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대 인공지능 키우기-21화 (21/183)

< 3. 적과 친구는 모두 타인이다 (5) >

***

페낙스 타워는 타르시스 고지의 북쪽에 위치한 대규모 타워다. 수천 세대의 주거시설, 상업시설, 관광시설이 한 곳에 밀집한 페낙스 타워는 화성의 문화재급 건축물이다. 그 높이는 2293미터, 750층으로 저궤도 우주선의 착륙장까지 갖추었다. 그야말로 구세대 지상 건축기술의 완성판이다.

이곳 405층의 스타파이프 카페는 상류층의 주된 만남 장소가 된다.

오후 11시. 카페 내에 따로 마련된 방에서 클레릭과 리탄이 만났다. 리탄은 이 장소와 시간을 정한 클레릭에게 떠보듯 물었다.

“여기 믿을만한 장소 맞아요?”

“우리 자유지구당 의원들이 비밀리에 애용하는 장소죠. 휴대전화 좀 꺼내볼래요?”

리탄은 자기 휴대전화를 꺼내 화면을 켜보았다.

「경고: 네트워크와 연결 실패」

“오! 이게 뭐야. 이런 게 되는 건물도 있었어요?”

통신이 지원되지 않는 아주 깊은 지하나 외딴 우주가 아니라면, 평상시에 네트워크가 끊길 일이 없다. 강력한 위성으로 행성 전역에 지원되는 인터넷은 늘 주변에 존재하는 공기와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허허. 지금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컴퓨터 바이러스가 이 공간을 떠다니고 있죠. 외부통신은 물론이고 녹화와 녹음도 원천차단된 환경입니다. 그래서 의원들이 신뢰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말씀이죠.”

장소가 장소인 만큼, 두 사람 앞에 커피가 있었다. 클레릭은 곧장 커피에 입을 댔지만 리탄은 아니었다.

“목 좀 축이시죠?”

“뭐 마시는 것도 불안하잖아요? 솔직히 우리가 서로 못미덥기도 하고.”

“이래서야 큰일 하실 수 있겠어요? 차기 화이트홀 회장이시면서.”

“그러는 의원님은 차기 행성대통령 아니신가? 뭐든지 조심하셔야지.”

그러고 잠시 서로의 동태를 살피는 눈빛이 교차했다. 이내 두 사람은 밝은 웃음을 터뜨렸다.

‘새파랗게 어린 새끼가 혀 놀림은 좋네.’

‘노인네가 좋다고 염병하네.’

“리탄 대표님도 대충 우리가 손을 잡아서 어떤 이득을 보는지는 알고 계시는군요.”

“이대로는 로페즈가 불안하잖아요? 지금은 사람이 참 착한 것 같지만, 이게 모르거든요. 윗물 먹고 타락해서 나중에 우리 약점 잡으려 할지도 모르고.”

클레릭은 습관적으로 허리를 굽혀 턱을 괴었다. 그렇게 서로의 얼굴이 조금 가까워지자 눈동자 속에 무슨 속내가 들어있는지 보일 듯 말 듯하다.

“의원님 왜 그런 식으로 쳐다봐요? 소녀 같아서 쑥스럽네.”

“화이트홀 회장. 작업할 자신 있어요?”

다소 장난기가 있던 리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무슨 뜻이죠?”

“화성의 함선 여행 서비스를 독점하는 대기업. 화이트홀 그룹의 회장이나 되는 사람을, 리탄 대표님의 아버지를 제대로 작업할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리탄은 코웃음을 쳤다.

“하! 회장? 대기업? 그런 건 다 뒷배경이에요. 어차피 사람 뒈지는 건 다 똑같아. 나의 이득, 당신의 이득, 우리의 불안 요소인 로페즈 제거와 각자의 성공적인 미래. 그렇게 만들어진 협력관계. 이것보다 중요한 게 있어요? 하메네스 클레릭 의원님.”

“그거야, 높이 올라갈수록 주변에 믿을 사람은 없어지겠죠. 서로 믿을 수는 없어도, 서로 필요한 사람이 되어봅시다.”

“그래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리탄은 안주머니에서 땅콩만한 외장하드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렸다.

“이게 뭐죠?”

“제 빌어먹을 아버지의 컴퓨터에서 복사해온 겁니다. 화이트홀의 비밀자금이 어디로 흘러갔는지 거기에 다 기록되어 있어요. 특히 그 연구소······. 거기에 투자된 자금과 자금 경로를 추적당하지 않으려고 누구에게 돈을 먹였는지까지. 그게 고발의 핵심이 되겠네요.”

“이러면 일이 참 쉬워지죠. 원래 내 사람들 시켜서 조사하고 있었는데.”

“귀찮게 그러지 말자고요. 그러다 들켜서 괜히 아버지가 알면 안 되니까.”

“좋습니다. 아주 좋아요. 내가 준비한 폭탄에 이것까지 더해서 아주 제대로 터뜨려보죠. 로페즈 녀석이 1차, 내가 2차, 마지막에 대표님이 3차로 터뜨리시면 그걸로 상황설계 끝. 바로 작업 들어가세요.”

‘이 새끼가 누구한테 명령조야?’

“알겠어요. 그럼 이제 저희가 만난 목적에 관련해서 이야기해볼 차례인데···.”

“허허. 일이 끝난 뒤에 로페즈요? 그거야 그때 가서 이야기하면 되지. 참, 그렇지! 로페즈를 죽이는 시기는 회장이 죽는 시기와 같게 하면 되겠네!”

“왜죠?”

“죽은 회장의 측근 세력이 증오심에 로페즈를 살해했다. 그리고 거기서 내가 최근에 미행당하는 느낌이 있었다. 이러면 되잖아요? 이러면 앞뒤 설명이 완벽하겠네.”

리탄은 차갑게 식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어라? 안 마신다면서.”

“이제 좀 믿어보려고요. 의원님. 아니, 각하.”

“아이고! 허허허! 각하라니! 아직 그렇게 불리기엔 이릅니다! 회장님!”

“하하하! 그래요! 우리 한 번 해봅시다!”

그러면서 리탄은 속으로 생각했다.

‘넌 일 끝나면 바로 소각로 행이야 씨발놈아.’

동시에 클레릭도 생각했다.

‘회장으로 만들고 바로 수색 때려서 목줄 채워야지. ···넌 자유지구당의 돈주머니다.’

***

로페즈는 공식적인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가 입을 열기를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과 언론사는 로페즈가 기자회견을 시작하기도 전부터 뉴스를 내보냈다. 저마다 시청자를 모으려 경쟁하는 것이다.

커다란 회실로 걸어들어오는 로페즈에게 시선이 쏟아졌다. 정적이 감도는 가운데 카메라 셔터 소리만 울린다.

모두가 기다리던 순간,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다.

“저는 화이트홀 그룹 계열사인 화이트맨스터 공동사업추진부서의 연구팀 팀장이었습니다.”

“제 연구팀은 화이트홀, 페이치 회장의 의도로 어떤 비밀프로젝트를 맡게 되었습니다. 연구소는 올림푸스 UN 3번 연구지역 7번 대로의 깊은 지하에 비밀리에 건설되었습니다. 비밀프로젝트는 사회적 통념과 법률에 명백히 위반하는 시스템 감시 및 통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었고, 그 프로그램의 권한은 오로지 페이치 회장에게 주어지기로 했습니다.”

그 폭탄발언에 기자들은 떠들썩해졌다. 누군가는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으며, 누군가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또 누군가는 손가락을 바삐 놀려 로페즈의 말을 모조리 문자로 기록했다.

로페즈는 침을 한 번 삼키고는 침울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최근에 실종사건이 있었습니다. 실종자는 모두 20대 초반. 명문대학교와 대학원의 졸업생이나 실력이 뛰어난 젊은 프리랜서들이었습니다. 제 연구팀은 대부분 프로그래머나 개발자였고, 그 밖에도 각 업계에서 비슷한 조건을 가진 젊은 엘리트들이 비밀리에 편성되어 프로젝트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강력한 프로그램이 완성되기 직전, 화이트홀의 인멸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말이 인멸 작업이지, 연구소에 무장 휴머노이드를 들여보내 그동안 일한 연구소 직원들을 모조리 죽이는 학살 행위였습니다. ···그렇게 죽은 사람들이 지금의 실종자들입니다.”

현대에서 사람이 실종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최근에 실종신고가 엄청나게 접수되었다는 소문에 사람들은 의문을 품었지만, 그렇게 큰 소식이 되거나 하지는 않았다.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음에도 뉴스나 기사에는 별로 노출되지 않았습니다. 화이트홀과 관련된 세력이 언론을 통제한 것입니다.”

“저는 죽어가는 제 팀원들을 뒤로하고 도망쳤습니다. 그 연구소의 유일한 생존자인 저는 화이트홀의 추적을 피했습니다. 화이트홀과 손잡은 세력의 감시 시스템이 없는 곳으로 숨었죠. 그게 26번 산업지역 토로스 구역이었습니다.”

“···여러분은 기억하십니까? 그동안 잠잠했던 토로스 구역이 순식간에 화제로 떠오르고, 정부 차원의 대대적인 소탕 작전이 시작된 것을요.”

이제 그의 말을 듣고 있는 기자들은 모두가 똑같이 생각했다.

과연 어디까지 썩어있는가.

“비리 경찰이나 화이트홀의 킬러들에게 죽을 것이 뻔했던 저는 다시 올림푸스로 도망쳐 들어왔습니다. 당시 연구소에서 탈출하는 과정에 하수도의 화학약품에 노출되어 생사가 위험하기도 했습니다. 여담이지만, 도망치는 과정에 도저히 보고는 지나칠 수 없는 죄 없는 피해자가 보여서 잠시 도왔을 뿐입니다. 어쩌다보니 스스로 카메라 앞에 얼굴을 드러냈는데···.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덕분에 제 목소리를 화성에 알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화이트홀은 이후에도 킬러들을 보냈습니다. 도로의 신호등까지 고장 내면서 저를 미행하고, 페낙스 3차 스카이 아파트의 기록이나 현관문을 해킹하면서까지 절 죽이려 했습니다. 아마 로그를 조사하면 다 나올 겁니다. 어쨌든 이렇듯, 저는 살아남았습니다.”

“그래도 제 목숨이 언제까지고 유지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이미 경찰 세력과 연계되어있는 듯한 화이트홀 때문에 저는 혼자서 화이트홀을 고발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직 다 준비되진 않았지만, 이렇게 이른 시기에 용기를 내어 입을 열어봅니다.”

- 관리자님. 지금입니다.

로페즈의 눈물샘에 삽입되었던 초소형 캡슐이 터졌다. 집에서 프린터를 이용해 직접 만든 것이다.

“절 도와주십시오. 이 나라의 부패를 청산할 수 있도록···.”

그는 눈물을 보였다.

“죽은 팀원들이 제 꿈속에서 더는 울부짖지 않도록······. 저를 도와주십시오. 저는 힘없는 개인이지만, 제 말을 듣고 있는 여러분은 다릅니다. 저를 믿어주십시오. 그리고 힘이 있는 분들은 저를 도와주십시오. 절대 거짓말이 아닙니다···. 절대······.”

- 잘하셨습니다.

때마침 로페즈의 양옆에 있던 경호 휴머노이드가 그의 어깨를 잡아주었다. 이에 로페즈는 떨리는 손으로 휴머노이드를 만류하고 마지막 말을 이었다.

“···저는 믿습니다. 우리 화성은···. 이 나라가 아직 늦지 않았다고 믿습니다. 그러니 이미 높으신 분들께서 조사를 하고 있으리라 희망합니다. 화이트홀 페이치 회장의 잔악한 행위를 이미 조사하고 있으리라 희망합니다.”

“이미 몇 번이나 죽을뻔했던 제가 먼저 목숨을 걸고 나섰으니, 여러분도 준비가 되셨다면 정의로운 행동을 시작해주시길 바랍니다. 진심으로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이와는 별개로···. 그간 제 발언으로 사회에 혼란을 주어 정말 죄송합니다.”

눈물을 훔치며 물러가는 로페즈의 배후로 기자들의 질문이 폭풍처럼 쇄도했다.

모든 뉴스와 기사는 로페즈의 이야기로 도배되었으며, 이미 폭탄을 터뜨린 시점에 언론을 잠재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어디선가 유명연예인이 마약을 투여했다는 기사가 나오긴 했으나 금방 묻혔다. 그런 기사에는 또 언론을 조작하는 것이라며 방송국을 욕하는 악플이 수도 없이 달렸기 때문이다.

로페즈의 이야기를 보도한 방송국은 높은 조회수와 시청자의 신뢰를 얻었으며, 로페즈의 이야기를 기사화한 기자들은 깨끗하다며 네티즌의 칭찬을 받았다.

언론은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심히 뜨거워졌다. 그리고 화성 시민들은 언론보다 더 뜨겁게 반응했다.

로페즈 다음에 기자회견을 연 사람은 의혹의 화살을 일부 맞고 있던 로이 마이크 케블라다.

“시민 여러분께, 산업지역경찰청장으로서 떳떳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번 작전은 클레릭 의원님과 상부의 인계를 받아 진행한 것이 맞습니다. 당시 마약공장 연쇄폭발사고로 문제의 심각성이 드러난 상황이라, 치안정감 선에서 대대적인 공권력 개입은 필수적인 대처였습니다.”

“이번 사건에 또다시 대두된 비리 문제는 내부적인 조사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화성경찰청장님 또한 내부적인 조사의 필요성에 적극적으로 동의하셨으며, 가까운 시일 이내에 화이트홀과 연계된 경찰 세력을 모조리 구속할 예정입니다. 내부조사의 결과가 나오는 대로 인사청문회를 열 것을 약속드리겠습니다.”

케블라에게 향했던 화살은 이어서 클레릭에게 향했다. 때문에 며칠 뒤 클레릭 또한 카메라 앞에 섰다.

의심하는 목소리를 피하기 위한 해명을 기대했던 기자들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클레릭이 비장한 표정으로 어떤 외장하드를 들어보였기 때문이다.

“제 손에 들린 이것은 적법하지 않은 절차로 입수한 기록입니다. 때문에 법정에서 증거로써 아무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며, 역으로 제가 고소당할 염려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 자신의 안위보다 국민 여러분의 답답한 마음을 풀어주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클레릭의 말에 모두가 귀를 기울였다.

“이것은 페이치 회장의 개인 컴퓨터에서 빼낸 자금 경로 장부입니다. 누구에게 뇌물이 들어갔는지, 누구에게 청탁했으며 어떤 이유로 돈이 그렇게 흘러갔는지를 단번에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제 말을 듣고 계신 ‘일부 권력층’은 빠르게 판단하시길 바랍니다. 제 손에 들린 이 물건을 참고해 정의로운 집행을 할지, 아니면 지금껏 그래왔듯 화성을 꽉 쥐고 있는 ‘그 정당’과 화이트홀의 편을 들어줄지를 말이죠. 여차하면 인터넷이나 방송국에 뿌려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걸 어떻게 구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클레릭은 대답 없이 물러났다.

또 며칠 뒤, 클레릭을 향한 질문에 일리노이 리탄이 대답했다. 화이트홀의 해명을 촉구하는 목소리에 페이치 회장은 잠적했다. 그때 페이치 회장의 아들이 보기 좋게 등장한 것이다.

“굉장히 위험한 발언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늘날 만연하는 그들의 추악한 행동들이 계속되어선 안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나라 전체를 주무르는 더러운 기업의 서비스를 어느 고객이 이용하겠습니까?”

리탄은 카메라 앞에서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실은 몇 년 전부터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의심하면서도 깊게 알아보려 하지 않았습니다. 사람 목숨을 쉽게 없애버리는 제 아버지가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그러한 살인행위를 ‘일’ 또는 ‘작업’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연구소의 일은···. 저도 그런 일이 있었는지 몰랐습니다. 수십 명을 지하에서 학살해버리다니···. 그건 도저히···. 아무리 아버지가 두려워도 입을 닫고 있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저희 화이트홀···. 아니, ‘제 아버지의 화이트홀’은 현 집권 세력인 통합공화당에 줄을 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통합공화당을 늘 부정하는 정당인 자유지구당, 그중에서도 이번 사건의 씨발점이 되는 26번 산업지역의 클레릭 의원님과 접촉했습니다.”

“제 예상대로 클레릭 의원님은 꽤 예전부터 화이트홀을 의심하고 계셨습니다. 꾸준히 증거를 모아오신 분이었고, 저는 그분이 정의를 실현하는 데 보탬이 되고자 아버지의 컴퓨터에서 기록을 빼돌렸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저격수에게 당하진 않을까 두렵습니다. 그나저나 저쪽 창문, 방탄 맞겠죠?”

그 말에 기자들이 흠칫했다. 간접적으로 대기업의 횡포라는 공포를 주입한 것이다.

“온갖 고생을 당하신 로페즈 님과 이미 세상을 떠나신 분들께···. 아버지를 대신해 죄송하다는 말씀, 고개 숙여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정말, 진심으로 죄송합···! 흑······. 흑흑···.”

몇 사람들은 리탄의 일관성 없는 모습에 정신병이라도 걸렸냐며 비웃었지만, 대다수는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

행성대통령은 자신의 드넓은 집무실에서 휴대전화를 붙잡고 호통을 쳤다.

“그러니까 이 새끼야! 내가 적당히 받아 처먹으라고 얘기했어, 안 했어?! 이거, 이 상황 어떡할 거야?!”

그의 통화 상대는 통합공화당의 당 대표였다.

“나는 몰라, 씨발! 내가 예전에도 분명히 경고했어. 너무 처먹다가 걸려서 사태 수습 못하게 되면 다 버릴 거라고! 알아들어?!”

“뭐? 지금 뭐라고 했어? 당? 그깟 당이 중요해? 지금 페이치 새끼 다음으로 욕먹는 게 누군지 알아···?”

콰앙!

그는 책상을 발로 차버렸다.

“나야!!! 이 나라의 대통령!!! 나라고! 지지율이 무슨 폭포처럼 떨어지고 있어! 그 망할 통합공화당 때문에 다음 대선까지 망했어! 다 망했다고!!! 끊어!”

전화를 끊자마자 곧장 수신음이 울렸다. 그는 신경질적으로 다음 통화를 받았다.

“페이치! 이 좆같은 새끼야!!!”

- 각하···. 한 번만 도와주십시오···. 간청드립니다···.

통화 상대는 화이트홀 회장이었다.

“이 판국에 뭘 어떻게 도와? 이미 너나 나나 끝장이야. 나는 이전처럼 강력한 정치를 펼칠 수 없게 되었고, 너는 경영을 할 수 없게 되었어.”

- 각하···.

“매번 트랜센던서, 트랜센던서···. 그깟 인공지능 때문에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난리를 치더니. 이게 뭐야? 완성됐다고 자랑질할 때는 언제고 일을 이딴 식으로 꼬아놨어? 네가 무슨 꽈배기 장인이야 씨발놈아?”

- 그래도 인멸하라고 명령하신 것은 각하께서···.

“내가···? 난 그런 기억이 없는데?”

- ···예? 아니, 저와 함께 화성 시민들을 철저하게 지배하시겠다는···. 영원히 정상에 군림하기 위해서···. 그렇게 주문하시지 않으셨습니까···.

“···.”

- 설마 오래전에 오더하신 거라고 잊어버리신 건···

“아니야!!!”

휴대전화를 붙잡은 행성대통령의 손이 희미하게 떨렸다.

“아니야. 전부, 전부 네가 한 거야. 전부 네놈의 욕망이야. 난 아무 상관이 없어. 나는 페이치 네놈과도, 통합공화당과도 아무런 관계성이 없다고.”

- 아, 안됩니다! 각하! 그것만은 제발···!

“닥쳐. 이미 지시해놨어. 난 국민들 앞에 서서 말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야. 화이트홀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를 조속히 실행하겠다고. 수사에 걸린 새끼들은 모조리 목이 떨어지겠지. 화이트홀 수뇌부는 교체될 거고, 날 낳은 통합공화당은 개박살이 날 거다.”

- 어떻게 이러실 수 있습니까?! 제가 그동안···. 그 자리에 올라서기 전에 얼마나 많이 도와드렸습니까?! 1선 의원이었던 시절부터 제가 20년은 넘게 도와드리지 않았습니까! 트랜센던서도 솔직히 말도 안 되는 주문이었는데 이렇게 완성까지 했습니다! 예?!

“이미 여론은 네놈과 여당을 악으로 지정했어. 반전도 안 되고 덮는 것도 안 돼.”

대중은 이미 그들을 악당으로 정했다.

- 제발 부탁입니다···.

“내 무너진 이미지는 악을 처단하는 데 앞장서서라도 복구해야지. 끊는다. 다시는 내게 연락하지 마라.”

결국 사람을 심판하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상황’이었다.

< 3. 적과 친구는 모두 타인이다 (5)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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