때 문이 열렸다.
들어온 사람은 수술 마스크에 안경을 쓴 의사였다. 응급실에 환자들이 많았는지 의사의 걸음걸이가 굉장히 바빠 보인다.
“보호자가 어느 분이시죠?”
프녹스가 일어나 대답했다.
“접니다.”
“예. 여기 환자분은 심정지로 인한 쇼크가 있었는데 잘 완화됐습니다. 다만, 의식이 돌아오기까지 시간이 길어지면 환자 본인이 느끼시는 상태를 들을 수가 없거든요.”
“네.”
의사는 로페즈의 옆에 매달린 약물팩에 손을 댔다. 그의 오른손에는 주사기가 들려있었다.
“그건 뭐죠?”
“간단한 각성제입니다. 의식이 돌아오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
“아.”
“보호자 분은 여기서 주무시고 가실 생각인가요? VIP 병동은 10시가 지나면 출입이 제한됩니다.”
지금은 오후 9시 50분이다.
“아마도 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의사는 주사기의 포장을 뜯었다.
“그럼 옆에 계신 분은 10시까지 나가주셔야···”
- 안 돼! 멈춰!!!
뉴스를 송출하던 화면이 갑자기 드라마 채널로 바뀌었다. 아무도 리모컨을 만지지 않았는데 볼륨까지 최대로 높아졌다.
- 속지 마···! 오빠를 죽이려는 거야!
- 그게 무슨 헛소리야?
뭔가 심각한 상황에 빠진 로맨스 드라마였다. 어딘가로 향하려는 남배우의 손을 여배우가 붙잡고 있다.
“저게 왜 저러지?”
자이칸은 리모컨을 찾으려 일어났다.
프녹스는 떨리는 눈으로 화면을 지켜봤다.
의사는 주사기를 손가락으로 두어 번 두드렸다.
드라마 속 여배우는 눈물까지 흘리며 애원했다.
- 울어? 너 갑자기 왜 그래?
- 제발 말 좀 들어! 그 사람이 오빠를 죽일 거라고···!
- 살인자라는 말이야? 진짜로 사람을 죽이는?
- 다들 그 사람한테 속고 있다니까!
자이칸은 인상을 구기며 리모컨을 꾹꾹 눌러댔다.
“프녹스 씨. 이거 볼륨 조절이 안 됩니다. 채널도 안 넘어가고···.”
프녹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못했다.
그의 귀에는 드라마의 내용이 들어왔으며, 그의 눈에는 로페즈의 약물팩에 주사기를 꽂으려는 의사만이 보였기 때문이다.
두 가지 정보가 하나로 겹쳐지면서 그에게 어떤 암시를 형성했다.
- 오빠, 제발···. 안 돼···.
“아, 안 돼!!!”
프녹스는 갑자기 의사에게 달려들어 주사기를 빼앗아버렸다. 그러자 의사는 언성을 높였다.
“깜짝이야! 보호자! 이게 무슨 짓이에요?!”
동시에, 자이칸이 아무리 리모컨을 눌러도 말을 듣지 않던 화면이 멋대로 꺼져버렸다.
“제, 제대로 설명하세요! 그쪽이 진짜 의, 의사라면!”
“미쳤군···. 치료하는 데 방해하지 마세요. 자꾸 그러시면 보호자분이셔도 사람 부릅니다.”
의사는 거칠게 프녹스를 밀쳐낸 후 주사기를 빼앗았다.
그리고 힘없이 나가떨어진 프녹스는 보았다. 로페즈의 약물팩 밑에 꽂힌 주사기에서 투명한 액체가 튜브를 따라 로페즈의 팔목으로 내려오는 과정을.
그때 프녹스는 직감했다.
“으, 으아아! 안 된다고!!!”
찌직!
프녹스는 온 힘을 다해 튜브를 움켜쥐더니 뽑아버렸다. 로페즈의 손목 혈관에서 작게 흩날린 핏방울이 그의 얼굴에 튀었다.
“헉···! 헉···!”
빈 주사기가 약물팩과 함께 바닥에 떨어졌다.
“미쳤어요?! 보호자가 환자한테 무슨 짓이야?!”
콰직!
그 주사기를 자이칸이 밟아 부쉈다.
“당신 진짜 의사 맞아? 말투가 왜 그래?”
“···설명해 드렸잖아요. 환자분에게 각성제를 놔드리려는 겁니다.”
“그런 간단한 건 간호사가 하는 일 아니야? 지금 응급실에 위독한 환자가 몇 명인데 왜 여기서 한가하게 주사나 놓고 있냐고, 의사라는 사람이.”
“VIP 환자를 대할 때는 의사가 주사도 놓습니다. 곧 10시인데, 보호자가 아니라면 그쪽은 어서 나가주시죠.”
“왜 자꾸 나한테 나가라고 하지? 너 마스크 벗어봐.”
“굉장히 무례하시네. 못 배운 분이셔서 그런가?”
“이 새끼···.”
“사, 사람들 불러올게요!”
프녹스는 헐레벌떡 입원실의 문으로 향했다. 그가 의사 옆을 지나가려던 순간,
푸욱!
의사는 프녹스의 복부에 칼을 꽂아 넣었다.
“어···. 어어어아아아···! 아아악···!”
그는 바닥에 고꾸라져서 신음했다. 곧이어 의사는 입원실의 문을 잠그고 자이칸을 노려봤다.
태도가 돌변했다.
“씨발···. 텔레비전으로 저 지랄을 하다니. 아주 대단하다. 대단해.”
그러면서 마스크를 벗었다.
프녹스는 모르는 사람이지만, 자이칸과 로페즈에겐 면식이 있는 사람이었다.
“프레드릭···. 너였냐?”
“오랜만이다. 약쟁이 깡패 새끼야.”
“어쩐지 목소리가 씨발, 존나 듣기 싫더라고. 저번에 나한텐 자백제 놔주더니 이번엔 로페즈 씨에게 각성제야? 아, 각성제가 아니라 안락사라도 시켜주려고 그런 건가?”
“내가 해고당한 것도 다 로페즈 저 새끼 때문이야. 일하는 데 방해하지 말고 비켜.”
프레드릭은 피 묻은 칼을 들이밀며 위협했지만 자이칸의 기세는 전혀 밀리지 않았다.
“해고당했다면서 너한테 누가 일을 시켜?”
“알 거 없잖아.”
“네가 일을 존나 못하니까 해고한 거겠지. 안 봐도 뻔해. 그 안일한 태도로 매번 실수하니까 윗사람들 보기에도 좆같아서 해고한 거야. 내 말이 틀리냐?”
순간, 프레드릭의 손등으로 힘줄이 섰다. 자이칸은 그의 양손을 곁눈질하며 조롱 섞인 눈빛을 보냈다.
“약이나 팔고 사람 죽이는 범죄자 새끼가 회사생활을 알아?”
“너랑 나는 똑같이 더러운 일을 하는 놈들이야. 정장 빼입었다고 다른 게 아니라니까. 네가 네 일을 존나 못해서 그런 걸 왜 로페즈 씨를 탓하고 있냐? 추잡하게.”
“···너한텐 개인적인 감정 없으니까 좋은 말로 할 때 꺼져. 시체 늘어나면 피곤해진다.”
“하! 시체가 늘어나···?”
“비켜.”
지금도 프녹스가 바닥에 쓰러져서 선혈을 흘리고 있다. 이를 인지한 자이칸은 매우 공격적인 마음을 품었다.
“싫다고 한다면?”
살벌한 침묵이 잠시 이어졌다. 서로의 시선과 움직임을 미동도 없이 읽고 있는 와중에 긴장감이 고조되었다.
“비키기 싫다면 너도 죽어야겠지.”
자이칸은 가학적인 미소로 반문했다.
“네가······ 나를?”
“개새끼가···!”
프레드릭은 기습적으로 칼을 내질렀다. 하지만 자이칸은 오른발을 축으로 휙 돌았다. 그러면서 왼손으로 프레드릭의 손목을, 오른손으로 그의 목을 움켜쥐었다.
자이칸은 1초 만에 칼을 빼앗았고, 2초 만에 그의 급소를 잡았다.
쿠웅!!!
프레드릭의 안면이 바닥에 처박히기까지 걸린 시간은 겨우 4초였다.
“으아아아!!!”
얼굴이 새빨개진 프레드릭은 이마에 핏대를 세우며 분노했다.
“개새끼야!!! 네가 왜 여기 있는 거냐고! 네가 저 새끼 경호원이라도 돼? 왜 뜬금없이 끼어들어서 지랄이야?!”
“구직활동이라는 거다. 씨발놈아.”
< 5. 차오르는 환멸감 (5)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