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 시스템 (2) >
***
하마터면 클레릭이 듣는 자리에서 리탄이 트랜센던서를 언급할 뻔했다.
“다 아가리 여물어. 개새끼들아.”
그리고 지금 발언은 다른 목적도 있다. 지금까지 속에 쌓였던 분노 표출과 현 상황의 분위기를 반전시키려는 의도로 내뱉은 것이다.
클레릭과 리탄은 물론이며 그들이 데려온 인원들까지 침묵했다. 다들 머리에 망치라도 얻어맞은 듯 충격을 받은 것이다. 누가 봐도 로페즈가 극도로 불리한 와중에 정체불명의 로보버그 서른 기가 식탁에 내려앉았으니.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기에 그들에겐 이해할 시간이 필요했다.
로페즈는 무겁게 말을 꺼냈다.
“···여러분 앞에 배치된 초소형 드론은 주로 군대에서 쓰이는 로보버그입니다. 본래 정찰 및 첩보 용도로 쓰이는 병기죠.”
“이 상황을 녹화라도 하고 있었다는 말인가? 협박 소재로는 부족하군.”
클레릭의 지적에 리탄도 동의하는 눈치다. 그래도 로페즈는 말을 이었다.
“말씀드렸듯, 본래 정찰 및 첩보 용도로 쓰이는 병기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앞에 배치된 것들은 제가 ‘살상용’으로 개조한 로보버그입니다.”
살상용.
사람을 죽일 능력이 있는 로보버그라는 뜻이다. 그런 것이 서른 기나 눈앞에 배치되었다. 식탁 위에 내려앉은 파리처럼.
“···그러니 다들 총은 내리시죠. 각자 데려오신 분들도 자리를 비키게 하시고. 셋이서 이야기합시다.”
양측이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고 있는 상태다. 어느 한쪽이 방아쇠를 당기면 리탄이나 클레릭이나 로페즈나 안전하지 않다.
‘두 사람이 죽으면 계획이 틀어진다.’
그러나 두 사람은 로페즈가 주도권을 잡았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는지 슬금슬금 행동을 시작했다.
- 관리자님의 발언이 상황을 통제하지 못했습니다.
그 모든 장면이 로페즈의 왼쪽 기계안으로 슬로우모션처럼 보였다. 트래센던서는 로페즈의 눈에만 보이는 텍스트를 띄웠다. 1인칭 시점 게임의 상태창이라도 보는 것 같지만, 이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총기를 꺼낼 확률 80%초과!!!」
클레릭은 자신의 정장 안주머니에서 손을 빼내려고 한다.
- 극도로 위험합니다.
「!!!총기를 꺼낸 직후 사살을 지시할 확률 97% 초과!!!」
리탄은 자기 머리를 만지려고 손을 올리는 중이다. 모종의 공격 신호일까.
- 상정된 긴급상황으로 판단. 즉살 프로토콜을 실행하겠습니다.
두 사람이 자신의 부하들에게 신호하기 직전, 모든 것을 읽고 있던 트랜센던서가 먼저 행동했다.
식탁 위에 내려앉은 서른 기의 로보버그가 총알보다 살짝 느린 속도로 움직였다. 인간의 눈에는 로보버그가 한순간에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1번 로보버그부터 30번 로보버그다.
1번 로보버그부터 9번 로보버그는 각기 다른 목표물에 향했다. 방아쇠를 당기려는 자들의 눈, 입, 코, 이마를 불문하고 머리를 향해 돌진한 것이다.
“커헉!!!”
누군가가 단말마를 토해낸 순간이었다.
퍼퍼퍼퍼퍽!!!!!
동시에 저격이라도 당한 것처럼, 클레릭의 용병들과 리탄의 작업자들이 그 자리에서 일제히 쓰러졌다.
그들의 안면에서 피가 분출되어 식탁 위에 사선을 이뤘다. 그 순간에 리탄과 클레릭의 사고는 정지했다.
콰당탕!
순식간에 시체 아홉 구가 널브러졌다. 그리고 10번 로보버그부터 30번 로보버그는 클레릭과 리탄의 코앞에서 잠자리처럼 제자리비행을 하며 경고했다.
허튼짓하면 죽이겠다고.
그 모습이 마치 위협적인 벌떼 같다. 클레릭과 리탄은 눈앞의 로보버그에 달린 작은 카메라로부터 기계의 시선이 느껴지는 착각마저 들었다.
같은 순간, 로페즈는 자기 손으로 사람을 아홉 명이나 죽였다는 생각에 미친 듯이 떨었다.
- 심박수가 분당 153회로 급격히 상승했습니다. 세로토닌을 분비하겠습니다. 침착하셔야 합니다.
가까스로 정신을 다스린 로페즈는 침착하게 휴대전화를 식탁 위에 올렸다.
“인공지능에 의해 공격 의사가 판단되면 즉각 사살합니다. 하나하나가 지능을 가진 유도탄이죠. ···이제 스물한 발 남았네요.”
이대로 사람을 21번 더 죽일 수 있다. 그런 어투로 그들에게 상황을 인지시킨 다음엔 주도권 확립이다.
“클레릭 의원님.”
“뭐, 예···?”
“그동안 클레릭 의원님의 정치를 지원하는 공금을 꾸준히 세탁하셨네요. 사냥기업을 키우셔서 소기업의 지분을 잡아먹고 다시 자금을 빼돌려 되파시는···. 그런 게 클레릭 의원님의 주요자금원이었나 봅니다?”
“그걸 어떻게···. 아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그 돈으로 타 지역 의원들을 지원해주면서 파벌을 형성하셨고. 그 파벌마다 사업체를 하나씩 맡겨 거대한 돈세탁 사업까지 겸하고 계셨네요. 하나뿐인 아들과 세 딸의 대학 입시까지 맡아주시는 모습, 정말 아버지로서 훌륭하십니다.”
“그게···.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니라···.”
“의원님은 눈치 좋은 사람 좋아하시잖아요? 제가 얼마 전부터 사람을 안 믿기로 마음먹어서, 눈치가 꽤 좋아졌거든요.”
“···.”
클레릭은 입을 다물었다.
다음은 리탄이다.
“그리고 리탄 대표님은 뭐···. 말할 것도 없죠. 타르시스 고지 남쪽에서 화이트컨스트럭트가 부실 공사한 것을 다른 건설업체의 책임으로 씌우고, 페이치 회장과 함께 꾸준히 작업자를 돌리시고. 불법적인 검색엔진 검열시스템까지 만드시고. 찾아보니까 대표님이 법정에 설 만한 일이 86건이나 되던데, 통합공화당의 덕을 크게 보셨네요.”
“···그게 어쨌다고요? 나만 그러는 거 아니잖아. 다들 하는 일인데 뭐 문제 있어요?”
일단 반발하는 리탄의 태도는 예상범주 내다. 그의 성격에 대한 분석은 진작에 끝났다.
- 관리자님. 영상을 띄우겠습니다.
“이걸 보고도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으려나···.”
로페즈의 앞에 놓인 휴대전화가 홀로그램을 출력했다. 이윽고 클레릭과 리탄 사이의 밀약이 낱낱이 드러났다.
- 이래서야 큰일 하실 수 있겠어요? 차기 화이트홀 회장이시면서.
- 그러는 의원님은 차기 행성대통령 아니신가? 뭐든지 조심하셔야지.
- 리탄 대표님도 대충 우리가 손을 잡아서 어떤 이득을 보는지는 알고 계시는군요.
- 화이트홀 회장. 작업할 자신 있어요?
영상을 보는 두 사람의 얼굴이 마네킹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 하! 회장? 대기업? 그런 건 다 뒷배경이에요. 어차피 사람 뒈지는 건 다 똑같아. 나의 이득, 당신의 이득, 우리의 불안 요소인 로페즈 제거와 각자의 성공적인 미래. 그렇게 만들어진 협력관계. 이것보다 중요한 게 있어요? 하메네스 클레릭 의원님.
- 좋습니다. 아주 좋아요. 내가 준비한 폭탄에 이것까지 더해서 아주 제대로 터뜨려보죠. 로페즈 녀석이 1차, 내가 2차, 마지막에 대표님이 3차로 터뜨리시면 그걸로 상황설계 끝. 바로 작업 들어가세요.
리탄은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씨발! 클레릭 이 씹새끼야, 감히 날 속여?!”
이에 클레릭 의원은 억울하게 소리쳤다.
“생각을 해보게! 저건 나에게도 불리한 내용이지 않은가!”
- 일이 끝난 뒤에 로페즈요? 그거야 그때 가서 이야기하면 되지. 참, 그렇지! 로페즈를 죽이는 시기는 회장이 죽는 시기와 같게 하면 되겠네!
- 왜죠?
- 죽은 회장의 측근 세력이 증오심에 로페즈를 살해했다. 그리고 거기서 내가 최근에 미행당하는 느낌이 있었다. 이러면 되잖아요? 이러면 앞뒤 설명이 완벽하겠네.
로페즈는 그들에게 진실을 알렸다.
“정말 대단한 바이러스였습니다. 해석하는데 고생했어요. 녹화와 녹음 기능을 봉쇄하고 외부 네트워킹을 차단하는 기능이더군요.”
“그걸 해석했다고···? 수십 년간 유지되던 우리 연구소 연합의 기술인데? 자네 정체가 뭐야, 무슨 팀이라도 가지고 있던 거야?”
그 와중에 리탄은 대답하지 않는 로페즈를 보며 생각했다.
‘트랜센던서···. 아버지가 말했던 트랜센던서다···. 저 새끼가···. 그 인공지능이 이 정도 위력이었다고···?’
홀로그램 속에는 앞으로 벌어질 일도 모르고 맞장구를 치는 두 멍청이가 있었다.
- 아이고! 허허허! 각하라니! 아직 그렇게 불리기엔 이릅니다! 회장님!
- 하하하! 그래요! 우리 한 번 해봅시다!
끝으로 로페즈가 결정타를 날렸다.
“이미 발칵 뒤집힌 나라에 이 영상을 풀어버리면 또 뒤집히겠네요. 제가 별도로 알아낸 구린 것들까지 합치면 지금까지 설계하신 것들, 다 무너지겠죠. 클레릭 의원님도 리탄 대표님도. ···전 당장이라도 기자들 앞에서 입을 열 수 있습니다. 두 분 모두 이 상황을 이해하셨나요?”
“아, 이거 완전히 좆됐네···.”
“알겠어요. 로페즈 씨, 원하는 게 뭡니까?”
“무언가를 원해서 이 일을 벌인 건 아니에요.”
“그럼···?”
“그냥, 당신들이 날 죽이려 했잖아.”
홀로그램이 종료되었다. 코끝을 감도는 피비린내 속에서 로페즈의 차가운 말이 흘러 다녔다.
“의원님은 눈치 좋은 사람을 좋아하셨죠. 그 위치에서 남에게 눈치를 요구하신 만큼, 본인도 눈치가 있으셨으면 좋겠네요.”
“···?”
“앞으로 서로 돕는 관계는 끝났습니다. 도움은 저만 받겠습니다. 무슨 의미인지 아시겠어요?”
클레릭은 고개를 떨구었다. 발밑을 지나가는 핏물이 벌써 굳어가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 감시할 겁니다. 저는 이미 화성의 시스템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문명과 전자기기에서 벗어난 삶을 살 수는 없겠죠.”
“···로페즈 씨는 참 잔인하시군요.”
“당신들이 절 잔인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도 이거 하나는 약속해드리죠. 제 통제와 요구에 따라주신다면 다음 대선까지 방해하진 않겠습니다.”
그렇다면 갑을관계가 바뀌었어도 클레릭의 입장에선 나름 성공한 셈이다.
“알겠어요. 알겠어. 건들지 않고 감시만 하겠다, 도움이 필요할 때만 연락하겠다. 뭐 이런 뜻이죠?”
“네. 그리고 리탄 씨.”
리탄은 자포자기했는지 도리어 웃음기를 되찾았다. 그러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으며 입가는 희미하게 떨리고 있다.
“하하···. 저한테는 어떤 처벌을 내려주실까?”
“마음 같아선 지금 당장 리탄 씨를 죽이고 싶습니다.”
로페즈가 확실히 위라는 것을 인지시켜야 한다.
“지금이 아니더라도 언제든지 그럴 능력이 있습니다. 평생을 재벌 2세로 부유하게 자라온 리탄 씨도···. 문명과 전자기기의 노출을 피하는 원시적인 삶을 원하지는 않을 거잖아요?”
“아···. 하하···.”
“살아서 돌아가면 우주 전역을 뒤져서 해커부터 고용할 생각을 하고 계시겠죠. 아니면 일전의 비밀프로젝트를 부활시켜서 제게 대항하신다거나.”
당신의 사고를 이미 몇 수 앞이나 읽고 있다. 모조리 상정하고 있다.
“···.”
또 그의 웃음기가 사라졌다. 허를 찔린 것이다. 허를 몇 번이고 찔러서 표정 관리조차 포기하게 만든 것이다.
“제게 거스르는 것은 허용하지 않겠습니다. 만약 거스르신다면, 사회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죽여드리겠습니다. 당신 같은 사람들 말로는 ‘작업’이라고 하죠?”
“예! 제가 졌습니다! 충성을 맹세하죠! 발바닥이라도 핥아드릴까요?”
“됐습니다. 제가 그런 쪽 취향은 없어서.”
로페즈는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며 지난 대화를 상기했다.
“전에 본인 입으로 말씀하셨죠. 윗놈은 아랫놈을 때려도 된다는 것. 아랫놈은 윗놈을 눕히지 않으면 언제까지고 맞는 놈이 된다는 것.”
“그게 왜요?”
“리탄 씨에게는 별도의 안전장치가 하나 더 필요하겠습니다.”
“···아. 말씀만 하시죠! 하하.”
“화이트홀의 지분 20%를 제게 넘기세요.”
“20? 뭔, 제가 잘못 들었나··· 요?”
“당신 아버지의 사망이 확인되었으니 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재산은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상속받잖아요.”
누군가 죽으면 법으로 만든 시스템이 죽은 사람의 인적관계를 분석한다. 그 사람의 지인, 가족, 친척까지 모조리 분석한 끝에 가장 많은 영향력을 주고받은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재산이 양도된다. 트랜센던서의 조사에 따르면 페이치의 재산은 모조리 장남인 리탄에게 넘어간다고 했다.
“페이치의 지분 38%까지 가져가셨으면서 20%도 못줘요? 대기업 지분 18%라는 어마어마한 이득을 보실 텐데. 그리고 화이트홀 내부는 이미 리탄 씨가 장악하셨잖아요. 그거 지분 좀 떼인다고 회장 되는 데 별다른 어려움이라도 있어요?”
리탄은 한숨 섞어 대답했다.
“없습니다···.”
끝이다.
“들어와.”
휴대전화를 만지던 로페즈가 말하자, 뒤쪽의 문이 열리며 몇 사람들이 성큼성큼 들어왔다.
딱 보기에도 험악한 인상의 남자 일곱 명이다. 그중에 가장 앞에 있는 남자는 험악하다 못해 사악하게 생겨서,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을 죽일 것 같은 얼굴이다.
리탄은 가장 앞에 있는 남자의 얼굴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누구였지?’
“자이칸 씨. 여기 죽은 사람들 장비 회수하세요. 머리에 박힌 로보버그는 자석으로 빼시고.”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로페즈는 손가락으로 클레릭을 가리켰다.
“저쪽 어르신 정장에 숨긴 권총도 회수하세요.”
그들이 지니고 있던 무기는 트랜센던서에 의해 분석될 것이다. 이렇게 하면 방대한 인터넷을 뒤질 필요도 없이 현대무기 제조기술의 기초를 얻을 수 있다.
자이칸과 부하들이 회수를 마침과 동시에 로페즈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는 이만, 먼저 가보겠습니다. 시신은 두 분이 알아서 처리하시죠.”
“예! 여부가 있겠습니까! 하하하.”
리탄은 일관성이 없는 성격이었다. 어느새 웃음을 되찾고 싱글벙글하게 대답하는 모습이 정말 정신병자 같다.
“저는 잊으시고, 각자 하려던 대로 하시면 됩니다. 행성대통령이든 대기업 회장이든. ···저는 필요할 때만 연락할 테니까요.”
- 성공적입니다. 관리자님. 화성 정계와 재계의 막대한 영향력을 확보하셨습니다.
이제 이 엄청난 일의 여파에 대비해야 한다.
< 4. 시스템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