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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인공지능 키우기-16화 (16/183)

< 2. 가시 돋친 열매 (5) >

***

“그게 궁금하시면 의원님 개인연락처 좀 주시죠.”

좋게 말하면 대담하고 나쁘게 말하면 주제도 모르는 짓이다. 뉴스 좀 탄 일반 시민이 2선 의원에게 당당히 개인연락처를 요구하는 것은 말이다.

그러나 클레릭은 허를 찔린 듯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의도가 뭐죠?”

“불순한 의도입니다.”

다시 한번 대담한 발언에 클레릭은 끝내 못이기는 척 연락처를 알려주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로페즈의 휴대전화 번호로 문자를 보낸 것이다.

“총 든 깡패를 자동차로 칠 때부터 내가 진작 알아봤어요.”

“어떤 부분을요?”

“로페즈 씨는 야심가입니다. 맞죠?”

“그건 저 스스로도 잘 모르는 일입니다.”

클레릭은 소파에 기댔던 등을 앞으로 떼며 턱을 괴었다.

“나는 26번 산업지역의 중장년층을 꽉 잡고 있어요. 덕분에 2선까지는 왔는데, 이번에 토로스 구역 건 때문에 3선은 장담 못하죠.”

“의원님이 그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것도 한순간 아니겠어요? 제가 그랬던 것처럼.”

“사람 참 재밌으시네.”

로페즈는 의원과 자세를 똑같이 했다. 등을 앞으로 기울여 턱을 괴었다. 시선은 의원에게 고정한 채로.

“의원님. 제가 먼저 말해볼까요?”

“해보세요.”

“예전부터 클레릭 의원님의 지지율은 아슬아슬했죠. 자유지구당에서 의원님을 밀어주긴 했지만, 1선도 2선도 압도적인 표차로 이긴 건 아니에요.”

- 또한 26번 산업지역의 젊은 층은 투표율이 낮다는 점도 있습니다.

“또한 26번 산업지역의 젊은 층은 정치에 관심이 없어 투표율이 낮아요. 그래서 의원님은 젊은 층보다는 중장년층을 위한 공약을 내세우고 계셨죠. 그런데 그 중장년층도 3선에서는 어떻게 태도를 바꿀지 모르는 일이 됐어요. 안전을 추구하는 그들 성향상 범죄라면 기겁을 하는데, 하필 토로스 구역에서 이런 일이 터졌으니까요.”

“제법 조사를 하셨군요.”

“그러니 위기를 기회로. 최근에 뉴스에서 시민영웅으로 떠오른 사람처럼, 기존의 해악을 척결하는 영웅이 된다면 단번에 지지율을 높일 수 있겠죠. 지금 분위기가 그러니까요.”

여기서부터는 트랜센던서의 조사 범위 밖이다.

“제 추측인데, 의원님은 저를 이용해 화이트홀의 어두운 면을 고발하려 하십니다. 누구보다도 앞장서서요. 그리고 그 야심은 3선에 그치지 않고 행성대통령이나 당 대표까지 노리고 계시겠죠.”

“···.”

“그게 사실이라면 추측할 수 있는 것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의원님은 자유지구당 소속이시니, 현재 화이트홀이 줄을 대고 있는 당은 자유지구당의 반대 세력인 통합공화당이 됩니다.”

클레릭은 생각보다 표정에 솔직한 사람이었다. 살짝 커진 눈에 살짝 떨어진 입술. 누가 봐도 놀란 표정이다.

- 관리자님께서 교섭주도권을 잡으셨습니다.

“의원님은 화이트홀을 고발하시면서, 부패 척결의 영웅이자, 통합공화당의 지지율을 부숴버리는 자유지구당의 영웅이 될 수 있어요. 이게 의원님께서 계산하시는 거겠죠?”

클레릭이 계산을 했든 안 했든 그건 중요치 않다. 만약 그가 거기까지 계산했다면 로페즈는 통찰력이 뛰어난 인물로 보일 것이다. 반대로 그가 거기까지 계산하지 않았다면, 로페즈는 클레릭을 과대평가해 띄워주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어느 쪽이든 로페즈에겐 이득이다.

“맞아요. 다 맞습니다. 젊으신 분이 대단하시네. 허허허···.”

클레릭은 그렇게 말하면서 손수건을 꺼내 자기 이마를 닦았다.

‘거기까진 계산하지 않은 모양이네.’

“흠···. 로페즈 씨가 다 알고 계시니 이야기가 빠르겠군요.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봅시다. 우리 로페즈 씨는 화이트홀에게 뭔가 구린 짓을 당했다. 나는 이렇게 가정하고 있어요.”

“네.”

“나는 로페즈 씨의 협력을 얻고자 합니다. 이에 그쪽이 원하시는 게 있다면 말씀해보시죠.”

“제가 원하는 건 이미 얻었습니다.”

클레릭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떠보았다.

“···개인연락처?”

“저희 사이에 개인적인 연락망이 생겼다. 자유지구당 2선 의원과 관계가 생겼다. 그 사실이 저한텐 이득이 아닌가요. 저희 서로 이해관계가 일치하니까, 서로 도우면 될 것 같습니다.”

“아하. 그런 뜻이군요. 좋습니다. 좋아요.”

이후 로페즈는 클레릭에게 말했다.

화이트홀에서 비밀스러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사회 전반의 시스템 자체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막강한 감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프로젝트다. 그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들은 모두 젊은 엘리트들이며, 자기는 그 연구팀이 소속된 화이트맨스터 공동사업추진부서의 연구팀 팀장이었다. 프로그램이 완성된 직후, 화이트홀은 무장 휴머노이드를 앞세워 지하의 연구팀을 말살했다. 최근에 젊은 졸업생 수십 명이 실종된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자기는 간신히 도망쳐 나온 유일한 생존자다. 문명의 감시망이 닿지 않는 토로스 구역에서 연명했으나, 화이트홀의 거듭되는 작업 시도에 스스로 카메라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반격을 꾀하기 위해서.

이에 클레릭은 답했다.

“알겠어요. 제 쪽에서도 믿을 만한 사람들에게만 말해서 화이트홀을 조사해보죠. 이대로는 증거가 턱없이 부족하니까, 정보와 계획을 수시로 공유하면서 천천히 준비해봅시다.”

***

로페즈는 감사패를 들고 차로 돌아오는 길에 또 기자들을 마주쳤다.

“로페즈 씨! 화이트홀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한 말씀만 해주세요!”

“최근에 심한 화상 흉터가 있었는데 오늘이 돼서야 치료하신 이유가 뭔가요?”

“화상 흉터의 원인이 뭐죠?”

“어째서 그동안 토로스 구역에 계셨던 건가요?”

“지금 보시는 순간, 토로스 구역의 시민영웅 로페즈 씨께서 올림푸스중앙경찰서를 나오고 계십니다. 왼손에는 감사패를 들고 있는데요. 주차장 진입로는 기자와 경찰들로 일시적인 마비 상태입니다.”

“한 말씀만 해주세요!”

이미 기자들의 관심은 로페즈의 영웅적인 면모가 아니라, 로페즈와 화이트홀 사이에 있는 어떤 수상한 관계에 도달해있었다.

- 열어드릴까요?

로페즈는 입속으로 ‘응’이라는 소리를 냈다. 그러자 검은 승용차의 운전석 문이 스스로 열렸다.

그는 운전석 앞에 멈춰서 기자들을 돌아보았다. 수많은 카메라와 마이크가 눈에 들어온다. 해명을 촉구하는, 혹은 새로운 폭탄 발언을 원하는 목소리와 표정들이 만족스럽다.

“그···.”

그가 입을 떼면 기자들은 순식간에 입을 닫았다.

“저는···.”

그는 최대한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삶의 의지나 자기 목표에 충만한, 곧 싸우러 나갈 전사 같은 표정을 만들었다.

“저는 절대 자살하지 않습니다.”

그 발언에 모두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리고 모두가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했다.

그저 카메라에 그의 얼굴을, 표정을, 마이크로 그의 목소리를 담기에 열중했다.

“저는 실종되지도 않습니다. 저는 올림푸스 도심 밖으로 절대 나가지 않습니다. 저는 레저 스포츠나 여행을 즐기는 사람도 아닙니다.”

놀란 것은 경찰들도, 어딘가에서 생중계 화면을 지켜보고 있던 시민들도 마찬가지였다.

“저는 사고도 나지 않습니다. 항시 주변의 모든 것을 경계하며, 위험한 짓이나 위험한 장소에 가는 행동은 절대로 하지 않습니다. 조금이라도 사고 가능성이 있는 제품이나 교통수단은 일절 이용하지 않습니다. 정기적인 건강검진도 합니다.”

“그래도 만약 제가 자살하거나, 실종되거나, 사고사를 당한다면. 하다못해 대낮의 거리에서 미친 사람에게 이유 없는 살인을 당한다면.”

“그것은 화성에 뿌리내린 ‘거대한 타의’에 의한 ‘입막음’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의심하고 있는 그것이 정확하다고 주장하고 싶네요. 목숨 아까운 줄 모르는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부분은 여기까지입니다. 그리고 죄송하지만 개인적인 인터뷰는 모두 사절하겠습니다.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차에 탑승했다. 그런 직후 폭발적인 반응을 보여오는 기자들, 그런 기자들을 통제하기를 포기한 경찰들을 뒤로하고 빠져나왔다.

***

로페즈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경호 휴머노이드를 주문했다.

“경호 휴머노이드에도 너를 연결할 거야. 네가 현실에서 쓸 수 있는 손발이 생기는 거지.”

- 노페이스 모델을 확인했습니다. 몇 기를 주문하시겠습니까?

“세 기. 두 기는 자동차 뒷좌석에 두고, 나머지 한 기는 집에서 쓸 거야. 그리고 프린터도 주문해.”

- 가정용 복합 프린터를 주문하시겠습니까?

“그래. 네 능력껏 주문해. 이제는 대충 내가 선호하는 물건이 뭔지 알잖아.”

- X프로텍트 사 경호 휴머노이드 X166 모델 세 기와 헤르메스 사 가정용 복합 프린터 AAP5 모델 한 기의 가격은 총합 1085만 3600크레트입니다. 주문하시겠습니까?

“프린터 재료는?”

- 재료는 별도 주문입니다. 관리자님께서 로보버그와 같은 기계식 발명품을 구상하고 계신다면 형상기억합금, 플라스틱, 철, 알루미늄, 구리, 금, 은, 기초 저분자 금속제 등이 포함된 에디슨 팩과 테슬라 팩을 추천해 드리겠습니다. 가격은 1㎏당 1만 크레트입니다.

“20㎏ 주문해. 일시불로.”

“총합 1105만 3600크레트입니다. 페낙스 3차 스카이 8600호로 주문하시겠습니까?”

“그래.”

- 결제했습니다. 관리자님의 계좌 잔금은 3607만 4850크레트입니다.

‘돈을 벌긴 벌어야 해. 앞으로도 큰 지출이 있을 거야.’

그동안 모아둔 돈을 벌써 2000만 크레트나 넘게 썼다.

“트랜센던서.”

- 네. 관리자님.

“그동안 위험성 높은 투자 방식에 대해서 학습은 계속했지?”

- 현재 진행 중인 학습은 IT영역의 역탐지 회피, 네트워크 및 시스템 침입 기술, 경제적 자금 투자에 관한 공개된 영역을 우선하고 있습니다.

“알겠어.”

‘집에 돌아가서 빠르게 돈을 굴려야겠어.’

그때 휴대전화가 진동했다.

- 클레릭의 문자입니다. 수신자와 발신자 사이에 암호화된 코드로 읽는 즉시 30초 후 자동삭제됩니다.

로페즈는 휴대전화를 꺼내보았다.

「대단한데요? 카메라 앞에서 그런 발언을 하다니, 발상이 좋으셔. 눈치도 좋고.」

그는 클레릭 의원에게 적절한 답장을 보냈다.

「이런 분위기를 조성하면 의원님께서 주변을 설득하기에도 편하지 않겠습니까.」

「내 말이 그 말이에요. 우리 이렇게만 갑시다.」

「네. 의원님도 몸조심하세요.」

정치권에 있는 2선 의원과 문자를 주고받는다는 감각은 오묘했다.

로페즈는 문자가 자동삭제되는 것을 확인한 후 조용히 말했다.

“미행이 붙은 것 같아. 뒤쪽 차량에 침입할 수 있겠어? 두 차량 뒤에 바퀴 없는 검은색 승합차.”

- 해당 차량의 네트워크에 침입했습니다. 내부 블랙박스 영상을 확인하시겠습니까?

“휴대전화 위에 띄워.”

이어서 홀로그램으로 영상이 떴다. 운전석에 한 명, 조수석에 한 명, 뒷좌석에 두 명, 전부 모르는 얼굴들이다.

“얼굴 검색해. 뭐하는 놈들이야?”

- 화성 정부의 신원조회 시스템에 침입해야 합니다. 저의 현 기술 수준으로는 역탐지 우려가 있습니다.

“그럼 인터넷으로 공개된 영역에서만 검색해. 카메라도 안 들고 있는 걸 보니 기자는 아닌 것 같은데.”

- 전원 화이트맨스터 현장보조부서 제1팀 소속 직원입니다.

“작업자들이네.”

그때 전방의 길목이 막혔다. 앞에서 사고라도 난 걸까. 운전자 둘이 차에서 내려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수상하다.’

사고가 났으면 보험사와 차량의 각종 시스템이 알아서 해결해준다. 완벽하게 통제되는 도로교통과 자율주행으로 차량 사이에 마찰 가능성은 사실상 0에 수렴한다. 따라서 운전자들이 저렇게 서로 실랑이를 벌일 이유가 전혀 없다.

길을 유도당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 경찰에 신고하시겠습니까?

“그러다 현장에 비리 경찰이 출동하면 망해.”

자력으로 빠져나가야 한다.

“전방의 교통 회로에 간섭해. 정전 오류로 저 신호등만 꺼버려. 이대로 통과한다.”

저들이 유도하는 경로대로 가주지 않으리라.

- 알겠습니다.

이윽고 전방의 신호등 홀로그램이 꺼졌다. 교차로에서 들어오는 차량과 이쪽에서 빠져나가려던 차량이 충돌 직전 멈추면서 도로가 마비되었다. 역시 이렇게 해도 차 사고는 절대 발생하지 않는다.

“빠져나가.”

트랜센던서가 차량 네트워크에 간섭했다. 로페즈의 자동차는 마비된 도로 사이를 교묘하게 질주했다.

로페즈의 차량이 마비된 구간을 빠져나온 직후,

“신호등 켜.”

꺼졌던 신호등이 켜지면서 도로의 질서가 회복되었다. 뒤에서 미행하던 작업자들의 차량은 교통 규칙에 의해 그 자리에서 발이 묶였다.

무사히 집으로 돌아온 로페즈는 현관문을 닫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앞으로도 이런 일이 자주 생길 거야. ···아까 주문한 물건들은?”

- 경호 휴머노이드, 가정용 복합 프린터, 프린터 재료는 4분 이내에 도착합니다.

“도착하면 경호 휴머노이드 연결해서 물건 다 들고 현관문으로 들어오게 해.”

- 알겠습니다.

로페즈는 거실로 들어와 창밖부터 보았다.

저녁노을을 맞이한 올림푸스 도심의 찬란한 전경이다. 이런 도시를 돌아가게 하는 것이 기업들이며, 그런 기업들 사이에 화이트홀이 있다는 것이 불쾌하다. 그런 생각을 품고 있으면 찬란한 도시 전경이 전혀 아름답게 보이질 않는다.

저 높은 건물들의 훨씬 바깥, 외곽에는 토로스 구역과 같은 곳이 있다. 지금 눈에 보이는 것은 찬란함이라는 화장품을 잔뜩 칠한 거짓된 문명 같다.

- 관리자님. 소파 뒤에서 미약한 진동이 감지됩니다.

“뭐?”

이번에도 평탄한 어조로 말해오는 트랜센던서의 알림이다. 로페즈는 잽싸게 소파를 돌아보았다.

- 집에 누군가 있습니다.

마스크에 모자를 쓰고 있는 괴한이었다.

괴한이 소음기 달린 권총을 겨누고 있다.

“누구···”

“죽어.”

로페즈가 반응함과 동시에 방아쇠는 당겨졌다.

< 2. 가시 돋친 열매 (5)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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