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대 인공지능 키우기-18화 (18/183)

< 3. 적과 친구는 모두 타인이다 (2) >

***

이 시대의 모든 사업자가 그렇듯, 로페즈 역시 컴퓨터 앞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210번 라인에 버그가 있어. 뭐가 문제야?”

- 4번 라인의 동적 링크 라이브러리 구문에 반복 오류가 있습니다.

“확인해봤는데 반복 오류는 없어.”

- 미리 작성한 라이브러리 내부, 3번 코드와 4번 코드의 정의대상이 중복됩니다. 그리고 라이브러리 66번 라인에서 객체 이용자로 지정된 알고리즘이 67번 라인의 휘발성 변수와 충돌합니다.

“67번 내용을 재정의해서 68번으로 옮기면 디버그 할 수 있어?”

- 해당 라이브러리는 가능합니다.

기본적인 코딩은 로페즈가 한다. 트랜센던서는 로페즈가 작성 중인 코드 전체를 항시 확인하며 보조한다. 그런 방식으로 키보드를 두드리니 작업속도가 말도 안 되게 빠르다.

“메인에서 내가 지정하는 라이브러리는 네가 별도로 작성해. 할 수 있지?”

- 가능합니다.

사업을 위해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고 있다. 당연하게도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기 위해선 아이디어가 필요하고, 그런 아이디어를 트랜센던서가 구체화해줄 수는 없다. 트랜센던서에겐 ‘상상력’이 없으니까.

그러기를 이틀째.

컴퓨터 책상 앞에 놓인 식기를 경호 휴머노이드가 치워갔다.

“다시.”

- 15번째 프로토타입. 실행하겠습니다.

그러고 몇 초가 지났다. 어디선가 로보버그 한 기가 날아와 키보드 위에 앉았다.

“······됐다. 됐지?”

- 실험 성공입니다. 기존 로보버그 설계에 적합한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자동으로 구현되었습니다. 오차율은 0.02%입니다.

“휴우···.”

로페즈는 그대로 일어나 침대까지 걸어갔다. 푹신한 이불에 몸을 파묻고 눈을 감았다.

- 현재 시각 오전 4시 41분. 안녕히 주무십시오.

“그런 인사는 안 해도 돼······. 안 어울린다고···.”

- 알겠습니다.

***

오전 11시 4분.

침대에서 일어나 더벅머리가 된 로페즈는 세수를 하며 말했다.

“완성된 거 최종 브리핑해.”

- 파일명. 로페즈 통합 인공 자율 학습기(Lopez Integrated Artificial Autonomy Learner).

- 범용적인 인공지능 학습기로 인공지능을 요구하는 특정 시스템이나 특정 하위 프로그래밍에 적합한 소스를 사용자의 요구에 따라 생성 및 제공합니다. 마지막 실험 결과, 포맷한 로보버그에 최소한의 사용자 의도와 해당 학습기를 내장하여 해당 로보버그의 정상적인 작동을 확인했습니다.

줄여서 LIAAL. 혹은 로페즈 학습기.

쉽게 말해, 인공지능을 개발하려는 사람에게 막강한 길잡이 소스를 제공해주는 프로그램이다. 그 위력은 간단한 지식을 가진 초등학생이라도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자신만의 인공지능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할 정도다.

“아이들은 상상을 펼치고, 프로그래머들은 일을 줄이고, 연구자들은 더 빠른 시행착오를 거칠 수 있게 되겠지. 특히나 프로그래머와 연구자 일손이 부족한 소기업에서는 매우 유용한 도구가 될 거야.”

하지만 누군가 얻으면 누군가 잃는 것이 있는 법이다.

- 해당 프로그램이 상품화되었을 때, 새로운 시장이 개척되진 않습니다. 기존시장의 독점자들에게 높은 확률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입니다. 이는 관리자님의 우호 세력보다 적대 세력을 더 크게 확산시키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그것도 내 의도야. 시장에서 가치가 증명되면 가만히 안 있겠지. 연구소를 굴릴 정도로 규모 있는 세력이나 대규모 프로그래밍 외주를 해주는 업체는 큰 타격을 받을 거야. 소기업들이 자기네는 안 찾고 내 학습기만 깔아서 쓰려고 할 테니까.”

- 그것이 어째서 의도입니까?

“규모 있는 세력은 타격을 만회하기 위해 이 기술을 손에 넣으려고 접촉해오겠지. 나는 그때 딜을 하면 돼.”

- 협상이 배제된 위험한 접촉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알아. 작업까지 할 정도의 세력이라면 날 죽이거나 납치하거나 협박하려고 하겠지. 지금까지 무너진 수많은 회사들처럼. 하지만 말했잖아. 나에겐 네가 있어.”

함부로 감당할 수 없는 위험을 트랜센던서로 이겨내리라. 그밖에 닥쳐올 수많은 난관도 이겨내리라. 전부 이겨낸 뒤에 남는 것은 권력자의 길이다.

- 이해했습니다.

이후 3일간 개인사업자 등록, 특허 등록, 개인정보 수집자 허가, 아이피 및 도메인 구매 등 법률적으로 거쳐야 할 기본적인 토대를 마련했다. 직접 만든 서버와 홈페이지에는 로페즈 학습기를 유료로 업로드했다.

소파에 앉은 로페즈는 벽면의 넓은 화면을 보았다.

「30일 무료 이용권 (계정당 1회)」

「30일 이용권 (1,000크레트)」

「1년 이용권 (11,000크레트)」

「1년 이용권+자동갱신(10,000크레트)」

“자동갱신 상품을 구매할 경우에 1000크레트를 할인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놓고 잊어버리는 사람이 있어서. 귀찮다고 그냥 두는 사람도 있고.”

이렇게 알려준 소소한 것들이 트랜센던서에겐 학습의 도움이 된다.

“자, 홈페이지는 열었고. 내가 그간 얼마를 투입했지?”

- 특허 등록, 아이피 구매, 도메인 구매, 인터넷 광고비로 55만3000크레트를 지출했습니다. 관리자님의 계좌 잔금은 3551만 8900크레트입니다.

“광고가 내일부터라고 했지.”

- 그렇습니다.

“그럼 어차피 경과를 보려고 해도 내일부터네. 넌 다시 학습에 집중해.”

- 알겠습니다.

그러면서 일어나려는데 소파 앞 테이블에 놓인 휴대전화가 진동했다.

「익명 발신자」

벽면의 넓은 화면에는 전화번호도 없이 그런 문구가 띄워졌다.

‘클레릭 의원인가?’

로페즈는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상대방이 먼저 목소리를 꺼낼 때까지 기다렸다.

- ······로페즈 씨?

‘누구지?’

전혀 모르는 사람의 목소리다. 기자일까. 경찰일까. 아니면 작업자일까.

번호를 숨긴 익명 발신자로 전화를 걸었으니 수상한 사람은 아닐까. 불순한 목적이 있지는 않을까.

일단 로페즈는 대답하지 않고 기다렸다.

- 음······. 이 번호가 확실한데···.

‘내 번호를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럴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경찰이 아니라면 비밀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형사나 검사일까. 어쩌면 클레릭의 명령을 받은 아랫사람일지도 모른다.

“누구세요?”

- 아! 로페즈 씨 맞네! 반가워요!

‘내 목소리만 듣고 나라는 걸 알아챘다.’

이미 알고 있다면 더는 정체를 숨길 필요가 없다.

“네. 제가 로페즈입니다. 누구시죠?”

- 일리노이 리탄입니다. 반가워요.

‘일리노이 리탄···. 일리노이···?’

화이트홀 회장의 이름이 일리노이 페이치다. 대기업의 핏줄은 후계 관리를 위해 자식들에게 이름을 물려준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다.

“화이트홀의 높은 분께서 제겐 무슨 볼일이시죠?”

왠지 그럴 것 같다는 추측에 확신이라는 허세를 더한 물음이다.

- 어···. 제가 누군지 아세요? 전 매스컴에 얼굴 내비치는 사람도 아닌데.

“이름만 대충 압니다.”

목소리는 남자다.

“안 그래도 그쪽 아버지 때문에 힘든데, 제 번호까지 알아서 이렇게 괴롭혀야겠어요?”

- 이거 생각보다 무서운 사람이네. 내 아버지뿐만 아니라 밑에 자식들도 조사해놨어요? 트랜센던서가 대단하긴 하구나.

일단 기세는 밀리지 않은 것 같다.

로페즈는 휴대전화를 음소거한 후 말했다.

“트랜센던서, 너를 알고 있어. 이름은 일리노이 리탄. 일리노이 페이치의 아들 같은데, 누구야?”

- 일리노이 리탄(Illinoi Rittan). 28세. 일리노이 페이치의 장남입니다. 화이트홀 그룹의 건설계열사인 화이트컨스트럭트의 대표입니다. 최종학력은 고등학교이며, 9년 전 학교폭력 가해자 의혹이 있었으나 피해자와 잘 해결됐다는 비공개 기사가 있습니다.

‘고졸에 학교폭력 가해자에, 나보다 세 살 어린 사람이 대기업 계열사의 대표를 하고 있네.’

악착같이 노력해서 대기업 계열사의 팀장까지 올라왔다가 단번에 추락한 로페즈로선 그에게 반감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음소거를 해제했다.

“트랜센던서가 뭔데요?”

- 뭐긴요. 내 아버지가 비서실 직원 여럿 팰 정도로 대단한 물건이지. 한계를 초월한 인공지능이잖아요? 당신이 훔친 거.

‘훔치긴 뭘 훔쳐, 씨발.’

“훔치긴 뭘 훔쳐요? 고생해서 만들어놨더니 만든 사람들 다 쏴죽인 게 어느 쪽인데. 우리 연구팀을 사람이 아니라 기계로 봤죠? 당신 같은 인간들은.”

- 어이쿠. 화가 나셨다면 사죄드리겠습니다. 화를 돋우려고 내뱉은 말은 아니었고요. 저도 그 일은 참 안타깝게 생각해요. 3년 동안 지하에서 그 고생을 한 사람들을 내 미친 아버지가 눈이 멀어서 그냥···. 우리 서로 좋은 방법이 많았을 텐데요. 그렇죠?

로페즈는 인상을 찡그리며 미간을 문질렀다. 가난했던 학생 시절, 안경을 썼을 때 스트레스로 남은 버릇이다.

‘미친 아버지? 서로 좋은 방법?’

회장이 한 짓을 부정하며 협력이라도 제안하려는 걸까.

“당신 아버지가 한 짓은 극단적인 방법이었어요.”

- 그러니까 말이죠. 그런 나쁜 새끼는 지옥에 보내줘야 해요. 그 인간이 천벌 받을 때까지 기다리면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이 죽겠어요?

“마치 페이치 회장을 어떻게 해버리고 싶다는 뜻으로 들리네요.”

- 하하. 글쎄요. 그렇게 들리셨어요?

로페즈는 테이블 위에 홀로그램 키보드를 띄워 타이핑했다.

「>트랜센던서. 녹음하고 있지?」

「전에 명령하신 대로 관리자님의 주변 모든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익명 발신자는 기본적으로 녹음 기능이 없습니다. 따라서 관리자님의 체내에 장치된 기기로 기록하고 있음을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아 그러면 증거로 쓰기 힘든데. 조작 가능성이 있다고 하면서.」

“리탄 씨가 그 이야기를 제게 하시는 이유는요?”

- 로페즈 씨의 언론 플레이에 감탄했습니다. 그것도 트랜센던서가 그렇게 하라고 조언해준 거예요?

「녹음을 중단할까요?」

「>아니야. 일단은 계속해. 녹음과 녹화는 너의 기본행동방침이야.」

“아니요. 트랜센던서는 아직 갓난아이처럼 사람 말도 제대로 못합니다.”

- 하하. 거짓말 같은데.

“믿거나 말거나요. 근데 전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낙후된 토로스 구역에서 목숨 걸고 있었다는 것만 참고해두세요.”

- 아! 그러면 또 거짓말 같지가 않네요. 흠, 저희 저녁이나 같이 먹을까요?

“저녁에 만나서 이야기하자고요?”

- 네. 어차피 이 대화도 어떤 방식으로든 녹음하고 있을 거 아니에요?

“맘대로 생각하세요.”

- 이런 방식으로는 서로를 신뢰하기 힘들다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제 목적을 위해 로페즈 씨의 힘이 필요해졌거든요. 로페즈 씨가 제게 힘을 빌려주시는 대가로, 저도 그에 상응하는 뭔가를 로페즈 씨에게 해줄 수 있지 않을까요?

“절 외부로 끌어내서 어떻게 해보려는 심산은 아니고요?”

- 저녁에 식사는 그쪽에서 하죠. 페낙스 3차 스카이 꼭대기에 좋은 레스토랑이 있잖아요. 제가 대접할게요. 이래도 안 돼요?

엄청 위험하다. 화이트홀 그룹 회장의 장남과 식사 자리는.

하지만 감당해야 할 위험이 큰 만큼 값진 결과를 얻을 수도 있다.

‘이야기는 들어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알겠어요. 만나요. 대신, 그전에 간략한 목적이나 한번 들어봅시다. 결국 그쪽이 원하는 게 뭔데요?”

그다음에 들려온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 내 아버지를 죽이려고요.

< 3. 적과 친구는 모두 타인이다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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