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 시스템 (1) >
***
일리노이 페이치 회장은 올림푸스 UN에서 한참 벗어난 곳으로 이동했다. 단단한 콘크리트나 전파가 통하는 특수합금 대신, 테라포밍의 흔적이 남은 황톳빛 모래와 바위가 가득한 사막 도시다.
도시의 외딴곳. 바위산으로 둘러싸인 공터에 2층짜리 나무별장이 있었다.
“다 털리고 있어. 다 털리고 있다고···. 내 장부, 기록, 서버, 데이터. 모조리 다···. 특검까지 나서서 탈탈 털고 있어···. 난 곧 범죄자가 될 거야···.”
안절부절못하며 담배를 피워대는 페이치의 곁을 부회장이 보필하고 있었다.
“이제부터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도망쳐야지. 이길 방법이 없어. 씨발!!!”
페이치는 물고 있던 담배를 탁 뱉으며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기껏 PP로 만들어줬더니, 덩치 좀 커졌다고 바로 꼬리 자르는 거 봐. 안 그런가?”
“원래 이 바닥 사람들은 모두 기회주의자입니다. 냉정함을 되찾으시지요.”
“후우···. 그래도 너밖에 없다.”
퉁!
페이치는 꺼진 휴대전화를 발밑에 떨궜다.
“내 우주선이나 함선은 압수당했으니, 이렇게라도 도망가야지. 어디 다른 항성계에서 조용하게 안락한 노후나 보내야겠어.”
쾅! 쾅! 콰직!
그는 자신의 휴대전화를 스스로 밟아 부숴버렸다.
“부회장. 지금 몇 시지?”
“오전 6시 15분입니다. 용병선 도착까지 한 시간 남았네요.”
“그거 타고 영원히 사라져버려야지. 이런 호로새끼들. 다들 자기네 저택이나 우주선으로 오라는 소리를 동시에 입을 모아서 말하고 있어. 분명 리탄 녀석의 꽁무니만 쫓고 있는 거겠지. 자기가 회장이 되면 한 자리 내어주겠다고···. 그런 식으로 내 회사를 장악하는 중이겠지.”
“그래도 리탄의 지분으로는 아슬아슬하지 않습니까? 그 정도 지분으로는 이사회의 투표를 거쳐야 할 텐데요.”
“그 녀석이 몇 놈만 포섭해도 회장직은 결정이야. 정말 덧없는 세상이군. 내가 아들을 그렇게 많이 만들어놨는데, 믿을 자식이 하나도 없어.”
부회장은 페이치가 밟아 부순 휴대전화를 손수 주워서 전자레인지에 넣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묵묵히 보필하는 자세에 페이치는 오묘한 불안감을 느꼈다.
‘설마 부회장 이 녀석도 리탄 편인가···?’
만약 조금이라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면 위험은 최대한 배제해야 한다. 앞으로 한 시간. 한 시간이면 된다. 화성을 떠나 새로운 삶을 살면 된다.
‘혹시 모르니까···.’
“···그래서 말인데, 자네에게 맡기고 싶은 게 있군.”
“예. 회장님. 말씀만 하시지요.”
부회장은 전자레인지 버튼을 눌렀다.
“난 어차피 이곳에서 경영을 할 수 없는 범죄자가 될 거야. 그러니 내 회사, 빌어먹을 리탄 녀석에게 주느니 차라리 너에게 주도록 하마.”
“······예?”
‘그럼 그렇지.’
페이치는 자기도 모르게 입꼬리를 씰룩했다.
“내가 경영권을 상실하기 전에 내 지분 38%를 너에게 주겠다는 말이야. 자네 지분에 내 지분까지 합치면 회장되는 건 쉽잖아?”
“아···. 예. 그렇죠. 그런데 회장님.”
“응?”
부회장은 전자레인지에서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말했다.
“저는 자리보다 돈이 좋습니다. 회장님께서는 용병선으로 화성을 뜨시겠다고 하셨죠?”
“어? 그, 그렇지.”
“사실 저도 구린 것이 많습니다. 수사가 들어오면 저도 회장님처럼 범죄자가 되어 감옥살이나 하게 되겠죠. 애당초 회장님의 뒤치다꺼리를 부회장인 제가 하지 않았습니까.”
“······이러지 말자고.”
“용병선은 제가 예약했습니다. 제 이름으로요. 저는 100억 크레트를 손에 쥐고 화성을 뜰 겁니다. 어디 외딴 행성이든 위성이든 가서, 안락한 노후나 보내야죠. 경영이든 정치든 작업이든 트랜센던서든. 이젠 다 지쳤습니다. 나머지는 리탄이 알아서 하겠죠.”
“너···. 너 지금 그게 무슨 뜻이야···?”
페이치의 개인적인 연락처와 온갖 기록이 가득한 휴대전화는 그의 인맥이자 권력이었다. 그랬던 물건이 이제는 전자레인지 안에서 철저히 파괴되어 고물이 되었다. 이를 보고 있던 부회장은 고개만 돌려 싸늘한 눈빛을 보냈다.
인간으로서 어딘가 결여된 눈빛이다.
“정말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요? 회장님.”
부회장은 그렇게 되묻고는 자기 휴대전화를 꺼내어 페이치에게 넘겼다.
「익명 발신자」
익명의 누군가가 전화를 받은 채였다.
“누군데?”
“일단 받으시죠. 회장님.”
페이치는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누구십니까···?”
- 일리노이 페이치 회장. 나다.
목소리가 들려온 직후, 페이치의 이마로 핏줄이 섰다.
“로페즈···! 너 이 새끼···!”
- 이제 이 모든 상황이 왜 이렇게 흘러간 건지 알겠냐?
그때 페이치의 머릿속에서 ‘트랜센던서’라는 단어가 번개처럼 스쳤다.
“···내가 미안하네. 자네가 날 얼마나 원망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대의를 위한 희생이었어.”
- 지랄하지 마.
“정말이네···. 난 지금도 후회하고 있어. 올바른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절대적인 인공지능으로···”
- 올바른 사회를 절대적인 인공지능으로 만들겠다는 사람이, 그 인공지능의 권한은 단독으로 차지하려 했다고?
페이치는 정곡을 찔렸다.
- 그냥 당신의 사리사욕이었겠지.
“···맞아. 역시 거짓말은 통하지 않는군. 그래도 나는 자네가 트랜센던서를 위해 얼마나 많은 것들을 희생했는지 알고 있어. 내가 그 노고를 신경 써주기는커녕, 자네와 자네 팀을 모조리 말살하려 했으니 복수심에 눈이 가려질 만도 하지. 하지만 이건 아니야. 사회에 이렇게나 큰 혼란을 야기하다니···. 너무하지 않았나?”
- 너무한 건 당신이고. 하수도에서 그런 몰골로 살아남은 내가, 지난 시간의 노력과 모든 성취를 잃어버린 내가, 무슨 마음으로 어떤 생각을 했는지 당신은 쥐뿔만큼도 이해 못하겠지. 내가 몇 번이나 죽을뻔하면서 몇 번이나 다짐했는데.
“···.”
- 당신이 날 이렇게 만들었어.
“그래서, 복수라도 하겠다는 말인가? 이렇게 무자비하게···? 조금만 침착해보게. 자네는 지금 증오에 눈이 멀었어. 이성적으로 판단하라고.”
- 그래. 난 증오에 눈이 멀어서 당신에게 복수하려고 한다.
- 당신이 그간 내게서 빼앗은 것들을 몇 배로 갚아주고, 당신의 목숨까지 빼앗을 거야.
용병선을 기다리고 있던 페이치는 뭔가가 크게 잘못되었음을 예감했다.
“자, 잠깐···. 우리 협상을 하자고. 응?”
- 어디 당신도 한 번 살아남아 봐. 당신도 나처럼 악착같이 살아남아서, 나에게 복수해봐. 할 수 있다면.
일방적인 통화가 끊긴 직후, 페이치는 무릎이 무너졌다.
“으으···. 어쩌다···. 이렇게···.”
용병선 도착까지는 아직 50분이나 남았지만.
“슬슬 가시죠. 회장님.”
그의 앞으로 여러 사람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의 지난 행동 끝에 이어진 결과는, 처음부터 그의 곁에 믿을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남은 것은 후회뿐이다.
회장이 부회장에게, 부회장이 사장에게, 사장이 부사장에게, 부사장이 실장에게 시켰다. 직접 처리하지 않고 아랫사람에게 시킨 끝에 처음부터 일이 꼬여버렸다. 그런 조직문화가 이런 결과를 만들어냈다. 그렇게 중요한 일을 왜 직접 처리하지 않았던 걸까.
안일한 행보와 그에 걸맞은 결과라는 것은 무엇보다도 냉혹했다.
“안 돼···. 제발 이러지 말자고···.”
***
「510건의 공개된 에어패킷 기술을 학습했습니다.」
「트랜센던서 진화 프로세스 진행률: 2.9%」
네트워크 활보를 시작한 트랜센던서는 엄청난 속도로 학습했다. 그리고 로페즈는 집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고 있다.
로페즈의 손에는 휴대전화가 들려있었다.
「완벽합니다. PP도 놈들을 등졌어요. 이제 리탄이 작업만 잘 끝내면 성공이군요.」
클레릭이 문자로 말한 PP란, 행성대통령을 뜻하는 플래닛 프레지던트(Planet President)의 약자다.
「그럼 이 상황이 거꾸로 흘러갈 일은 없겠네요. 함께해서 무척이나 영광이었습니다. 의원님.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도 될까요?」
「당연한 말씀을 하시네. 우리는 함께 커다란 비밀을 안고 있어요. 나중에 또 일 생기면 서로 도우며 삽시다.」
「감사합니다.」
꾸준히 대중의 신뢰와 이목을 모아온 로페즈의 의미심장한 발언 끝에 폭탄 발언이 이어졌다. 직후 클레릭과 리탄의 고발이 이어졌으며, 경찰 측의 높은 사람까지 나서서 이번 사태를 조속히 해결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반면에 페이치 회장은 공개석상에서 자취를 감췄다. 이후 상황이 악화되자 행성대통령까지 나서서 이번 사태를 매우 심각하게 보고 있다며, 화이트홀을 상대로 대대적인 수사를 시작하겠다고 못을 박았다.
‘이왕이면 페이치 면전에 대고 욕이라도 하면서 복수하고 싶었지만···.’
드라마틱하게 시원한 복수를 원했지만 현실적으로 이게 최선이다. 그래도 나름 만족스럽다. 실종 처리된 연구팀 직원들은 올바른 장례식을 위한 절차를 밟는 중이고, 그간 화이트홀이 저지른 악행은 구멍 뚫린 댐처럼 걷잡을 수 없이 쏟아져나오고 있다.
결국 페이치의 패배는 확정적이다. 하지만,
‘나의 승리는 아직 장담할 수 없어.’
로페즈는 섣불리 기뻐하지 않았다. 당장 협력하고 있는 사람들이 믿을 수 없는 자들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점은 트랜센던서의 존재다.
‘리탄 말고도 트랜센던서를 알고 있는 사람이 더 있을지도 모른다.’
존재 자체가 불투명한 그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이쪽에 이빨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가만히 있는 게 좋을까. 아니면 직접 찾아나서는 게 좋을까.
‘역시 전부 찾아서···. 죽여야 하나···?’
로페즈는 자기도 모르게 떠올린 방법을 지우려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신 차려. 난 그놈들과 달라. 그런 건 어쩔 수 없을 때만 쓰는 수단이다.’
- 관리자님. 판매실적집계가 완료되었습니다.
“알려줘.”
넓은 벽면에 트랜센던서가 직접 정리한 자료화면이 띄워졌다. 로페즈의 사업 현황을 숫자로 정리한 데이터의 나열이었다.
- 웹서버 오픈 후 10일이 지난 오늘. 로페즈 학습기의 누적수익은 136만 1000크레트입니다. 각 상품의 다운로드 횟수는 화면과 같습니다.
「30일 무료 상품 - 815회」
「30일 유료 상품 - 481회」
「1년 유료 상품 - 60회」
「1년 유료 상품(자동갱신) - 22회」
「다운로드 횟수 총합: 1378회」
“고작 열흘인데 왜 이렇게 잘 팔렸지?”
- 분석 알고리즘을 참고하자면, 로페즈 학습기와 관리자님의 밀접한 연관성이 대중에게 드러나면서 고객 유치가 이른 시기에 활성화된 것으로 계산됩니다.
“···내가 대기업 프로젝트의 팀장으로 강력한 프로그램을 만들다가 도망쳐 나왔다고 발언했었지.”
- 그렇습니다. 로페즈 학습기의 개발자인 관리자님께 신뢰가 형성되었으며, 본 상품에 수요가 없는 사람이라도 관리자님을 직간접적으로 응원하기 위해 관심을 보인 것으로 추측됩니다.
“군중심리도 계산할 수 있게 되었네? 트랜센던서.”
- 인간의 심리에 관련된 학습을 계속한 결과입니다. 사회학, 통계학, 정신심리학 등의 인간 행동 데이터가 동적인 신규패턴으로 재정립되었습니다.
“여전히 말을 어렵게 하는 것도 좀 나아졌으면 좋겠다.”
- 관리자님께 언제나 최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알려드리는 것이 저의 가장 기본적인 구성요소 중 하나입니다.
“···그랬었지. 넌 내가 주도해서 만들었으니까.”
로페즈는 트랜센던서가 ‘아버지’나 ‘창조주’라는 개념을 자신에게 가지고 있지는 않을까, 하며 괜한 망상도 해보았다.
「누적수익: 1,361,000크레트」
화면에 표시된 숫자는 예전에 화이트홀에서 일해야 벌 수 있는 액수보다 작았다.
“내 월급이 200만이었지. 성과금 잘 받으면 300만까지도 갔었고. 그때 기본급의 절반에 달하는 돈을 열흘 만에 벌었어···.”
이직이 잦으며 직장 내 성과금 제도가 의무화된 화성에서는 개인의 소득을 연봉이 아닌 월급으로 계산한다.
- 100만 크레트 이상 개인사업자 통합세금 8%를 제외한 후 판매의 순수익은 125만 2120크레트입니다. 광고비와 서버개설 비용을 포함한 초기투자금도 합산하시겠습니까?
“아니. 괜찮아.”
‘서버와 웹을 직접 관리하니 유지비는 안 들어가네. ···그래도 역시 내 회사를 차리는 게 아니면 수익이 증가할수록 세금이 부담스러울 거야.’
“그럼 이제 내 계좌에 얼마가 있지?”
- 3674만 1120크레트입니다.
갑자기 계좌에 들어있다는 액수가 초라하게 느껴진다. 올림푸스 UN의 중심에서 이름 있는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최근에 만났던 사람들에 비하면 자신이 절대 상류층이라고 할 수 없다.
진짜 상류층은 계좌에 못해도 억 단위의 숫자가 있을 것이다. 그 숫자 말고도 건물이나 주식 같은 자산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저 서민 중에서 부유한 축에 속했을 뿐이구나.’
- 관리자님. 각 방송사 채널의 긴급속보가 송출되고 있습니다.
“무슨 속보?”
- 일리노이 페이치 회장이 사망했습니다.
***
로페즈, 리탄, 클레릭은 한곳에 모였다.
비밀스러운 만남의 장소는 올림푸스 UN의 외곽에 있는 저택이었다.
얼핏 보기에도 비싼 요리와 술이 긴 식탁에 가득 차려져있다. 클레릭은 빈 와인잔을 들어보며 말했다.
“허허. 각자의 성공을 함께 축하하는 자리가 참 외진 곳에 있군요.”
세 사람 말고는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와인 코르크를 따는 사람은 리탄이었다.
“저희 셋이 만났다는 것이 알려져 봐야 시끄러워지기만 할 뿐이니까요. 제가 소유한 저택이니 누가 들어올 일은 없습니다.”
로페즈는 리탄에게 물었다.
“오전부터 뉴스가 떠들썩하던데요. 도망치려는 회장을 어떻게 작업하셨어요?”
“이미 화이트홀은 제 손에 들어왔답니다. 멍청한 아버지는 수십 년을 따랐던 부회장을 마지막까지 믿은 모양이에요. 난 이미 부회장도 포섭했는데. 으하하!”
“허허허! 대단하시군요. 역시 회장이 될 그릇이야.”
“과음을 동반한 자살로 마무리했으니, 뒤탈은 없을 겁니다. 포섭된 부회장은 용병선을 타고 갈 건데, 그 용병선 자체가 내 작업자들의 우주선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죠.”
무시무시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리탄이었다.
“그럼 부회장도 죽이는 건가요?”
“그럼요. 비밀을 알고 있는 놈인데 당연히 입을 막아둬야죠.”
“그래서 비밀을 알고 있는 저도 죽이시려고?”
“···.”
그 순간, 리탄과 클레릭은 온몸의 털끝이 곤두섰다. 싸늘한 감각이 침묵과 함께 공기를 집어삼켰다. 의심이 가득한 표정을 하고 있는 클레릭, 여전히 웃음기를 머금고 있지만 어딘가 살인자처럼 보이는 표정의 리탄, 모든 것을 꿰뚫어보고 있다는 표정의 로페즈.
세 사람의 살벌한 시선이 충돌하며 숨 막히는 분위기를 자아냈다.
리탄은 다시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로페즈 씨. 무슨 섭섭한 말씀을 하고 그러세요? 전우끼리.”
같은 순간, 클레릭은 자신의 정장 안으로 살며시 손을 집어넣었다. 서로의 얼굴을 보고 있던 리탄과 로페즈는 동시에 클레릭을 향해 눈동자를 굴렸다.
짧은 시간이 길게 느껴지는 압박감 속에서 로페즈는 입을 열었다.
“의원님은 권총을 챙겨오셨고. 대표님은 바깥에 무장한 사람들을 대기시켜뒀네요.”
콰앙!!!
이런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걸까. 문이 부서질 듯 열리며 리탄과 같이 하얀 정장을 입은 남자 여섯 명이 위압적으로 걸어들어왔다.
리탄은 당황하지 않았다.
“의원님. 그 총, 꺼내셔서 뭘 어쩌려고? 나 죽여서 멀쩡히 살아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아?”
“내가 한걸음 늦었군. 그런데 리탄. 자네만 사람을 데리고 온 줄 아나? 허허···.”
쨍그랑!
유리창 깨지는 소리와 함께 커튼을 뚫고 나온 자들은 소총과 방탄 장비로 무장한 용병 셋이었다.
“자. 이러면 최소한 교착상태라고 볼 수 있겠군. 이제 어쩔 거지? 리탄.”
리탄은 자기 이마를 탁 때렸다.
“와! 영감탱이도 존나 치밀하게 준비하셨네. 이러면 내가 인정할게요! 그 뭐냐, 교착상태! 이대로 서로 방아쇠 당기면 다 뒈지잖아.”
“···그러면 이건 어떤가? 일단 휴전하고. 일전에 우리가 약속했던 뒤처리부터 하는 거로.”
“···좋은 생각이십니다. 그렇게 하죠 뭐.”
자연스레 두 사람의 시선이 로페즈에게 옮겨졌다. 그러자 로페즈는 정장의 윗단추를 천천히 풀었다.
“···?”
“···?”
그의 정장 안에서 날벌레 크기의 작은 기계들이 빠져나왔다. 두 사람은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정말 순식간에 전개된 일이었다.
로보버그 서른 기가 테이블 위에 파리처럼 내려앉은 것이다.
“자네 무슨 생각이지? 로페즈.”
“설마···. 아버지가 말했던 트랜센···”
“다 아가리 여물어. 개새끼들아.”
< 4. 시스템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